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dia's Note
‘나디아의 수요일’입니다. 오늘은 혜선이 쓴 단편소설 ‘방랑자 환상곡’ 1부를 보내드립니다. 한 피아니스트를 향해 쏟았던 무조건적인 사랑과 그 실체를 대면한 후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오늘 레터를 마지막으로 ‘나디아의 수요일’은 새 단장을 하려고 합니다. 다다음주 수요일,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요! 
방랑자 환상곡(1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그때 나는 무작정 사랑을 쏟아낼,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2년 내내 상위권을 유지하던 성적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갑자기 뚝 떨어졌다. 그런데 나를 숨 막히게 했던 건 떨어진 성적이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등급이 떨어질 수 있어? 뭐가 부족한 거야?”
“고3이 되니까 애들이 족집게 과외를 많이 해요.”
“휴…”
 
실망하던 어머니의 눈. 어머니의 가라앉은 어깨를 보자 콧등이 시큰했다. 그간 어머니가 나에게 쥐여 준 사랑의 실체에 대한 의심이 덮쳤다. 자존감이 낮아지면 제일 먼저 사랑을 의심하게 된다. 그래서 아마 나는 그때 결심했던 것 같다.
 
조건 없는 사랑, 대책 없는 사랑,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살아가다 한 번은 꼭 해보겠다고 홀로 맹세한 것이다.
 
“어, 뭐야…”
 
자전거 페달을 멈추고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성큼 들어왔다. 새벽 1시,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따릉이를 타고 광진교를 넘어가던 중이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들리는 슈베르트 즉흥곡 3번. 랜덤으로 설정한 플레이리스트에서 의외의 클래식이 흘러나와 처음엔 당황하다가 넋 놓고 음악을 감상했다. 
 
첫 음이 울린 순간부터 일렁이는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 음악은 여름밤을 닮아 있었다. 수분을 잔뜩 품은, 부푼 마음 같았다. 늦은 밤공기를 들이마시니 속이 뻥 뚫렸다. 당시 나는 클래식에 무지했기에 그저 슈베르트에 푹 빠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곡을 친 사람이 서항원인 건 좀 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서항원과 함께했다. 나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서항원이 발매한 피아노 음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된 하루가 끝나고 침대에 누워서 그의 유튜브를 보다가 스르륵 잠드는 게 패턴이었다. 그는 종종 꿈에도 찾아왔다. 꿈속에서 우리는 함께 피아노를 치기도 했고, 예술의전당 근처를 산책하기도 했고, 같이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 일어나면 괜히 부끄러워 뺨 주위가 달아올랐다.
 
“엄마가 주말에 식당 한 군데 더 나가기로 했어. 너 성적 제일 많이 떨어진 영어 과외를 받아야 할 것 같아. 엄마가 네 친구 영아에게 연락해 그 족집게 과외 선생님 약속 잡아 놨거든. 목요일부터 저녁 8시 수업이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우리 집으로 오실 거야.”
 
하락했던 성적은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홀로 키운 딸이 서울에 있는 번듯한 대학에 가는 걸 꼭 보고 싶어 했다. 아니, 딴 여자와 살림을 차린, 바람난 아버지에게 당신 없이도 자식 잘 키웠다는 걸 증명해 내고 싶어 했다. 꾸역꾸역 1년이 지나고, 나는 어찌어찌 꽤 괜찮은 학교의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어머니는 여자도 기술을 익혀야 평생 안정적으로 산다며 간호학과 진학을 기뻐했다.
 
*
 
대학에 입학한 나는 음악대학 근처를 자주 기웃거렸다. 건물 틈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이 좋았다. 어릴 때 남들은 짧게라도 한 번쯤은 다 다녀본다는 그 흔한 피아노 학원에 나는 가본 적이 없었다. 공부 시키느라 급급했던 어머니는 피아노 학원에 갈 돈으로 수학 학원을 하나 더 다니는 것이 이득이라고 했다.
 
