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특별 릴레이를 띄웁니다. 팬데믹이 사그라지고 지루한 듯 무난하게, 일상에서 일생으로 생(生)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배턴 터치'를 떠올려봤어요. 🏃🏃‍♀️🏃‍♂️ '앤데믹과 새학기'로 시작한 릴레이는 '디깅'과 '동물과의 공존'을 거쳐 '텅 비었음에도 제목 넣을 자리가 도저히 없는' 특별한 디자인의 세계로 이어집니다. 

상대가 시작한 말을 주저앉히지 말고, 진위와 의도를 읽어 적절하게 공감하며, 상대의 말과 의견을 받아 내 일상을 한걸음 이어가는, 유용하고도 친절한 릴레이가 마을 곳곳에서 저 먼 곳까지 이어지기를 염원합니다. 🙏

앤데믹과 새학기를 이어가세 👉

🦻 팔랑

동거하는 어린이가, 마침내, 2년 만에, 잃었던 새학기를, 드.디.어. 맞이하게 되었어요!
두세 자리씩 징검다리 결석이 이어지고는 있어도 그럼에도 마스크 위로 가림판 옆으로 수다스러운 사인들이 오고갑니다. 눈썹이 꿈틀거리고, 고개도 가파르게 오르락내리락. 소리를 내지 않고도 수다를 떤다는 초3 교실 풍경입니다.
새 교실 새 학년 등교 전 『안녕, 친구야』를 오랜만에 꺼냈어요. 이웃해 살면서도 평생 한 번도 말 걸어보지 않았던 존재에게 말을 붙여보는 것, 무시하거나 위협하거나 모른 체하는 편이 수월했던 서로에게 ‘말’을 붙이자, 조금 안도하게 돼요. 생각만큼 대단히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럭저럭 조율해가며 공존할 길을 모색하는 거예요. 각자의 색과 몫을 지닌 채.
『줄무늬가 생겼어요』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려고, ‘무난하게, 튀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세상 가장 유별난 병에 걸려 첫날을 망치고, 둘째날도 망치고, 줄줄이 망치고 마는 꼬마의 새 학기 이야기랍니다. 남과 다르고 싶으면서도 조금만 달라져도 불안한 이 허약한 모순은 사실 어른이 되어도 영 풀리지가 않죠. 그리고요 실은요, 좀 다르거나 많이 달라도, 제법 다르고 어색해도, 친구가 되는데 전혀 문제가 없어요.
『알몸으로 학교 간 날』은 완전히 알몸인 채 장화를 신고 학교에 간 어린이의 하루예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상상이 가시죠? 아무~~~일도 안 벌어져요. 선생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이 어린이에게도 알몸 때문에 생기는 에피소드는 없어요.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낸 어린이는 뿌듯하게 잠자리에 들겠죠?

팬데믹의 복판을 지나온 우리 모두는 선명하게 알아요. 바로 이것. 어제와 똑같은 오늘의 소중함. 어제보다 나은 오늘 말고, 어제만큼만 한다는 것. 되든 안 되든 가던 길을 오늘도 가는 것, 큰 용기예요. 어제만큼만 오늘도 파보자.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를 보면 그래요(⇠긴 글 읽기를 부담스러워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에요).
그런데요, 샘과 데이브를 보면 그래요. 뭐가 됐든, 파다가 멈춰도요, 꽤 그럭저럭 괜찮은 인생이라네요.🙃



