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독자의 절판 문의에 늘 가슴이 쿵 떨어집니다. 번역이 2~3년 이상 걸린다거나, 저작권자와 재계약이 순조롭지 않거나, 초판 판매가 예상보다 더딘 책들은 중쇄 진행을 맞닥뜨린 상황이 고통스럽습니다. 아깝고 아쉽고 무척 속이 상하는 그 결론은, 서점에 결국 "기약 없는 품절"로 등록이 되지요. "중쇄를 찍자!"며 모든 재쇄를 환호할 거라는 예상과 많이 다른 속사정입니다.
이번 호에는 한 치 앞을 못 내다본 초판의 운명과 가을을 맞이하며 탐험하는 나무의 맛을 소개합니다. 부디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어 가을 숲 나들이와 여행 계획까지 세워볼 수 있기를! 🙏 🍁
(각주 30호 발행일이 추석 연휴 다음 날이라 쉬어 가려고 해요. 미리 인사드립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품절과 절판 사이
🦻 팔랑
편집부 유선 전화는 평소 거의 울리지 않는 답니다파트너들은 대부분 휴대전화와 각종 디엠카톡과 메일로
소통하기 때문에 02번으로 시작하는 유선 전화는 매우 드물게 소리를 내는데거개가 두 가지 용무에 해당하지요하나는 거래처와 독자의 품절 문의또 하나는 절판된 책을 찾는 수소문.

그렇다면 어찌하여 마티에는 이토록 품절 책이 속출하는가,에 관해서 제가 뼈아픈 이실직고를 해야겠습니다. 학술서에 가깝거나 한 분야의 특정 주제를 다루어 독자층의 범위가 좁을수록 초판 부수결정이 결정적입니다. 왜냐면 2~3년간 초판을 팔고 나면 콘텐츠에 대한 모든 계약을 새로이 갱신해야 하고, 계약이 순조로웠다 하더라도 제작 사양에 따라 갈팡질팡 중쇄 진행이 어려운 경우가 숱합니다. 특히 이런 책들이 그러하지요. 분량이 많고, 재료의 일부를 수입에 의존하거나, 특별한 가공으로 제작 비용이 높을 경우 중쇄는 그리 복된 소식이 아닐 경우가 흔합니다. 오죽하면 중쇄 찍다가 출판사 망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까요.

세트 도서라면 편집 초반부터 고민이 시작됩니다. 미학이란 단어를 최초로 유통시킨 바움가르텐의 『미학』이냐, 개정판으로 재정비를 마친 버크의  『숭고』냐, 한국에 소개된 다른 주저들과는 주제가 현격히 다른 흄의 『취미』론이냐! 셋 중 가장 많은 독자의 손길이 닿을 책은 과연 무엇일까?

마티 식구들끼리는 거의 이견 없이(이렇게 슬며시 오판의 책임을 두루두루 묻히는 게 아니냐는 눈총이 느껴지네요미학에 힘을 실었어요미학이란 단어를 세상에 최초로 선보인 저작, ‘김동훈이라는 강력한 힘을 지닌 학자의 단단한 해설과 라틴어 원전 번역라틴어와 독어영어까지 두루 참고한 김동훈 선생님의 각주들이 더할나위없이 믿음직했습니다이런 연고로 1권 미학을 숭고』, 취미보다 600부 더 인쇄하기로 결정하고네덜란드에서 수입해 올 하드커버용 천의 수량을 꼼꼼히 따졌지요. (당시, 바갈라딘 님이 "흄의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가 제일 잘 팔릴 것 같아요"라는 의견을 주었더랬습니다. 그때 그 의견을 좀더 진중하게 되새겼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1차 미학 3종 세트의 판매를 시작한 지 1년 6개월결과는 어떨까요?
이번에도 실패했어요흄의 취미의 기준에 대하여가 품절된 지 무려 3개월을 넘기고 있어요. 1권 미학은 정!!!! 600부가 남아 있네요. ‘고민 없이 세 권을 똑같은 부수로 인쇄했어야 했구나가 아쉽고 허탈하게 남은 문장입니다.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을까요? 각별한 애정은 가려둔 차갑고 적나라한 예측이란 지점이 가능키나 할까요?

마티에서 기약 없이 중쇄를 기다리는 책들을 적어 볼게요. 독자님들의 절판 항의로 마티의 유선 전화가 마비될 어느 날을 꿈꿔봅니다. 👉👉 『권력 정치 문화』 『지식인의 표상』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푸르트벵글러』 『마이 턴』

