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주공〉(감독 김기성)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09 〈봉명주공
6월 1일 오늘의 큐 💡   
Q. 새 시대의 노스탤지어?🌇 
님! '향수'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세요? 앗차차, 샥샥 뿌리는 향수(水)가 아니라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나 시름'이란 뜻의 향수(愁)였어요. 노스탤지어(nostalgia)라고도 하죠. 어릴 적, 젊은 시절의 공간이나 추억을 그리워하는 뜻이다보니 초록색이 가늑한 시골풍경에 노을이 지는 그런 모습이 연상되지 않나요?👒
하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키즈'로 자라나잖아요. 도시에서 태어나 아파트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고 해요. 신기하죠?😲 님도 혹시 그러신가요?

저도 어릴 적 학교 근처 주공아파트의 널찍한 녹지에서 친구들과 뛰어논 기억이 생생해요. 그네도 타고 클로버도 찾으며 낮은 주공아파트 사이를 누비곤 했는데요. 모두 저층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없고, 맞창을 열면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서 에어컨이 없어도 아쉽지 않았던 친구들의 집이 떠올라요.(노스탤지어에 취한다..🍷)
문득 돌아보니 이제는 그런 주공아파트는 보기 어려워졌고, 남아있는 곳들은 재개발 현수막이 걸려있곤 합니다. 삶의 터전이었던 주공아파트의 끝인사를 담은 영화 <봉명주공>을 소개합니다. 청주의 1세대 주공아파트, 봉명주공아파트는 언제나 녹음이 가득하고 사람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이 입주해있던 곳이에요🌳 건물들은 빽빽하지 않고 널찍하게 자리잡고, 40년의 시간 동안 나무는 나이테를 늘리며 굳게 자리잡았습니다. 재건축으로 인해 봉명주공아파트가 없어진다는 소식에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걸까요?

오늘은 지방선거일입니다🗳 곳곳에 걸린 선거홍보물은 재개발, 재건축이란 단어로 가득 차있는데요. 저는 그런 현수막 앞에서 종종 생각하곤 해요. 반짝거리는 신식 건물이 되었지만 안전규제는 완화되고, 가구수를 늘린 대신 집의 면적은 줄어들고, 더 많은 사람이 내는데도 집세는 더 오르는 재건축은 누구를 위한 걸까요? 다음 세대의 노스탤지어를 위해 더 나은 개발과 보존에 대해 생각해보아야겠어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회고록,

〈봉명주공


나무가 무너진다부드럽고 푸르른 잎사귀를 날리던 버드나무가 너무나도 쉽게 고꾸라진다. 2020년 봄두 사람이 어느 저층 아파트의 모습을 카메라에 연신 담아낸다아파트를 포함해 아파트를 둘러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진으로 기록한다충북 청주 봉명동에 위치한 1세대 주공아파트의 이야기다. 1980년도에 지어진 이 아파트는 2020년 재개발이 예정돼 있다재개발이 결정되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무너지는 그 직전까지 그 안의 모든 이야기를 영화에 그려냈다단순히 재건축이 아니라 아파트나무인간고양이생태 공간에 대한 다큐멘터리이자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마지막 기록이기도 하다.


카메라는 시간을 돌려 2019년 여름거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씩 봉명주공에 녹아있는 그들의 기억을 따라가기 시작한다아쉬워하는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재개발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오랫동안 아파트를 둘러싼 생태계와 소통해왔기 때문에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봉명주공이 사라지고 신식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봉명주공은 이 시대의 아파트가 갖는 정체성과는 사뭇 다르다일단 좁디좁은 대한민국 땅덩어리에서 1층 주택을 짓는다는 것부터 파격적인 시도였다프랑스 주택을 모델 삼아 만들어진 봉명주공은 주거 공간의 의미를 넘어 공동체마을 같은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특별한 곳이었다주위엔 나무와 꽃이 그득하고아이들은 함께 뛰놀며 어울려 놀았다이들에게 재건축은 추억이 담긴 곳을 뿌리째 뽑아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봉명주공은 이들의 오랜 세월이 녹은 넓은 세계와도 같기 때문이다.


거주지를 옮기고 싶지 않은 것은 비단 인간만이 아니다사실 앞서 몇 번이고 언급한 꽃과 나무고양이들에겐 이동에 대한 선택권조차 없다. ‘수간(樹幹)’은 가지나 잎을 제외한 나무의 폭을 의미한다고 한다그리고 수간의 폭만큼 뿌리가 존재한다고 하니몇십 년 동안 한자리에 있었던 거대한 버드나무는 그만큼의 뿌리를 땅속에 오래 내리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뿌리가 너무 깊고 넓게 자리한 나무는 온전히 뿌리를 지키면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고옮긴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잘 자랄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한다생사가 확실하지도 않은 것들투성이의 봉명주공인데동의 없이 그들의 생태계를 함부로 파괴하는 것은 정당한 일일까결국 도시 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봉명주공이 지나간 자리에는 분명 새롭고 편리한 세상이 자리 잡을 테지만그것이 정녕 그 땅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한 길인지는 모르겠다그리고 다시 2020년 봄재건축이 시작되어 모든 것을 허문다나무가 넘어지고다시 또 넘어지길 반복한다자신들이 왜 넘어져야 하는지 모른 채 계속 베어진다.