중학교 음악 수업 시간 때 수행 평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친구들이 내심 부러웠다. 기본적인 계이름도 익히지 못했던 나는 리코더로 시험을 준비하는 것조차 버거웠으니까.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과외로 번 돈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처음엔 동네 피아노 학원에 다니다가, 도통 실력이 늘지를 않아서 같은 학교의 음악대학에 다니는 학생에게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나랑 동갑인 그 학생의 이름은 박사라였다. 사라와 일주일에 두 번씩 음악대학 연습실에서 만나서 레슨을 받았다. 사라는 예쁘고 친절했다. 이상하게 음악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은 다들 기품 있어 보였다. 교양 수업 때도 음악대학에 다니는 애들을 보면 범접할 수 없는 오라 같은 게 느껴졌다. 매일 곱게 화장을 하고, 예쁜 구두를 신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몰려 있는 음악대학. 아마 나 말고 다른 학생들도 이렇게 생각할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서로의 시간을 쏟는다는 건, 깊어진다는 뜻이다. 나와 사라의 인연은 4년 동안 이어졌고, 우리는 적당히 가까워졌다. 사라는 음악대학에서 열리는 음악회가 있으면 냉큼 초대권을 주었다. 나는 고맙다며 다음 레슨 때 조각 케이크를 사다 주었다. 이러한 물물 교환이 몇 번 이뤄진 후 우리는 학교 앞 호프집에서 치킨을 사 먹기도 했고, 서로에게 취약한 교양 과목의 과제를 도와주기도 했다. 예컨대 내가 수강했던 ‘서양 음악의 이해’ 과제를 사라가 책임져줬고, 사라가 어려워하던 ‘통계학 개론’ 수업 과제를 내가 해결해 주는 식이었다.
 
“아윤아. 너 소개팅 안 해 볼래? 내 남자친구 동아리 선배라는데.”
“아 사라야. 나 너무 바빠. 이번 주에 애들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계속 보충 수업해야 돼.”
 
사라는 종종 자신의 연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라는 애인이 몇 번 바뀌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체대생과 사귀더니, 2, 3학년 때는 음대생과 만났다. 4학년 때는 근처 학교의 공대생과 만남을 이어갔다. 반면 나는 그 흔한 소개팅 한 번 하지 않고 청춘을 과외에 쏟고 있었다. 피아노 레슨 외에도 클래식 공연을 자주 보러 다니려면 자금이 넉넉히 필요했다. 피아니스트 서항원이 하는 독주, 협주, 실내악까지 웬만한 공연은 다 관람했다. 지방 공연이 있으면 그의 다른 팬들과 함께 고속버스를 대절해 보러 다녔다. 국내 공연은 티켓팅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감당할 만했다. 문제는 해외 공연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공연이 있으면 한국보다는 비교적 티켓을 구하기 쉬웠지만, 항공료와 숙박료가 만만치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과외를 늘렸고, 그의 뉴욕 필하모닉과 베를린 필하모닉 데뷔 무대를 모두 실연으로 감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학과 성적은 점점 떨어져갔지만, 개의치 않았다.
 
4학년이 됐을 때, 나는 간호사가 될 인물이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감각할 수 있었다. 학과 수업은 따라가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실습을 나갈 때마다 적성에 안 맞아 구역질이 났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사라도 매한가지인 듯했다. 자신은 전문 연주자가 될 만큼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며, 부모님이 그렇게 바라는 임용고시를 준비하기에는 공부가 너무 싫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래서 너는 계획이 뭐야? 이제 졸업까지 반년도 안 남았는데.”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우리는 캠퍼스 벤치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함께 미래에 대해 고민을 나눴다. 사라는 졸업 연주가 끝나면 클래식 기획사에서 인턴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는 선배가 유명 기획사의 홍보 팀장이라며, 만약 내가 원하면 두 자리 정도는 부탁할 수 있다고 했다.
 
“회사 이름이 뭐라고?”
“케이 뮤직 컴퍼니.”
“뭐?”
 
기획사의 이름을 들은 나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 기획사는 바로 서항원을 10대 때부터 담당하고 있던 소속사였다. 서항원을 졸졸 따라다니는 동안 숱하게 문의 메일을 넣었던 바로 그 기획사였던 것이다.
 
심장이 뛰었다.
 
*
 
“너 진짜 왜 이러니, 그런 데 취직하라고 엄마가 젊었을 때부터 그렇게 고생하면서 너 공부 시킨 줄 알아?”
 
어머니는 화를 냈다.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안정적인 간호사의 길을 쉬이 포기하고, 당신은 한평생 들어보지도 못했던 클래식 음악계에 몸을 담겠다는 딸이 이해가 되지 않을 만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어머니에게 끌려다니는 딸이 되고 싶진 않았다.
 
대학 졸업식을 마친 다음 날, 나는 사라와 함께 첫 출근을 했다. 전날 내린 폭설로 인해 길가에 살얼음이 서린 추운 겨울날이었다. 손등을 비비며 들어간 서초동에 위치한 30평대 사무실에는 여섯 명의 직원이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팀장은 우리에게 계약서를 건넸다. 1년 계약직, 월급은 180만 원. 세금을 떼면 대략 160만 원 정도 월급 통장에 찍힐 것 같았다.
 
