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어서도 결혼하지 않고 친구들과 오피스텔에 실버타운을 만들어서 살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썼던 일기장을 들춰보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들은 정보로 완성된 문장인 듯한데, 으하하 웃다가 '대충 비슷하게 살고 있잖아?'라고 생각했어요.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한 동네에서 급기야 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 층으로 친구들과 집을 나누며 살게 되었거든요. 들기름이나 고추장이 모자라면 위아래로 퍼다 나르고,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 서로의 반려동물을 돌봐주기도 하면서요. 나른한 주말이면 월셋집 창틀에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 멍하니 밖을 보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건물을 지을 수 있다면… 1층에 00이 식당을 차리고, 2층은 너 쓰고, 3층은…." 결론은 늘 '에잇...!'=3
한 번쯤 이런 상상해보신 적 있나요? 그런데 정말 한 건물에서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가족 되기'를 결심한 이들. 상상만 해왔던 저는 이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읽게 되었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오늘의 레터 어서 시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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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색깔, 다른 모양의 여러 말풍선이 한 집에 몽글몽글 모여 있습니다. 귀여운 고양이 얼굴과 발자국, 꼬리도 함께 봐주세요!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무지개집'은 성소수자들이 모여 산다는 것을 알린 유일한 집이자 주택협동조합으로 지어져 강남 개발을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무지개아파트'와는 대척점에 있기도 한 곳이며, 10가구가 모여 '한 지붕 퀴어 대가족'을 이루고 있는 공간입니다. 한 번쯤 꿈꾸어 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상상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공간은 어떤 역사를 품고 실현될 수 있던 것일까요? 모두가 같은 길을 걸을 수 없고, 걸음이 같아도 다른 꼴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걸어온 길을 살피다 보면 내 길을 걸어갈 힘과 방향을 찾을 수 있지요. 그럼, 먼저 무지개집의 탄생기를 살짝 만나 볼게요. 곧 책이 나올 예정이니 새로 알려드리는 소식을 눈여겨봐 주시길요!

💬차례
들어가며
무지개집의 탄생
홍다방에서 옥상까지, 공간은 살아 있다
서로의 집이 되는 사람들
무지개집이라서 다행이야
담장을 넘어볼까?
소속과 자유, 그리고 주거안정
나가며
감사의 말
일단 가까이 살아볼까?

하지만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로망이 곧바로 무지개집이라는 주거공간의 마련으로 이어질 수는 없었다. 무지개집 입주자 중 일부는 지근거리에 모여 살며 대안적인 가족·공동체를 실험하기도 했고, 주변 성소수자 지인들의 경험을 보고 들으며 나름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의 배경으로 자리한 서울시 북아현동은 대안 주거 공동체의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재우를 포함한 친구사이* 회원들은 북아현동으로 이사하기 시작했다. 마을공동체나 퀴어타운을 만들겠다는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고, "의도치 않게" 북아현동 인근에 모여 살게 되었다는 게 정설로 보인다.

북아현동에 살 때가 [주거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경험이었죠. 그때는 훨씬 더 젊었고 혼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기댈 곳이 더 필요했어요. 외롭고, 커밍아웃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고요. 그래서 하소연할 사람이 필요했어요. (재우)

비슷한 고민을 가진 젊은 게이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재우의 집에 몇 명이 같이 살고, 몇 발자국 떨어진 집에, 또 그 옆에, 2012년 즈음에는 "숫자가 꽤 되는 마을 공동체"라고 부를 만큼 커졌다. 정작 북아현동 주민들은 알지 못하는 이 감추어진 마을공동체를 당사자들은 "북아현동 부녀회"라고 부르며 수시로 모이고 친목을 다졌다.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일상 속에서 예전에 느꼈던 고립감은 많이 해소되었다. 1인 가구뿐만 아니라 커플이 함께 사는 경우에도 이 공동체의 역할이 컸는데, 적지 않은 커플들이 깨지지 않고 장기간 함께할 수 있었던 배후에 북아현동 부녀회가 있었던 것이다. "싸우고 짐을 싸서 나왔더라도 이 둘의 안전망 역할을 해주는 것은 부부라는 형식이나 제도가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를 지지해주는 주변의 친구들"이었다.
북아현동은 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지금은 언론에서 "강북권 알짜 재개발 사업지"라는 타이틀로 소개되는 동네이지만, 2012년 당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약간 지저분하긴 했어도 사람 냄새가 났던 곳으로 기억한다. 재우는 "그때 그 동네를 정말 좋아했"다며, 나눠 먹을 게 있으면 출근길에 북아현동 부녀회 회원 집 앞에 놓아두고 가고, "치맥하자, 나와"라는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삼삼오오 슬리퍼를 신은 편안한 차림으로 모였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 동네에 살면서 "북아현동은 우리가 사는 곳이야"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말에서 사는 동네에 대한 소속감을 넘어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유지하며 살았다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당시 경험 때문인지, 재우는 처음 무지개집 모델을 구상하던 때에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우리 집에 한두 사람이 같이 살고, 몇 발자국 가면 이 사람, 또 몇 발자국 가면 저 사람이 살고. 그래서 그때 그 동네를 정말 좋아했어요. 여기 북아현동은 우리가 사는 곳이야!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 그 경험들이 조금 있기 때문에 이집[무지개집]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재우)

