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봄 특징: 먹으면서 먹는 얘기함.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책 읽으면서 먹는 이야기하기! 이름하여 '가을 특집: 책따라 맛따라'🍂
음식을 보면 떠오르는 책, 책을 보면 떠오르는 음식과 재료. 혹은 책과 함께하면 좋을 음식, 음식과 함께하면 좋은 책을 담아보았습니다. 무맥락과 고맥락(?)을 오가는 가을의 맛. 여러분의 '책따맛따'도 궁금해지네요. 오늘의 레터도 맛있게 즐겨주시고 행복한 가을날 보내세요!
쇼콜라 초코파이
🎨 가내수공업자

찬바람이 돌아왔습니다. 올해는 9월이 다 지나도록 유독 더운 기운이 남아있어서 찬바람이 더 반갑네요. 따뜻한 아랫목에서 재미있는 책과 과자 한 봉지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그 정도 먹거리는 성에 차지 않아요. 정말 맛있는 것을 먹어야겠습니다.

최근에 친구들에게 빵에 대한 사랑을 끊지 못하겠다는 고백을 다시 할 때(친구들은 모두 새삼스럽다는 반응) 제 머리에 떠오른 빵이 있습니다. 성북동 나폴레옹제과점의 〈쇼콜라 초코파이〉인데요.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요.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거든요. 저는 제과점 점원에게 연락처까지 맡겼습니다만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이 빵에 관해 설명하자면, 모양은 정사각인 듯한 직사각형입니다.(살짝 오예스같이) 겉면은 모두 초콜릿으로 둘러싸여 있고, 속엔 초콜릿 시트 세 줄 사이에 마시멜로 두 줄이 자리합니다. 한입 물면 겉면의 초콜릿이 부서지면서 단단한 식감의 초콜릿, 보들보들한 초콜릿 시트, 폭신한 마시멜로가 한입에 들어와요. 세상 달콤하지만 또 너무 달지는 않아서 한 개를 다 먹을 때까지도 떡볶이 국물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쓰다 보니 너무 먹고 싶네요. 따뜻한 이불 속에서 〈쇼콜라 초코파이〉를 먹으며 다시 행복해지기를 바라면서 《로쟈의 세계문학 다시 읽기》를 추천합니다. 점원 슨생님. 빨리 연락주세요.

+캡션: 나폴레옹제과점 홈페이지에서도 사진을 찾아볼 수 없어서 그렸습니다.

송이버섯

+ 《세계 끝의 버섯》

🚶‍♂️ 산책자


송이버섯을 맛본 적이 있나요? 저는 십몇 년 전에 귀한 거라고 불판에 구워준 걸 몇 점 먹어봤습니다. 어떤 맛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뒤로 송이버섯을 본 기억도 없습니다. 그만큼 비싸기 때문일 겁니다.


“삶이 엉망이 되어갈 때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가? 나는 산책을 한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버섯을 발견한다”로 시작하는 책을 다 읽고 산책을 하러 나섰습니다. 추석 보름달이 떠 있는 밤이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송이버섯입니다. 저자는 전 세계 곳곳에서 송이버섯과 연관되어 있는 인간-비인간이 얽힌 현장들을 들여다봅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의 상품사슬을 엿보고, ‘세계-만들기’의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우연한 마주침’으로 인해 생성된 송이버섯이 만든 거대한 이야기에 흠뻑 젖어들었습니다.


산책하고 돌아와 새송이버섯을 프라이팬에 올렸습니다. 새송이버섯은 자연산 송이버섯의 대용품이죠. 전 고깃집에 가면 늘 버섯을 찾습니다. 고기보다 버섯을 더 좋아하거든요. 어느 날 버섯을 정성스레 굽는 저를 본 아주머니가 그랬습니다. 버섯은 그렇게 굽는 게 아니라고. 다 구워질 때까지 자르지 말고 기다려보라고 했습니다. 그럼 새로운 맛을 느낄 거라고요. 아주머니 말대로 했더니 정말 그랬습니다. 이렇게나 새송이버섯이 맛있었다니.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맛이었습니다. 송이버섯 맛은 기억하지 못해도 그날 구운 새송이버섯 맛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샤인머스캣 탕후루
⏳ 모래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아이들의 계급투쟁》을 읽고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로 잘 알려진 브래디 미카코는 영국으로 건너간 동양인 보육사로서 빈곤이 낳은 차별, 영국의 정당과 정책, 계급 문제 등을 아이들의 삶을 통과하여 읽어내요. 영국사회의 거시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아이들의 삶을 서술하는 미카코의 담담한 문체에서 엿볼 수 있는 미시적인 아름다움 역시 발견되는 책입니다. 자본이 부리는 협잡 속에서 존엄을 지키는 방법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말 놓을 용기》는 독서 모임 친구가 민음사에서 모집하는 '평어 모임'을 제안해 받아 본 책이에요. 사회의 위계를 지탱하고 있는 '존비어체계'에 대한 분석이 익숙하면서 새로웠어요. 책을 읽고 모임을 평어로 진행했는데, 처음에는 헤실헤실 웃음이 비집고 나오다가도 금세 벽이 허물어지는 감각을 느꼈답니다. '디자인'의 관점으로 말을 바라본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평소 경상도 억양이 편한 친구가 '서울말+평어'를 쓰니 좀 더 어색한 감이 있다는 소감을 나누어 주어서 평어 사용에도 더욱 다양한 논의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네요. 

