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는 세상에 한 권의 책을 내보내기 전에 여러 차례 읽고 또 읽곤 합니다. 교정작업 과정뿐 아니라 초고를 일견하고 출간을 확정 지은 다음에는 구성과 차례를 만들며, 그리고 디자이너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제목과 부제와 표지글을 고민하며, 그러다가 마감을 앞둔 시점에 이르면 소개글과 기자들에게 보낼 보도자료를 쓰기 위해서도 부분부분 수없이 뜯어보곤 합니다. 그래서 실은, 책이 세상에 짜잔~하고 나오고 나면 다시 그 책을 들춰볼 설레는 감정이 잘 들지 않아요. 마치 너무 오래 연애해 속속들이 알고 나서 더는 두근대지 않는 관계처럼 말이죠. 그런데 간혹, 그런 책이 있어요. 수없이 읽고 세상에 내보내 독자들의 날카로운 품평을 기다리는 중인데, 웬지 다시 들춰보면서 또 새롭게 뜯어보게 되는 거예요. 자꾸만 돈도 시간도 쓰게 만드니(즐거운 의미에서!) 우리끼리는 물귀신 혹은 개미지옥이라고 부르고, 밖으로는 시야를 넓혀주는 책이라고 상찬한답니다.😉

스페이스 (논)픽션』 네트워크


정지돈의 스페이스 (논)픽션』은 수많은 영화, 음악, 소설, 장소 등으로 엮은 그물망을 던집니다. 마티의 편집자들도 여기에 낚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는데요, 각자 낚여 허우적거린 이야기를 각주에 옮겨봅니다. 스페이스 (논)픽션』을 읽으시고 어디에 걸려들었는지 알려주세요.   

문다네움, 르 코르뷔지에, 카렐 타이게, 야나 베란코바

🔈 모베


정지돈 작가는 얼마나 어디까지 읽는 것일까요. 그의 글에서 건축사의 주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지만, 문다네움, 카렐 타이게 등의 이름이 등장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문다네움 프로젝트(1928)은 국내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 편입니다. 이 무렵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관심은 주택 프로젝트에 집중됩니다. 빌라 가르셰, 빌라 사보아 같은 현대 건축의 정전이 생산되던 시기였거든요. 반면 문다네움은 현대건축의 주요 이념과는 꽤 거리가 있고 형태도 과대망상적이고 퇴행적입니다. 중간에 좌초되었기 때문에 주목을 덜 받기도 했고요. (일본의 사정은 좀 다릅니다. 이 시기 마에카와 쿠니오라는 일본인 건축가가 르 코르뷔지에 아틀리에에서 일을 했는데, 그래서인지 문다네움의 형태 모티브가 일본 현대건축에서 종종 나타납니다. 이 프로젝트들 역시 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정지돈 작가는 문다네움을 둘러싼 르 코르뷔지에와 타이게의 논쟁을 야나 베란코바(Jana Bérankova)의 글을 통해 소개합니다. 베란코바는 콜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는 신진 연구자입니다. 아마 정지돈 작가가 한국어로 야나 베란코바란 이름을 처음 타이핑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호기심의 끈이 베란코바로 이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엄청난 독서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덕분에 베란코바에 관심이 생겨 그녀가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펴낸 독립출판물을 구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비싼 환율을 뚫고 말이죠. 


“건축 vs 정치 – 문다네움 어페어”에 소개된 베란코바의 논문은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 http://shiftjournal.org/wp-content/uploads/2014/11/02_Berankova.pdf

씨네필의 세계가 궁금해져서 시작했으나

🦻 팔랑


그의 소설을 읽기 전까지 단 한번도 곰곰이 쳐다본 적이 없는 이미지였죠. 십수 년에 한번 부모, 형제, 또는 절친이 티비를 바꾼다고 동행해 들어간 가전 대리점에서도 저 사진을 정면으로 바라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정지돈 소설에서 영화 홀리 마운틴이 8K로 리마스터링되어서 한 편의 용량이 48기가에 달한다고 하며, '지금은 육만삼천오백피피아이 시대'라는 문장을 보고는, 그래 '8K'는 대체 어디까지 보여준다는 걸까, 하고 저 해상도 광고를 쳐다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렇게까지 정밀하게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를 즐길 만하다는 거지, 싶어서 검색을 해봤어요.