대학 때 과외 하면서 벌던 돈보다 적어서 조금 놀랐다.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어머니와 나는 광진구 집을 정리하고, 경기도 시흥으로 이사를 갔다. 시흥은 광진구보다 집값이 저렴했고, 남은 돈으로 어머니는 나의 학자금을 지원해 줬다. 시흥에서 서초까지 매일 통근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회사 근처에 작은 월세방을 구해 둔 상황이었다. 월세와 생활비를 모두 감당하려면 주말이나 퇴근 후에도 과외를 계속해야 할 듯했다.
 
“공연 특성상 야근과 주말 근무가 잦으니 당분간은 시간을 여유 있게 비워 두는 게 좋을 거예요.”
 
팀장의 단호한 말에 잠시 눈앞이 어지러웠다. 옆에 앉은 사라의 멍한 표정을 보니 역시나 머리가 지끈거리는 모양이었다.
 
“사라야. 회사에서 내가 서항원 팬이라는 건 비밀로 해줘. 좀 그래.”
“무슨 말인지 이해해. 걱정 마.”
 
회사에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하는 한 달 동안 서항원은 코빼기도 볼 수 없었지만, 다른 음악가들은 사무실을 자주 들락날락했다. 한 번은 점심시간 때 사라가 팀장에게 서항원 피아니스트는 회사에 자주 오냐고 슬쩍 물었다. 사라는 내가 오매불망 서항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팀장은 서항원이 상반기 동안에는 유럽 투어를 할 예정이어서, 여름이나 되어야지 귀국할 것 같다고 했다. 하반기 회사 일정을 살펴보니, 서항원의 전국 투어 리사이틀이 잡혀 있었다. 이 회사에서 고작 1년 일할 예정인데, 그중 반년이나 서항원을 만날 수 없다는 건 조금 울적한 일이었다.
 
*
 
“사라야. 나 너무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아….”
“아윤아… 나 어제 사실 회식 끝나고 밤에 응급실 가서 수액 맞았어… 너무 피곤해.”
“부모님 놀라셨겠다….”
“부모님도 부모님인데, 애인이 엄청 화났어. 연락이 잘 안된다고… 진짜 밥 먹는 시간 빼곤 다 바쁜데….”
“밥 먹을 때도 선배들 눈치 보느라 휴대폰 만지기도 어렵고.”
 
첫 직장 생활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회사 대표는 직원들이 주말에 일하는 걸 당연시 여겼다. 평일엔 보통 밤 12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공연이 보통 저녁 10시쯤 끝나는데, 이후에는 공연장 뒷정리를 하고, 근처 치킨집에 가서 음악가들과 함께 뒤풀이를 해야 했다. 다음날이 되면 선배들은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때쯤 출근했지만, 나와 사라는 오전 9시에 맞춰서 회사에 가야 했다.
 
기획사에 소속된 음악가들 중 절반은 다정했고, 절반은 오만했다. 고생이 많다며 사무실에 올 때마다 두 손 가득 간식을 들고 오는 음악가도 있었고, 저녁으로 준비한 샌드위치에 할라피뇨가 빠져 있다면서 나에게 온갖 짜증을 내는 음악가도 있었다. 음악가들에게 한소리 들으면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울적했다. 그러면 회사 선배들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도 걔가 서항원보다 나아. 그니까 힘내렴.”
 
*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8월은 성수기였다. 유럽 주요 공연장이 시즌을 마치고 휴가에 들어가면서, 국내외 음악가들 다수가 아시아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국, 일본, 중국 투어를 한번에 해결하는 음악가들 백업하느라 밥 먹을 시간도 없었고, 국내 공연도 어제는 광주, 오늘은 부산, 내일은 통영 이런 식이었다. 회사에서 가장 하급 계층인 나와 사라는 온갖 궂은일을 다 맡았다. 원래도 마른 체형이었던 사라가 점점 더 홀쭉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일이 고됐다.
 
“아윤아. 나 아무래도 8월까지만 일하고 그만둔다고 해야겠어.”
“너무 힘들어?”
“이 돈 받고 이렇게 일하는 거 부모님이 너무 속상해하시고… 나도 체력이 영 안 되겠네.”
 
