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7ㅣ  구독  지난레터
지식人 지식in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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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케털리 MIT 물리학 교수
현대 양자과학기술 발전 기여한
‘보스-아인슈타인’ 응집체 최초 관찰
수상 20년 후에도 연구·후학양성 힘써
“함께 일하는 한국 동료들 역량 뛰어나
인내심 가지면 한국도 노벨 수상자 나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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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며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된 학자가 있습니다. 볼프강 케털리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물리학과 교수입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지 불과 6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노벨상은 보통 학자들이 연구결과를 발표한 뒤 상을 수상하기까지 20년 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2021년 한국연구재단 발표에 따르면 과거 10년간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들의 평균 연령은 물리 69.4세, 화학 69.6세, 생리의학 68.5세였습니다. 케털리 교수가 얼마나 젊은 나이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케털리 교수가 지난달 8일부터 일주일간 국내에 머물면서 한국 대중들과 미래 양자 과학도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종시가 세종 시민들을 대상으로 마련한 ‘퀀텀 특별강연’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양자대학원이 주관한 ‘KAIST-MIT 양자정보 겨울학교’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섭니다. 운좋게 ‘지식人 지식in’ 팀은 케털리 교수의 일정 중 이틀을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주 뉴스레터에서는 케털리 교수가 한국에 머물면서 들려준 그의 연구 의미와, 한국 과학계 전반에 대한 생각, 후학 양성에 대한 열정을 소개합니다.


오늘날 양자과학기술을 있게 한 케털리 교수의 연구

케털리 교수는 ‘극저온 기체상태 물질에 관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실온에서 초당 수백미터의 속도로 움직이는 원자는 온도를 극도로 낮추면 속도가 느려집니다. 원자들의 움직임이 느려지면 수많은 원자들이 마치 하나의 집단처럼 움직이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현상이 나타나리라 수십년간 많은 과학자들은 예측만 했는데요. 케틀리 교수는 이 현상을 실제 실험을 통해 눈으로 확인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케털리 교수가 2001년 논문에서 관찰했다고 밝힌 ‘보스-아인슈타인 응집’ 현상 <볼프강 케털리 교수 연구팀 논문>
그의 연구가 오늘날 더 의미있어진 것은 양자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됐기 때문입니다.양자과학기술 중에서도 ‘양자 시뮬레이터’는 인류에 큰 혜택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전 컴퓨터가 계산하기 어려운 난제들을 더 효율적으로 풀 수 있기 떄문입니다. 이 양자 시뮬레이터를 구현하는 데 ‘보스-아인슈타인 응집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최재윤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는 “당시에는 그렇게 부르진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케털리 교수님이 했던 모든 실험들이 양자 시뮬레이션의 예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워낙 젊은 나이에 상을 받아서일까요. 케털리 교수는 노벨상 수상 이후 드물게 활발한 연구 활동을 이어나가는 학자로 동료들 사이에서 회자된다고 합니다. 국내 한 양자물리학자는 “케털리 교수는 지속적으로 연구를 이어나가 지금은 ‘양자 시뮬레이터의 대가’로 불린다”고 말했습니다. 그 비결 중 하나는 체력인 것 같습니다. ‘마라톤 애호가’인 그는 67세의 나이인 지금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마라톤에 대해 강한 열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2014년 그의 기록은 2시간44분6초로 당시 노벨 수상자 중 가장 빠른 보스턴 마라톤 기록 보유자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머물면서 긴 강연과 인터뷰 일정을 앞둔 아침에도 숙소에서 강연 장소까지 3km 가량 거리를 뛰어서 출근했습니다.

10년 내 양자 컴퓨터 상용화되긴 어렵지만
세종시와 대전에 머물면서 그는 양자과학기술 상용화와, 양자 우월성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양자과학기술이 어떤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은지를 묻는 질문에 케털리 교수는 “(상용화 수준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 10년간 양자과학기술에 막대한 변화가 있었고, 양자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양자 컴퓨터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이고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대전 KAIST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는 케털리 교수 김호영 기자

지금 양자과학기술과 인간의 실제 생활이 가장 맞닿아 있는 분야는 ‘센서’라고 합니다. 양자기술을 활용하면 아주 미세한 단위까지 측정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세포 하나의 온도를 재는 온도계에 양자 기술이 활용되기도 합니다. 양자기술을 활용해 시계를 만들면 불과 몇미터 떨어지지 않은 지역 간 시차를 계산할 수도 있습니다. 양자 시계를 지리학 연구에 활용하면 중력을 측정할 수도 있으며 이 기술 역시 현재 연구되고 있습니다.


