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작가의 생애가 담긴 영화나 전시를 보기 어려워졌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탄생과 죽음에 좀 더 깊게 이입이 되어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시작과 전성기를 보고 엄청난 도파민이 나오는 것을 느끼다가 이내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곧 내 죽음도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서 그런 듯하다. 


인간으로 산 지 30년이 넘었고, 돈을 버는 창작자로 산 지 1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아직 시작하는 단계라는 것을 실감한다. 수많은 전기 영화를 보아도 그렇고 전시를 보아도 그렇지만 보통 작가의 전성기가 주로 40대부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30대에도 체력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하는데 40대부터 전성기가 온다니….. 물론 길게 보고 계획을 하면 좋겠지만, 몇몇 인간이 100세를 산다고 해서 내 인생도 100세 언저리에 끝날 것이라는 확신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림 작업에 점점 대단한 의미 부여를 해오다가 최근에는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서 그림을 아예 그리지 않을 직업을 알아보기도 했다. 손을 쓰는 것은 여전히 좋아하니까 미장을 배워볼까, 도배를 해볼까 하는 식의 다른 일들을 알아보았다. 혼자서 판단하고 작업하는 일이 점점 괴롭다 느끼는 와중에 타인의 평가를 피할 수 없는 위치라서 그렇다 결론 내렸다.


전업 작가의 삶은 생각보다 복합적이다. 완전히 고립될 수도 없고 완전히 열려있을 수도 없다. 사람들을 만나서 소통하면서 해야 하는 일을 해내고 나면 혼자서 고립되는 시간이 있어야 온전히 작업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는 게 좀 어색한 이유도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장사꾼에 더 가깝다고 늘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내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를 때가 오는데 그럴 때 주로 작가의 생애를 다룬 영화를 본다. 최근에 보고 기억에 남아있는 영화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삶을 다룬 영화였다. <엔니오:더 마에스트로>라는 제목의 영화는 주로 영화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의 생과 작업을 보여주는 영화다. 일이 잘 들어오지 않아 돈을 벌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과 상업적인 음악을 만든다는 이유로 동창들에게 은근한 무시를 당해 스트레스를 받던 그의 모습을 보며 고민과 해결 방식을 내 삶에도 적용해 보려 노력해 보기도 한다. 제법 긴 세월을 창작하며 산 사람들의 삶을 보며 내 삶은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을지 가늠해 본다. 


사실 그림으로 대의와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개인의 창작 욕구 해소가 1순위였던 시절을 지나 사람들과 만나 또다른 화학 작용으로 무언가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지금은 그림으로 나름의 대의와 명분을 만들어 사명감을 갖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의 나의 삶은 다른 국면을 맞이 한 듯하다. 그래서 더 많이 사람들을 만나고 작용하려고 노력한다. 안에 갇혀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소통해서 나오는 좋은 그림이 나오도록 말이다. 


9월에는 짧은 클래스를 열어 사람들과 만나 자신의 얼굴을 그리고 술을 마시고 대화하는 시간을 보냈다. 요청을 받아 열어본 클래스였지만 참여한 사람들도 만족하고 나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다. 손에 익지 않은 재료로 과감하게 그릴 수 있는 시기는 처음 시작할 때밖에 없다. 처음 시작했음에도 3주를 지나며 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직접 작업을 하지 않아도 다른 종류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 고립되어 그림 그리는 삶보다 사람들과 만나며 예상하지 못한 답을 찾는 그 과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그림을 그린지 20년이되어가니 이제야 슬슬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