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예정에 없던 개인 작업을 시작했다. 

부채에 원화를 그려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것인데, 생각보다 결과물이 잘 나오고 실용성도 좋아 주문이 꽤 들어와서 7월 한 달 내내 부채 그림을 그리는데 보냈다. 부채를 그리면서 내가 이런 식의 개인 프로젝트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지금의 내 작업 루틴이 만들어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금천구 작업실을 정리하고 집 근처에 작업실을 내면서 1년도 안된 시간 동안 일정한 규칙이 생긴 셈인데, 생활 반경을 좁혀서 가능한 규칙이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을 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어딘가를 가는 행위가 짧게나마 이어지게 되었고 퇴사와 함께 곧 하루가 통으로 주어지는 게 감당하기 어려운 때도 있었다. 외주를 받으면 그때만 바짝 정신 차려서 작업을 했고 일이 끝나면 다시 게을러져서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이 구분 없이 얽힌 일상을 보냈다.


프리랜서의 일상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외주 작업을 하고 나면 피드백을 기다리는 시간에 개인 작업을 하게 되었다. 개인작업이라고 해야 의미 없는 행위로 낙서와 구분되지 않는 끄적임에 지나지 않았고, 그림이든 굿즈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려면 자체적인 마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알바 형태의 창작 작업을 정기적으로 하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마감이 짧은 일을 자주 했었고 그 경험을 기준으로 개인 프로젝트도 비슷하게 하면 곧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생각은 스티비와 함께 뉴스레터를 진행하면서 더 확고해졌다. 스티비에게 제안받은 프로젝트는 6개월 동안 글과 함께 그림을  유료 레터 형식으로 발행하는 것이었고 후에 그 그림들을 모아 아침 달과 달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구독자가 모이고 연말에 달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겨 2주에 한 번씩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했다. 힘들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수월했다. 이때의 경험을 기반으로 개인 레터도 충분히 발행할 수 있겠다 느꼈고 곧 다음 해에 개인 레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비슷한 마감 날짜를 정했다. 한 달에 2편에서 3편의 글과 그림을 발행하는 것. 7월이 지난 지금 나의 프로젝트 상태를 점검해 보면 생각보다 성실하게 잘 진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쯤 되어 생긴 자신감은 나는 마감에 대한 압박이 심하지 않고 일단 날짜만 정하면 곧잘 한다는 사실이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내 개인 프로젝트에 타인을 연결시키는 것이 나의 치트키였다. 하나의 예를 들면 <악몽 수집가>라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막연하게 작업했기 때문에 늘어지는 순간이 왔는데 마침 그때 아침달 대표님께서 출판을 제안하셨고 다른 사람들과 협업을 해야 했기에 정신 차리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면서 마감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성향 중에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부분이 발현이 되어 타인과 함께하는 마감이 생기면 책임감이 생겨 일을 잘 마칠 수 있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이 방식이 다른 스타일로 진행된 것이 굿즈 작업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고 예약 구매 방식을 이용해서 주문을 받으면 일단 시작하게 된다. 사람들의 돈을 받기 시작하면 책임감이 생겨서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이 수그러든다. 듣기 싫은 말을 듣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굿즈를 구매한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좋은 작업물과 포트폴리오,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결국 나의 동력의 타인에게서 가져오는 방식으로 개인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인데 무언가를 호기롭게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되는 경험이 많았던 나에게는 좋은 방식임에 틀림없다. 


마땅히 창구가 없는 작가라면 텀블벅 형식의 펀딩을 추천하는 것이 위와 같은 이유다. 다른 사람들의 응원과 관심을 받기 시작하면 혼자 하는 마라톤에도 끝이 오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