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열세 번째 흄세레터

오랜만이에요, 님.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2 '이국의 사랑' 편집을 마치고 돌아온 편집자 '세'입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이번 시즌 편집 과정에서 느낀 시시콜콜한 감상을 나눌까 해요.


저희 회사에는 특별한 문화(?)가 있는데요, 전 직원이 매일 업무일지를 쓰는 거예요. 대부분은 말 그대로 그날 한 업무를 간단하게 적고, 다른 직원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내용이나 일하면서 생긴 어려움, 원고에 대한 코멘트를 짧게 적기도 해요. 흔치 않지만, 업무일지를 일기장처럼 쓰는 분도 있답니다. (예를 들자면 대ㅍㄴ... 읍읍)

한창 시즌 2 원고 교정·교열을 보던 어느 날, 저는 업무 일지에 이렇게 적었어요.

《그녀와 그》의 초교를 계속하는 중이다.
연애란 얼마나 징그럽고 지긋지긋한 것인가. 넌덜머리가 난다.
시즌 2 ‘이국의 사랑’ 다섯 작품은 각각 다른 사랑의 측면을 보여주는데,
정말 다 다른 의미로 징글징글하다.

이번 편집 과정은 유난히 버거웠어요. 교정·교열은 독서와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감정을 이입하게 됐거든요. 달달한 사랑 이야기면 설레고 좋으련만, 사랑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들에 몰입하다보니 정신이 너덜너덜해지더라고요. 〈클로저〉나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를 연달아 본 것 같았달까요.


한동안은 퇴근 후에 집에 돌아가면 내셔널지오그래픽 유튜브나 예능처럼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콘텐츠만 봤던 것 같아요. 그 핫하다는 〈나의 해방일지〉나 〈우리들의 블루스〉 같은 드라마도 보지 못했(않았)어요. 보면 공감하게 될 게 뻔한데, 감정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거든요. 나름대로 멘탈을 지키고자 내린 결정이었죠.


가지기는커녕 가닿을 수조차 없는 대상을 사랑할 때의 괴로움,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 대한 미련과 후회, 구질구질함, 찌질함, 무의미한 복수심과 죄책감……. 어째서 사랑의 환희는 잠깐뿐이고 이런 것들은 오래 남아 우리를 힘들게 할까요? 더 얄궂은 사실은,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하며 살 테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 아닐까요. 잠시 기쁨을 맛보고 오래 괴로워하면서, 비로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면서요. 그래서 더 괴로웠던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마주한 사랑의 민낯이 과거로 흘려보내고 말 것들이 아니어서, 지긋지긋하지만 또다시 품게 될 마음들이라서.


새로운 시즌을 여는 글로는 너무 진지하고 무거워진 것 같은데요, 분위기 반전을 노리며 공개하는 또 다른 어떤 날의 업무일지!

《도즈워스》 삼교. 자꾸 실소가 난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못나고

찌질한 구석이 있는 게 아주 마음에 든다. 분량은 길지만 술술 읽히는 작품.

“세상에! 깃털을 맞고도 쓰러질 만큼 놀랐어요” 같은 표현에서는 웃음이 터졌는데,

이게 진짜 웃겨서 웃긴 건지 회사라 웃긴 건지는 알 길이 없다.

사랑이 늘 고통스럽기만 하지는 않듯, 편집 과정에도 희로애락이 공존했어요. 특히 《도즈워스》는 독서실만큼 조용한 편집부에서 뜻밖의 웃음 참기 챌린지를 하게 만든 작품이랍니다. 사랑과 관계의 본질을 드러내는 건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지만, 그리는 방식이 희화적이어서일까요? 고통스럽기보다는 실소가 터져 나왔어요. 내 것일 땐 끝없이 괴롭지만,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바라보면 우습기도 한 것이 사랑의 민낯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부릅니다.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2 ‘이국의 사랑’의 다섯 작품은 삶의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랑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사랑이 ‘과몰입’을 유발할지, 어떤 사랑이 특히 아프고 우스울지 궁금해요. 블로그, 인스타그램, 온라인 서점, 트위터 등 어디든 좋으니 감상을 남겨주세요. 때로는 공식 계정으로, 때로는 개인 계정으로(흐흐) 좋아요💕를 누르러 갈게요.

휴머니스트 시즌 2. 이국의 사랑
삶의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랑의 얼굴
(표지 이미지를 클릭하면 더 자세한 작품 설명을 보실 수 있어요!)
006 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 김인순 옮김

가닿을 수 없는 대상을 향한 갈망과 사랑,

그 감각적 아름다움에 대하여

007 그녀와 그
조르주 상드 | 조재룡 옮김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세기의 연인들,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세계의 모든 감정들

008 녹색의 장원
윌리엄 허드슨 | 김선형 옮김

어린 풀잎처럼 자라나는 사랑의 신비로운 가능성,

가장 뜨겁고 짙은 열대림의 로맨스

009 폴과 비르지니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 | 김현준 옮김

인도양처럼 깊게 빠져드는 이야기,

그러나 끝내 가라앉지 않을 사랑의 순수함에 대하여



010 도즈워스
싱클레어 루이스 | 이나경 옮김

런던, 파리, 베를린, 나폴리……

혼자가 되기 위해 함께 떠나는 사랑의 여정



흄세(휴머니스트 세계문학)
boooook.h@humanistbooks.com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23길 76(연남동) 휴머니스트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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