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ghtEDGE 
주목받은 테크 & 스타트업 투자 뉴스를 한 걸음 더 들어가봅니다.
금주의 인사이트 뉴스
  
전형적인 구독 소프트웨어 서비스 (SaaS) 기업 가치 평가 방식이 적용된 피그마의 28조 원 기업가치를 파헤쳐보자

어도비가 28조 원의 기업가치로 피그마를 인수하기로 발표한 지 벌써 3주가 흘렀지만 회사의 주가는 여전히 맥을 못추고 있습니다. 물론 9월 15일 인수 발표 이후 글로벌 거시 경제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주식시장이 약세인 이유도 있지만, 인수 발표 이후 어도비의 주가가 10거래일 중 무려 9거래일동안 하락을 기록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회사가 아직까지는 성난 주주들의 마음을 돌려세우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어도비의 피그마 인수 발표 이후 사람들의 분석은 크게 두 방향으로 수렴되는 것 같습니다. 첫째, 어도비의 주식에 투자하는 관점에서 이번 주가 급락이 저점 매수의 기회일지, 두번째로는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피그마의 위대함과 왜 어도비가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서라도 인수에 나설 수 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말이죠.


그래도 의문은 남습니다. 모든 것에는 가격이 존재하는 법인데 아무리 제품이 좋고 회사의 장래에 위협적인 존재가 된다고 하더라도 매출의 50배를 지불하기 위한 근거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어도비가 저평가되었을지, 아니면 피그마의 28조 원 기업가치가 고평가되었는지는 시간이 답을 해줄 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어도비에 포진한 쟁쟁한 인수합병 전문가들과 이사회 구성원들은 어떻게 '매출의 50배란 숫자를 이해하였고 이를 정당화할 수 있었는지'입니다.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 월가와 실리콘밸리를 관통하는 거대한 산업 SaaS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미국의 월가, 벤처캐피탈, PE가 한결같이 사랑하는 산업 - SaaS

SaaS는 구독형 소프트웨어를 말합니다. 예전에 CD로 구매하던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프로그램이 일반 소프트웨어 상품이었다면, 이제 1년 사용료를 내고 다운받아 사용하는 오피스 365는 대표적인 구독형 소프트웨어, Software-as-a-Service ("SaaS") 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줌, 슬랙, 노션, 재피어 등은 모두 대표적인 소비자용 구독형 소프트웨어입니다.

미국의 SaaS 산업은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 투자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분야입니다. 또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운용 자산을 늘려가고 있는 PE들 또한 소프트웨어 기업 인수합병에 집중하는 Thoma Bravo, Vista Equity, Francisco Partners와 같은 펀드들입니다. SaaS 기업에만 투자하는 헤지펀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죠. 미국 테크 산업의 핵심이 SaaS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소프트웨어 분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로쓰 벤처 전문 운용사인 LeadEdge Capital은 SaaS 기업이 매력적인 이유로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1. 연금처럼 꾸준한 현금흐름

SaaS는 보험상품처럼 꾸준히 현금이 유입되는 특징을 보이면서 고객들로부터 다양한 추가 매출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사업
" SaaS companies acquire customers that look like life insurance policies, whereby each new customer presents a long-term recurring revenue opportunity."

2. 고객 별 기대 매출이 높음

고객 이탈율이 낮은 반면 재구매 빈도가 높아 고객 당 창출할 수 있는 가치가 높은 고객 중심 서비스 사업 
"SaaS companies tend to have low churn and high renewal rates, resulting in high customer lifetime values."

3. 높은 수익성

소프트웨어 산업의 특성상 고정비 투자가 많지 않아 80% 이상의 매출총이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
"As the customer base matures and the company reaches scale, most SaaS companies should achieve gross margins in the 75%–80% range."
SaaS가 보험 연금 상품처럼 금융사와 유사한 현금흐름을 보여준다는 점은 SaaS 기업의 가치 평가가 일반적인 DCF나 PER를 적용한 제조 및 서비스업 기업가치평가와는 다른 관점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소프트웨어는 기본적으로 재구매율과 마진율이 높은 사업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존고객과 신규고객의 유입 및 추가 구독 등 성장을 의미하는 지표가 가치 평가의 핵심 지표로 고려되는 것이죠.

Redpoint Ventures의 Tomasz가 2020년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60개 상장 SaaS 기업의 기업가치는 매출 성장 및 영업 효율성 지표와 가장 큰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사업 초기 비상장 기업일수록 수익성보다는 성장성 지표가 기업가치 평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피그마의 기업가치 평가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피그마의 28조 원 기업가치가 과도해보일 수도 있지만 회사는 이미 2021년 6월 진행한 시리즈E 라운드에서 14조 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어도비 입장에서는 1년 동안 2배 이상 성장한 기업을 1년 전 기업가치의 2배에 인수한 것이니 시장에서 평가받는 수준으로 가격을 지불한 것으로 볼 수 있죠. 핵심은 어도비가 지불한 가격이 아닌, 피그마가 꾸준히 매출의 50배 이상의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만든 요인인 것입니다.
성장의 속도 - ARR Growth

피그마의 기업가치 평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피그마와 유사한 타 M&A 사례를 참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피그마의 인수 사례는 아래와 같이 전형적인 SaaS 기업 인수의 특징 몇 가지를 보여줍니다.

