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박상현의 미디어 인사이트
씨로켓 인사이트
2020.7.13

마지막으로 링에 오른 NBC Peacock

넷플릭스의 성공을 지켜보던 회사들이 차례로 스트리밍 전쟁에 참여하기 시작한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특히 작년부터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11월에 애플TV플러스와 디즈니 플러스가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해 4월에는 퀴비가, 5월에는 HBO Max가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선수 NBC 피콕(Peacock)이 미국시간으로 이번 주 수요일(7월 15일)에 서비스를 개시한다. 이미 오래도록 넷플릭스에 도전하고 있는 아마존의 프라임 비디오, 디즈니가 소유하게 되는 바람에 존재의 이유가 애매해진 훌루(Hulu), 특별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는 CBS All Access까지 합치면 미국시장의 스트리밍 전쟁은 한 마디로 만인의 투쟁(war of all against all)이다.

NBC 피콕의 존재는 좀 애매하다. 일단 디즈니 플러스의 대성공 이후로 넷플릭스를 제외한 모든 스트리밍이 2군에 속한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체 제작능력이 미미한 훌루나 방송사의 한계에 갇힌 CBS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NBC Universal이라는 회사명에서 보듯 번듯한 메이저 영화사인 유니버설 픽쳐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Peacock ; NBC
따라서 NBC 피콕은 (워너브러더스의) HBO 맥스가 가장 적절한 비교대상이다. 스트리밍에 투여할 콘텐츠의 양은 피콕이 약 2만 시간으로, 1만 시간의 영상을 보유한 HBO 맥스의 두 배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가벼운 코미디물의 강자였던 NBC 방송과 달리 HBO는 ‘왕좌의 게임’처럼 열성 팬들이 따라다니는 굵직한 콘텐츠로 가득하다. 

NBC는 미국에서 올림픽 중계를 수십 년 째 도맡아 온 방송사라는 이점이 있다. 7월 중순이라는 런칭 일정을 잡아둔 이유도 바로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보고 싶은 코드커터(cord-cutter)들을 대거 끌어들이기 위함이었다. 물론 이 계획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무산시켰고, 피콕은 다소 김빠진 런칭을 해야 하는 처지다. 지난 5월 HBO 맥스의 런칭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기 때문에 NBC는 더욱 긴장하고 있을 거다.


가격 및 상품구성
HBO 맥스는 워너미디어가 가지고 있고, 워너미디어는 AT&T의 소유인 것처럼 NBC 유니버설은 미국의 최대 케이블 TV, 인터넷 서비스제공업체인 컴캐스트(Comcast)가 가지고 있다. 따라서 NBC 피콕은 궁극적으로 케이블 TV 기업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띄운다는 다소 모순적인 존재다. 그러나 케이블 TV가 저물고 있는 상황에서 컴캐스트가 스트리밍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더 미룰 수는 없는 일. 피콕의 가격과 상품구성을 보면 자신이 가진 마케팅 채널을 통해 가입자를 유도한다는 전략이 분명하게 보인다.

우선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들과 다르게 피콕에는 광고 시청을 통한 무료 티어(tier)가 존재한다. 이는 훌루가 서비스를 런칭한 후 사용했던 전략과 유사하다. 하지만 피콕의 경우 유료에도 두 개의 티어를 두고 있다. 

1. 무료: 광고를 시청해야 하고* 콘텐츠 라이브러리의 일부만을 볼 수 있다.
2. 월 5달러: 여전히 광고를 시청해야 하지만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다.
3. 월 10달러: 광고없이 모든 콘텐츠를 볼 수 있다. 

*단, 광고는 한 시간에 5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미국 지상파 방송의 광고분량에 비하면 약 1/3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넷플릭스에 길들어져 광고를 극도로 싫어하는 세대를 위한 타협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는 위와 같은 세 개 티어의 요금제를 가지고 있지만, 컴캐스트의 Xfinity TV와 인터넷에 가입한 사용자들은 2번 모델을 무료로 제공한다. 컴캐스트가 NBC를 인수한 이유처럼 번들을 통한 고객확보 전략. 그런데  Xfinity라는 케이블 TV상품을 구매한 사람에게 피콕이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게 여전히 모순처럼 느껴진다. '스트리밍을 코드커터들의 선택’이라고 관점에서 보면 분명 그렇다. 

