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디자인이 걸어주는 합격 목걸이 받으셨나요?
턱괴는레터쓰며 들은 음악은? 🎧 Rihanna - Same Ol' Mistakes

안녕하세요. 턱괴는여자들 입니다. 

요즘 저희는 출판 준비로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출판은 외로움을 사회 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프로젝트의 최종 종착지입니다. 지난해 말, 서울 성수동에서 열렸던 캐롤 슈디악 사진전 «아마도, 여기(Possibly, Here)»와 연결되기도 하죠. 그 과정에서 턱괴녀가 주요 개념 중 하나로 주목했던 '적대적 디자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우리를 둘러싼 '사회 구조'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번호에서는 턱괴는여자들이 ‘적대적 디자인' 리서치에서 주요하게 참고했던 자료를 함께 공유하려고 해요. 바로 스웨덴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자 ‘프레드릭 에딘(Fredrik Edin)'의 논문입니다.


🔎 3월 두번째 레터에서는

  • 공공 벤치 하나에 담겨있는 수많은 의도들
    턱괴녀가 꼽은 가장 유용했던 자료 함께 읽고 ‘적대적 디자인' 개념 부수기
  • [알립니다 신납니다] 익명 게시판이 생겼어요!
    익명 게시판 how to 우리 부담없이 더 자주 만나요
1.
적대적 디자인은 한 사회가 가장 취약한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지의 태도가 드러납니다. 사회의 품격을 파악할 수 있는 척도라고 볼 수 있겠죠. 

이 낯선 개념은 어떻게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을까요? 2014년 트위터에 올라온 런던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노숙자 사진이 화제가 되었어요. 이들의 잠을 방해하기 위해 땅에는 위쪽을 향해 날카로운 스파이크들이 박혀 있었죠. 이 사진이 영국에서 큰 논쟁과 분노를 일으켰어요. 그 파급효과로 1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원에 서명하면서 스파이크는 철거되었고, ‘노숙자 스파이크 방지'라는 말까지 만들어졌죠. 
노숙자가 잠을 자는 것을 방해하는 스파이크 ©TheGuardian
영국 가디언지의 평론가 Leah Borromeo는 해당 디자인이 매우 야만적이며 이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사람들이 왜 분노했는지, 그 이유가 짐작이 가시나요? 특정 대상을 시야에서 밀어내고자 하는 이러한 배제적 성격이 강한 디자인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문제적 장면을 ‘보지 않도록 치워버리는 것'이 목적인 것이지요. 영국 국민들은 이 이미지들이 ‘사회의 품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읽어냈고, 일종의 경고등으로서 심각하게 받아들인거죠. 이 얘기는 아래에서 좀 더 자세하게 하도록 해요.

이름은 모르지만 본 적은 있을거예요. 논문의 저자 ‘프레드릭 에딘'은 스웨덴에서도 이러한 벤치를 쉽게 찾아냈습니다. 최근 지어진 중앙역(Central Station)들에 모두 노숙자 방지 벤치가 설치되었던거죠. 하지만 스웨덴어에는 이러한 디자인을 칭하는 정확한 단어조차 없다고 꼬집어요.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예요. ‘적대적 디자인' 요소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데 적확한 명칭이 없거든요. 턱괴는여자들도 영어 단어 ‘hostile design and architecture’를 직역해 ‘적대적 디자인', ‘적대적 건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말에 주변을 한 번 살펴보세요. 서울의 버스정류장만 보아도, 간신히 엉덩이만 비스듬하게 걸치는 벤치인듯 벤치 아닌 디자인들이 꽤 보이거든요.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디자인은 결국 전체가 불편함을 감수할 것을 요구합니다. 본래의 용도와도 멀어지게 되지요.
한국에서도 종종 보이기 시작한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버스 정류장 벤치
2. 
앞서 영국인들이 스파이크 위에서 쪽잠을 청하는 노숙자 사진을 보고 분노한 이유는, 아마도 그 이면에 담긴 배타적인 메시지의 저급한 위험을 읽어냈기 때문일거예요. 프레드릭 에딘은 ‘소비 능력에 따라 사람들이 다르게 대우받는 신자유주의 사회'가 사회적 취약 계층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게 한다고 말해요. 소비 능력이 부족한 그들의 인권이 평균과 동등하지 않다는 전제가 적대적 디자인이 정당성을 얻는 지점이라고 보는거죠. 

기득권이 이들을 ‘부적절한 소비자'로 보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끌어안을 만한 관용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그들을 도시에서 퇴거시키거나 시야에서 지워버리는 규제 정책을 만들게 됩니다. 사회적 인프라의 ‘접근권'을 차등 분배하는거예요. 그 작업이 직접적이고 강경할수록 ‘적절한 소비자'로 통과된 일반 시민들은 부적절한 소비자를 보지도 못하게 됩니다. 본 적이 없으니,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매우 쉽게 생각해버릴 수도 있고요. 이는 그들을 위한 사회적 대책이 시급하지 않다고, 때로는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해요. 우리가 대중교통, 학교,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조차 장애를 가진 동료 시민을 보기 힘든 이유도 이어져있겠죠? 

