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년 사이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됐다고 하는데, 저에겐 여전히 너무 먼 이야기예요. 책에서 일상의 재배열이라는 키워드가 인상 깊었는데, 이것이 일과 삶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합니다.
💌 ‘워라밸이라는 말 이전에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있죠. 한국에 여성가족부가 설치된 이래로 이 말을 오랫동안 써왔습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란, 일과 가정 두 영역이 다 안정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해 균형을 맞춰갈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20, 30대 여성들의 경험을 보면, 일터의 신자유주의화에 의한 비정규직의 양산, 프로젝트성 일자리의 증가 등으로 이 매우 불안정해졌지요. 또 정상가족이든 대안가족이든 안정된 형태의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여성들의 세계를 전혀 반영하지 않는 구호를 계속 강조하는 것은, 여성들 각자가 자기 시간과 에너지만을 어떻게든 배분해 일과 돌봄 모두 알아서 해결하라는 메시지, 다시 말해 허구적인 정책 슬로건에 불과하겠죠.

/가정 양립이라는 말을 워라밸이라는 영어로 표현한다고 해서 새로워지거나 취향 중심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일터에서의 남성 중심적인 규칙과 삶에서의 소비 중심적인 일종의 일상의 식민화로 대표되는 모든 질서가 흩어졌다가 다시 배열되지 않으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과 삶의 재배열을 다뤘어요. 제가 재배열을 잘해서가 아니라, 책에도 썼듯이 제 고민을 담은 책입니다.

 사회가 어린이들에게 자기 돌봄을 자연스럽게 장려하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돌봄을 배우고 익혀본 적이 없어서인지 예시가 그려지지 않아요.
💌 가족은 단순히 혈연집단이 아니라 세대와 젠더가 다른 구성원들, 노동하는 자와 노동하지 않는 자 사이에서 배움과 훈련이 일어나는 중요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재정 상태에 대해 전혀 모르는 10, 20대가 많은데요. 가족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어떤 소비를 줄여나가야 할지, 경제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자녀에게 공유하고, 자녀의 수준에 맞게 적절히 가사노동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해요. 감정으로 뻗대지 않고 언어로 정확히 표현하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걷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주체 구성을 위해서 굉장한 투쟁을 합니다. 가령 부모가 무겁다고 말려도 내 가방은 내가 들 거야.라고 고집하거나, 밥 먹을 때 먹여주려고 해도 숟가락질을 스스로 하려고 하는 어린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죠. 빗자루를 가지고 와서 직접 쓰는 척을 하거나, 요리나 설거지를 직접 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지요. 물론 그러면 일이 늘어나버리곤 하지만요.(웃음) 이런 모습이 자기 돌봄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려고 하고,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막는 게 누구죠? 엄마, 아빠, 성인들이잖아요. 인간은 자기 돌봄, 타자 돌봄의 역량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것을 끊임없이 학원 가고 공부하라.는 의미로, 네가 하면 더 망친다.는 말로 대신해주고 미리 해주는 게 성인들이에요. 그러면서 자기 아이가 책상 정리, 자기 방 청소를 못 한다고 이야기하곤 하죠. 이를테면 속옷도 엄마가 빨아주잖아요. 그러다 보면 자기 속옷을 다른 사람이 빠는 걸 어느 순간 부끄럽지 않은 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몸의 경계가 없어집니다. 엄마와 나의 몸, 아빠와 나의 몸 간에도 경계가 있는 것이죠. 모든 빨래를 대신해주고 먹는 것을 다 해결해준다는 건 이미 몸 경계를 갖지 않기로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야 몸 경계가 생기는 경우도 많죠.

돌봄의 역량과 의지를 표현할 때 직접 해보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부터의 이런 경험이 세대가 다른 사람들과 좀 더 상호적이고 협상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돌봄 사회는 돌봄을 여성의 일로 본질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성이나 계급을 초월한 인간 돌봄자의 인격을 구성해내는 사회일 것입니다. 인간 돌봄자는 스스로를 돌보고 타인을 돌보며 비인간종과 생태계를 함께 돌보는 존재로, 누구라도 이런 돌봄을 평생 수행해야만 하고, 좋은 돌봄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훈련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에서 살아갈 권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가족을 포함한 혹은 가족을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평등, 정의, 소속의 새로운 결속체를 이루어가는 돌봄 사회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338