  • 기업가치 100조 원 이상의 빅테크 기업의 조 단위 SaaS 인수
  • 인수 대상의 높은 성장성에 방점을 두고 추진되는 거래
  • 네트워크 효과와 커뮤니티 확장성에 대한 높은 프리미엄
 
CRM의 대명사 세일즈포스의 슬랙과 태블로 인수, ERP 대명사 SAP의 퀄트릭스 인수,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깃허브 등은 모두 지난 3년 간 빅테크 기업이 고성장 SaaS 스타트업 인수에 나선 사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피그마의 라운드 별 기업가치 및 매출상승 그래프
SaaS 기업을 인수하려는 대형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규모가 커질수록 둔화될 수 밖에 없는 성장률을 방어하기 위해 고성장 기업 인수에 적극적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장률이 높을수록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분야가 바로 SaaS입니다. 현재 과대평가된 것으로 보이는 매출배수도 기업이 매년 빠르게 성장한다면 어차피 2 - 3년 내에 인수 멀티플이 대폭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예상 성장률이 높을수록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통용됩니다.
앞에서 언급한 인수 사례들의 인수 시점 매출 성장률과 매출 대비 기업가치의 관계를 그려보면 보다 명확한 '기업가치 - 매출성장률'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블루는 인수 당시 연간 20% 매출 성장률을 보이고 있었고 매출의 10배 수준에서 기업가치가 결정된 반면 피그마는 올해 매출 성장률 100%를 예상하고 있고 기업가치가 매출의 50배 수준에서 책정되었습니다.

전략적 투자자가 회사를 인수할 당시 기업가치 평가의 기준을 현재가 아닌 2 - 3년 후라고 가정한다면, 성장률이 높을수록 현재 시점에서 기업가치 배수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3년 후 목표 PSR이 10배라고 할 때, 매년 100%씩 성장하는 기업은 현재 매출 대비 50배의 기업가치가 가능한 반면, 매년 50%씩 성장하는 기업은 지금 단계에서는 매출의 30배 수준으로 기업가치가 책정되는 이치입니다.

단적인 예로 마이크로소프트가 2018년 인수한 개발 협업 플랫폼 깃허브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연환산 매출이 3천억 원 수준이었던 깃허브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가치는 무려 9조 원($7.5Bn)에 달했습니다. 50% 이상의 매출성장률을 인정해도 과도한 인수가라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인수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깃허브는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년 만에 기업가치가 매출의 7배 수준으로 낮아진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깃허브는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우군을 확보하면서 빠르게 치고 올라오던 깃랩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마이크로소프트 관점에서는 취약했던 '개발자' 고객을 선점할 수 있었으니 윈윈이란 평가를 받는 거래입니다.

여기서 떠오르는 두 번째 질문은, 그럼 우리는 어떻게 회사의 높은 성장성이 유지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 높았으니 앞으로도 높을 것이란 건 너무 순진한 분석이지 않을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SaaS 기업 분석의 또다른 핵심 지표, Net Dollar Retention입니다.
성장의 가속도 - Net Dollar Retention

한국어로 '기존고객 자연성장률'이라고도 표현되는 Net Dollar Retention은 SaaS 기업이 가진 성장의 '가속도'를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Net Dollar Retention은 작년에 유입된 고객이 결제한 금액이 100이라고 할 때, 해당 고객이 올해 결제한 금액은 얼마인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그럼 Net Dollar Retention이 120%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만약 어떤 고객이 자신의 팀에서 사용하기위해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는데 써보니 마음에 들어 다른 팀에게도 서비스를 추천하여 사용하게 된다면 해당 고객의 총 결제금액은 전년 대비 증가합니다. 또한 줌(Zoom) 이나 슬랙(Slack)과 같이 사용자 수에 비례하여 결제하는 소프트웨어의 경우 회사가 성장하면서 팀 규모가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결제 금액도 늘어나게 됩니다. 이와 같이 기존 고객의 사용금액 증가가 이탈 고객의 결제금액까지 상쇄하고도 남는다면 Net Dollar Retention은 100%를 초과하게 됩니다.
Net Dollar Retention은 제품의 사용 경험이 우월할수록, 한 번 사용하면 타 제품으로의 전환이 어려울수록, 줌(Zoom)과 같이 나도 사용하면 너도 사용해야하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력할수록 높아지는 지표입니다. 이는 소프트웨어 기업 분석에서 중요한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Net Dollar Retention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회사의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 매출이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넷플릭스의 첫 달 고객유지율은 85% 수준입니다. 그리고 6개월 고객유지율은 70%로 떨어집니다. 10명 중 3명은 6개월안에 서비스를 해지한다는 의미입니다. 국내 OTT 서비스는 3개월 고객유지율이 40% 수준으로 알려져있습니다. OTT 서비스처럼 고객의 결제금액이 늘어나기 어렵고 네트워크 효과가 없는 서비스는 Retention이 항상 감소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비용을 투자하여 신규 고객을 확보해야만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사업모델입니다.
제조업은 Retention이란 개념 자체가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매년 공장을 돌려 0에서부터 매출을 만들어내는 산업이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비용투자없이 큰 폭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고, 계약이 사라지면 갑자기 매출이 증발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는 분야입니다. 또한 올해 얼마나 공장을 잘 돌렸는지가 핵심이기 때문에 EBITDA와 같은 지표의 분석이 중요해집니다.

