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드와 헤어진 날

2020년 1월 3일

제이드와 헤어졌다. 이별의 발단은 제이드의 코 고는 소리 때문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이어폰을 끼고 잠자리에 들어보려 노력했지만, 짐승이 포효하는 것 같은 소리는 플라스틱 기계를 무참히 뚫고 들어왔다.

“코 좀 그만 골아!”

하며 제이드를 아무리 흔들어도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 볼을 때려도 보았으나 맞은 곳을 몇 번 쓰다듬더니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혼자 편안히 잠이 든 그의 얄미운 모습을 충혈된 두 눈으로 보고 있으니 점점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마법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건 바로 그를 고양이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이었다. 고양이가 된 그의 코 고는 소리는 귀여운 그루밍 소리로 변했고 그렇게 나는 새벽 5시 30분 창문 밖이 어렴풋이 밝아오는 시간이 되어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충격에 휩싸인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눈이 떠졌다. 나는 놀란 그에게 어젯밤의 사건에 관해 설명해 준 후,


"하루치 마법이니깐 내일이면 다시 돌아올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화내는 모습도  귀여운걸? 전생에 고양이였을지도 몰라."

하며 나름의 위로와 칭찬도 건네주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더니 창문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몇 시간 후, 그에게 핸드폰으로 카톡이 왔다.

우ㄹ ㅣ 헤ㅇ ㅓ지ㅈ자.’

휴, 정말 이런 사소한 다툼으로 헤어진게 벌써 몇 번째인지. 아마 46년의 연애 동안 200번째는 족히 될 것이다. 답장을 생각하던 나에겐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1 )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벌어진 일로 헤어지자고? 그렇게 헤어짐이 쉬운 거라면 헤어져!
2 )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벌어진 일로 헤어져야 한다고? 그건 말도 안 돼!

결국 고민 끝에 1번을 택했다. 이번 이별이 정말 끝일 수도 있겠지만 지긋지긋한 감정 소비를 더는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래.’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에게 짜증이 나는 한편 뭉툭한 털 뭉치 손가락으로 오타를 내가며 타이핑하고 있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또 귀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안 돼! 이런 생각을 길게 했다간 오늘 보낸 답장을 후회하고
말 거다. 고루했던 관계를 뒤로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오랜만에 지구로 떠나볼까. 그곳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으니 분명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 거야. 내일 당장 표를 알아봐야지.


지구에 무사 도착!

2020년 1월 5일

지구에 가겠다는 결심을 한 지 3일째가 되는 날, 지구에 도착했다. 이 행성에서 머무를 숙소도 하나 알아놓았고 체크인을 마쳤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있는 `희다가든`이라는 정원인데 이곳에서 식물을 관리해주면 반지하에 비어있는 작은 창고와 정원 한편에 텃밭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단다.  좋은 조건이다.

그나저나 이곳을 찾아오는 데 애를 먹었다. 요즘 지구에는 ‘코로나`라는 호흡기 전염병이 돌고 있어서 법적으로 모두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한다. 안 그래도 한국어 발음이 잘 안되는 내가 마스크를 쓰고 ‘00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라며 웅얼웅얼 물으니 인간들이 잘 알아듣지를 못해서 대화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말 좀 걸려고 다가가면 내가 위험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계하거나 ‘안 믿어요.’라며 쳐다보지도 않고 쌩하니 지나가 버렸다. 믿어달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뭘 안 믿는다는 건지 모르겠다. 지구의 사람들이 80년 전에 왔을 때보다 많이 뾰족해졌다. 발걸음들은 왜  이렇게들 빠른 건지 다들 엄청 바쁜가 보다. 그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 무사히 숙소에 도착한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해지면서 피곤함이 몰려오는 날이다. 졸리다. 이제 잠을 자 야 ㄱ ㅔ 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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