👌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위안을 얻고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문제점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벗어나기가 힘들까요? 배달음식, 쇼핑, 덕질의 사이클에서 탈출할 방법이 있긴 있을까요?
💌 일터가 감정 과잉의 상태가 되고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언사가 오가는 곳이 되다 보니 여성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위안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허탈감을 느껴 배달음식을 시켜 폭식한다든가, 계속 검색을 하면서 쇼핑을 한다든가 하죠. 한동안 한국 사회의 명품 소비가 이슈가 되고, OO이라는 조어가 많이 나오기도 했고요. 그만큼 자기 위안의 장치로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가 너무 부족한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소비를 하면서 자기 정당화를 합니다. 이때까지 힘들었지, 토닥토닥. 그동안 잘해왔어, 쓰담쓰담. 이 물건을 10개월 할부로 긁을 자격이 있어.라면서 셀프 기프트(self-gift) 소비를 많이 해요.(웃음) 다시 말해, 자기 인격이나 언어, 전략으로 어떤 큰 싸움을 대면하지 않고 그것을 회피하면서 자기 위안의 장치로,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상품 브랜드를 자기 자신의 총체적인 인격을 구성해내는 장치로 여기는 상황이 지속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나의 임금노동이 디자이너의 제품 한두 개로 쉽게 대치되거나 교환될 수 없는 나의 삶이고 투쟁이고 나의 헌신이고 내 굉장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힘들게 지속한 노동의 대가를 그렇게 비싼 상품으로 소비해버리는 것이 참 허무하고, 의미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시장이 더 안정화되고, 청년과 여성을 덜 모욕하고, 조금 더 정의롭고 공정해지고, 보다 더 사적인 삶을 보장하는 등 일터에 공정한 룰이 공급되고, 실업수당, 기본소득, 주거 지원 등 국가가 노동자들의 위기를 관리하는 공적 지원을 확대한다면, 개인의 전략과 행동 방식, 라이프스타일이 급격하게 변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럽 사람들이 소비 억제력이 높은 편이라는 보고가 있는데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지닌 보호막, 안전망의 장치가 끝없는 자기 불안과, 갑작스러운 상품 소비로 이런 불안을 임시적으로 해소하는 전략을 안 써도 되게끔 사람들의 심리를 안정시켜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요즘 나만 힘들다/나도 힘들다.의 정서가 심화되면서 다들 돌봄을 얘기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만, 자신에게나 타자에게나 돌봄은 필요합니다. 좋은 삶이란 요컨대 일과 삶의 선순환 체제에서 나의 능동성을 회복할 수 있느냐의 문제예요. 어떻게 내가 결정하고, 내가 조절하고, 내가 나의 품위(decency)를 지켜나갈 것인가? 다시 말해 근로주의와 초남성적 발전주의에 빼앗긴 우리의 시간과 정서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143

👍👌 나이가 들수록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여성을 더욱 억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 상사나 여성 후배·동료와의 관계가 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여적여 프레임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지금까지 여성들이 권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 가운데 다른 여성들과 연대를 통해서 이뤄진 사례가 실제보다 잘 드러나지 않았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는 권력, 지위, 평가의 기준 등을 남성이 지니기 때문에 여성들이 남성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즉 남성들을 경유해서 지위를 얻는 형태에 익숙합니다.

여성들이 일터에 굉장히 많이 진출했지만 남성들은 여전히 여성들을 동료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 여성들에게도 통할 것 같아요. 공적 영역에 등장한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범주로 묶이기는 하지만, 나의 시니어들, 또는 주니어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를 크게 고민해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여성들 간의 차이, 여성들 간의 멘토와 멘토십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못한 측면이 있어요. 경력 단절이나 일자리가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보니 주변에서 롤모델을 찾기도 어렵고, 장기적인 동료 관계나 멘토-멘티 관계를 맺기도 어렵습니다.

여적여 담론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대규모로 공정한 규칙을 통해서 일터에 진출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그에 대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노동 환경이 갖춰져야 합니다. 여성들에게도 평등하고 투명하고 객관적인 룰이 있는 일터에서 다른 여성들을 대하는 방식은 지금하고 분명 다를 겁니다. 이 중에서 분명히 상당수 여성은 제거될 거야., 여성은 한 명만 뽑겠지., 좁은 기회의 문에 내 여자 동료가 아닌 내가 들어가야 해.라는 생각하게 되는 일터, 곧 다른 여성을 경계의 대상, 긴장의 수위를 높여야 할 대상으로 봐야 하는 조건에서는 여성들 간의 관계가 별로 변화하지 않겠죠. 최근 페미니즘 대중화 이후 여성들이 주변의 여성과 관계 맺고 싶어 하는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일터의 민주화라는 주제, 그걸 어떻게 여성 연대를 통해 실현해갈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이어서, 짧은 책타래)
사라 아메드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동녘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과 나란히 두고 읽으면 무척 좋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사라 아메드의 이 책 역시 오래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저자의 페미니스트 모먼트를 생동감 가득하게 담아내며, 페미니스트 되기의 개인적·역사적 과정, 페미니스트로서 말하고 살아가는 일의 의미 등을 생생한 언어로 전합니다. "페미니즘 내부에서 인종차별을 말하는 것"도 분위기 깨는 페미니스트 실천이라는 맥락 그리고 '페미니즘은 스스로 부과해 수행해가는 숙제', "생존은 항의의 몸짓이다.", "교차성은 군단이다" 등등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특히 분위기 깨는 자의 생존 키트를 제시하는데, 그 첫 번째 항목이 바로 페미니스트 책입니다. 늘 가까이에 둘 페미니스트 책 두 권은 이미 구한 것 같습니다.😊
캐런·루이즈·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 심플라이프

최근 젊은 비혼 여성들의 함께 살기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죠. 그러나 여전히 40, 50, 이후 노년의 삶이 막막할 때, 동료 편집자가 소개해준 책입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따로 산 사람들이 뒤늦게 함께 살겠다니.”로 시작해, 세 사람의 공동주거 실험 과정과 현실적인 문제나 지침을 꽤 충실히 전하는 이 책을 살까 말까, ‘미국 백인 전문직 여성들의 공동주거가 얼마나 와닿겠나.싶어서 고민했는데요. 온라인 서점의 100자평을 보고 빵 터져 바로 구매했어요. “이제 계획해야 할 나이가 되어 읽어봤으나, 역시 나는 혼자 사는 게 최선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이 책을 읽고 막연하던 공동주거의 꿈을 접을 수 있었다면, 책이 한 권의 몫을 제대로 해낸 게 아닐까요.
(이제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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