북아현동에 게이들의 마을공동체가 있었다면, 마포에는 비혼/퀴어페미니스트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 마레연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북아현동 부녀회가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은밀한 성격이었다면 마레연은 2013년 당시 어느 시사주간지를 통해 "한국에서 유일한 성소수자 지역모임"이라고 인정(?)받았을 정도로 꽤 유명세를 탔다. 마레연은 '마포레인보우유권자연대'의 줄임말로, 본래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마포구의 페미니스트, 퀴어활동가들이 유권자운동을 벌여보자는 취지에서 연대한 모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은 선거 이후로도 이어지며 "보다 일상적인 주민 조직"으로 그 의미와 활동을 전환했고, 모임의 이름 역시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로 바꾸었다.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는 운영진이라는 개념 대신 '잡다한 일을 도맡는 사람'을 정해 1년 임기 당번 체제로 운영하면서, '지금 이곳을 지나는 사람 10명 중 1명은 성소수자입니다' 현수막을 통한 성소수자 인권운동에서부터 '퀴어 밥상' 모임과 같은 친목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2010년 4월에 열린 첫 오프라인 행사에 5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2014년 3월에는 온라인 카페 가입자가 450명에 이를 정도로 만만찮은 규모였다. 이처럼 마포구에는 비슷한 "세대적·문화적·정치적 특성을 공유하는 비혼/퀴어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수적으로 많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그 안에 사는 누군가에게 "사실 이미 마포는 어떻게 보면 퀴어타운"이었다. 2010년부터 활성화된 마레연 지역공동체는 친구사이 회원들이 퀴어타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다음은 2011년 친구사이 소식지와의 대담에서 재우가 한 말이다.

집에 밥이 없을 때, 술이 한잔 마시고 싶을 때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 우연히 같은 동네에 모여 살았던 경험 정도였는데 그걸 정식으로 한번 이야기해보자고 한 거다. 다들 조금씩은 생각하고 있었으나 막상 하려니 겁이 날 수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일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마레연 같은 경우는 이미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더라.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모형도를 만들어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친구사이가 주축이 되어 2011년(시즌 1)부터 2013년(시즌 2)까지 이어진 퀴어타운 프로젝트는 장기적 삶의 전망으로 대안공동체를 꿈꾸는 성소수자들이 그간 상상만 해오던 주거환경을 실제로 함께 디자인해보는 작업이었다. 친구사이 회원뿐만 아니라 대안공동체에 관심 있는 여러 퀴어들이 다양하게 참여했다. 시즌 1에서는 퀴어타운의 가치와 비전을 세우고 구체적인 공동체마을/공동주택 모형을 디자인했다. 이 작품들은 퀴어문화축제 기간 동안 전시되었다. 퀴어타운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후 직장과의 거리 때문에 북아현동을 떠나야 했던 재우를 비롯해서 동하와 가람(철호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은 소위 무지개집 "빅3"다) 그리고 이들과 친한 레즈비언커플까지 총 4가구는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과 연남동에 걸쳐 모여 살기로 했다.

