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작가로 살 생각은 없었다. 


대학교의 학과를 선택한 것도 오로지 나중에 취업이나 사업이 가능할 직종이 많은 전공으로 골랐기 때문에 인테리어디자인 학과로 갔을 정도로 작가로 사는 삶을 내 계획에 넣은 적이 없다. 그림은 언제나 몰래 꾸준히 그렸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계속 그리면서 살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테리어디자인과에서 돈을 좇는 사람들과 온갖 환경 파괴적 행위에 질려서 회화과로 복수 전공을 신청해 피신해서 든 생각은 취업과 작업을 병행하는 거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막 학기에 취업을 해서 학교 수업도 합법적으로 뛰어 넘기고 일과 작업을 병행할 수 있을지 테스트를 해보기도했다.


그렇게 디자인 원단을 만들어 파는 회사에 취업을 했다. 대구에서 원단을 디자인해서 팔던 회사는 어느 회사와 합병을 하면서 서울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구인공고를 올렸다. 그 회사 원단을 자주 애용하던 나는 원단을 사려고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팝업창에 뜬 구인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넣었다. 연봉 1800만 원에 계약을 하고 첫 회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3개월 만에 정규직 계약을 앞두고 도망치듯이 나왔다. 기나긴 이야기들이 있지만 중소기업이 돌아가는 방식에 무기력과 환멸을 느껴 나의 자아까지 망가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어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지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비상식적인 회사 운영 방식 때문에 오히려 짧은 3개월 동안 내가 사업할 때 쓸 모든 기술들을 진액만 모아서 배웠다고 좋게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돌아가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죽어도 없을 정도로 좋지 않은 기억이기도 하다.


회사를 관두고 동시에 대학교 졸업까지 한 번에 해결하면서 얼떨결에 살 방법을 찾다가 전업 작가의 삶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으로 먹고 살 방법을 찾았기에 갤러리의 도움을 받아 우아하게 그림 앞에 서있는 그런 작가의 삶이 전혀 아니었다. 나를 끌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내 재능이 사람들의 입맛과 맞아떨어지는 지점을 찾아 고군분투했다. 다양한 방식의 작업을 해보고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상품을 만들어 팔고 클래스도 열었다. 사실 그런 행위들로는 혼자서 서울에 집을 빌려서 생활하고 살 수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지금보다 물가가 좀 낮았고 별다른 여행이나 사치를 하지 않아 적은 돈으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다. 운 좋게 부모님이 서울에 집을 마련해 얹혀사는 이점과 부친의 회사에서 대학 학비를 지원해 줘서 졸업 후 학자금 대출이 없는 것도 이점 중에 하나였다. 마이너스로 시작하는 단계는 아니었지만 손에 쥔 게 없기도 해서 좋게 생각하면 이제부터 쫄리듯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되었지만 인간은 간사한지라 부모 지원을 받고 작업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무척 부럽기도 했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런 돈도 들어오지 않는 상황은 바뀌지 않아서 약간의 불안함과 조급함은 늘 인생에 기저로 깔려있었다. 


그림이 돈이 되는 방법을 찾아 많은 곳에 문을 두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공모전에 지원하고 삽화가를 찾는 스타트업에 이력서를 내고 어딘가에서 연락이 오면 최선을 다해 오랫동안 붙어 있었다. 전업 작가의 삶은 그런 것 같았다. 언제 다음 달 일이 끊길지 몰라 불안하다가 갑자기 몰리는 일들을 처리하며 다시 우울해지는 일의 연속이었다. 가끔 사건처럼 즐거운 일들이 있기도 했지만 불안은 항상 나를 따라다니며 아직은 행복을 느낄 때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일수록 그림과 글에 파고들어 일상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