 

3시간을 쉼 없이 말하니 급격하게 당이 떨어지더군요. 추석 때 받은 샤인머스캣이 있어서 이왕 당을 채울 거 제대로 채워보자고(?) 생각하며 탕후루를 만들었습니다(약간의 죄책감에 스테비아로). 사람들이 왜 그냥 사 먹는지 알겠더라고요. 설탕물이 빨리 굳어버려서 전체 코팅이 참 힘든😂 그래도 맛은 성공적이었답니다. 달고나 향이 입 안에 퍼질 때쯤 톡 터져 존재감을 드러내는 샤인머스캣의 과즙. 《말 놓을 용기》 표지의 타이포그래피가 꼭 예쁜 샤인머스캣 탕후루 같지 않나요? 무맥락 연결로 (조금 뻔뻔하게) 마무리해볼게요! 🍡

산딸기 크림봉봉
🥟 만두맨

얼마 전 가까운 사촌 언니가 그림책 하나를 소개해줬어요. [산딸기 크림봉봉]! 들춰보니 정말로 산딸기 크림봉봉, 그러니까 산딸기잼을 휘핑크림에 섞어 먹는, 서양의 오래된 디저트인 크림봉봉을 둘러싼 흥미로운 역사책이더군요. 책은 무려 4세기에 걸쳐 이 디저트를 만드는 도구와 기술의 변천사(300년 영국에서는 말이죠, 크림 휘핑을 치기 위해서 무려 나뭇가지로 거품기를 만들어 쓰고, 크림을 차갑게 식히려고 얼음 창고까지 가는 수고를 했다네요. 맛난 걸 향한 인간의 집념이란...)와 더불어 이 디저트를 만들고 먹어온 주체들을 조명하면서 인종과 젠더의 역사까지 자연스럽게 그려냅니다. 산딸기 크림봉봉을 만든 300년 전 영국의 백인 모녀는 남성 가족들에게 주고 남은 걸 긁어 먹고, 200년 전 미국의 흑인 모녀는 백인 주인집 가족들에게 주고 남은 걸 긁어 먹어요. 지금은 아빠와 아들이 크림봉봉을 만들고, 가족과 손님들에게 나누고 있네요!(세상은... 나아지고 있는 거겠죠...?)

이 책을 소개해주었다는 사촌 언니와 제 언니를 포함한 자매들 사이에서 이 책이 회자되며, 결국엔 산딸기 크림봉봉을 만들어 먹고야 말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달콤함을 사랑하는 제 어린 조카는 이모의 지시에 따라 냉동 라즈베리를 고르는 훌륭한 일꾼의 면모를 보였고, 책에 나온 한 장면처럼 크림봉봉을 만든 뒤의 주걱을 즐겁게 핥아먹더군요. 달콤한 디저트만큼 즉각적인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 또 있을까요? 동서고금, 애어른 할 것 없이 단것이 인류 역사에 이어져온 데는 분명 이런 이유가 있는 겝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책에 조리법도 나와 있고, 어렵지 않고, 맛있답니다. 차갑게 식힌 달콤하고 눅진하고 상큼한 요 크림을, 제가 의지하는 자매들, 사랑하는 조카들과 함께 한 숟갈 크게 떠먹는 순간 이런저런 잡생각이 날아가며 행복해지더라고요!
커피
🏕️ 캠퍼  

저는 평소에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닌데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따끈한 국물과 함께 마시는 술 한잔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밖에서 혼자 술을 마시기란 저에겐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 또 다른 따끈한 액체를 찾아 카페로 가지요. 늘 마시는 커피인데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혼자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는 정말이지 특별하지 않나요? 두툼한 니트 챙겨 입고 책 한 권 챙겨서 가뿐하게 집을 나선 주말 오후, 몇 시간 읽다 보면 카페에서 맞이하게 되는 저녁. 뻔한 장면이긴 해도 저의 가을날 독서는 딱 그런 모습이에요. 그리고 이때는 어떤 분야보다도 문학을, 그중에서도 이야기에서 확실한 계절감이 느껴지는 책을 집어 들게 되는 듯합니다. 최근에 망원동에 있는 로우북스에 갔다가 한정원 작가님의 《시와 산책》을 샀어요.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러해요.
“내가 겨울을 사랑하는 이유는 백 가지쯤 되는데, 1번부터 100번까지가 모두 ‘눈’이다.”
가을은 가을 그 자체로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겨울을 기다리는 계절이기도 하잖아요. 아직 저만치 앞둔 겨울과 함께 시와 산책을 이야기하는 이 책이 이 계절에 딱이다 싶어 요즘 가장 아껴 읽는 책이랍니다.
김밥
📕 편독자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요즘, 저는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에게 ‘페퀴불’은 꼭 가을에 어울리는 책이라기보다 언제든 반드시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하는 고전에 가까운데요. 아직 2장까지밖에 읽지 못했지만, ‘장애학의 시간’과 ‘불구의 미래’를 다루는 1장부터 손에 땀을 쥐고 읽게 되는 책입니다. 시간/미래에 대한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적 시간관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도, 기어코 그것과 다른 시간관/시간 감각을 발굴하고자 하는 저자의 여정이 롤러코스터 타듯 펼쳐진달까요. 시간을 경유해 장애 문제를 탐구하는 방식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학만의 ‘퀴어한’ 시간성을 모색하는 경로를 택하는 태도가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퀴어함’의 정의가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도 참 좋고요. 
코너 제목이 ‘책따라 맛따라’이지만, 사실 저는 요즘 특별히 맛있는 걸 먹고 있진 못합니다. 환절기에 여지없이 위장 기능이 떨어지는 편이라 오히려 음식을 자제해야 하거든요. 당분 섭취를 줄이기 위해 9월 중순 즈음부터 계속해서 나름대로 식이요법을 해왔는데, 오늘은 집에서 만 김밥으로 약간의 일탈을 해봅니다. ‘페퀴불’과 어울리는 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김밥 먹고 힘내서 열독해봐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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