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본 영화 <아미코>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85년생 모리이 유스케 감독의 데뷔 영화이며 일본 원제는 “여기는 아미코(こちらあみ子)”입니다. 찾아보니 원작 소설이 있었습니다. 이마무라 나쓰고 작가의 첫 소설집에 포함된 단편으로 다자이 오사무상, 미시마 유키오상을 받았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던 소설이었습니다(현재 절판 상태).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얼마나 각색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영화가 머금고 있는 텍스트 자체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영화였습니다.


“여기는 OOO”이라는 표현은 무전기를 사용할 때 쓰는 말입니다. 여기는 김철홍. 들리는가? 응답하라! 할 때 쓰는 말이지요. 영화에서 아미코가 ‘여기는 아미코’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아미코가 생일 선물로 무전기를 선물받았기 때문입니다. 몇 번째 생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아미코는 아직 매우 어립니다. 생일 밥상에서 자신이 평소 매우 좋아하던, 그래서 엄마가 아미코를 생각해 특별히 준비한 요리 대신 초콜릿 과자를 먹을 정도로,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초콜릿이 묻어 있는 비스킷의 윗부분만 핥아먹을 정도로 어리며, 가족에게 어떤 큰일이 생겨도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정도로 어립니다.


그 큰일이 대체 뭐길래. 이 영화에 등장하는 큰일은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일어납니다. 아빠, 엄마, 오빠, 아미코로 이루어진 아미코의 4인 가족은 조만간 곧 5인 가족이 될 예정이었는데요. 어느 날, 아미코 식으로 표현하면 ‘엄마가 아미코의 동생을 데리러 간 날', 엄마가 동생과 함께 집에 돌아오지 않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아미코는 바로 이 일이 엄마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 나이가 아닙니다. 그저 동생이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궁금해할 수밖에 없는 나이입니다.

  


그때 아미코는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죽은 동생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친한 친구에게 ‘동생의 묘’라는 글자를 써달라는 부탁을 한 뒤, 그걸 이용해 집 마당 정원 한편에 작은 묘를 만들구요. 그리곤 곧바로 칭찬받을 생각에 신이 나서 엄마를 부릅니다. 엄마. 빨리 와 봐. 빨리 와서 이것 좀 봐봐. 내가 만든 거야. 비록 시체는 없지만 한 번 만들어 봤어... 그걸 본 엄마는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가족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립니다.


이 장면에서 엄마를 연기한 오노 마치코 배우의 연기는 정말 압도적입니다. 그동안 정말 간신히 얇은 한 가닥의 실로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 느껴지는. 사람이 아닌 짐승의 것 같은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순간이 지나가면, 이 장면 이후부터 오노 마치코 배우는 내내 정신이 육체를 빠져나간 상태의 한 인간을 연기해냅니다. 엄마는 아미코가 마련한 그 선물로 인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아미코는 너무 어려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사건 이후 아미코의 가족은 많은 것이 바뀌어 버렸지만, 아미코는 가족 모두가 표면상으론 그대로이기에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합니다. 겨우 몇 살 정도 나이가 많은 오빠는 방에서 담배를 태우기 시작합니다. 아미코가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려도, 아빠는 오빠를 제지하지 않습니다. 아미코는 아빠가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오빠를 제지하지 않는 것의 의미를 모르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 의미와 아미코네 가족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이 가족은 거의 가족이 아닌 상태에 이르렀지만, 아미코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 아미코가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는 그 사건 이후 약 5년 정도가 흐른 시기를 보여줍니다. 아미코는 그때보다 크긴 했습니다만, 마음은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인 것만 같습니다. 심지어 신발이나 양말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맨발로 학교를 다니고, 몸에서 이상한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동급생들은 그런 아미코를 따돌리지만, 아미코는 그마저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이 모든 건 물론 어린 아미코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가족의 잘못인 것이겠지만, 아미코는 그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지금 이 상황이 잘 된 상황인지, 잘못된 상황인 것인지 알지 못하는 아미코. 그러나 아미코가, 아니 영화에서 오직 아미코만이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자신의 방 베란다에 유령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동생이라고 믿고 있는 그 유령은 매일 베란다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고, 그럴 때마다 아미코는 “유령은 진짜가 아니야!”라는 동요를 목청껏 불러댑니다.


아빠는 도저히 이 상황을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실은 아빠 역시 간신히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미코를 탓하고 싶지만, 정말로 아미코를 탓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사하는 것뿐입니다.


이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미코는 예전에 생일 선물로 받았던 무전기를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홀로 남은 방 안에서 아미코는 무전기를 향해 소리칩니다. 여기는 아미코. 응답하라. 그러나 무전기에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아미코는 계속해서 외칩니다. 여기는 아미코. 여기는 아미코.


<여기는 아미코>라는 영화는 그때 어린 아미코가 듣지 못했던 응답을 이제라도 대신 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입니다. 어릴 적 자신에게 벌어진 일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던 아미코들에게, 그것이 무슨 의미였는지에 대해 이제 어른이 됐을 아미코가 친절히 설명해 주는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랬던 것이니 안심하라고. 그래서 어른들이 너에게 그렇게 했던 것이니 이해하라고. 그래서 너의 귀에 귀신 소리가 들렸던 것이니 괜찮다고. 아니 사실 귀신은 없었다고.


영화는 “다이죠부”라고 말하는 아미코의 대사로 끝납니다. 괜찮다. 개인적으론 유명 일본 영화의 ‘오겡끼데스까’보다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을 대사가 될 것만 같습니다. 무슨 상황에서 그 말을 했는지에 대해선 여러분께서 직접 영화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는 날이 오면 좋을 것 같네요. 아미코가 한국 극장에 온다는 무전을 접수하게 된다면, 그 기쁜 소식을 여러분께 꼭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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