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호체육관
VOL. 015  |  2024. 04. 24.
스피커스 구독자 여러분, 혹시 운동 좋아하시나요? 더러 운동을 향한 넘치는 사랑을 주변에 전파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를 되뇌는 분들이 더 많으실 거예요.😊

‘다정도 체력’이라는 말이 있던가요. 체력이 떨어질 때, 마음의 여유가 사라지고, 주변의 실수에 지나치게 엄격해지는 경험들을 해보셨을 거예요.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일터가 우리를 삼켜버리고,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에요. 체력을 단련하는 일이 어쩌면 공정한 마음을 기르고, 타인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모두가 운동할 환경과 조건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 운동하는 여성이 더는 낯설지 않아졌음에도 ‘여성’과 ‘팀 스포츠’, ‘중장년 여성·여성 노동자·이주민·장애인’과 ‘스포츠’라는 단어의 조합을 떠올리기란 여전히 쉽지 않죠. ‘기본권’으로서의 ‘스포츠권’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논의되지 않고 있어요.
위 영상엔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기치로 한 문화연대 ‘대안체육회’가 2022년 11월에 시작한 ‘호호체육관’ 프로젝트 현장이 담겨 있어요.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허리를 굽혀 땅만 바라보며 일하던 ‘언니들’이 배구를 하기 위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목청을 높인 강사의 지시와 공이 튀는 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메웁니다.

이들은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는 ‘운동(exercise)’으로 마음을 움직여,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바꾸려는 ‘운동(movement)’을 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번 스피커스는 여성 청소 노동자분들의 ‘운동(스포츠)’ 이야기를 함께 들여다보려고 해요. 
① 여성 청소노동자, 쓸고 닦고 ‘운동’도 한다
지난 4월12일 서강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배구교실에서 오버헤드 패스 연습에 열중하는 모습
2024년 새 학기를 맞이한 대학 캠퍼스. 매주 금요일 낮 12시엔 서강대학교 체육관, 매주 목요일 낮 1시엔 연세대학교 대운동장 농구코트에서 각각 청소노동자들이 참여하는 배구 교실, 농구 교실이 열리고 있어요. 소요시간은 40분 남짓. 은퇴한 여성 선수들이 운동을 가르쳐주는 사회적기업 ‘위밋업 스포츠(We meet up Sports)’의 강사가 수업을 이끌고, 각 대학의 여성 청소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대학생들까지 함께 어우러져 운동합니다. 

박이현 문화연대 활동가는 “청소노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을 쓰는 노동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하지만, 정작 자기 몸을 돌볼 시간이 없다. 이들의 삶에 일주일에 단 하루라도 ‘자기돌봄’의 시간을 운동(스포츠)으로 채울 수 없을까”하며 시작한 것이 ‘호호체육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육체노동으로 몸을 자각하는 것과 운동을 통해 몸을 자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활동입니다. 문화연대 대안체육회 함은주 집행위원은 “청소노동도 돌봄노동의 일종이다. 이들이 ‘운동’을 통해 자신의 몸을 인식하고,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배워 ‘자기돌봄’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화연대 활동가들은 “운동(스포츠)이 노동자들에게 큰 활력소가 된다는 것을 눈으로, 몸으로 확인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변화하는 몸을 인식하고, 운동의 즐거움을 느끼며 이 즐거움을 동료들과 공유했다. ‘호호체육관’은 생활체육, 여성 스포츠, 노동자의 문화 운동과 여가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자신을 위해 청소(노동)할 힘을 얻는 문화충전소였다”고 말이죠.
② ‘노동’의 장소가 ‘운동’의 장소로
지난 4월12일 서강대학교 체육관에서 배구 수업을 마치고 기념촬영 포즈를 취하는 모습
‘호호체육관’의 첫 번째 프로그램은 요가였어요. 학교 체육관에서 노동자들의 점심시간에 진행한 요가수업이 큰 호응을 얻었죠. 1기(2022년 11월~12월)와 2기(2023년 3월~6월) 수업 모두 수강 인원(25명)을 채웠습니다. 처음엔 ‘아줌마’, ‘어머니’, ‘여사님’ 등으로 부르다 점점 친해지면서 호칭이 ‘언니’로 바뀌었습니다. 어느덧 “올라가지 않던 어깨가 올라갔다”, “일을 할 때 어떻게 하면 몸이 덜 피곤할지 생각하면서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죠.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운동을 해도 서로 간의 관계 형성은 쉽지 않았습니다. 프로젝트팀은 참여자들끼리 상호작용이 있는 ‘팀 스포츠’를 시도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았어요. 참여자들 간의 연대, 사회적 관계를 맺고 더 가까워지자는 것 역시 ‘호호체육관’의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이죠.

