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열
August 8, 2023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23
1년 간 키운 몬스테라 오블리쿠아

🌳 식물을 사랑하는 당신께


1년 동안 열 명의 식물친구들과 하나의 식물을 키웠습니다. 식물의 이름은 ‘몬스테라 오블리쿠아’입니다. 어느 날, 한 식물친구가 지인들에게 이 식물을 나눠준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죠. 이 식물은 저의 위시리스트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멋진 친구 같으니라고!’


그는 열 명의 식물친구들에게 오블리쿠아의 사진 한 장을 전송했습니다. 하지만 잔뜩 기대에 부푼 저는 사진을 보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죠. 제가 생각한 오블리쿠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블리쿠아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기괴할 정도로 크게 뚫린 잎의 구멍이었습니다. 구멍의 면적은 잎의 면적보다 커야 했고요. 생선의 뼈라고 해도 믿을 만큼 가냘픈 잎이어야 했습니다. 


그가 보내온 사진 속의 식물은, 잎은 고사하고 이쑤시개만 한 가느다란 길이의 줄기가 전부였습니다. 그러고보니 기억이 나네요. 이 줄기는 그가 몇 년 전에 오블리쿠아를 구했다며 보여준 것과 같은 생김새였습니다. 그때 그는 조심스레 줄기를 손가락으로 집어 저에게 보여주면서, 한가운데에 볼록 튀어나온 하얀 점을 가리키며 말했죠.  


“이 부분이 생장점이에요. 이 줄기를 잘 관리해서 키우면 생장점에서 뿌리와 줄기가 나올 거예요. 그러면 새 잎을 볼 수 있어요.” 


저는 그에게 반드시 성공해서 오블리쿠아를 ‘영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몇 달 후, 그는 기어이 이쑤시개만 한 줄기에서 새 줄기와 뿌리를 뽑아냈고, 결국 기괴한 모양의 구멍 뚫린 오블리쿠아의 잎을 키워내고 말았습니다. 


그가 식물친구들에게 주겠다던 식물이 바로 그때 키운 오블리쿠아의 줄기였던 것이지요. 그가 말했습니다. 


“오블리쿠아는 빛이 부족하면 바로 웃자라요. 웃자라면 잎은 안 나오고 줄기만 길어집니다. 이걸 하나씩 잘라서 드릴 테니 필요하신 분은 키워보세요.” 

‘줄기면 어때! 나도 반드시 오블리쿠아 잎을 내겠어.’


오블리쿠아의 줄기를 받은 열 명의 식물집사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생장점을 물에 담궈 뿌리를 내려보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수태에 키워 줄기를 뽑아올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냥 흙에서 키워보겠다고 했지요.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줄기의 성장일지를 기록하자고 제안했지요. 식물에게 변화가 있을 때마다 사진을 공유하는 것이 전부일 테지만, 한날한시에 같은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사람들의 식물 성장기록은 또 다른 소통의 즐거움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후 잊을 만하면 누군가에게서 식물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누군가의 오블리쿠아는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물컵에서 녹아 없어졌고, 누군가의 것에서는 뿌리가 한 줄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 저도 수태 위에 올려놓은 줄기에서 뿌리가 나오면서 서서히 줄기가 나올 기미를 보였습니다. 


-

오블리쿠아의 어원은 라틴어 오블리쿠스(oblicuus)입니다.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다’는 뜻이지요.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는 몬스테라라고?’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인터넷에서 오블리쿠아의 사진을 검색해보았지요. 오블리쿠아의 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형태의 구멍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잎의 모양이 좁고 길쭉한 반면 구멍은 크기 때문에 최초의 발견자는 타원형의 구멍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식물의 줄기를 키운 지 1년이 되어가자, 드디어 각자의 방식으로 키운 식물들의 결과물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첫잎을 낸 사람에서부터 서너 장의 잎을 키워올린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한날한시에 시작했지만 서로 다른 과정을 겪는 중이었죠. 심지어는 1년 전 받은 줄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신공(?)’을 보여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1년 간 꼼짝도 하지 않은 그의 줄기를 보고 누군가가 “이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니여!” 하며 폭소하기도 했지요.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적인 취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간 열 명의 식물집사와 함께 식물을 키워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더군요.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식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편에서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쑤시개만 한 오블리쿠아 줄기를 한날한시에 함께 키우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것은 나의 오블리쿠아가 죽더라도 괜찮을 만큼의 위안이었습니다.


아피스토 드림

📺 아피스토의 최신 영상
📺 레터에 소개된 영상
오늘의 풀-레터 어떠셨나요?
당신의 식물 이야기나
식물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답장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