‘적대적 디자인' 요소를 통해 부적절한 소비자를 가려내는 이들은, 이 모든 조치가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요. 범죄나 사회 문제를 줄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거예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실상은 억압 증가와 같은 부작용이 장점보다 더 크다고 이야기합니다. 작은 불씨를 되려 더 큰 사회적 위험으로 키워버리는 착오적 판단일 수 있다는 거예요. 해결이 아닌 회피라는 것이죠. 


적대적 디자인에 항의하는 시민들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
(지역 아티스트들이 존엄성을 지키는 잠자리를 특정 위치에 설치함으로써 노숙자들이 불특정 공공장소를 배회하는 것을 예방했다)

3.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일상에 스며있는 ‘적대적 디자인'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프레드릭 에딘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적대적 디자인' 요소에 적응하게 될 때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강화된다고 말하며 주의를 요구합니다. 소수의 지배 계급이 다른 사회 구성원들로 하여금 지배적인 사회 질서’를 받아들이게 하면서 암묵적으로 사회적 동의를 얻고, 실은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죠.

‘적대적 디자인' 안에 담긴 ‘지배적인 사회 질서'라 함은 우선 빈곤과 노숙 등의 결과를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결점과 책임으로 인식시키는 거예요. 계급 격차를 굳히거나 확대하고 싶어하는 여론을 만들어내고, 배제적인 디자인 설계를 더 쉽게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의 토대를 마련하죠.
또한, 이러한 인식적 유도는 미디어 문화와 상호작용하게 된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가 빈곤층을 포함하는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여주는지' 혹은 ‘감추는지'에 따라 ‘적대적 디자인'에 대한 호응도는 영향을 받거든요.
미끄럽고 경사가 있어 끝에 걸터앉게끔 디자인 된 캠든의 벤치
누군가는 다소 음모론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거예요. 이때 런던 캠든의 벤치를 참고한다면 좋겠습니다. Factory Furniture라는 회사가 캠든 자치구 의회와 협업해 만든 이 벤치는 가장 교묘하게 의도를 숨기도록 진화한, 가장 진보된 노숙자 방지 벤치예요. 표면이 다면체로 깎여있고 매끄럽게 다듬어진 의자는 매우 디자인적으로 보여서 스파이크나 팔걸이 벤치에 비해 적대적 의도를 읽어내기는 매우 힘들죠. 아마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예쁘다는 감상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아름답다고 생각될만한 디자인을 갖춘 캠든 벤치, 적대적 의도를 쉽게 읽어내기 힘들다
하지만 의자가 깎인 각도와 쉽게 미끄러지는 표면의 질감은 노숙자가 잠을 잘 수 없도록 하고 청소년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타지 못하도록 하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Factory Furniture는 실제로 해당 디자인의 강점을 설명하며 “반사회적 행동을 방지할 수 있고, 사회적 문제를 도심에서 멀리 떨어뜨릴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프레드릭 에딘은 영악하게 디자인을 진화시킨 캠든 벤치야말로,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건축적 형태를 띄는 가장 명확한 예라고 말해요.
프레드릭 에딘은 ‘적대적 디자인'에는 노숙자 방지 벤치 외에도 매우 다양한 유형이 있다고 덧붙입니다. 사회적 취약 계층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게 하려는 의도가 담겨 전체 또는 부분 집단의 접근이 제한되는 방, 장소, 건물과 구조물은 모두 해당되지요. 

사실 노숙자 방치 벤치처럼 사회 구성원 중 극히 일부만을 타깃으로 하는 예시에서는 이게 왜 문제인지 이입하고 공감하기가 힘들 수도 있을거예요. 턱괴는여자들은 적대적 디자인 문제에 우리 모두가 ‘당사자성'을 지니고 접근할 수 있는 화두가 ‘양로시설(노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을 포함해 가까운 가족과 직결되는 건축물이고, 우리 또한 모두 나이를 먹기 때문이죠.

양로시설이 왜 적대적 디자인과 건축에 포함되는지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힌트를 남길 수 있겠네요. 보통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지어진다는 점. 이건 사회적 약자를 시야에서 지우고 멀리 떨어뜨리는 적대적 디자인의 의도와 연결되는 부분이죠. 그리고 건축 설계의 초점이 공간 향유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보다는 효율적으로 최대한 많이 수용하는 데에 맞춰져있다는 것이 그렇습니다. 이는 양로시설에서 1인실을 잘 찾아보기 힘든 이유죠.

노숙자 방지 벤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적대적 디자인이 구분하는 사회의 ‘부적절한 소비자'일까요? 혹은, 청년기를 지나 젊고 건강한 노동인구와는 거리가 먼 노년이 되면 그 때엔 예외없이 모두가 ‘부적절한 소비자'가 되는 걸까요? 양로시설을 중점에 두고 적대적 디자인 개념을 되돌아보려는 턱괴는여자들의 시도는 앞으로 발간될 콘텐츠들에서도 계속 이어질거예요. 계속 따라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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