모여 살자는 그런 생각들을 조금씩 해왔으니까, 그래 마포로 가자, 하고 간 거죠. 연남동, 서교동까지 집을 알아보고, 재우형네 집이랑 아주 가까운 집도 보고 그랬어요. 일단 좀 모여 살자는 생각을 했던 게 [무지개집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이전의] 과도기 단계였고, 살다보니 가까우니까 일단 좋네, 이런 생각을 했죠. (가람)

마음 편한 공간을 찾던 사람들이 한 동네 혹은 가까운 동네에 거주하며 만든 소규모 마을공동체와 마레연과 같은 지역커뮤니티를 통한 퀴어타운 실험까지, 성소수자들에게 '일단 가까우니까 좋다!'는 경험은 괘 오랜 기간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서 더 과감한 실험을 상상하게 됐다. 그럼, 한 집에 사는 건 어떨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 Laboratory 마케터의 고민 연구실
모래마케터의 고민 연구실  
책 교환 북클럽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간 독자 여러분과 북토크, 북클럽 등으로 직접 만나거나 온라인으로 오월의봄 책 속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종종 가졌어요. 책을 읽는 방법과 문장을 독해하는 방법, 논의하는 방법, 의제를 사유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나누어주시는 독자분들 덕분에 그 시간이 무척 유익했고, 놀라운 순간들도 많았답니다. 그럴 때면 '다음엔 다른 방식으로도 해보고 싶은걸?' 이런 생각이 들어 요리조리 고민하던 중! 고민을 함께 나누며 제안하고, 독자 여러분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든 코너입니다. 

레터 21화 <알아두면 쓸데있는 항해술>에서 여러 독서 유형을 소개해드렸었는데, 저는 그 유형들 외에 (+책이내손으로인해더러워질수록기분이좋아지는)유형에 속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라고 생각하는 (엿보고싶다)유형에 속하기도 하죠. 가끔 친구에게 책을 빌리면 친구가 그어 놓은 밑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어요. '너는 여기에 마음이 동했구나' '나는 이 부분을 그냥 넘겼는데, 다시 보니 그렇네?' 같은 생각을 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책이 다시 새로이 읽히기도 합니다. 

제가 이번에 시도해보고 싶은 북클럽은 👉책 바꿔 읽기 북클럽이에요.

북클럽에서 읽기로 선정된 도서를 줄 치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질문을 적고, 페이지를 접으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완독합니다.

➋ 북클럽 멤버들과 만납니다. 책 수다를 떨고, 랜덤 뽑기를 통해 나와 책을 바꿀 클러버를 정해요.

➌ 내 짝 클러버가 줄 치고, 메모한 책을 다시 읽어봅니다.

➍ 다시 만나요. 우리는 총 2회 만납니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은 또 다른 느낌과 생각을 불러올 수 있어요. 책을 두 번째로 읽으며 한 생각을 다시 나눕니다.


자, 이제 저의 고민은 이것입니다.

😈 세상 모든 이는 너처럼 책에 밑줄 긋고, 귀퉁이를 접고, 너덜거리도록 놔두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어!

👼 하지만 이번 기회에는 이렇게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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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 남성이 주도해왔으며 페미니즘의 상극으로 여겨진 성산업의 중력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은 담대한 여성들이 있었다. 작고 하찮은 틈새시장으로 치부된 여성지향적 성산업을 업계의 표준으로 정착시킨 1970년대 미국의 섹스 포지티브 페미니스트 소매업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여성은 성적 욕망이나 쾌락을 추구해서도, 섹스에 대해 말해서도 안 된다는 억압적이고 성차별적인 정언명령들이 지배했던 1960~1970년대, 이들은 섹슈얼리티를 탐구할 수 있는 장소로서 기존의 남성 중심적 성인용품점과 사뭇 다른 형태의 섹스토이숍을 발명했다. 이러한 시도는 자본주의(상업)와 페미니즘(사상)이 절묘히 교차하는 독보적인 소매 모델을 탄생시켰다.

놀랍게도 저자는 가게를 창업하고 제품 개발에까지 뛰어든 용감한 페미니스트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기 위해 섹스토이숍 내부로 직접 뛰어들었고, 일정 기간 판매 직원으로 일하며 이 책을 썼다. 풍부한 문화기술지이자 현장연구서로서, 창업자, 제조자, 홍보 담당자 등 다양한 직렬에 있는 업계 종사자들과 나눈 80여 차례 이상의 인터뷰를 생생히 담아낸 것이다.

저자는 섹스토이숍에 얽힌 첨예한 문제들을 꼼꼼히 검토함으로써 페미니즘 자체에 대한 밀도 높은 성찰로 나아간다. 젠더, 성적 지향, 섹슈얼리티, 인종, 계급, 장애 등의 요인을 교차적으로 사유하는 데 섹스토이만큼 흥미로운 사례는 없을 것이다. 섹스토이(숍)에 관심 있는 이들, 성교육과 성상담 등 성을 다루는 이들, 페미니즘에 기반한 활동이나 사업을 구상 중인 이들은 물론 페미니즘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든 이가 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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