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 63호 “사람을 찾습니다”를 보내고 얼마 후, 다급한 피드백이 도착했습니다. 마티 사무실에 밥통이 있다면, 밥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인데, 어떻게 운용되느냐는 질문이었어요. 피드백은 익명으로 받기에 특정 구독자 분께만 답장을 드릴 수 없어서 이렇게 호외로 알려드려요!

‘잡곡-고압’ 취사가 가능한 밥통 자랑이기도 하고, 마티의 점심 풍경에 대한 상술이기도 합니다.😎

어쩌다 밥통이 사무실에?

때는 바야흐로 2년 전, 코로나19로 인해 재택 또는 배달 점심으로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죽순(사장 아님)이 건의했죠. “그냥 밥통을 삽시다. 점심 값도 너무 오르고 좀 덜 짜고 덜 달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툭 던졌는데 모두들 “오, 괜찮은데? 좋다!” 하더라고요. 그즈음 글루텐 프리를 선언한 자와 건강검진 후 고콜레스테롤 혐의를 받은 자가 여기에 빠르게 호응했죠. 그렇게 밥통은, 520리터짜리 냉장고, 휴대용 가스 버너, 각종 커피 추출 기기(모카포트 3개, 핸드 드립 용품 등), 전자레인지, 정수기 등과 더불어 마티의 부엌 재산(!) 목록 10호쯤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누가 밥을 하나요?

피드백을 주신 분의 염려 중 하나는 ‘설마 돌아가면서 하지는 않겠죠?’였습니다. 이 답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돌아가면서’ 해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같이 먹는 밥인데 한 사람이 도맡아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한 주의 스케줄을 바탕으로 쌀 씻는 1인, 설거지하는 1인, 반찬 주문하는 1인을 정합니다. 예외는 없어요. 모두 돌아가며 당번을 해요.

쌀 씻기 당번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각은 대략 10시 50분. 우리 귀한 밥통이 잡곡-고압 취사 해내는 데 40분이 걸리니, 이때가 적당합니다. 취사가 정점에 이르며 수증기가 취이이이이-ㄱ💨 하고 터지면 구성원들이 점심상으로 몰려와요. 반조리 반찬을 데우고 볶고, 밥을 푸고, 수저 놓으면서 수다를 떱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사장님께서 제일 자주 번외의 장을 보고 제일 많이 계란프라이를 부치고(실제로 인원수보다 많이 부침, 손이 큼) 제일 바쁘게 셀러리를 썰고 과일을 깎으시네요.  

바쁘거나 귀찮으면 나가서 먹습니다. 어제 저녁에 카레나 김치찌개 같은 걸 곰솥으로 해버리는 불상사가 있었다면 다음 날 한 그릇씩 퍼 오기도 하고요(feat. 김장 김치). 약속 있는 사람은 외출하고, 바쁜 사람은 따로 햄버거 시켜서 자기 책상에서 먹기도 해요. 정해진 규칙 없이 원하는 대로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생활합니다.

그래서 이사 후 자연스럽게 밥통은 아직도 보자기에 싸여 있어요.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꺼낼 생각이 없나 봅니다.🤔


자율과 의지라는 보편 원칙

약간의 염려( 하기가 강제인가?) 약간의 불편한 심기(사장님은 하나 까딱 하는 아니겠지?) 같이 느껴졌던 피드백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했어요. 아마도 사회에 통용되는 고용 조건,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의무와 권리의 관계, 노동이 사유화되는 나쁜 사례들을 떠올리셨을 있겠다 싶었습니다. 구독자 님의 피드백을 계기로, ‘강제자율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마티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자유롭고 평등한 합리적 존재라고 판단합니다. 자유 의지가 있고 실천적 이성을 지닌 존재로서 서로 존중합니다.

사무실 풍경에 대한 통념, 노동이 왜곡되는 나쁜 사례, 존중이 무엇인지 회의할 수밖에 없는 사회의 여러 측면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을 만들 올바른 기준 제시하는 내용인지 점검하고 건강한 삶과 정신에 대해 되새깁니다. 책을 만드는 장소에서 차별과 혐오와 무시와 비아냥이 벌어질 수는 없을 거예요.

물론 우리도 종종 의견이 엇갈리고 잘못된 결과에 망연자실하고 벌어진 사고의 원인을 찾아 불편한 복기를 필요로 때도 있습니다만, 어떤 다급한 사고라 하더라도 인간의 조건인 도덕과 자율을 무시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이곳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책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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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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