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꿈꾸는 소녀〉 (감독 박혁지)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41 〈시간을 꿈꾸는 소녀〉
1월 25일 오늘의 큐 💡   
Q. 나의 신년운세는? 🧧
님,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맘때쯤이면 핫🔥해지는 곳이 있는데요. 혹시 님도 보셨나요? 바로바로 신년 운세! 운을 점치는 것을 믿지 않더라도 새해가 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운세들을 괜스레 보게 되지 않나요? 2023년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원하는 꿈을 이룰지 솔직히 궁금하단 말이예요🤭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도 해보셨나요? 내 꿈을 점쳐주는 무속인의 꿈은 무속인이었을까?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해보게 된 것 같아요. 박혁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시간을 꿈꾸는 소녀>에는 무당의 운명을 타고난 소녀가 등장합니다🧧 어릴 적부터 다른 이들의 꿈이 보이던 수진씨, 마치 명처럼 느껴지는 신당에서 평생을 살고 있지만 이제 자신의 꿈을 위해 지하철을 타고 대학을 향합니다🚉 타고난 운명과 평범한 꿈 사이 바쁜 줄타기를 하는 수진씨의 모습이 마냥 특별하게만 느껴지진 않습니다. 아마도 이루고픈 것에 대한 그 마음은 우리 모두가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겠죠? 비슷한 나이대라면 공감할만한 또 하나의 이야기, 허지예 감독의 <졸업> 역시 소개해드릴게요.

인디즈 큐가 점괘를 봐드릴 순 없겠지만, 오늘 인디즈 큐에 담긴 글들이 님의 마음에 용기를 북돋아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디즈들이 한해의 시작과 어울리는 행운과 응원을 꾹꾹 담아주었으니 올해 힘차게 시작해볼까요?🍀 

무복을 입고 꾸는 꿈은 평범하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

 

빨강색 저고리이리저리 흔들리는 꽃갓귀에 들어차는 북 소리무릎을 꿇은 채 흐느끼는 사람들이른 아침의 안개잘린 돼지 머리를 등에 지고 하늘로 솟아 올랐다가 다시 꺼질지언정입으로 쏟아지는 구술은 멈추지 않는다무당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른 잔상들이었다대학교를 졸업한 25살 여성의 직업일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다그야말로 편협한 무지였다.

산 속에서 살고 있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는 것도 예정된 운명이었을까수진은 타고났다. 4살 때였다아이에게는 묻지 말라고 써붙인 부적은 다시 아이의 손에 무용지물이 됐다. (...) 티 없이 맑고 착한 아이는 남들을 돕고 살아간다수진은 남들과 다른 꿈을 꾼다꿈을 통해 미래를 예견해주고위험을 일러준다매일 신을 모시고산을 오른다온통 수진의 운명이었다.

 

수진에게도 꿈이 있다평범하게 자라 좋은 학교에 가서 광고 기획자가 되는 꿈클라이언트 앞에서 당당히 아이디어를 뽐내는 영광. 20살이 되던 해수진은 좋은 대학교에 합격한다그리고 수진은 여전히 누군가의 꿈을 대신 꾼다안면이 없는 누군가의 앞날가까운 사람들의 화뒤엉킨 것들은 아무도 없는 밤에 나부낀다손녀가 산심제자에서 나라제자가 되는 할머니의 소망은 야속하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육신으로 전해지는 고통풀리지 않는 당장의 일들은 수진을 다시끔 법당으로 향하게 했다그럼에도 수진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한 순간도 화면으로 접해온 그들의 삶이 궁금하지 않았다. 타인 앞이 아닐 땐 어떤 일상을 사는지, 어떤 꿈을 꾸는지. 인지하고자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삶이 자명하리라 믿었다. 그들도 결국 나와 같이 꿈을 꾸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던 게 무색했다. 나는 내일도 수진이 꿈꾸던 광고 회사에 신입 AE로서 출근한다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흘렸던 근래의 눈물들이 부끄러워지던 순간이었다운명을 바꿀 수 있다면 가장 먼저 꿈을 이룰 것이라는 수진의 대답이 귓가에 맴돈다.