👉 점은 모르겠고, 관심사는 확실 👉
🌱 죽순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팔 때, 『나무의 맛』 저자 아르투르 시자르-에를라흐는 나무를 팝니다. 하나만 죽도록 하는 사람의 아이콘 ‘방망이 깎는 노인’(절로 나이가 드러나는 듯)의 나무+요리 버전의 인간이죠. 이제와 고백하자면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라는 질문을 인스타그램 너머의 에를라흐에게 수없이 던졌습니다. 나중엔 그를 응원하게 됐지만요.
호기와 호기심이 뒤섞인 『나무의 맛』을 작업하는 데 도움(과 착각)을 준 책이 두 권 있어요. 독립 출판의 붐과 더불어 책이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종이 그릇이라는 걸 사람들이 즐거워하던 짧았던 2010년대 초중반에 출간된 『연필 깎기의 정석』(프로파간다, 2013)과 『노르웨이의 나무』(열린책들, 2017; 절판)입니다. 이 지독하게 ‘니치’한 관심사를 다룬 책들에 독자들이 크게 반응한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죠.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두 책의 부제는 각각 “문필가,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 목수, 기술자, 공무원, 교사를 위한 장인의 홈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와 “북유럽 스타일로 장작을 패고 쌓고 말리는 법”인데요, 대체 연필 깎기 이론은 뭐고 한국에서 누가 장작을 북유럽 스타일로 패고 싶어 하는지… 하지만 저도 이 책들을 사고 말았으니 책과 쓸모의 상관관계는 더 따지지 않겠습니다. 『연필 깎기의 정석』을 쓴 장인 왈, 중간관리직 직장인에겐 회전식 연필깍이가 적당하다 해서 마티는 알라딘 연필깎이를 씁니다. (댓글에 구리다는 평이 있으니 구매 의사가 있으신 분은 참고하세요.)
크누트 함순은 『땅의 혜택』이란 책에서 “좋은 시절이었다. 그는 장작을 팼고 잉에르는 구경을 했다.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라고 썼는데요, 새를 관찰할 때 가장 행복할 것 같은 분이 한 분 계시니, 조류박사 윤무부 선생님 아니고요, 서울 뒷산을 12년째 관찰하고 계신 이우만 선생님입니다. 미술 전공을 살려 새나 자연 생물과 관련된 책에 삽화가로 많이 참여하셨고, 『새들의 밥상』 『새를 만나는 시간』이란 책도 쓰고 그리셨답니다. 새에게 바짝 다가가려 애쓰기보다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망원경으로 가만히 바라본 시간을 적은 『새를 만나는 시간』엔 한국에 이런 새가 살았나 싶게 다채로운 크고 작은 새가 있습니다.🕊️ 뒷산의 맹금류 ‘새호리기’도 처음 책을 통해 보네요.
요즘엔 산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사람이 드물죠, 야생동물들이 놀랄 수 있으니 자제해달라는 캠페인이 한참 있었던 걸 기억해요. 공존이라는 단어를 향해 겨우 한 걸음을 떼나 싶으면 어김없이 이런 뉴스가 뒷덜미를 뭅니다. 한 해 한국에서 유리창 구조물에 부딪혀 죽는 새는 800만여 마리. 그 수가 쉬이 가늠이 되질 않네요.
* 라르스 뮈팅, 『노르웨이의 나무』, 노승영 옮김(열린책들, 2017), 55쪽 재인용.



👉 번쯤 주위를 둘러보며 동물 이웃을 찾아봅시 👉

🧼 퐁퐁

한국에서 하루 평균 2만 마리의 새가 사람이 만든 구조물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인간이 도시를 설계할 때, 이 땅을 공유하는 다른 생명까지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은 탓이겠죠. 무분별하게 짓고서는 새들에게 피해 다니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도시를 바꾸는 새』의 저자 티모시 비틀리는 말해요. “새들이 도시에 오는 이유는 도시가 탄생하기 전에도 왔기 때문”이라고요.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와 자연을 철저하게 구분했지만, 새들이나 다른 동물에게 도시는 그저 자연일 따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높은 건물이 치솟고, 늘 다니던 길이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막혔고, 밤이면 현란한 불빛으로 번쩍여서 앞을 분간할 수 없는 곳이 되었을 뿐이죠. 친환경 도시계획 전문가인 저자는 수많은 새의 죽음을 목도하며, 이를 막으려고 애쓰는 도시들을 소개하며 새를 위한 도시를 만들자고 제안해요. 새가 피해 갈 수 있도록 유리창에 무늬를 촘촘하게 넣거나 유리 외벽에 줄을 매다는 등 작은 실천부터 하나씩 해나가자고요. 비틀리가 도시에 사는 새들을 위한 방법을 모색할 때, 미국과 러시아를 쏘다니며 벌목과 개발로 멸종 위기에 처한 새를 좇는 동물학자도 있습니다.