평소 땅만 보고 허리를 숙여 청소하니, 잠시라도 움츠린 몸을 펼 수 있도록 하늘을 보는 운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모였어요. 그래서 선택한 운동이 하늘을 보는 운동, ‘배구’였습니다. 자발적으로 ‘배구 선수’가 된 언니들은 바닥이 아닌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노동’의 장소가 ‘운동’의 장소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언니들은 누구보다 일찍 학교에 출근해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합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지만, 학교 공간을 당당히 점유하고 사용해본 적이 없죠. ‘호호체육관’은 일주일에 단 한 시간 남짓에 불과하지만, 자신들이 청소하던 공간을 당당히 점유해 설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12월, 정부는 5년 내 생활체육 참여율을 70%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함 위원은 “이 참여율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줄이기 위해 운동할 수 있는 시간·시설·교육의 삼박자 확대가 핵심”이라며, “노동자들에게 자기돌봄을 위한 운동 시간이 주어지려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학교 내 노동자들에게도 학교 시설 사용 권한을 부여해야 할 것”이라며 “청소노동자들이 학교 공간을 사용할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의제가 퍼지길 바란다”고 덧붙였어요.
③ 기본권으로서 ‘운동할 권리’
지난 4월11일 연세대학교 농구코트에서 본격적인 농구수업에 앞서 준비운동을 하는 모습
우리 사회는 스포츠를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있을까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한 스포츠 인권 가이드라인‘국가는 모든 국민을 위한 스포츠의 실현을 추구하여야 하며, 특히 여성·장애인·청소년 등이 자신에게 맞는 스포츠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국민의 62.4%가 생활체육에 참여하고 있지만, 스포츠 인권이나 스포츠 정책은 전문 스포츠인에 한정된 분야로 여겨지고 있어요. 2019년 체육계 ‘미투’ 운동, 2020년 최숙현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선수가 집단 가혹 행위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나온 정부 대책과 논의 역시 이 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호호체육관’을 주도한 문화연대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엘리트 스포츠 육성 중심의 시스템과 유명 선수들의 극복과 승리의 서사에 가려져 있던 보통 사람들의 스포츠권에 주목했어요. ‘스포츠 정책이 인권·공정·평등·다양성과 같은 가치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점을 시민들에게 알려 나갈 수 있는 길을 계속 찾는 중입니다. 


함 위원은 “대학에서 일하는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노동자’와 ‘여성’이라는 복합적인 차별에서 가장 약한 고리”라고 말해요. “호호체육관을 통해 열악한 환경에 놓인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보통의 사람들이 스포츠를 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더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그 길을 넓힐 방안들을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스포츠에서 드러나지 않는 차별을 더 잘 보고 인지하도록 하고, 그 틈을 메울 수 있는 대안을 ‘호호체육관’을 통해 제시하고자 한 거죠. 


대학가로 번져가는 호호체육관
지난 4월11일 연세대학교 농구코트에서 농구 수업을 마무리하며 참여자들이 함께 모여 화이팅을 외치는 모습

호호체육관은 2022년 가을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이 후원하고 사단법인 시민이 주관한 ‘프로젝트 마일스톤’ 지원사업을 통해 시작됐어요. 하지만 2023년 하반기엔 별도로 할당된 예산이 없었습니다. 재정적·사회적 기반이 다져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잠시 운영을 중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죠. 지난해 9월 문화연대는 사회운동을 위한 온라인 플랫폼 ‘소셜펀치’를 통해 호호체육관의 자립을 준비하는 크라우드펀딩으로 강사비, 퍼실리테이터 인건비 등 최소한의 운영 자금을 마련했어요. 올해 들어선 다행히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의 지원으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2022~2023년은 서강대에서만 운영했지만, 올 상반기엔 서강대와 연세대로 ‘호호체육관’을 확장했어요. 하반기에는 고려대 등 참여 대학 수를 늘리기 위해 준비 중이에요. 이 외에도 대학지부 간 연대를 다질 수 있는 공동행사를 개최하거나,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스포츠 활동 환경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하는 등 ‘호호체육관’ 운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호호체육관 소식은 누리집을 통해 계속 업데이트될 예정이에요.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모두를 위한 스포츠…빼앗긴 운동장 되찾기
지난 4월13일. 서울 개롱역 인근 풋살장에서 열린 '2024 위밋업 축구/풋살 친선교류전'에 참석한 한겨레 여성풋살팀 '공좀하니' 멤버들

스피커스 구독자분들은 요즘 어떤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보시나요? 저는 요즘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여자들>을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해요. 매회 여자 연예인들이 공에 대한 열정을 쏟아부으며 진짜 경기를 펼칩니다. 개인적인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죠. 그래서인지 가슴 뭉클한 성장 드라마가 자주 탄생하곤 합니다.


