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회계로 인한 수많은 국가의 흥망성를 소개합니다. 16~17세기 가장 강력한 제국 중 하나였던 스페인 제국은 엉성한 회계로 몰락을 맞게 됩니다. 제국은 유럽 내에서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유럽 밖으로는 아메리카 대륙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를 다스리고 있었지만 제대로 계산해보면 전세계에 산재한 항구와 식민지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벌어들이는 액수보다 더 컸습니다. 그러나 회계시스템의 부재로 왕실은 이런 상황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식민지에 숨겨진 막대한 자산, 대규모 선단이 독점 무역으로 벌어들이는 수익도 제대로 인식되지 못해 스페인 왕실은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스페인 제국은 여기저기 돈을 빌리다 수입의 68%를 외국 은행에 이자로 내는 상황에 내몰리게 됩니다. 그 결과 제국 말기에는 몰락한 귀족들이 넘쳐났고, 일부 부유하고 부패한 대귀족은 민중을 굶주리게 하는 원흉이 됐습니다. 당시의 어두운 시대상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었던 2008년 금융위기도 회계의 중요성을 간과한 데 따른 결과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금융위기를 촉발한 ‘자산담보부증권(CDO)’은 가치가 과대평가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증권들을 묶어서 만든 파생상품이었습니다. 솔 교수는 “회계감사 회사들은 은행과 규제기관에 CDO가 무척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그들은 힘도 없었고 어쩌면 그럴 의지도 없었던 것 같다”고 서술했습니다.
금융위기로부터 15년여가 지난 현재. 솔 교수가 강조하고 있는 어젠다는 여전히 회계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발생주의’ 회계인데요. 발생주의 회계는 현금주의 회계와 배치되는 방식으로, 현금이 직접적으로 드나들지 않더라도 거래나 사건이 발생하면 이를 장부에 반영하는 방식입니다. 거래가 결정되고 나서 실제로 대금이 지급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발생주의 회계는 큰 효력을 발휘합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특정 공사를 진행하기로 2024년에 결정하고 공사 대금은 2025년에 지급하기로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발생주의에서는 지급이 결정된 2024년에 비용을 ‘부채’로 인식합니다. 반면 현금주의에서는 실제로 비용이 지급되는 2025년이 되어서야 비용으로 인식합니다.
우리에게 보다 와닿는 사례는 ‘연금’일 것입니다. 연금은 국민에게 국가가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일종의 부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부채는 많은 국가의 회계장부에서 기록되지 않고 있는 계정 중 하나입니다. 이는 한국처럼 급속도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에는 더욱더 치명적입니다. 우리도 알지 못하고 있던 연금이라는 부채가,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는 시점에 한꺼번에 현금으로 지출되면 그때서야 장부에 기록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지금 투명한 정부 회계는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민주주의는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 인구구조의 변화, 이념과 민족간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실패했는데, 그 결과가 국가에 어떤 재난으로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재난이 왔을 때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필수적입니다. 회계는 결정을 도울 재무적 판단의 기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솔 교수는 “‘순자산 위주로 통합된’ 회계 시스템은 민주주의에 대한 보험같은 존재”라며 “재정건전성을 지켜주고 예측 불가능한 재앙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며 정부에 대한 믿음을 시민들에게 불어넣어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