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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읽지]  2021-08-19 #68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윤미네 집> 중에서

애틋한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
전몽각 지음/포토넷 펴냄

얼굴은 ‘보는 것’이지만 표정은 ‘읽는 것’이다. 눈, 코, 입은 정물이지만 눈빛과 입꼬리는 풍경이 되는 이유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표정에 새겨진 그 사람의 마음속 풍경을 읽고 상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물을 담은 사진들은 종종 좋은 문학이 된다. 1990년 출간된 책 〈윤미네 집〉은 토목공학자이자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전몽각의 사진집이다. 부제는 ‘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이다. 인물 사진집이지만 사랑을 담아낸 문학서다.

눈도 뜨지 못하는 갓난아이였던 딸은 제 엄마와 형제들과 꼬집고 뒹굴며 자랐다. 땀에 젖은 작은 머리통을 고단하게 누이고, 양은냄비에 끓인 밥을 힘차게 먹으며 어른이 됐다. 그렇게 26년의 시간이 흘러 윤미씨는 미국으로 시집을 갔다. 남은 집은 ‘윤미 없는 윤미네’가 되었다. 전씨는 이국땅으로 떠난 딸을 생각하며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그제야 수십 년 찍어온 아이들 사진을 정리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1964년부터 1989년까지 딸 윤미와 아내 이문강, 윤호·윤석 두 아들을 찍은 사진들은 1990년에 사진집 〈윤미네 집〉으로 묶였다. 사진전을 준비하며 〈윤미네 집〉 초판 약 1000부를 출간했다. 입소문이 났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이었다. 헌책방을 뒤지며 〈윤미네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사진 동호회 게시판에는 책을 구할 방법이 없는지 묻는 글이 올라왔다. 거칠고 투박한 사진들이었지만 독자들의 구애는 20년간 끊이지 않았다. 2010년에 복간된 〈윤미네 집〉은 두 달 새 3쇄까지 찍으며 사진작품집으론 전례없이 주목받았다.

사랑이란 아마도 좋은 것일 테다. 뭇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규명하는 일은 까다롭고 어려워 주로 실패한다. 전몽각은 어지러운 말을 지웠다. 그는 애틋한 이들을 오래 바라보다 지순한 마음을 사진으로 담았다. 〈윤미네 집〉은 오래 사랑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말없이 증언한다. 윤미 없는 윤미네 집은 여전히 아랫목이 따뜻하다.

김다은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어떻게 인간과 공존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것인가
스튜어트 러셀 지음, 이한음 옮김, 김영사 펴냄

“우리 지능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지능을 만난다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석학이 2019년 내놓은 신간. 책의 원제는 ‘Human Compatible’. 2016년 그가 설립한 연구기관과 같은 이름이다. 인공지능 연구에 엄청난 규모의 사람과 자금이 몰리게 되었다. 저자는 “AI는 세계를 재편할 힘을 지니므로 그 재편 과정은 어떤 식으로든 관리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맹목적으로 낙관하거나, 반대로 초지능 인공지능의 출현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 인공지능의 위험을 지적하는 이들을 러다이트로 몰아가는 주장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간에게 이로운 기계’는 이런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기계.” 결국 우리가 인공지능을 통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건축은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
이상미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파괴의 역사에서 굳건히 살아남은 건축물은 ‘생존자’로 마땅히 불려야 한다.”

한국에는 왜 오래된 건축물이 적을까. 문화재 전문가들은 건축자재 때문이라고 말한다. 주로 목재를 쓰므로 전란 와중에 불타는 경우가 많다. 서구권의 석조건축물은 수백 년에서 수천 년간 살아남았다. 
‘살아남았다’는 표현은 중요하다. 깨지고 그을린 자국은 여전히 돌로 된 건축물에 새겨져, 당시 사람들이 겪은 참상을 증언하고 있다. 베르사유 궁전, 루브르 박물관, 하이델베르크성, 콜로세움 등을 보는 현대인은 그 아름다움을 찬탄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은 나폴레옹이 전 유럽과 전쟁을 감행하며 약탈로 조성한 곳이다. 애초 살육의 오락화를 위해 조성된 콜로세움은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집회 장소로 쓰였다. 
관광 명소로만 알려진 건축물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책.

