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혹시 주변에 그런 사람 없으신가요? 분명 나랑 눈 마주쳤는데 모른 척하는 사람, 상대방을 좋아하는 데 좋다고 말 못 하고 빙빙 도는 사람, 딱 봐도 궁금한 거 있는 표정인데 질문을 못 하고 어물쩍거리는 사람..! 👨 〈괴인〉의 샤이가이 목수 '기홍'은 딱 그런 스타일이에요. 표현은 서투르기 마련이고, 어째 늘 일이 안 풀리는 것 같아 보이죠. 하지만.. 그런 기홍을 영화의 제목 따라 정확히 괴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

오늘은 이정홍 감독의 〈괴인〉을 소개합니다. 하루하루 성실히 목수 일을 하던 소시민의 대표 주자 기홍에게 별안간 벼락 맞은 듯 차 지붕이 찌그러지는 일이 발생하고, 그 일을 시작으로 기홍의 하루들은 엉켜버리게 됩니다. 마치 기홍의 브이로그라 해도 믿을 만큼, 〈괴인〉은 기홍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그 시간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나도 저랬지', '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하며 기홍과 나를 때때로 동일시하게 되어요. 사실 우리는 모두 모른 척하기도 잘하고, 빙빙 도는 데엔 선수고 또 매일 같이 어물쩍거리니까요! 😏 오늘 기홍의 하루에 걸맞는, 인디즈의 추천 영화와 함께 독특한 매력이 숨겨져 있는 괴상한 독립영화 〈괴인〉의 재미에도 푹 빠져보세요. 

사회학에는 디벙킹(Debunking)이라는 개념이 있다. 버거 등 행동주의적 사회학자가 적극적으로 채택해 온 이 개념은 사회 구조가 ‘행동’을 통해 발견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고 가정해 보자. 자연스럽게 다른 승객들은 불편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은 위협을 느낀 채 다른 칸으로 이동할 것이다. 주변인들의 반응을 통해 우리는 '지하철에서 소란 피우지 말아야 한다'는 무언의 질서와 약속을 깨닫는다. 기존 질서에서 벗어난 행동, 디벙킹은 개개인으로 하여금 전제된 구조를 인식하게 만든다.

 

기홍의 일상에서 차 천장이 어그러진 것은 어쩌면 디벙킹적 순간일지 모른다. 이기적이면서 선량한, 나만 챙기는 듯 보이면서도 타인을 고민하는 그의 딜레마적 성격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증폭된다. 범인은 아니지만 호인은 아니었던 기홍이 괴인처럼 비치는 순간이 반복된다. 유려하게 연속되는 인간관계의 흐름 속에서 관객은 묻게 된다. 과연 진짜 괴이한 사람은 누구인가.

 

〈아워 바디〉 속 자영 또한 마찬가지다. 수험생활의 무료함과 실패의 반복을 겪으며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그는 하루를 미진하게 버텨낸다. 축축하고 어두운, 끈적하게 습기 찬 원룸 같은 자영의 삶은 수렁처럼 그를 감싼다. 하지만 자영은 이에 대해 자각조차 하지 못한 채 일상을 반복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기홍의 차 천장이 어그러졌듯 자영에게도 디벙킹적 순간이 발생한다. 기분 전환을 위해 시작한 러닝에서 통제의 감각을 경험하고 수상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친구일지 동경일지 모르는 감정에 사로잡힌 채, 자영은 변하기 시작한다. 의자와 침대에 묶여 있던 발을 움직이고, 취업 준비를 시작한다. 지리멸렬하게 끌어오던 관계의 끝과 시작을 정리하고, 선명한 욕망에 충실해진다. 자영은 괴인이 된 걸까, 아님 괴인이었던 걸까. 다양한 시선이 부딪힌다.

〈괴인〉에서 드러나는 은은한 리얼리티가 마음에 드셨다면, 〈반달곰〉도 한번 만나보세요. 이정홍 감독의 중편영화 〈반달곰〉은 〈괴인〉에 등장한 '최경준' 배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동네 변두리에서 할 일 없이 시간만 때우는 지독한 곰 한 마리... 아니, 사람을 분명 보았다면! 주저 없이 〈반달곰〉에 빠져드실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