맞습니다. 저는 영화 문외한이에요. 거의 매일 영화를 본다는 작가 지돈 정의 얘기를 읽다가 놀라고 경탄하며 그것은 열정인가 체력인가를 궁금해한 적이 있었죠. 알고 보니 조도로프스키는 씨네필이라면 당연히 알 법한 유명 감독이었어요. 특히 컬트계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2007년에 엘 토포홀리 마운틴이 국내에 정식 개봉되어 내한하기도 했답니다. 드니 빌뇌브가 을 감독하기 한참 전에의 세계관에 완전히 몰입해 16시간짜리 대서사로 촬영할 계획을 세워 음악을 핑크플로이드에게, 미술을 뫼비우스와 H.R. 기거에게 맡기고, 살바도르 달리, 오손 웰즈(응?) 등을 섭외했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무산되었지만요. 아무튼 홀리 마운틴 영상을 보다가 (아직 다 못봤어요) 온 육체와 정신의 기(氣)가 눅진하게 녹아내려버렸고, 천겹 패스추리의 딱 한 겹만큼만 알던 데이빗 린치, 장 피에르 주네, 짐 자무쉬 등의 감독은 '독특한 세계관' 리스트에서 아주 깔끔하게 지워졌습니다. 모든 장면이 이,토,록,이,나 기이할 수 있다니. 이 영화가 선정적이어서 문민 정부 이전엔 불법 복제판으로 은밀히 거래되었다는데 당시에 이 비디오를 어렵사리 구해 몰래 집으로 들고 가 숨죽이며 틀었다가 아뿔싸 낭패를 경험했을 청소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어졌습니다. 하지만 종교, 자본주의, 미디어, 신념 들이 매순간 비틀어지고 풍자되어 정신줄 부여 잡고 보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와중에도 어떻게 끝나는지가 몹시 궁금해져 잠깐 멈출 순 있어도 완전히 접기는 어려운 영화라는 측면에서 분야가 무엇이든 간에 중요한 영화가 필시 맞는 것 같긴 합니다. 이상 영화 문외한이었습니다!

스트… 뭐? 스트루… 가츠키? 

🌱죽순


“구소련의 SF 소설가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전설적인 소설 『노변의 피크닉』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구역’에 ‘물건’을 가지러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 『스페이스 (논)픽션』 26쪽


SF에는 영 취미가 없던 제가 SF 애호가 친구의 영업으로 슬금슬금 빠져들고 있던 차, 정지돈 작가의 글에서 『노변의 피크닉』을 발견했습니다. 감자칩을 집어 먹듯 무심한 듯 맛있게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왔죠. 전설적인 소설이 된 문학적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미지, 즉 알 수 없는 것들을 조립해 있음 직한 것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구나!


1950년대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스트루가츠키 형제는 『신이 되기는 어렵다』,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젠장!) 등의 작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다른 형식으로는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소비에트 생활에 대한 비판을 표명하기 위해 SF라는 형식을 사용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들의 작품은 체제 전복적인 면이 다분합니다. 『노변의 피크닉』은 조금 결이 다른 것 같지만요.


엉망진창인 현실에서 나은 것을 상상할 있게 해주는미지 탐했던 그들의 소설을, 저는 동네서점에서 만날 때마다 권씩 구매해 읽고 있어요. 스트루가츠키 형제를 만나게 해준 정지돈 작가와 현대문학 편집부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출근길에 바흐, 엘레니 카라인드루, 크라프트베르크, 루이지 노노, 배리 매닐로우를 들었다

