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자를 내니 소비가 확 늘었다. 정확하게는 처음으로 부가세를 냈을 때부터였다. 매입이 적으니 번 것에 비해 세금을 너무 많이 내게 되었고 매입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투자 명목으로 소비가 늘었다. 


소비가 늘 때는 어떻게 한다? 줄일 수 있는 소비를 줄이고, 수입을 늘려야 한다. 그렇게 낮이고 밤이고 걷거나 누워있을 때고 수입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외주 수입을 늘리거나 굿즈 판매를 해서 수입을 늘려야 했는데 굿즈의 경우 사업자를 내고도  2년 동안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수량을 감당하지 못해 아주 적은 수량만 판매하거나 그것마저 힘들어서 하지 않거나 올려도 팔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외주를 받기 위해 하는 노력과 상품을 만들어 파는 행위에 들어가는 노력이 비슷해서 동시에 집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고민은 여전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덫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이다. 


운 좋게 어릴 때부터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재능이 돈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아주 많이 걸렸다. 오로지 혼자 좋아하는 이미지를 만드는 즐거움에 심취해서 타인의 관심을 이끌어내고 관심이 재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는 재주가 없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지점이 많이 달랐고 이유를 몰랐다. 한편으로는 남들이 좋아해 주는 것만 따르고 싶지 않았다. 나도 좋고 다른 사람들도 즐거운 이미지가 있을 거라 희망했고 그 이미지로 만들고 싶었다.


재능은 낚싯줄이고 그 줄 끝에 있는 게 나의 작업물이라고 생각하며 자주 그 낚싯줄을 던졌다. 자주 던져서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하고 반응을 모았다. 내 작업물이 호감을 살수 있는 지점을 찾았다. 10년을 그렇게 허공에 낚싯줄 던지는 허탈한 낚시꾼이 되어 보냈다. SNS를 통한 사람들의 반응이 100% 정답은 아니어도 참고하기에는 정말 좋다. 시간을 많이 들여 요소가 많은 작업물보다 5분 그린 작업물의 반응이 더 좋을 때가 있고, 내 눈에는 맘에 들지 않는 작업물도 사람들은 좋게 볼 때가 많았다. 


균형을 맞추는 일이었다. 나의 예측과 사람들의 반응을 모아 그 교집합에 들어갈 작업을 하는 것. 그러나 이 교집합은 안정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위험한 부분이 있다. 안정만 추구하면 발전이 없기 마련인데 그 교집합이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작업물과 개인이 발전할 수 있는 도전적인 작업을 병행해야 돈도 벌고 ‘나’도 놓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직도 대중의 반응이 좋은 작업물이 무엇인지 내가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확신이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좁은 대한민국 땅에서도 한국인은 빠르게 배우고 빠르게 베끼며 빠르게 질리기 때문이다. 출판계의 분위기를 예로 들면, 표지에 특정 스타일의 그림이 그려진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그 표지 작가의 화풍이 한동안 출판계를 뒤덮는다. 누워있는 사람들이 그려진 약간 서툰 펜 선으로 그려진 그림이 유행할 때도 있고, 틈 없이 꽉 찬 라인과 풀 컬러 그림이 유행할 때도 있다. (후자는 지금도 유행 중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흐름 속에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고 유지하는 출판사도 있기 마련이고 내가 큰 흐름에 섞일 수 없다면 이런 출판사에게 어필을 해보는 것도 좋다. 내가 그렇게 일을 했기 때문이다. 나를 좋아해 줄 담당자를 더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에게 닿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상의 흐름이 빠르게 바뀌고 그 흐름의 뒤에서 쫓기만 하다가는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지구가 원형이듯 세상의 흐름도 시계처럼 원형으로 흐른다.(고 믿고 싶다.) 유행이 돌고 돌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고장 난 시계도 하루 두 번은 맞듯이 나에게도 인생에서 최소 두어 번의 기회를 올 수 있기도 하다는 뜻이고 그 기회가 올 때 잡을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길러야 한다. 업계의 유행을 확인하되, 그 가지가 나에게도 뻗을 수 있도록 길을 잘 만들어놓아야 한다. 


일단은 기본을 가장 충실하게 익히고 그 이후에 흐름과 나의 취향이 맞아떨어질 지점을 찾는다. 그렇게 굿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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