평소 ‘운동 전도사’로 달리기와 헬스, 요가 등 운동을 즐기고 있어요. 나이 오십을 향해가고 있지만, 용기를 내어 지난해 창단한 ‘한겨레’ 여성 풋살팀 ‘공좀하니’에 가입했습니다. 대부분 후배지만, 멋있으면 무조건 ‘언니’죠. 요즘엔 언니들과 함께 땀 흘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내가 좀 못해도 상대방이 잘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우리 팀’이니까요.


순탄하지 않은 길인 것만은 분명해요. 마음은 지소연(대한민국 여자 축구대표)이지만, 실력과 체력은 터무니없이 답답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있어요. 언니들의 격려와 응원이 계속해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불을 지피고 있어요. 포기하지 않으면 저도 모르는 사이 실력이 늘어날 것이라 생각하며, 일주일에 2회 이상 훈련에 나갑니다. 오는 5월25일, 제2회 한국기자협회 여성회원 풋살대회를 앞두고 있거든요.


최근 저변이 넓어졌지만, 생활체육 여성 축구의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애초에 여성용 풋살화를 사기도 쉽지 않았어요. 온·오프라인할 것 없이 몇 개 없는 230-235 사이즈의 성인용 풋살화는 웬만하면 품절이었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주니어용 풋살화를 구매해야 했죠. 그뿐만 아니에요. 어렵게 대관한 풋살장엔 남성용 샤워실·탈의실은 있었지만, 여성용 화장실이 없는 시설도 다수였어요.


남성의 경우 30대부터 70대까지 각 연령대별로 대회가 있지만, 여성의 경우는 ‘여성부’ 단 하나뿐입니다. 각 팀은 연령대별 출전 선수의 인원 제한이 있어 40대 이상은 대회에서 병풍이 되곤 하죠. 


직장 대항 또는 노조 대항 축구대회를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예요. 여성 노동자들은 대회에서 배제되거나 응원단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실제로 한국기자협회의 축구대회는 1972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지만, 여성 풋살대회는 2023년에야 비로소 시작됐습니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의 ‘월드 클래스’ 지소연 선수가 2022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호주와의 8강전에서 득점한 뒤 기뻐하는 모습. 대한축구협회 제공

여전히 여성의 운동은 다이어트나 미용의 수단으로 치부되고,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게 사실이에요. 게다가 그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초등학교 체육대회에서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운동장 한쪽에서 단체 줄넘기나 피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찌감치 운동장을 빼앗겼고, ‘팀 스포츠’를 경험할 기회를 박탈당해온 거죠.


대한민국 여자 축구의 대들보 지소연 선수는 자신의 인터뷰집 ‘너의 꿈이 될게’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보다 팀이라는 단위로 자기 세계를 확장해서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했어요. “무조건 승부를 가르는 경기 한 판... 그날 그 순간뿐인 이야기에 빠지면 답이 없다. 그래서 여전히 축구가 좋다”고 말해요.


최근 분위기가 반짝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평등 스포츠는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나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으며 스포츠 영역에서 동등하게 참여하고 대우받는 것’이라고 해요. 함은주 문화연대 대안체육회 집행위원은 “스포츠와 관련된 모든 일상에서 발견된 차별에 불편함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스포츠에서의 성별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고, 차별에 민감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혼비 작가가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에서 말했듯이, 여성들이 “이제 응원석에서 내려와서, 운동장 귀퉁이에서 걸어 나와서, 운동장의 한가운데를 단호하게 밟는 순간 펼쳐지는 넓은 세계를 만나”기를 바랍니다.

📝이번 <스피커스> 어떠셨나요?

축구 경기에서 집중력을 키우려면 ‘헤드 업(head up)’해서 상대 선수와 주변 동료들의 움직임을 살펴봐야 해요. 일터에서 제 일만 하느라 시야가 좁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축구에서도 영락없이 공만 보느라 경기력이 떨어지더라구요. 주변을 살필 수 있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 일이었어요.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위해 자신이 서 있는 위치뿐 아니라 주변의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발견하고 목소리를 내는 ‘훈련’을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이번 스피커스에 대한 구독자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아래 ‘스리슬쩍 알려주기!’를 통해 의견 보내주세요. 정성껏 읽고 고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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