바다를 홀로 거니는 삼신제자바람이 마구 흩날린다용왕대신께 비나이다삼신제자를 아껴달라고용왕대신신을 맞이할 준비는 모두 끝났다대학을 졸업했고광고 기획자의 꿈은 잠시 접어두었다수진의 등 뒤에는 할머니가 있다흰색 두건을 머리에 두른 채 무복을 입고 꽃갓을 쓴다뽀얗고 앳된 스물 다섯춤을 추는 호랑이나의 삼신사오늘도 수진은 기꺼이 촛불에 불을 붙인다. 약해진 불씨 따위를 다시 타게 하듯, 많은 사람을 살리며 또다른 수진의 꿈이 소생된다. 결코 꺼지지 않는다.

 

인디즈 이현지

〈시간을 꿈꾸는 소녀〉 감독 박혁지|111분|다큐멘터리|12세이상관람가


무속인이라는 운명 대신 광고기획자를 꿈꾸며 할머니와 살던 홍성을 떠나 서울의 대학에 진학한 ‘수진’
평일에는 대학생으로, 주말에는 무녀로 살지만 바쁜 이중생활에 점점 지쳐가는데…

타인의 꿈을 꾸던 ‘수진’에게
자신의 꿈을 선택할 시간이 다가온다

네 개의 기둥과 여덟 개의 글자, 그리고 나 🎒

나의 사방에 입장하기

〈졸업〉

 

네 개의 기둥. 생년의 흉과 복을 예견하는 말인 사주는 기둥 ‘주’를 쓴다. 나의 장래를 받치고 있을 사방(四方)은 어느 모양일지 한참을 가늠했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의 수진은 손님의 손을 펴, 그 가늠이 희망에 편에 설 수 있도록 돕는 무당이다. <졸업>의 해랑은 영화의 집을 완성하는 프로덕션 디자인에 임하고 싶어 한다. 생과 영화의 원리는 무척 흡사하다. 끝이 나도 완벽히 유실되는 게 아니며, 관점에 의해 매시(時)를 일컫는 호칭이 달라지므로. 나는 수진과 해랑이 타인의 궁리에 기둥을 세우는 역할이란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앞서 말했듯 가늠이 희망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짓는 업이니까. 이 기립이 원활하려면, 나의 마음도 샅샅이 펴 확인할 필요가 있음을, 두 영화는 말한다.

 

거주를 옮기는 일이 커다란 전진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 역시 닮았다. 수진은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어, 학업과 법당을 동시에 책임지는 매주를 버겁게 맞이한다. 무를 수 없는 숙명도 있지만, 할머니와의 약속이 팽팽히 이동하게 했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엔 시간을 통과하여 꿈을 섭취한 수진이 있다. 졸업 후 다시 법당으로 안착하여, 무당을 잇는 수진의 결심을 나는 수긍이란 단어만으로 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 꼭 말하고 싶었다. 영화에서 수진은 말한다. 운명을 아예 새로 조립하긴 어렵다고. 그럼에도 ‘세부적인’ 우회는 가능하며, “잘 해석해서 맞이했으면 좋겠어요” 꼿꼿이 말한다. 손님에게 무르기엔 ‘이르다’며 운이 들 시기를 확인하고, 해변에서 일회용 폭죽이 마구 지는 와중에도 초 앞에서 숙여 기도를 올리는, 때때로 울음을 고르지 못하는, 원하던 장래 중 하나였던 방송을 드문드문 지속하는, 신뿐만 아니라 친구와의 약속에도 성실한 수진이 좋았다. 수진은 ‘선택’ 받았으나 마냥 수긍하지 않았다. 그 계시를 ‘세부적’으로 오래 보았고, 기꺼이 ‘선택’했다. 이 행보가 담긴 영화이기에, 나도 수진이 말하는 운명을, 그 원리를 애틋하게 믿기로 했다.