하지만 컴캐스트에게 피콕이라는 스트리밍 서비스는 NBC 유니버설의 풍부한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썩히지 않고 활용하는 방법이다. 따라서 라이브 TV를 대체하지 않는 병행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코드커팅이 대세가 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면 쓸만한 스트리밍을 확보하는 보험이기도 하다.

콘텐츠 라이브러리
앱을 작동시키면 세 가지 옵션이 등장한다: 채널, 트렌딩, 브라우즈. 먼저 트렌딩에서는 짧은 뉴스와 스포츠 하일라이트 등 그날그날의 업데이트를 보여주고, 특히 전날 밤 토크쇼에서 히트를 친 내용들(요새는 이런 클립들이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많이 돌아다니므로)을 보여준다. 

브라우즈 기능에서는 약 1만 5천개 이상의 TV 에피소드와 영화를 고를 수 있고, 이렇게 고르고 시청하는 행동은 데이터로 수집해서 (넷플릭스가 하듯) 사용자의 취향 분석에 활용된다. 전통적인 TV의 느낌을 살린 채널에서는 케이블 TV에서 채널을 고르듯 뉴스와 스포츠, 영화 등을 고를 수 있게 했다. 심지어 채널 가이드 까지 케이블의 느낌을 살려서 케이블과 스트리밍의 인터페이스를 연결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콘텐츠에는 30 Rock, Law & Order, House, Psych 같은 비교적 최근의 인기작품들 부터 에어울프(Airwolf) 같은 1980년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작품들 까지 다양하게 갖췄고, 극영화로는 쥬라기공원 시리즈, 저수지의 개들, 아메리칸 사이코, E.T., 슈렉 등이 눈에 띈다. 

물론 제대로된 스트리밍 서비스라면 오리지널 콘텐츠가 없으면 안된다. 피콕이 런칭과 함께 준비한 오리지널은 모두 11개 작품으로, 올더스 헉슬리 원작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Psych 2와 같은 신작과 영국에서 방영했던 The Capture, Intelliegence 등의 프로그램 (적어도 미국에서는 처음 소개되므로 오리지널에 포함시킨다), Curious George, Where’s Waldo? 같은 어린이용 프로그램들도 있다.

좀 더 자세한 목록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성공 가능성
피콕을 이끌고 있는 맷 스트로스는 피콕 앱을 실행시키면 일반 TV처럼 바로 방송이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인터페이스는 제법 흥미롭다. 미국의 공영라디오 방송인 NPR은 자사의 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NPR One이라는 새로운 앱을 선보였는데, 그 이유는 일반 라디오에 익숙한 청취자들이 기존의 NPR앱을 켜서 방송을 듣기까지 3번 이상의 클릭을 해야 하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NPR One은 앱 구동과 함께 바로 방송이 나오고, 그걸 원하지 않으면 채널을 돌리듯, 아니 주파수를 바꾸듯 바꿀 수 있게 했다. 

그렇다면 일반 TV처럼 켜자마자 방송이 나오는 인터페이스를 만든 피콕의 의도 역시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라디오에 익숙한 청취자들에게 행동의 바꾸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기기를 옮기게 하려는 NPR처럼, 케이블TV 시청습관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가져오게 하려는 것이다. 물론 전반적인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는 대세인 넷플릭스를 충실하게 따라가고 있지만, 동시에 NBC만의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NBC가 피콕에서 원하는 것은 NBC 콘텐츠를 다양한 시장에 내놓으려는 것이지, 디즈니나 넷플릭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피콕은 향후 2년 동안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2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넷플릭스는 2020년 한 해에만 173억 달러를 투자한다. (물론 넷플릭스와 달리 오랜 세월 축적한 라이브러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본다면 HBO 맥스 역시 뒤질 게 없다). 피콕은 스트리밍 거인들과의 일대일 경쟁이라는 큰 꿈을 꿀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다른 스트리밍과 달리 무료 모델을 포함시킨 것도, 콘텐츠 제공을 차별화한 것도 계산기를 많이 두드린 흔적이고, NBC의 목표가 소박한 성공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몸을 낮추고 접근한다면 크지는 않아도 자신만의 영역을 견제없이 조용히 확보할 가능성은 있다. 다만 가입자를 단번에 확보할 수 있었던 도쿄 올림픽이 미뤄진 것은 큰 불운이다. 그래도 모바일에 올인했다가 위기에 빠진 퀴비를 보며 위안을 삼을 수는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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