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오늘 레터는 휴재할 생각이었습니다. 오월의봄에 짧은 휴식이 예고되었기 때문이었죠. 그러다 우리의 여름과 휴가를 통과하는 각자의 방법에 관해 써보는 게 어떨까 하여 이렇게 휴재 특집, 휴가 특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어제 내린 호우에 크고 많은 피해 소식이 있어 마음이 무겁네요. 계신 곳에서 무탈한 하루 보내시길, 피해를 보신 분들께는 조속한 조치가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20회를 한 회 앞둔 오늘의 <오!레터>, 휴식의 기운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아래 만두맨의 글을 인용합니다.
"휴가가 별건가요. 나를 돌보고 챙기면 그게 휴가지요."

🍹편독자

레터 회의 때 ‘휴가 특집’을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여름에 휴가를 가지 않는 저는 힘겹고 지루한 이 여름을 나는 법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여름을 ‘잘’ 나는 법이라는 게 있긴 한가요? 그래도 굳이 뭔가를 찾아보자면, 식후의 티타임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사무실 안에서 즐기는 5분의 휴가, 아니 휴식이랄까요? 각설하고, 여름은 바야흐로 ‘냉침’의 계절입니다. 냉침용 티를 고르는 건 언제나 설렙니다. 비슷한 재료들인데 브랜드마다 미묘하게 다른 맛이 나는 걸 보면 신기해요. 그러고 보면 차를 덖는다는 건 참 매력적인 일인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에도 기분전환 겸 새로운 티를 시도해봅니다. 헤로게이트의 스위트 루바브/로즈 레모네이드와 그린필드의 레드베리 크럼블이에요. 뜨거운 햇빛에 한없이 녹아내린 몸을 구제해줄 색다른 향과 맛의 티들입니다. 특히 레드베리 크럼블은 구운 파이를 한입 베어 문 것 같은 고소한 맛이 나서, 디저트와 정말 잘 어울리네요 :)

캠퍼
제가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천도복숭아. 20대 초반 혼자 사 먹을 과일을 찾다가 새삼 다시 보게 된 천도복숭아는 아주 맛있는 여름 과일이에요. 과일가게에서 천도복숭아가 보이기 시작하면 여름이 왔다는 것이고, 적당히 무르고 달달 새콤해서 가장 맛있는 상태잖아요. 최상의 천도복숭아를 먹을 수 있는 건 일 년에 길어야 열흘쯤이니, 그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과일가게에 들릅니다. 만 원으로 열 개, 운이 좋으면 열두 개까지도 사서 냉장고 아이스박스를 채워놓으면 휴가 준비는 끝. 덥다 더워, 하면서 찬물에 천도복숭아를 씻고 그대로 서서 한 입 베어 먹기. 괜히 집 안을 서성이면서 손에 든 천도복숭아를 먹어 치우는 그 시간이 제게는 여름을 보내는 방법이네요.

🥟만두맨

산골에 사는 친구는 운전을 해서 출퇴근하는데, 출근길에 동네 할머니를 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 드리고서는 오이지를 몇 개 받았다고 합니다. 친구는 오이지를 잘 먹지 않는다고 해, 그 오이지는 결국 제 품에 안기고 말았고요. 오이지를 집에 가져와서 맛을 보니, 아, 제가 사랑하는 ‘그’ 오이지더군요. 소금물로만 익힌, 쨍하게 짜면서도 개운한 ‘그’ 오이지 말입니다. 동글동글 썰어 물을 붓고 그 위에 대파 쫑쫑 썰어 띄워 떠먹어도 맛있지만, 꽈드득 아작 오이지 무침이 너무 먹고 싶어 당장에 오이를 썰어 베보자기에 꽉 짠 뒤, 다진 대파와 고춧가루 약간 넣고, 참기름은 넉넉히 두른 후, 마지막으로 깨를 갈갈 갈아 넣고 조물조물 무쳤습니다. 휴가가 별건가요. 나를 돌보고 챙기면 그게 휴가지요. 또 돌보고 챙기는 데 잘 먹는 건 뺄 수 없고요. 딱히 여름휴가를 챙겨본 적 없는 저는, 그래서 틈틈이 좋아하는 여름 반찬을 만들어 먹으며 습하고 더운 이 계절을 나고 있습니다.