🧼퐁퐁


“원래 브릿팝을 즐겨 듣던 나는 자유로에서 바흐와 친해졌고 엘레니 카라인드루나 크라프트베르크, 루이지 노노와 배리 매닐로우를 들었다(아무거나 막 들었다는 얘기다). 직장 선배는 퇴근길에 윤종신의 「자유로 선셋」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내 생각에 자유로에는 크라프트베르크의 「더 맨–머신」이 잘 어울린다. 아우토반은 아니지만 어쨌건 일하러 가는 길이니까. 우리에겐 노동요가 필요하니까.” - 『스페이스 (논)픽션』 110쪽


루이지 노노: 「불관용 1960」(Intolleranza 1960)을 듣다 잠든 날 밤 꿈을 꿨습니다. 캐시 박 홍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 영원히 끊지 않는 꿈... 갑자기 왜 이런 꿈을 꿨는지 모르겠어요. 현대음악이란 모름지기 낯설고 날선 불협화음으로 잊고 지냈던 어떤 감각을 깨우는 것인가 생각했죠. 「유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그리움」을 들으며 출근한 날, 현대음악을 공부한 친구에게 루이지 노노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대답을 거부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돌이켜보면 저는 친구가 작곡한 곡을 들을 때마다 설명과 의미를 요구했던 것 같아요. 친구는 공손하지 않은 어조로 “말로 할 수 있다면 작품을 만들지 않았겠죠.”(173쪽) 정도의 대답을 했고요.

오늘 출근길에 들은 루이지 노노의 앨범은 「Como una ola de fuerza y luz」


바흐: 노동요로 듣는 바흐, 실패할 일이 없는 것 같아요. 정지돈 작가는 어떤 곡을 들었을까요. 저는 올해 비킹구르 올라프손이 연주한 바흐를 자주 들었습니다. 아침부터 땀 주르륵 흘리면서 출근 준비하다가 그의 연주를 들으면 순식간에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죠.


엘레니 카라인드루: 출근길에 듣다가 그대로 사무실을 지나쳐 집으로, 아니 어디론가 가고 싶어졌습니다. 순식간에 노동의 의지를 불식시키는 음악. 그렇다면 좋은 노동요인가? 「안개 속의 풍경」


크라프트베르크: 약불로 몸을 달이고 싶을 때 크라프트베르크를 듣습니다(워밍업에 시간이 걸리는 편). 얼마 전에 처음으로 아우토반을 탔는데 그날 마음이 조금 안정되자마자 「아우토반」「더 맨-머신」을 틀었어요. 출장 가는 길에 듣는 노동요로 탁월했죠. 한국의 고속도로 풍경은 아파트이거나 산이거나 공장이거나 교회 수련원이거나. 미래에 대한 의지는 없어 보이는, 어떤 작위를 하다 만 듯한 고속도로 풍경에서 음악만이 참 기쁨이었습니다.


배리 매닐로우: 「when october goes」 시월이니까요.

도서관 생생 정보통, 『도서관은 살아 있다곧 출간

🌱죽순


동네 도서관에서는 짠하고 재미있는 사건(?)이 매일 같이 벌어집니다. 『도서관은 살아 있다』 안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도서관여행자 님의 꼬리를 잡고 한 장면씩 만나볼까요?


한 사서가 전화로 유니콘에 대해 질문하는 이용자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답한다. “유니콘이 상상의 동물인 건 알고 계시죠? 12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 비아냥거리는 말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를 배려 있게 전달한 것이다. 사서는 유니콘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지구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다. 아니 믿어야만 한다.

 ━ 사서는 검색 엔진의 원조


글자 속공간을 칠하는 이용자는 또 왜 그리 많은지. 대공황 시기에 뉴욕 브루클린 공공도서관에서는 ‘동그라미 채우는 사람들’(o-fillers)의 낙서를 지우는 직원을 별도로 채용했단다.

 ━ 훼손된 책을 바라보며


공공도서관은 어린이, 청년, 성인, 노인이 모두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 공간이다. 책만 빌려 읽는 곳이 아니라 타인과 스치고 마주치며 다른 삶의 면면을 곁눈질로 보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나는 어린이 도서관을 따로 짓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 도서관에서 나이듦을 즐기다


두 번째 직장이었던 지역 거점 도서관엔 어린이 열람실이 시끄럽다며 매번 불편을 호소하던 학생이 있었다. 오래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정숙실이 따로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는데 관장이 뜻밖의 해결법을 찾아냈다. 귀마개!

