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가 절실한 한 남자가 섬에 나타났다

 

  조용한 섬의 해변에 뗏목 하나가 멈춰 섰습니다. 한 남자가 살아서 섬에 도착했습니다. 거친 파도를 뚫고 섬에 닿은 것만으로도 기적입니다! 과연 남자는 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한편 섬 사람들은 옷도 하나 걸치지 않은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 여기 온 걸까? 뭘 어쩔 생각이지?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증을 꼬리를 뭅니다. 뭘 하긴요? 자원봉사를 해야죠! 옷도 하나 걸치지 않고 거친 파도와 싸워서 승리한 이 남자는 지치고 배가 고프고 추울 것입니다. 만약 자원봉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남자는 당장 죽고 말 것입니다. 매일 거친 바다와 싸워야 하는 어부는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섬 사람들을 설득해 추방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이 섬의 첫 번째 자원봉사자는 어부인 셈이지요. 자신에게 이익이 오는 것도 아닌데, 섬 에서 추방되지 않도록 적극 나섰으니까요. 두 번째 자원봉사는 ‘염소 우리’였습니다. 섬 사람들은 남자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었지만, 자신들처럼 따뜻한 방과 침대가 있는 곳이 아니라 염소 우리를 주었습니다. 어쨌든 자신들이 써야 하는 염소 우리를 제공했다는 것은 자원봉사라고 할 수 있지만, 남자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염소 우리에서 잠을 자는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식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남자는 마을에 나타났고 마을에는 큰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남자에게 소리를 쳤지만 남자는 배고픔을 표현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래, 당연해. 사람 목숨을 운명에만 맡겨 놓을 수는 없어. 우리에게 온 사람이니 우리가 도와주자고.”


  이번에도 어부가 나서서 자원봉사가 더 필요하다고 설득했습니다. 남자를 살려준 것은 큰 은혜지만, 책임을 다하지 않고 남자가 죽거나 다친다면 섬 사람들에게 불명예가 아닐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에게 최소한의 식량이 제공되었지만, 애초에 남자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섬 사람들은 남자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 하나까지도 꼬투리를 잡았고 남자를 괴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울면 남자가 나타난다고 말하며 그치게 할 정도였습니다. ‘낯선 자가 퍼뜨리는 공포’가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자, 그가 혹시 살인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섬 사람들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섬 사람들은 뗏목에 그를 억지로 태워 파도 속으로 떠밀었을 뿐만 아니라 남자를 섬에 두게 설득한 어부의 배를 태워 버렸고 물고기도 먹지 않았습니다. 섬에 커다란 장벽을 세워 놓고 그곳에 접근하는 것은 새라도 할지라도 사살했습니다. 섬 사람들이 했던 자원봉사는 모두 무효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큰 자원봉사를 했던 어부는 생업을 잃게 되었으니 여러 사람이 불행해진 것입니다.


남자가 섬에서 행복하게 정착하려면

 

  그림책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이제 새로운 이야기를 써봅시다. 남자가 섬에서 불행하게 쫓겨난 이야기가 아니라, 행복하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원봉사가 필요했을까요? 조난당한 남자를 맞이하기로 했다면 따뜻한 거처와 음식 등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남자가 섬에 정착할 수 있으려면 언어가 필수적이므로 언어 선생님이 섬의 언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해야 하고, 섬 사람들 역시 남자와 대화할 수 있도록 통번역하는 자원봉사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섬 사람들과 남자가 접촉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디가드 자원봉사자가 한 명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변호사 자원봉사자도 필요할 것입니다. 변호사가 있었다면 신문에 유언비어가 유포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남자가 섬에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직업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직업 교육을 담당할 자원봉사자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주어로 ‘생명 하나 봉그는 게 이렇게 어렵다’(생명 하나 얻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말처럼 한 명의 귀중한 생명을 살리고 자리잡게 하기까지는 수많은 자원봉사의 손길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자원봉사를 해준다면 남자는 섬에서 자신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남자에게 어떤 소질이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죠. 어쩌면 남자는 섬에 꼭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남자가 화가라면 섬의 여러 곳을 그릴 수 있고, 작가라면 섬의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책 『섬』에서는 사람들은 남자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섬 사람들 중에서 자원봉사자는 누구일까요? 어부는 확실히 자원봉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원래는 하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했으니 자원봉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자원봉사자인 어부는 배가 불에 타 버렸습니다. 자원봉사를 한 것에 대한 벌입니다. 섬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부가 남자를 받아들이자고만 하지 않았더라도, 남자에게 식량과 거처를 주자고 하지만 않았다면 이렇게 불행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부의 불행은 자원봉사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자원봉사는 타인을 향한 손짓인 만큼 불확실하고 불안정하고 위험합니다. 따라서 자원봉사를 시작하기는 쉽지만 완성하기는 어렵습니다. 다행스럽게 자원봉사가 좋은 결과를 낼 때도 있지만, 좋지 않게 끝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원봉사의 위험성과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섬에 도착한 남자와 남자를 돕자고 주장한 어부, 그리고 마음의 문을 끝내 닫아버린 섬 사람들의 전철을 우리라고 밟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