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를 보고 많은 생각이 올라왔다.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방법과 미감 사이에서의 간극을 잘 조절하는 것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결국 작업 세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끝났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느라 별생각이 없었는데, 대학을 가서 공부를 시작하며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받으니 나의 작업 생태계는 더없이 모호하고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꽤 긴 시간을 작업 세계 구축을 위해 노력했다.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내가 그렸을 때 기분이 좋은 그런 그림들을 그렸다. 여전히 그렇게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조금씩 그림에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그 시작점은 기념일이나 국가 참사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분명한 의미를 담는 그림이 되기도 하고 모호하게 그려진 그림도 있었다. 


대단히 큰 스케일의 작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국립 미술관이나 갤러리 걸릴 회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아니지만 디지털 세계에서 이미지가 갖는 힘은 꽤 커서 시간과 의도, 공간 3가지가 맞으면 폭발적으로 뻗어나가기도 하기 때문에 이 장점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고 나의 작업 스타일은 여기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작업이 작업으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창작자의 의도는 분명히 묻어나게 되어 있고, 시각 관찰자도 그 점을 곧잘 알아낼 것이라 믿는다. 


결국 작업은 작가 그 자체이다. 작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보는지가 고스란히 작업에 반영되고 조금씩 쌓여 작가의 세계가 되는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현철 감독의 이야기를 마저 해보자면, 그의 시선과 마음을 쓰는 방식이 아주 잘 느껴져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 그가 영화라는 매체가 아닌 다른 방식의 작업이었어도 이번 영화와 비슷한 결의 다른 작업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엇을 이용해서 표현하느냐는 나중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방식과  마음을 풀어가는 과정이 좀 더 깊은 숙성의 시간을 맞고 나면 어떤 매체가 되었든 작업의 의미가 일관 되게 관통되는 지점이 생긴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탐구일 것이다. 작업을 해내는 작업자에 대한 이해도를 가장 먼저 가져야 하는 사람. 바로 작가 자신이다. 그리고 세상과 사람에 대한 탐구와 이해를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좀 늦은 편이었고 나에 대한 고민과 탐구를 하는데 20대 전체를 보냈다. 30대가 되니 비로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궁금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시작하는 단계인 것이다. 


사실 별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운이 좋다면 80살까지는 살 텐데 이제야 30대에 들어선 나의 작업 세계가 미약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혹여나 요절한다고 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날에 대비해서 빠르게 당겨온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말이다. 천천히 조금씩 배우며 성장하는 데 가치를 두고 작업과 함께 성장하면 된다. 



나의 속도대로 세계를 만들어가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