 ━ 시끄러운 도서관 만들기


도서관마다 규정이 다르긴 하지만 내가 일했던 도서관은 종교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크리스마스 장식조차 금지했다.

“저기 창문 좀 봐. 저번에 걸스카우트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장식 봉사하러 왔다가 창문에 눈사람 하고 펭귄만 잔뜩 그리고 갔어. 크리스마스트리도 못 그리게 하니까.”

 ━ 도서관이 이제 쓰지 않는 말들


연체 도서 수거에 공권력이 동원되기도 했다. 1961년 뉴저지주 이스트오렌지에서는 장기 연체자 6명이 새벽에 경찰서로 잡혀간 사건이 있었다.

 ━ 스티븐 킹도 무서워한 도서관 경찰


💬📢  차례 미리보기

들어가며

사서는 검색 엔진의 원조

청구번호에 숨겨진 사정

사서가 읽지 않은 법에 대해 말하는

훼손된 책을 바라보며

장서폐기의 괴로움

소외된 책들을 위하여

도서관, , , 생각을 지지하며

도서관에서 나이 듦을 즐기다

없는 사람들의 안식처

시끄러운 도서관 만들기

도서관 건축가에게

20세기 최고 도서관 덕후의

도서관이 이제 쓰지 않는 말들

검열이 아니라 선정을

한국인 사서의 기쁨과 슬픔

산만한 정보 사냥꾼의 디지털 취미 생활

 - 당신의 즐겨찾기에 담아야 디지털 도서관

아날로그 도서관의 반격

도서대출카드의 낭만과 낭패

스티븐 킹도 무서워한 도서관 경찰

도서관 고양이의 존재감

맥주를 기록하는 도서관

악기들의 도서관

고대 도서관 유적지에서 발견한 평행이론

도서관 여행의 이유

 - 당신의 여행 계획에 넣어야 도서관

나가며

도서관여행자의 서재

 

💥 부록 같지 않은 알찬 부록

일단 들어가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흥미진진한 디지털 도서관 15곳 추천!

한국, 미국, 독일, 멕시코 등 도서관 여행지 48곳 추천!

도서관과 책에 관한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여행자의 서재 대공개!


10월 12일부터 10월 14일까지 오픈채팅방에서 『스페이스 (논)픽션』을 함께 읽는 북클럽을 합니다.


『스페이스 (논)픽션』은 독자를 책 밖으로 이끄는 책이에요. 검색창을 열고 영화, 음악, 미술, 건축, 문학 등 작가가 언급한 것들을 빠져들 듯 찾아보게 되거든요. 책에는 세 개의 게이트가 있는데, 각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편집자와 함께 책 안으로 또 밖으로 들락날락하며 사흘간 함께 읽어요.


마지막 날엔 정지돈 작가와 온라인 북토크, 아니 북채팅을 할 거예요. 뉴욕에 잠시 머물고 있는 작가가 뉴욕의 공간/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예정입니다.

10월 6일부터 13일까지 “대한민국 건축주간 2022”이 열립니다. 이번 행사는 용산공원 부분개방부지 내에 있는 구 미군장교숙소에서 개최됩니다. 올해의 건축상, 학생작품전 같은 전시, 어린이건축학교, 영화상영, 강연회, 투어 등 다양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건축 책의 명가(?) 마티는 화제의 건축 책을 저술한 저자를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아키북토크”에 참여합니다. 10월 12일 수요일 4시부터 행사장 내 어린이도서관에서 박인석 명지대 교수님이 최근에 출간한 『건축 생산 역사』에 대해 강연합니다. 2500년 서양 건축사의 주요 분기점을 해부하는 박인석 교수님의 이야기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속속 개방될 용산공원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요. 

이번 주 마티의 각주 어떠셨나요?
좋았어요🙂               아쉬워요🤔
책 좋아하는 친구에게
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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