『동쪽 빙하의 부엉이』는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부엉이, 지구에서 이름이 가장 긴(아마도) 부엉이인 ‘블래키스톤물고기잡이부엉이’를 구하고자 오랜 시간 부엉이를 추적 연구하며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자 애쓰는 동물학자의 탐사기예요. 도시에 인간만 사는 것이 아니듯 숲에는 부엉이만 살지 않아요. 멧돼지와 시베리아호랑이는 물론이고 밀렵꾼과 도주 중인 범죄자도 산답니다! 그런데 이런 어마무시한 대모험은 집 안에서도 가능하다는 사실, 아시나요?🐅 

엄마와 일찍 떨어진 다섯 아기고양이를 ‘임시보호’하게 된 이야기 『고양이 임보일기』에는 주야장천 적극적으로 먹고 싸고 뛰어다니고 먹고 싸고 부수고 먹고 싸고 떨어뜨리고 먹고 싸고 할퀴는 생명들을 24시간 돌보는 나날이 펼쳐집니다. 제일 무서운 사실은 집 안에 사람 하나와 고양이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 소 낯설지만 더 좋은

🦈 조스바

인간은 (도대체 왜!)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어 할까요? 이 모험을 감당하게 하는 건 고양이의 '귀여움'! 『거실의 사자』는 고양이의 귀여움을 너무나도 진지하게 서술합니다. 이 책은 표지의 전략도 그 귀여움을 극대화하는데요. 기어코 문틈으로 통통한 앞발을 뻗으려다 구겨진 귀여운 얼굴. 이 모습은 제목 없는 표지의 당위성을 가지게 합니다.제목보다도 강력한, 제목 없는 표지는 어떤 게 있을까요?
클라리스 리스펙토르의 소설, 『달걀과 닭』. 앞표지를 꽉 채운 작가의 얼굴엔 더 이상 넣을 요소가 없습니다. 무채색 사진은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저자의 글과 어울립니다. 모든 요소가 제몫을 하고 여분의 이미지가 흘러내리지 않으니 제자리에 딱 서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목을 넣을 데가 없다."
워크룸의 시리즈, '입장들'. 그래픽 이미지만으로 시리즈를 이끌어갑니다. 시리즈의 첫 책은 제목인 『warp』의 알파벳을 면과 색으로 그렸습니다. (그나마 두 번째 책부터는 그 조차도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이미지는 단번에 가리키는 대상이 없습니다. 대신 갖가지 상상을 하게 합니다. 독자마다 다양하게 느끼고 다르게 해석하는 소설처럼요. 이런 이미지에 제목을 넣는 건 상상을 멈추게 하며 '지시적'이라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온라인에선 손톱만 한 크기의 표지 이미지가 보여집니다. 제목을 전면에 채워 넣지 않는 이상 실물로 보면 꽤나 큰 제목도 온라인에선 잘 보이지 않죠. '표지에 제목이 잘 보이는 크기로 넣어야 해'라는 생각은 점점 설득력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표지 옆에 제목을 비롯한 책 정보가 크게 쓰여 있으니까요. 서점을 가도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서점을 방문하면 가판대에 책이 누워있지만 매장에서는 책을 입체로 볼 수 있잖아요! 책등에 제목도 잘 보이거든요.📕 책이 누워있는 경우는 신간이나 베스트셀러, 광고의 경우에만 그렇죠. 몇 주 지나면 대개는 서재에 꽂히기 마련입니다. 표지에 '주목성'이 중요하다면 앞표지에 제목이 없다는 것은 그리 문제가 되진 않을 것 같아요. 

❝ 계속 쓰는 매일 ❞
“내가 삶이란 온전히 ‘실천’(practice)이라는 것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기까지는 긴 세월이 지나야 했다. 글쓰기, 운전하기, 하이킹, 양치, 침대 정리, 저녁식사 준비, 사랑 나누기, 개 산책시키기, 심지어는 잠자기까지도. 우리는 언제나 실천한다. 오로지 실천뿐이다.” - 🎹 111쪽 「피아노」

한유주 소설가는 『계속 쓰기』에서 실천에 대한 단락을 가장 좋아한다면서 이렇게 말해요. “우리는 써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우리가 결국 어디에 도달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써보지 않으면 알수 없지만, 도대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시작했다면 어떻게 멈추지 않고 쓸 수 있을까요? 매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지치지 않고 계속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밀려오는 괴로움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요? 
오늘도 달뜬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써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한유주 소설가가 ‘계속 쓰는 매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일시: 2022년 4월 14일 (목) 저녁 7시 30분
◌ 장소: 땡스북스
◌ 참가비: 5000원 (15명)
이번 주 마티의 각주*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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