바다 생물 콘서트
프라우케 바구쉐 지음, 배진아 옮김, 
흐름출판 펴냄
“숨을 내쉬고 들이쉴 때마다 당신은 바다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지구 표면의 3분의 2를 덮는 바다는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생태계다. 큰 소리로 대화하는 물고기, 다른 동물을 모방하는 문어, 양치하는 물고기, 산호들의 결혼식, 수중 약국, 잔혹한 번식 방식까지 물 아래 생명의 세계는 오늘도 고유한 속도와 특유의 규칙에 따라 공생하고 순환하는 움직임으로 분주하다.
해양생물을 품던 바다가 현재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 바로 인간 때문에. 석유 및 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오염, 기후변화, 해양 생활권의 파괴, 해양생물 멸종위기…. ‘탈라소필(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인 저자는 지금이 해양생태계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라고 경고한다.
나의 복숭아
김신회 외 지음, 글항아리 펴냄
“밤새 하얀 모니터를 노려보고 키보드를 새로 사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꺼내놓는 비밀들’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난데없이 제목에 복숭아가 등장하는 이유는 나름 심오하다. ‘알맞은 빛깔을 내며 여름을 상징하는 탐스러운 과일인 복숭아는 한편으로 쉽게 무르는 성질이 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해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의 ‘무른 면’. 작가 아홉 명이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털어놓는다. 내 안에 사랑이 없다는 좌절감, 음치, 영상 독해능력, 과자 취향, 날씨, 야구, 자신감. 나의 단점은 내가 제일 잘 알고, 그래서 나를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 되어버리곤 한다. 저마다 숨겨온 복숭아를 읽다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네”라든지 “내 복숭아는 이건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은 이렇게 글을 끝낸다. ‘그런 내가 이제는 조금 마음에 들었다.’
 
그림의 영토

다비드 칼리 글, 클로틸드 들라크루아 그림
이세진 옮김, 모래알 펴

오데뜨가 가장 좋아하는 건, 꿀벌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신나게 춤을 추는 일이다. 그러나 친구들 눈에 오데뜨는 '뚱뚱한 애'일 뿐. 사실 오데뜨도 다른 여자 친구들처럼 날씬하고 예뻐지고 싶다. 그럼 모두 자신을 좋아해줄 것만 같다. 다이어트에 늘 실패하는 오데뜨 앞에 어느 날 한 작가가 나타나는데... 김지혜 (그림책서점 ‘소소밀밀’ 대표)
 '살찌니까 그만 먹으라'고 한 적이 있나요? 전체 글 보기 >>

복숭아를 좋아합니다. 손오공이 옥황상제의 명을 어기고 복숭아를 훔쳐 먹은 것도 불로장생하려는 야심보다는 본능이 앞선 결과였을 것이라고, 개인적으로는 믿고 있습니다. 잘 익은 복숭아의 달큰한 맛과 향이란 오백 년 묵은 원숭이도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을테니까요.
 
요즘에는 물복’ vs ‘딱복논쟁이란 것도 생겼더군요. ‘비냉’ vs ‘물냉’, ‘부먹’ vs ‘찍먹에 이어 물렁한 복숭아 대 딱딱한 복숭아라니, 세상 쓸모없으면서도 흥미로운 대결이다 싶던데요.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물복파입니다. 한입 베어물면 단물이 뚝뚝 흐르는 물렁한 복숭아를 워낙 좋아해 어려서부터 노친네 같다는 놀림을 받곤 했지요.
 
그런데 나의 복숭아라니...이번 주말 추천도서를 고르다 오랫동안 눈길이 머문 책 제목이네요. 그리고 절로 생각하게 됩니다.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툭하면 멍들어 버리는 나의 무른 면은 과연 무엇일까라고요. 곰곰 생각해보면 그 무른 면이야말로 복숭아를 복숭아답게 만드는 특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저같은 물먹파들을 매료시키는 것도 복숭아의 무른 면일테니까요. 올해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모든 과일 값이 장난이 아니긴 합니다만 이 여름이 가기 전에 님도 복숭아 한 알을 손에 들고 책의 한 구절처럼 수고한 스스로를 다독여주면 어떨까요? '이런 내가 그래도 마음에 들어'라고요

"다 읽고 싶은 책이에요 시사인 건물 귀퉁이에 독립서점 하나 만들어도 될 거 같아요 ㅎㅎ"
"소개해 주신 책 얼른 읽고 싶어서 마음이 드릉드릉하게 하는 묘한 능력이 있으신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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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가 8월23일 저녁 6시30분 온라인으로 마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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