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대표 정일용-


  칼럼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게 너무 오랜만이어서 쉬이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좀 편안하게 써볼 생각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복지, 사람, 공동체 등등.

  지금 현재, 제가 현장에서 씨름하며 느끼는 가장 큰 고민은 한 존재의 ‘온전한 치유’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늘에 쌓여있는 눈덩이들이 녹지 않듯이, 저 마다의 상처와 원한, 외로움으로 둘러 쌓인 사람들을 온전함으로 이끄는 것은 마치 낙타를 바늘귀로 밀어 넣는 것 같은 느낌이지요.

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제게 있어 ‘사회복지’는 인간의 ‘온전성’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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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틱낫한 스님이 이런 말을 했지요. “우리 안에는 저마다 울고 있는 4살짜리 아이가 있다.” 처마 밑에서 홀로 울고 있는 4살짜리 아이가 우리 안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 받지 못한 아이, 불안한 아이, 무언가에 거절당한 아이, 그 아이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이나 영성수련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지점이 바로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있는 ‘우는 아이’입니다. 평소에는 얌전한 내속의 아이는 어떠한 위기 상황이나 급박한 순간에서는 뛰어나와 스스로를 보호한다고 해요. 그게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고, 자주 거짓말을 하거나, 끊임없이 인정받으려는 욕구로 나오기도 합니다.


  저에게도 그러한 우는 아이를 확인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일로 기억되는데요. 다치지도 않은 팔에 깁스를 해서 주위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관심 받고, 이해 받고, 사랑받고 싶었던 내속의 아이가 시켰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일은 지금도 알게 모르게 계속 되고 있겠지요. 사회복지의 역할도 그런 것이잖아요?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결핍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까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다분히 수직적인 형태로 이루어져요. 우리만 해도 그렇지 않나요?. 사회복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분히 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나누는 것(분리)에 익숙하고 무언가 결핍된 사람을 쉬이 규정하고 분류합니다. 일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물어봅시다. “평생 받기만 하는 사람들의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질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받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는 당신은 그들의 필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관계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한 관계가 아니라고 봅니다.


  제가 시골의 어느 마을에 있을 때 한 알콜릭 어머님을 깊게 만난 일이 있었는데요. 그분은 비록 술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었지만 신앙이 독실해 보였고, 그래서 저는 그분의 신앙이 좀 더 확고해진다면 지금의 상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자주 내려가서 상담하고 기도하며 격려해주었지요. 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신앙적 차원의 결합도 중요했지만 그것과 함께 전문적인 치료도 함께 이루어졌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와 일상을 함께하는 마을 이웃들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했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가지고 현재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만 늘 버겁습니다. 수혜자에 대한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방식이 결국 보람과 충만함보다는 아쉬움의 감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한 사람의 ‘온전성’이라는 것이 어떠한 결핍이 채워지거나 필요한 것들이 지원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총체적인 관계가 건강해져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 한 개인이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결핍충족이나 회복, 성장이라는 개인의 문제 뿐 아니라 그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든 관계가 건강하게 가동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이 움직여야 한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일하는 곳이 시민단체이건, 복지관이건, 시설이건 간에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공동체로 묶어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개별의 섬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마음을 열고 열정을 나누며 새로운 역동들이 꿈틀대는 관계 속에서 사람은 살아야 합니다. 저도 제 주위 사람들과 그렇게 온전한 관계로 살고 싶어요.


  이제 코로나19의 구속이 엷어지고 다양한 만남의 장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일방적인 수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품은 존재로 보아주세요. 우리의 활동이 귀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따듯한 공동체로 이어주고, 좋은 이웃으로 만나게 하는 건강한 고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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