 

해랑은 엄마의 독립으로 인해 새 집을 구해야 하는 국면을 맞이한다. 작별은 방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아침마다 놓이던 과일이 숭덩 든 주스, 서로를 나열하듯 그린 크로키, 동기끼리 옥신각신 외우던 예술. 당연의 범위에 두었던 게 물러나는 느낌을 받는다. 무엇보다 연장해온 장래에 매진할수록, 나의 ‘자리’가 지연되는 기분에 갈등한다. 해랑은 차차 머뭇거린 만큼의 세기를, 본인을 믿는 일에 할애한다. 선배의 타박대로 영화에 실리지 않을 곳이어도 끝내 남아서 미감을 위해 애쓴다. 공무원을 할 거라는 은아에게 그래도 벽은 같이 크로키로 메워야 한다고 피력한다. “나랑 같이 살자”고 서로를 서로의 일상에 붙든다. 엄마의 새 집 역시 넉넉히 응원할 수 있게 된다. 주위에서는 해랑의 희망을 흉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졸업>을 보면서 나는 두 편의 마음을 얻었다. 맘껏 무르되 주저의 탄성을 믿자고 말이다. 진로에 있어 망설이는 마음은 생기는 건 당연하다. 다만, 신뢰해야 한다. 나의 가능엔 흉이 없고, 흉이라 명명되어도 새 복은 돋아날 거란 순리를. 두 영화로 인해 내게 올 작별과 의연히 악수할 체력을 얻은 것만 같다.

 

인디즈 김해수

〈졸업〉 감독 허지예|82분|드라마

어려서부터 엄마와 둘이 살아온 해랑은 졸업을 앞둔 미술감독 지망생이다. 어느 날 엄마가 퇴사하게 되면서 해랑은 갑작스러운 독립을 하게 된다. 처음으로 모든 것을 혼자 하게 된 해랑은 미래에 대해 갈등하게 될 사건들을 마주한다.

이 사람이 궁금하다 🧐  
<시간을 꿈꾸는 소녀>에 담긴 시간, 무려 7년! 박혁지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다소 특별해보이고 어쩌면 자극적으로 말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 앞에서 아주 긴 시간을 지켜보며 함께하는 태도가 웰메이드 다큐멘터리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궁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박혁지 감독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춘희막이〉 감독 박혁지|96분|다큐멘터리|12세이상관람가


“영감의 세컨부와 함께한 46년… 인생 참, 얄궂다”
홍역과 태풍으로 두 아들을 잃은 큰댁 막이는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작은댁 춘희를 집안으로 들인다. 영감이 떠난 지 한참이 지나도록 둘은 모녀인 듯, 자매인 듯, 친구인 듯한 애매한 관계를 46년간이나 유지하며 함께 살았다. 모질고 질긴 두 할머니의 특별한 인연. 이제 서로의 마지막을 지켜줄 유일한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가는데…

〈행복의 속도〉 감독 박혁지|114분|다큐멘터리|전체관람가


가슴 저릴 만치 아름다운 풍광을 품고 있는 습원 지대 오제에는 많은 트레킹 족들이 찾는다. 그러나 오제의 겨울은 길고 깊어 산장들은 5월에서 10월까지만 영업을 하고, 도보로 짐을 옮기는 베테랑 봇카들이 차량이 들어갈 수 없는 습지를 지나, 보통의 사람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식자재 등을 오제의 산장들로 배달한다.

바로 지금! 독립영화 87편 보러가자🥳  
지난 주 말씀드린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스페셜 위크!✨ 혹시 잊으셨을까봐 한번 더 가져왔어요. 지금 가면 기다리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답니다. 1월 20일부터 29일까지 열흘간 올해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전작품을 작품을 볼 수 있으니 꼭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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