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권태기가 오신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은 영화가 있습니다. 7월 5일 개봉 예정인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2020년 7월, 91세라는 나이로 세상을 떠난 영화 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로, <시네마 천국>으로 유명한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감독을 맡은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영화 권태기 극복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에 너무나 유명하고 위대한 영화들 속의 명장면이 끊이지 않고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엔니오 모리코네가 특정 영화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고, 당시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었는지 썰을 푸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요. 그 썰을 풀 때, 그 영화의 장면과 메인 OST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예컨대 <시네마 천국>의 ost를 작곡했던 때의 이야기를 하는 순간, <시네마 천국>의 바로 그 장면과 바로 바로 그 감동적인 음악이 연주됩니다. 그런데 당연히 그 장면과 그 음악이 나오는 시간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쉽게 말해 전곡이 연주되지 않기 때문에, 그 음악이 사용되는 장면의 나머지 부분을 집에 가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엔니오 모리코네가 생애 400편 이상의 영화 음악 작곡을 했을 정도로 다작을 한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156분의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는 영화인데요. 영화는 상영 시간 내내 엔니오가 참여한 유명한 음악들을 들려주는데, 그러기에 156분이라는 시간은 영화 중에서는 비교적 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심지어 그 노래들이 전부 다 귀에 익은 유명한 노래라는 점이 엔니오가 얼마나 위대한 아티스트인지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기억나는 정말 유명한 음악들 몇 개만 적어보겠습니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영어 제목 :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옛날 옛적 서부에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롤랑 조페 감독의 <미션>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피아니스트의 전설>



놀라운 건 엔니오 모리코네가 이렇게 영화보다도 더 유명한 음악들을 작곡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영화들로 단 한 번도 아카데미에서 음악상을 수상하지 못했었다는 것인데요. 아카데미도 그게 미안하기는 했는지, 2007년 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엔니오에게 ‘명예 오스카상’을 수여합니다. <엔니오 : 더 마에스트로>에서도 그 모습이 등장합니다. 참고로 저는 이 장면을 볼 때, 아 이 영화가 이제 곧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한 개인이 공로상과 같은 명예상을 수상한다는 의미는, 슬프지만 이제 더 이상 현역들과의 경쟁이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슬픈 건 슬픈 거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위대한 아티스트라는 것이 잘 설명되었으니, 하나의 다큐멘터리 영화의 결말로서는 적절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반전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엔니오는 88세의 나이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현역으로서 당당히 수상하게 됩니다. 심지어 그 경쟁작 역시 유명한 영화들이었습니다. <스파이 브릿지>, <캐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정말 이름만 말해도 모두가 알고 있는 이 영화들 사이, 엔니오가 선택한 감독은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였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여덟 번째 영화 <헤이트풀8>. 제가 정말 사랑하는 영화 중 한 편이기도 한데요. 그 사랑의 지분 중 상당 부분이 음악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정말 이보다 더 이 영화를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 속 미묘한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해낸 대단한 음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건 영화 내내 엔니오를 보면서 든 생각이기도 했었습니다. 영화 음악 감독 엔니오의 작업 방식은 보통 다음과 같습니다. 영화의 편집본을 본 다음,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음악’을 악보에 그리는 것입니다. 참 쉽게 보이지만 정말 막막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그 과정에서 당연히 감독과의 마찰도 생기곤 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영화를 만들며 떠올렸던 음악과, 엔니오가 영화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반영한 음악이 현저히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주관이 뚜렷한 엔니오는 늘 ‘나는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 쓰기 싫으면 쓰지 마라.’는 태도를 유지했었고 감독들은 대부분 그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는데요. 하지만 대부분이 훗날 엔니오에게 ‘당신이 옳았다’는 고백을 했었다곤 합니다.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그만큼 영화에 대한 엔니오의 직감이 정확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소위 ‘영잘알’이었던 거죠. 이 영화를 보며 영잘알인 엔니오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싶은 점이 많이 생겼지만, 이젠 물어볼 수 없다는 것이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영화를 그렇게 잘 볼 수 있는 것인가요. 저는 글을 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요. 빈 흰 종이가 주는 압박감이 이렇게 큰데 말이죠.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아름다운 음악들을 만드실 수 있으셨는지. 그러면 선생님은 이렇게 답하실 것입니다. "모르겠고 내가 음악에 참여한 영화들이나 더 보세요." 이상 영화 권태기가 살짝 올 뻔했으나 선생님의 지휘봉 회초리를 맞고 번쩍 정신을 차린, 한 아가 영화 평론가의 반성문이었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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