미식의 끝은 호기심이니까: 나무의 맛
🌱 죽순
그의 직업은 평론가입니다. 향과 맛을 감별하는 음식 평론가죠. 평범하게 '맛집'을 순례한다면 직업 만족도가 극강일 것이 분명한데, 그는 계곡으로, 숲으로, 운하로 쏘다니며 '나무의 맛'을 찾습니다. 10월 출간을 앞둔 <나무의 맛: 연기부터 수액까지, 뿌리부터 껍질까지, 나무의 맛과 향>(가제)의 저자 이야기입니다. 
비버가 방금 먹은 나뭇가지를 씹어보는 진정성, 대대손손 위스키 숙성에 오크통만 써온 양조장에 낙엽송을 들이미는 과감함, 아르헨티나에서 보낸 나무 설탕절임 택배를 찾아 1년을 헤맨 집요함이 담긴 이 책은, "맛있다!"라고 외친 감탄의 원천이 나무였다고 옆구리를 쿡쿡 찌릅니다.
예상치 못했던 음식에서 나무의 영향을 찾아내고 그 맛을 감지하는 과정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그 맛을 만들어내는 것은 비단 나무뿐만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을 지켜온 레시피, 세계대전 당시 전쟁통에 사라졌던 다양성을 복원해내는 노력, 다락방에서 익어가는 할머니의 애정 등이 나무의 쓰임과 결합해 세상에 둘도 없는 맛으로 탄생합니다.
나무와 음식의 생소한 만남을 지켜보는 것 또한 재미있습니다. 치즈에 왜 나뭇잎을 감싸지? 요구르트에 재를 섞는다고? 이 책에 진심으로 빠지는 순간은 여기부터인데요, 사실 저자도 왜 그러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온군데를 돌아다니며 생산지를 돌아보고 장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하나씩 알아갑니다. 그러곤 집으로 돌아와 부엌에 간이 실험실을 차리죠. 얻어온 술을 다른 나무를 이용해 숙성시켜보기도 하고, 소나무를 말려 가루를 내고 반죽해 쿠키도 굽고요.
한국어판의 출간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나무의 맛>의 저자 '아르투르 치자르-에를라흐'는요, 매일 마티를 태그해 인스타그램을 올립니다. 거의 매일 나무로 음식을 만들어요. 정육면체로 자른 나무 줄기를 토치로 구워 수프에 그냥 담그기도 하고, 솔잎을 뜯어 요구르트에 생으로 넣어 향을 입히기도 해요. 그의 실험은 끝나지 않았네요. 
👉 <나무의 맛> 저자의 솔잎 요구르트 🌲🥛 제조 동영상 구경하세요!

눈치와 감정: 마이너 필링스 리뷰
📬 임아혁 알라딘 MD
(앞에도 글 있어요. 전문 읽기 추천👍)
소수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성이고 가부장 문화가 더 심한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눈치를 봐야 했던 여러 장면들처럼 인종문제에 노출되었다면 눈치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저자처럼 말이다.
캐시 박 홍은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감정’은 무엇이냐.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일은 아주 어렵다. 그러니 시를 빌어 ‘이 감정’을 말하는 것이리라. 소수자들만 감지할 수 있는 기류, 그 기류를 읽어 눈치껏 생활해야 하는 마이너들. 언제까지 마이너들이 화자가 되어야 할까? 청자가 있어야 성립되는 스피커들의 자리. 이런 자리에 오르면 쉽게 지친다. 왜냐하면 소위 청자가 되어야 할 대상들은 듣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인들의 인종차별에 대해 처음 말한 사람이 캐시 박 홍일까? 아니다. 듣지 않은 자들만이 작가에게 “시의적절한 책이 나왔다”라고 말할 수 있다. 흑인 인권문제가 어제오늘만의 일이었느냐? 여성 인권 문제가 어제 갑자기 생긴 문제인가?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방탄소년단의 빌보드차트 진입으로 끝났나? 
(계속)

실내형 인간들의 실내형 북클럽 후기 
🧼 퐁퐁 
"실내형 인간들의 실내형 북클럽" 멤버들과 9일간 『우리는 실내형 인간』을 완독했습니다.
실내형 인간이라서, 누군가와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과학 저널리스트가 쓴 실내 공간 이야기가 궁금해서, 평소 잘 안 읽는 분야의 책 읽기에 도전하고 싶어서, 독서 루틴을 만들고 싶어서 등등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8월 24일 저녁 오픈채팅방에서 만났어요. 이런 형식의 북클럽 괜찮을까? 너무 어색하지 않을까? 살짝 걱정하며 접속했는데, 웬걸요. (과장 한 방울 섞어서) 첫날 책을 완독할 뻔했습니다.
『우리는 실내형 인간』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 중 하나가 집, 병원, 사무실, 감옥 등 책에 등장하는 다종다양한 공간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인데요. 책을 만들면서 스크랩해둔 자료들을 오픈채팅방에서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멤버들도 눈에 불을 켜고 재미있는 공간들을 소개해주었고요.
매일 정해진 분량을 읽고 인증샷을 올리거나, 자기만의 속도로 천천히 읽고 좋았던 문장을 공유하며 꼬박꼬박 책을 읽었습니다. 하루는 병원이 환자를 치료하는 공간이자 의료진의 일터라는 점을 새삼 깨달았고요. 어떤 날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뇌 관련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공간, 나아가 탈시설까지 짚어주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격하게 공감하며 고민과 공부를 이어 나가기로 다짐했어요. 또 어떤 날은 언뜻 호텔처럼 보이는 감옥, 우주에 집을 짓는 문제를 논하며 조심스럽게 서로 다른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고요. 요약하자면 아주 알찬 9일을 보냈습니다. 이런 게 북클럽의 재미구나 싶더라고요.
 +
예스24와 문화일보가 진행하는 서평 쓰기 프로젝트에 『우리는 실내형 인간』이 선정되었다는 소식 전합니다. 내가 읽은 책을 잘 소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글쓰인 것 같아요. 책을 읽고 9월 30일까지 서평을 써보세요. (대상과 우수상 상품이 엄청나답니다!) 👉 도전! 