인디즈 임나은

<봉명주공> 감독 김기성|다큐멘터리|82분|전체관람가

“곧 사라질 그곳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봉명주공을 찾아오기 시작한다”  
1980년대에 지어진 청주 봉명동의 1세대 주공아파트, `봉명주공`. 
철마다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나무들, 놀이터에서 쉬어가는 새들과 골목을 지키는 길 고양이들, 곳곳에 울려 퍼지는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
떠나가는 거주민들은 저마다 가슴속에 봉명주공에서의 추억을 남긴다.
우리가 남기고 가는 것은 무엇인가요?
복잡한 마음이 차곡차곡 📬
님, 예전에 살던 곳에 가본 적 있으신가요? 익숙한 길을 걷다 보면 정말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것 같아요. 매일매일을 보내던 '나의 집'이지만 이젠 더이상 들어갈 수 없고, 그 안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이제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치만 우리가 떠나온 집이 모두 남아있진 않은데요. 어떤 곳들은 허물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예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기도 합니다. 재개발로 인해 이사를 가기 된 '지희' 역시 마음이 복잡합니다. 봉명주공 속 사람들의 마음과도 비슷할, 지희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릴게요.

그럼에도 심고 틔우려는 행위의 숭고

〈단잠


〈봉명주공〉엔 방을 뜯는 굉음과 구근을 설설, 옮기는 손짓이 영화의 끝까지 교차되며 나온다. 이는 비워질 공간을 대하는 두 자세의 멀디 먼 뼘을 보여주는 장치 같았다. 평지에서 찰랑이던 버드나무가 넘어가는 동시에 이편에선, 봉명주공에서 온 가지를 심으며 홍조가 띤 대화를 속살거리며 있었다. 봉명주공 주민들의 대화를 들을수록 단지 내에 있던 겹벚꽃, 넝쿨, 등나무, 찔레나무들 모두 집의 한 축씩 맡아 지킨 주민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밑동이 넘어가기까지 집요한 수고를 들이는 동작을 보기가 무척 어려웠다. 온 구석이 콕콕, 찔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거주하는 집의 주위에도 무심한 방식으로 허물어진 초록 주민이 가득일테니까. 봉명주공과 이른 작별을 맞이한 그들은 경쾌한 기억을 스톱모션 같이 잘게 잘게 꺼내둔다. 그 자리에 나도 오래 있던 기분으로 머물다가, 〈단잠〉을 떠올리게 되었다.

 

〈단잠〉은 짐을 다 싸두라는 엄마의 당부를 듣는 지희로 영화를 연다. 이사를 하면 평소엔 결코 하지 않거나 미뤘을 온 사물의 효용을 점검한다. 지희도 반소매를 괜히 팔락여보고, 옷 위 새겨진 글씨를 읽은 후에야 접었다. 서두르다가도 키를 재둔 흰 눈금 같은, 오직 이 공간에만 있을 수 있던 활기에는 멈추게 된다. 철거 예정으로 인해 빈 옆집에 가윤과 방문하며 심란은 더 부푼다. 지희는 영화 내내 ‘부서질’ 예정인 것들에 대해 유독 말을 잇는다. 옆집이 짐을 두고 간 이유를 “다 부술 집이니까”로 결론 낸 점도, 가윤과의 놀이 내내 튀던 문장도, 가족을 대할 때도 끝날 거란 염려가 있기에 어조의 날을 세워 무감하려 애쓰는 게 보였다. 지희에게 있어 작별은 붕괴되어 도로 무엇도 꺼낼 수 없어지는 상태였다. 낙담한 지희를 붙잡은 건 사진이었다. 빈집을 돌다가 본 단란한 가족 사진, 아빠가 떼어내고 있던 젊은 시절의 사진, 가윤이가 건넨 둘의 스티커 사진. 어떤 존재는 하염없이 유람하고 옮겨가도 영영 있을 수 있다는 걸 지윤은 그 사진들을 넘기며 어렴풋이 알았으리라.

 

〈봉명주공〉에는 살구가 알알이 떨어지는 아래에서 웃던 주민들, 김장을 담그고 차를 우린 기억들이 모락모락 나온다. 나의 마음을 가장 쓰이게 만든 대목은 엔딩에 있었다. 이사하면 꼭 가져갈 거란 목록에 있던 거울과 화분이 버려졌다는 자막이었다. 봉명주공이 철거되지 않았다면, 집에 소담히 있었을 사물이어서 슬펐다. 모두의 이사가 혹자의 이득을 위해 진행되지 않길 바란다. 더불어 그분들과 지희가 안착할 집에 ‘겹겹 벚꽃’ 분홍의 향이, 희망이, 나란해서 완성되었던 기쁜 소란이 깃들길 소망한다.

 

<단잠> 감독 홍유라
지희는 내일 이사를 간다. 하지만 이삿짐 포장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가족들이 집을 나선 후 지희는 혼자 남아 내일이면 떠날 집을 살펴본다. 집은 자연스레 묻어있는 시간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지희가 자라며 키를 표시해놓은 한쪽 벽 기둥부터 버릴까 말까 고민하게 되는 오래된 옷들까지. 집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지희에게는 마냥 즐겁지가 않다. 지희의 친구 가윤과 만나 철거가 예정된 집에 들어가 주인 없이 남겨진 물건들을 본다. 왜인지 자신의 상황과 겹쳐보이는 주인 모를 집에서 지희는 주인이 버리고 간 오래된 사진을 유심히 살펴본다.
이런 영화도 추천해요 🏠 
<모래> 감독 강유가람|2011년|49분|다큐멘터리
우리 가족은 강남 은마 아파트에 산다. 아버지는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고, 엄청난 이자 부담에 시달리면서도 집값이 오르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남매의 여름밤> 감독 강유가람|2020년|104분|드라마
방학 동안,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남매 옥주와 동주, 그렇게 오래된 2층 양옥집에서의 여름이 시작되고 한동안 못 만났던 고모까지 합세하면서 기억에 남을 온 가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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