반면 구독형 소프트웨어는 다릅니다. 제품만 잘 만들면 추가비용 없이도 기존고객의 자연 성장을 유도할 수 있고, 거기서 신규고객을 꾸준히 확보해나갈 정도로 시장이 크다면 연간 50% 성장도 거뜬히 유지해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올해 매출이 5년 전 유입된 고객으로부터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 EBITDA 보다는 성장률, Retention, Payback Period와 같은 지표 분석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미국에 상장된 SaaS 기업의 평균 Net Dollar Retention은 120% 수준입니다. 특히 Net Dollar Retention이 가장 돋보이는 기업은 여전히 매출의 30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는 스노우플레이크입니다. 무려 170%가 넘는 독보적인 Net Dollar Retention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도 그 만큼 프리미엄을 받는 주식입니다.

어도비가 밝힌 피그마의 Net Dollar Retention 150%는 상장사 기준으로도 스노우플레이크 다음으로 높은 수준입니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피그마의 연간 100% 성장 중 50%는 기존고객의 결제 금액 증가에서 기인한 '자연성장'임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피그마가 '우월하고', '바꾸기 어렵고', '네트워크 효과가 강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Net Dollar Retention은 최근 강조되고 있는 협업 기능과 커뮤니티 효과가 중요한 소프트웨어에서 보다 높게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도 사용하니', '협업을 위해 사용하다보니' 어느새 유료고객으로 전환되는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이러한 소프트웨어는 자연스럽게 '기존고객 결제성장률'이 높게 나타나고 기업가치평가에서도 프리미엄의 근거가 됩니다. 커뮤니티와 협업 기능을 기반으로 자연성장률인 Net Dollar Retention이 높다면 충분히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할 가치가 있는 대상이 되는 것이며, 피그마는 정확히 해당 조건을 만족시키는 상위 5% 회사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시간을 돌린다면 피그마에 투자할 수 있을까?

모든 벤처 투자가 어렵지만 그 중에서도 피그마에 가장 과감한 베팅을 한 투자는 시리즈 B - C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피그마의 연환산 매출이 10억 원 수준일 당시인 2018년 2월 시리즈B를 리드한 클라이너퍼킨스는 피그마를 약 1,400억 원으로 평가하였습니다.

또한 2018년 피그마의 연환산 매출이 60억 원 수준으로 높아졌을 때, 시리즈C를 리드한 세콰이어는 피그마를 약 6천억 원으로 평가합니다. 세콰이어이니 가능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당시 매출의 100배 수준에 달하는 기업가치는 과감하게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도 투자를 검토한 후 기권할 정도의 배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매출이 발생하는 단계에 투자가 이뤄지는 후기 벤처 투자가 초기기업 투자보다 상대적으로 쉬워보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많습니다. 투자자들의 선호도가 몰리면 기업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이 경우 공정가치에 기반하여 투자를 집행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위 차트에서도 볼 수 있듯이 SaaS와 같은 고성장 기업은 기업가치 상승이 매출 성장을 선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그마같은 기업은 모든 라운드에서 고평가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결국 베팅의 힘은 분석에서 나오게 됩니다. 피그마는 세콰이어의 투자를 받은 2019년 무려 6배의 매출 성장을 이뤄냅니다. 전형적으로 가속도에 베팅을 한 투자인 것입니다. 그 결과 투자 1년 만에 매출 대비 100배의 기업가치가 20배로 내려오게 됩니다. 위 차트를 통해 시리즈C 단계가 바로 기업가치와 매출 모두 변곡점을 지나기 직전 이뤄진 투자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유망한 회사를 찾고, 그 회사가 성장의 변곡점을 지나기 직전에 투자 타이밍을 잡고, 투자를 위해서 기꺼이 프리미엄을 지불한 후에 또다시 몇 년을 기다리기까지, 벤처 투자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주는 흥미로운 피그마 사례였습니다. 
CapitalEDGE 뉴스레터를 추천해주세요!
아래 버튼을 클릭하면 님의 초대링크가 포함된 구독 페이지가 나와요.
해당 링크를 복사해서 초대하고 싶은 분에게 자유롭게 공유해주시면 됩니다.
오늘의 인사이트가 도움이 되셨다면 주변에도 널리 소개해주세요!
info@atlaspacific.co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79길 6
수신거부 Unsubscribe
stibee

좋은 뉴스레터를 만들고 전하는 일,
스티비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