나 역시 다를 건 없었다. 그나마 독립을 해서 어머니의 심한 잔소리는 피할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도 내가 클래식 음악계 중심에 있다는 그 느낌이 좋아서, 연봉만 조금 높아진다면 계속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 기획사에선 계약된 1년만 채우고 조금 더 안정적인 국공립 극장으로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아, 맞다. 아윤아. 서항원 한국 들어왔대. 내일 회사에 온다는데? 아까 박 선배가 통화하는 내용 들었어.”
 
*
 
몇 번이고 이 순간을 머릿속에 상상했지만, 진짜 눈앞에 펼쳐지니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저 멀리서만 바라봤던 서항원이 내 앞에서 치킨 다리를 뜯고 있었다. 몇 주 동안 이어졌던 지방 투어를 끝내고, 서초동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그곳 한가운데에 서항원이 있었다. 팀장은 나와 사라에게 인사를 나누라고 지시했다. 그에게 가까이 가서 내 이름이 적힌 명함을 건넸다.
 
“아니, 둘 다 엄청 예쁜 나이에 왜 이런 곳에서 고생하고 계세요!”
 
말갛게 웃는 서항원을 보니 지난 반 년 간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서항원은 퇴근하려는 나와 사라에게 저녁을 사준다고 했다. 그는 외국에 오래 있으면 한국 치킨이 제일 먹고 싶다며, 우리를 데리고 회사 근처 치킨집으로 향했다. 사라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피곤해 보였지만, 나를 위해서 기꺼이 함께한다는 느낌이 들어 고마웠다.
 
“그래서 두 분은 대학 동문인 거예요?”
“네. 제가 사라에게 피아노 레슨을 한 4년 동안 받았어요. 취미로.”
“아, 사라 씨는 피아노 전공했나 봐요?”
“맞아요.”
“연세대 나왔다고 했나? 어느 교수님 제자였어요?”
“한 교수님이요.”
“에? 수란 누나 제자구나! 나 어제도 수란 누나랑 같이 공연했는데! 전화해 볼까요?”
“네? 아니요! 하지 마세요! 교수님은 저 여기에서 일하는 지도 몰라요.”
“아, 왜요?”
“아… 교수님이 미국 유학 준비하라고 권유해 주셨는데, 제가 너무 망설여서.. 아무튼 조금 그런 이유가 있어요. 한 교수님에게 저 여기서 만났다는 얘기도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그럴게요.”
 
공통점이 있는 둘의 대화는 자연스레 이어졌다. 사실 서항원이 질문하면, 사라가 대답하는 식이었다. 사라는 대화를 하며 자신의 휴대폰 시계를 힐끔거렸다. 사라가 너무 지쳐 보여서 얼른 자리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 이만 들어가 봐도 될까요? 사실 제가 집이 시흥이어서 지금 출발 안 하면 차가 끊기거든요.”
 
나는 에둘러 변명 거리를 찾았다. 사라는 당황한 듯 잠시 내 눈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맙다며 미소를 지었다.
 
“먼저 나가 있을래요? 제가 계산하고 나갈게요.”
 
11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각이었다. 나 역시 피로한 건 마찬가지였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에서 나온 서항원은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우리에게 3만 원씩 쥐여줬다.
 
“피곤해 보이는데 두 분 다 택시 타고 들어가세요.”
 
사실 걸어가도 되는 거리에 살고 있어서, 택시비를 받기가 민망했다. 이미 시흥에 산다고 얘기해버려서 돌려주기도 모호했다. 사라는 눈을 껌뻑이며 돈을 바라보다가, 서항원에게 다시 건넸다.
 
“저 여기서 가까운데 살아서 택시비 괜찮아요.”
“어디 사는데요?”
“양재동이요. 3호선 타면 금방이에요. 아직 지하철 안 끊겨서 괜찮습니다.”
“와. 나도 양재동 사는데, 제 차 타고 같이 가요. 대리 불렀거든요.”
“네? 코앞인데 굳이…”
“자꾸 거절하면 저 조금 민망합니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라가 신경 쓰여서 귓가에 괜찮냐고 속삭였다. 애인에게 전화를 하면서 가려고 했는데 곤란하게 됐다며 사라는 머리를 긁적였다. 길가에서 택시를 잡은 서항원은 나에게 차에 타라고 손짓했다.
 
“조심히 들어가요. 아윤 씨. 다음에 또 만나요.”
“네… 들어가 보겠습니다. 사라 좀 잘 부탁드릴게요.”
 
택시에 앉아서 창밖으로 사라를 바라봤다. 사라는 괜찮다며 담백한 웃음을 지었다. 도착하면 연락하라는 손 모양을 하자 사라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사라를 볼 수 없었다. 🎹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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