❝ 두 번 산 책 

분명히 샀다는 걸 알지만 어디 뒀는지 찾지 못하고 찾아볼 여유도 없어 다시 산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책이야 여러 번 살 법도 하죠. 그런데 둘 다 2002년 4쇄인데 면지가 다릅니다. 인쇄 중에 용지가 부족해 다른 것으로 바꾼 걸까요.

🧼 퐁퐁
이미 갖고 있는 책이 근사한 새 옷을 입고 나타나면 그저 감탄만 할 뿐, 첫 표지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자 했어요. 아무리 좋아하는 책이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랬는데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 그것들의 결합,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너머까지 응시하는 듯한 프리모 레비의 침착하고 예민한 눈빛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리커버 작업을 한 김동신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표1, 표4, 책등, 서체는 물론이고, 조심스럽게 표지를 넘기면 나오는 면지까지, 모든 요소가 화학 반응을 일으켰어요. 시간차를 두고 다시 읽었을 때만 느낄 수 있는 화학 반응은 말할 것도 없고요.

🌱 죽순
리커버판을 사면서 두 번 산 책에 등극. 리커버의 재킷으로 쓰인 ‘화이트 레이스지’의 효과가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도 김동신 디자이너의 작업.
이 책 외에 리커버판을 구매한 적은 없어요. 저는 리커버에 좀 양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재밌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해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 조스바
2019년 리커버된 표지를 보고 ‘내가 아는 그 사랑의 기술인가?’ 책의 제목과 저자 말고 모든 게 바뀐 듯한 표지였어요. 반가운 마음에 구입했습니다. 대학 시절 읽었던 책이라 옛날 생각이 많이 났어요. 책도 음악처럼 읽었던 그 시절을 같이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표지는 다르지만 내용은 같은 책을 갖게 되었네요.

🦻 팔랑
아이가 첫돌을 지나자 책놀이를 시작했는데, 그림책을 보다가 자꾸 손가락 끝에 힘을 주더라고요. 그림 속에 떡이 있으면 집어 올리고, 서랍이 보이면 열고 싶어하는 거예요. 팝업북을 좋아하겠구나 싶어 이 책을 샀어요. 마지막까지 한쪽도 빼놓지 않고 깔깔거리고 신음하며 황홀경에 빠지는 거예요! 그래서 두 권을 샀어요. 찢어질 경우에 대비해서요. 
수백 번을 얼마나 귀하게 봤는지 여태 하나도 찢겨 나가지 않고 고대로입니다. 이 책은 절판이 되었어요. 꼭 갖고 싶은 구독자 분은 저에게 연락주세요! 미리 성탄 선물! 🎅

 조심스럽고 고요하게, 제주
🦻 팔랑
백신을 맞고, 거리두기가 완화되길 기다리며 조심스럽고 고요하게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날이 흐려도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좋은 제주의 명소를 추천해봅니다.

‘꽉 채운 늦봄’이라는 뜻의 맞춘서점은 함덕해수욕장 바로 근처랍니다. 인문학과 소설과 시, 에세이와 철학서까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서점인의 큐레이션이 돋보입니다. 바로 옆 '페이지 2'에는 인문학과 시집들이 놓여 있어요. 저는 어린아이와 함께 서점에 들러 책을 사고, 함덕 해변을 거닐었어요.

2012년에 첫 건립 이후, 계속 전시관이 추가 건립되면서 2017년 5관까지 완공했답니다.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제주에서는 성산의 지니어스 로사이 이후로 안도의 설계를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1관에 들어서는 순간 놀라워요. 노출 콘크리트가 이토록 완벽한 내장재였단 말인가, 하고 감탄하게 되지요. 대리석에 견줄 법한 섬세한 콘크리트 마감이 내내 탄성을 자아냅니다. 개인 소장품이었다는 전시품들도 놀랄 만한 내용들인데, 특히 4관(“꽃상여 꼭두”)에서 만 8세 꼬마와 함께 가장 오래 머물렀습니다(암만 생각해도, 이 세상 굿즈가 아니에요).

가족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특히, 꼭, 어느 곳보다 강력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해설을 들으며 관람하시길 추천해요. 듣지 않고 보기만 해서는 알아차릴 수가 없어요. 길고 매섭고 고통스런 역사이기 때문에, 눈을 감고 싶을 때 듣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곳을 다녀오면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는 한강의 문장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이번 주 마티의 각주*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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