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레터 61호  
2024/3/12
질환과 질병, Disease와 disorder, 장애와 장해의 차이는?
송한수


왜 질환관리청이 아니고 질병관리청인가?


흔히 질환과 질병은 바꿔서 사용해도 무방한 단어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다가 최근에는 '근골격계 질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령 근로복지공단의 '근골격계 질병 업무상 질병 조사 및 판정지침'에서는 '질환'이 아니라 '질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근골격계 질환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시는 분들은 근골격계 질병이라고 하면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왜 질병관리청은 질환관리청이라고 하지 않고, 질병관리청이라고 할까요? 


질병은 한자어로는 疾病, 영어로는 disease로 적습니다. 질병은 생물학적 차원의 개념으로 생체 내의 구조적 기능적 변화, 의학적으로 정의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한자어 질병(疾病)에서 ‘疾(질)’은 골절 등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병을 뜻하고, ‘病(병)’은 폐병과 같이 신체 내부에서 발생한 질병을 말합니다. 

질환은 한자어로 疾患, 영어로 illness로 적습니다. 질환은 개인적 사회심리적 차원의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한자어 患(환)은 '근심 환'자입니다. 이 한자에도 개인적 심리적 차원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질병은 의학적으로 정의내려진 상태를 의미하므로, 의학적 판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관에서는 '질환'보다 '질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그래서 질환관리청이 아니라 질병관리청입니다. 질병관리청의 영어명칭은 Korea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Agency 입니다.



질병을 영어로 번역할 때 Disease? Disorder?


신경계 질병을 영어로 번역할 때  Neurologic Disease, Neurological Disorder 중에 어떤 것을 써야 할까요? 우리 말 ‘질병’에 상응하는 영어표현은 Disease와 disorder가 있습니다. 이 둘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Disease는 식별 가능한 원인이 있는 의학적 상태입니다. disease는 원래 DIS + EASY 편하지 않다는 뜻이었으나, 16세기 이후, 의학적(병태생리적)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Disorder는 정상적인 신체 기능을 방해하는 일련의 징후와 증상의 집합을 의미합니다. 원인이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추정되는 특징이 알려져 있습니다. 캠브리지 영어사전에서 disorder를 a state of untidiness or lack of organization라고 말합니다. 순서 또는 질서가 무너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래서 질병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장애라도 번역되기도 합니다.

정신장애(질병, 질환) 진단과 통계편람 DSM-5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에서는 'disorder'를 사용합니다. 정신과에서 다루는 질병들이 Disease라고 하기에는 식별가능한 원인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Disorder를 사용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합니다. 반면, 국제질병분류체계인  ICD-10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10th Revision) 에서는 의학적 원인이 비교적 명료한 질병의 목록을 제시한 것이므로 'Disease'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신경계 질병 중 alzheimer's disease, Parkinson's Disease 처럼 disease를 고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Extrapyramidal and movement disorders, Cranial nerve disorders 처럼 구체화하기 어려운 좀 더 넓은 범위의 질병의 경우 disorder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장애등급인가? 장해등급인가?


지체장애는 신경계, 근골격계에 발생한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몸의 기능이 영구적으로 제한된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장애는 한자로 障碍, 영어로는 disability입니다.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어떤 사물의 진행을 가로 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함’ 또는 ‘신체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라고 되어 있습니다. 장애는 '막을 장', '꺼리낄 애'로 구성된 한자어인데, 막혀서 꺼리끼다는 의미입니다. 꺼리낄 애는 '- 구애(拘碍) 받다'에서도 사용됩니다. 장애는 장애인복지법과 같이 법률적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반면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장해등급 판정요령(노동부예규제101호)에서는 ‘장해’라는 용어가 사용됩니다. 장해의 한자 표기는 입니다. ‘해할 해’자가 사용되어 정신적 육체적 훼손상태로 인해 노동력에 해를 입은 상황을 설명합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장해란 부상 또는 질병에 대하여 충분한 치료를 했으나 완전 회복이 안되고 신체에 남는 영구적인 정신적 또는 육체적 훼손상태로 인하여 생기는 노동력의 손실 또는 감소(감퇴)를 말함”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장애, 장해 둘다 신체 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그러나 장애는 몸의 상태를 나타내는 의학적 개념으로 사용이 됩니다. 반면 장해는 몸의 상태를 나타내는 법적, 규범적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A씨는 산재사고로 지체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되어 장해등급 7급으로 장해보상을 받았다"라고 씁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할 경우 일의 수행을 방해하는 요인이 의도적이라는 느낌을 줄 때에는 '장애'보다 '장해'를 씁니다. 그래서 "시위대는 별다른 장해를 받지 않고 시청 앞 광장까지 진출했다"에서 처럼 장애가 아니라 장해를 씁니다.

[우리말 바루기] '장애'와 '장해'의 차이



다양한 수준에 따른 ‘장애’의 표현


장애에 상응하는 대표적인 영어단어는 Disability입니다. 그런데, disorder도 장애로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하고, impairmenthandicap과 같은 용어도 장애로 번역되어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수준의 '장애'라는 용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1980년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에 의해 처음으로 체계적인 국제장애분류체계인 ICIDH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Impairment, Disability and Handicap)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ICIDH에서는 장애의 개념을 impairment, disability, handicap의 3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각각 조직적 수준, 개인적 수준, 사회적 수준으로 구분한 것이죠. 이러한 개념화는 장애에 대한 정책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그 이후 개념의 모호성에 대한 비판과 사회적 개입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2001년에 재정의됩니다. 이에 따라 신체기능과 구조의 결함을 손상(impairment)이라고 하였고, 기존의 장애(disability)는 활동 제한(acivity limitation)으로, 핸디캡은 참여 제약(participation restriction)으로 바뀌었습니다.


[논문] 장애의 개념과 분류. 2019

1980년 장애의 개념
2001년 장애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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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레터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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