🐶모래
작년 여름에는 수영장과 바다에 몸과 마음을 내놓았습니다. 큰 호수에서 수영하는 꿈을 꾼 날 눈을 떴는데 우연히 친구가 지금 당장 수영장으로 오라고 한 것이 시작이었어요. 더위에 한끼도 겨우 먹던 제가 물에 빠지니 하루에 네 끼 이상을 먹게 됐고요. 취미로 사주를 공부하던 또 다른 친구는 제 사주가 뜨거워 물의 기운과 잘 맞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믿으며 이번 여름에는 물에 발 한번 담그지 못했단 사실에 몸을 꼬고 있었는데, 마침 같이 사는 강아지의 목욕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어요. 그의 목욕날은 어차피 모두 젖는 날. 기왕 젖을 거 우선 옥상에 작은 장난감 물총을 가지고 올라가 힘껏 뛰어놉니다(물론 강아지는 역정을 냅니다). 채워 넣은 물이 똑 떨어지면 게임은 종료. 이제 집으로 내려와 물 받은 욕조에 몸을 집어넣고 갓 태어난 아기가 된 것 같은 강아지를 품에 올려놓습니다. 조금씩 안정을 찾는 강아지의 들숨과 날숨에 내 숨을 맞추기. 뒤에 올 샴푸질과 털 말리기와 우다다 타임을 잠시 잊고요. 긴 목욕을 위한 짧은 놀이... 후 끓여 먹는 라면, 그 뒤의 복숭아로 바다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보았습니다. 

🎨가내수공업자

한여름과 한겨울은 집콕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집에만 있다 보면 여름 바다가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뭘 실행하기 전에 저질 체력을 먼저 걱정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아쉬운 대로 ‘닌텐도스위치’의 게임 <슈퍼마리오 오디세이> 중에서 ‘바다 왕국’ 챕터로 가본다. 마리오에게 래시가드를 입히고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스노클링을 즐겨본다. 바닷속은 깨끗하고 햇살은 따스하며 바가지 물가나 젖은 몸의 찝찝함은 전혀 없다. 바다 왕국 한가운데에 있는 분수도 탈 수 있고 해변의 모래사장에서는 비치 발리볼도 할 수 있다. <슈퍼마리오 오디세이>의 특별기능인 ‘캡처’를 이용하면 물살이가 되어서 더 맘껏 바다를 누빌 수도 있다. 마리오에게 온 마음을 이입해서 게임 속의 바다를 즐기다 보면 정말로 잠깐 바다에 와 있는 것만 같은 착각도 든다. 물론 실재하는 일은 아니지만 몇 시간 정도는 충분히 집콕의 지겨움을 몰아내기에 좋다.

💽서패동 블루제이

쉴 때나 무언가를 할 때 주로 음악을 틀어놓는다요즘은 너무 틈이 없이 바쁘다 보니 여유조차 없어 버겁다이렇게 마음이 힘겨울 때는 메르세데스 소사나 마리아 파란투리의 노래를 듣는다이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떤 이야기가어떤 삶들이 스쳐간다더 깊이더 많이 사랑해야겠다고 느끼게 된다더 슬퍼하며 더 공감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각각 아르헨티나와 그리스를 대표하는 거장들이다우리처럼 군사독재를 겪은 나라들이다두 사람 모두 군사정권에 저항했고그 때문에 해외로 떠돌아야 했던 아픔을 겪기도 했다자신들 고유의 음악을 몹시 사랑해 이를 바탕으로 음악을 했다는 공통점도 있다두 사람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삶에 감사하며(Gracias a la vida)>(메르세데스 소사)와 <기차는 8시에 떠나네(To Treno Fevgi Stis Okto)>(마리아 파란투리)일 것이다물론 두 곡 다 두 사람 고유의 노래는 아니지만.

휴가도 가지 못하고 일만 했던 우울한 여름에 음악을 들었다. 아무튼 음악은 소사의 노래 중 하나인 <내게 힘이 되어주는 노래>처럼 살아갈 힘을 주는 것 같다.

🌊여름 갤러리
🌊가내수공업자의 여름
줄무늬 래시가드와 노란색 튜브,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한 마리오
바닷속과 수면에 비치는 햇살의 색감이 너무 아름답다.
🌊편독자의 여름
여름은 바야흐로 냉침의 계절, 편독자의 냉침
🌊만두맨의 여름
만두맨이 사랑하는 '그' 오이지
🌊모래의 여름
얼떨결에 목욕 당했지만(?) 다크써클이 남아있는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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