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쉰일곱 번째 흄세레터

여러분 그거 아세요? 다음 주 한 주만 잘 버티면 긴 연휴가 찾아온다는 사실요. 그래서인지 주말을 맞는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지네요. 

신입 시절에 선배 편집자가 해준 조언이 있어요. ‘어려운 청탁을 할 때는 금요일 오후에 해라.’ 주말을 앞둔 금요일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더 여유로워지기 때문일 거예요. 그렇담 긴 연휴를 앞둔 이번 주와 다음 주가 무언가 어려운 부탁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성공하시길……).

오늘 레터에서는 천운영 소설가가 《불쌍한 캐럴라인》을 읽고 쓴 에세이 전문을 보내드려요. 할머니가 건네준 “낡은 노트 세 권”이 유산이 아닌 청탁이었다는 사연이 맛깔나게 그려집니다.

은밀한 유산

 

유산이라면 유산이었다. 할머니 생전에 직접 내게 주신, 온 가족이 모인 어느 명절에 나만 따로 방으로 불러 은밀히 건네준 낡은 노트 세 권. 할머니는 의미심장하게 “이제 네 거다” 했다. 그리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내가 쓴 거다” 하고 덧붙였다. 가락지도 은비녀도 아니고, 하다못해 오래된 손거울이나 참빗 같은 것이라면 유서 깊다 여기며 장식이라도 해볼 텐데, 일기장인지 메모장인지 반쯤은 판독 불가한 글씨체로 휘갈겨놓은 노트가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사실 그때 나는 좀 기분이 상했다. 은비녀라도 쥐여주려나 기대했다가 실망해서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이제 네 거다”라는 말은 ‘비로소 자격이 되었다’는 뜻으로, “내가 쓴 거다”라는 말은 ‘글쓰기로 치자면 내가 먼저다’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는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다고 알렸을 때 축하한다는 말 대신 그게 다 당신을 닮아서 그런 거라고 꽤나 으스댔으며, 그래서 감사하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때까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꾼인지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쉴 새 없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전력이 있다. 게다가 그 무렵 출간된 첫 소설집을 드렸을 때는 고생했다거나 축하한다는 말 대신, 이게 다 내 덕인 줄 알라며 공치사만 늘어놓던 양반이었으니 아주 근거 없는 오해는 아니다.

 

그런데 그 노트와 관련한 마지막 언급은 좀 애매했다. “네가 좀 잘 살펴봐라.” 잘 읽어보라는 것도 아니고 살펴보라니, 무얼? 숙젯거리처럼 읽어보긴 했다. 동네 할머니들과 고스톱 친 얘기(돈을 딴 날보다 잃은 날이 더 많다), 자식들에게 서운했던 사연들(지들끼리만 해외여행을 갈 줄이야), 세배꾼들에게 받은 세뱃돈과 선물 목록(손자사위가 가져온 한과 세트에 별표), 빌려준 돈과 갚아야 할 돈 몇 푼(몇천 원에서 몇만 원까지), 다음번 할아버지 제사상에 추가해야 할 허파전과 낙지호롱이 조리법(본인이 먹고 싶은 것이 분명한) 같은 것들.

 

그중에서 특히 내 눈에 띈 건, 먼저 간 남편을 향한 애달픈 연서 혹은 연가였다. 그저 그리운 마음만이 아니었다. 보듬고 얼싸안고 입 맞추고 저세상에서 만나 어화둥둥 신나게 놀아보자는 바람까지. 좀 웃겼다. 일흔 살 넘은 여자가 뒷방에 앉아 꿈꾸는 사랑이라니. 워낙 흥이 많은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손주 새끼들 물장구치고 놀면 그 사이에서 보다 신나게 어푸어푸 물보라를 일으키고, 노래며 춤이며 시도 때도 없이 가락을 타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할아버지와 다시 만나면 할 일들에 대한 표현의 수위가 이리 노골적일 줄이야.

 

진짜 황당했던 건 그 노트를 내게 준 목적을 알게 된 때였다. 수개월 후 다시 만났을 때 할머니가 물었다. “그래, 잘 읽어봤냐?” “네, 재밌게 봤어요.” “그래, 뭐가 좀 될 거 같으냐?” “뭐가요?” “네가 한번 잘 만들어봐라.” 책이 될 만하냐고 묻는 것이었다. 내가 아니라 당신의 책. 비로소 조각이 맞춰졌다. 그러니까 내가 소설가가 된 건 모두 당신의 피를 물려받은 덕이고, 쓰기로 치자면야 노트 세 권 분량이나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니, 이제 당신의 책을 낼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말씀. 너만 작가냐 나도 작가다. 유산이 아니라 청탁. 아, 이 주책맞은 노인네야.

 

《불쌍한 캐럴라인》을 읽으면서 내내 그 노트 생각이 났다. 돌려주지 않았으니 내 손에 있을 텐데, 온 집 안을 다 뒤져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별 쓸데없는 노트로 굴러다니다 버려졌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뭐라도 되게 만들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할머니를 가져다 쓴 소설이 꽤 여러 편이다. 한껏 비웃으며 많이도 갖다 썼다.

 

아, 불쌍한 캐럴라인. 그건 저마다의 연유와 욕망으로 캐럴라인에게 발만 살짝 담근 사람들이 하는 얘기. 일흔 살 넘은 여자 인생에 뭐 그리 대단한 게 있을까 비웃으며, 챙길 건 챙긴 사람들이 하는 얘기. 그러나 캐럴라인의 불쌍한 조각들이 마침내 하나의 아름다운 둥지로 탄생하게 되니. 숲의 건축가 바우어 새의 둥지처럼. 쓸모없는 나뭇가지, 깃털, 유리 조각 들이 만들어낸 기하학적인 아름다움. 그 위에서 펼쳐질 구애의 춤은 또 얼마나 활기찰지. 불쌍한 캐럴라인을 덮으며 남는 여운은 설렘이다. 요 이쁜 것들, 잘 살아야 해. 응원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진짜 유산.

천운영 |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펴낸 책으로는 소설집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 《엄마도 아시다시피》, 《반에 반의 반》,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생강》, 산문집 《쓰고 달콤한 직업》, 《돈키호테의 식탁》 등이 있다. 신동엽창작상, 올해의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불쌍한 캐럴라인
위니프리드 홀트비 | 정주연 옮김

소외된 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운동가이자 인정받는 소설가였던 위니프리드 홀트비의 대표작 중 하나. 국내 초역. 개인적인 사랑보다는 사회적인 성공을 꿈꾸는 일흔두 살의 주인공 ‘캐럴라인’을 둘러싼 다양한 주변 인물의 목소리를 담아낸 소설로, 가난한 비혼의 노년 여성을 향한 혐오와 연민의 시선을 가볍게 튕겨내는 작품이다. 거의 매 장이 ‘불쌍한 캐럴라인’이라는 말로 끝나지만, 꿋꿋이 신념을 지키며 목표를 좇는 캐럴라인의 모습은 정말로 불쌍한 이들이 누구인지 되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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