‘양자 우월성’에 대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양자우월성이란 양자 컴퓨터가 기존의 슈퍼 컴퓨터 성능을 능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케털리 교수는 뜻밖에도 ‘양자 우월성이라는 말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양자 컴퓨터와 고전 컴퓨터가 풀 수 있는 문제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양자 컴퓨터는 단순 연산이 아닌, 기존의 컴퓨터가 풀 수 없는 ‘랜덤한 상황’을 풀 수 있다”며 “‘양자우월성’과 같은 말이 양자 전반에 대한 노이즈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10년 내에 실질적인 계산이 가능한 (양자) 컴퓨터가 나올 것 같진 않지만 언젠가는 특수한 문제를 해결해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노벨상 수상 아닌 첫 아이를 받아들었던 순간”

케털리 교수가 과학과 삶을 대하는 태도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첫 아이가 태어나 받아들었던 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장 조차 논리와 실험적 지식만으로 가득차 있을 것 같던 물리학자가 따뜻한 인류애를 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학자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노벨상 수상이 아닌, 수상을 가능케 했던 과학적 현상을 목격했을 때라고 합니다.


“보스-아인슈타인 패턴을 발견한 순간은, 어떤 인류도 본 적 없는 것을 제가 처음 발견한 순간이었다”고 그는 설명했습니다. 케털리 교수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현상을 직접 확인했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4~5시 즈음이었는데 오전 8시가 되자 당시 케털리 교수가 모시던 멘토가 실험실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는 멘토를 붙잡고 ‘빨리 들어오시라, 보여드릴 게 있다’며 호들갑을 떨 정도로 희열을 느꼈다고 합니다.

세종시, '노벨물리학 수상자 초청' 양자과학 특강 현장 스케치 <@sejong1/YouTube>

그같은 희열을 한국의 젊은 과학도들에게도 느껴볼 것을 권했습니다. 케틀리 교수는 “젊은 친구들에게 조언을 드리자면, 여러분의 관심과 마음, 열정을 따르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연구자의 커리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열정이 있다면 인생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정먈 뜻깊고 벅찬 경험이 될 것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살면서 제 일이 지루하다고 느낀 점이 없었다. 과학 분야에 종사하게 되면 늘 새로운 걸 배우고 특별한 삶을 살게 된다”고도 했습니다.


연구자라면 해외에서의 경험을 꼭 해볼 것도 조언했습니다. 케털리 교수는 “(고향인) 독일의 교육제도는 훌륭하지만 젊은 학생으로서 집을 떠나 있었던 경험이 값졌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가족으로부터 독립심을 기르기도 했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그만의 독특한 연구 방식을 개발한 것이 성과의 비결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열띤 사교육 문화와,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한 생각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청중들이 케털리 교수에게 한국의 과도한 사교육 문화, 노벨상 수상자 배출 가능성을 질문했기 때문입니다. 케털리 교수는 “한국의 많은 학생들을 데리고 연구를 해봤고 지금도 KAIST,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한국 동료들과 일하고 있는데 이들은 매우 성실하고 뛰어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이 뛰어난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인내심을 갖는다면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것으로 본다고도 했습니다. 이어 “과학은 인간에게 유익한 기술을 제공해 경제적인 효과를 제공한다”며 “과학에 대해 투자하는 것이 사교육에 대한 투자보다 더 바른 길이라 생각한다”고도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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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s Pick!

중국 반도체, 몇 년 내

삼성·SK하이닉스  따라잡을 수도 있다

크리스 밀러 (책 '칩워' 저자)

지난 1월 15일 다보스포럼이 열린 스위스 다보스에서 매일경제는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와 대담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밀러 교수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현실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요. 

“미국이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기 전인 지난 2014년 시진핑 국가 주석은 반도체 자립 목표를 세웠다”면서 “중국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제품 사용하지 않는 게 목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한국의 반도체 생태계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란 말일텐데요. 현재 중국시장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가장 큰 시장이니까요.

그는 그 외에 미국의 IRA 등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도 큰 도전에 직면해 있는 점,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전망, 그리고 TSMC와 삼성 간의 차이점 등을 이 인터뷰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국 산업의 큰 기둥인 반도체. '칩워'라는 반도체 역사의 전반을 아우르는 명저를 통해 세계적인 작가이자 반도체 전문가로 주목받는 크리스 밀러이기에 한국은 그의 발언을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의 뉴스레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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