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령차별주의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What is 'Blind Essay Project'?
<Blind Essay Project>는 작가 Carol Chediak(케롤 슈디악)<Possibly Here> 사진 시리즈에 관한 에세이 프로젝트입니다. 5명의 에세이스트는 선택된 몇 개의 사진을 먼저 본 뒤, 다시 에세이로 표현합니다. 사진은 아직 공개되지 않지만, 5개의 글을 통해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본 프로젝트는 <Possiby Here>의 다층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한 Pre-Project로 문학과 시각예술을 잇는 역할이자 그 자체로 서사를 완성합니다. 물론, 미래의 관람객에게 궁금증을 유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습니다. 모든 작품은 11월 말, 오프라인 전시를 통해 공개됩니다. 

epilogue 💡

당신의 집에도 있다.

턱괴는여자들, 송근영

“발데미라는 내가 경사로를 올라갈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는데, 그 정상에서 나를 보자마자 “좋은 아침이야, 달링!” 이라고 외쳤다. 그리곤 큰 소리로 나의 도착을 알리며 의자들을 끌어 모아서 동그랗게 만들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날 나의 기분이 어떤 상태였든 미라의 에너지는 그 만남을 대하는 내 마음과 태도를 바꾸어놓았다.”

캐롤 슈디악 <작가 노트> 중 ‘발데미라’ 


«아마도, 여기(Possibly, Here)» 전시장을 찾아주시는 관람객분들께 개인적으로 공식 질문처럼 던지는 화두가 있다. 초상 사진의 주인공들 중에 가장 마음을 울리는 인물이 누구인지 묻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발데미라를 가리킨다. 연녹색 상의를 입고 인형을 안은채로 살짝 아래에 있는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는 여인. 유일하게 앵글이 비스듬하게 틀어진 사진이기도 한데, 누군가는 대화하며 웃는 중에 찍혀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세부적인 이유는 제각각이더라도, 캐롤이 그녀를 만날 때 느꼈던 에너지는 사진으로도 전해지는 것이 분명하다. 


그 외에도 늘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는 살바도르, 장난기가 가득한 비발도, 그녀를 비추는 햇빛과 같은 온화함을 풍기는 에스뗄 등, 마음을 사로잡는 인물과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모두 하나씩 꼽는다. 성별과 연령을 막론하는 다양한 사람들이‘노인들’에 의해 사로잡히고 영감을 받는 순간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낯설고 놀라운 경험이다.

"혹시 어떤 인물이 가장 마음에 와 닿으시나요?"

캐롤 슈디악이 ‘베타니아 양로 시설'의 주민들과 쌓아올린 시간과 관계에 대해 회고한 에세이, <작가 노트>를 처음 읽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길어야 네 글자 남짓의 이름 정보만 있을 뿐, 이미지 없이 활자로만 묘사되어 전달되는 노인들은 그 지면으로부터 짐작되고 확장될 때에 ‘나이듦’의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 아무런 프레임 없이 읽어내려간 베타니아의 일상에는 『작은 아씨들』도 있고 『데미안』도 있다. 그들의 다툼이, 성과가, 성장이 생동하게 계속되고 있었다. 


캐롤의 사진을 볼 관람객에게도 이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사진의 주인공들이 줄 수 있는 영감을 최대한 확장하고 시각적 편견의 방해를 최소화 하고 싶어 <블라인드 에세이 프로젝트>를 전시에 선행했다. 그렇게 다섯 작가의 프리즘을 통과한 리우 데 자네이루 어느 양로 시설의 풍경은 이탈리아의 에어비앤비 숙소로, 산후 조리원으로, 베를린으로 변모했다. 지구 반대편 누군가의 할머니 이야기가 되고, 새삼스레 외로움이라는 이빨에 물린 이의 독백이 되었다.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노년이 풍기는 감흥은 사실 더 강력한 법이다. 다섯 편의 에세이를 통해 확장된 빛의 파장을 좇아 캐롤 슈디악의 사진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나름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시장을 지키며 매일같이 캐롤 슈디악이 담아낸 다채로운 주름을 가진 주인공들에 대해, 그들의 삶의 데이터가 응축된 도서관과도 같은 1.5평의 방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방문을 두드린 캐롤 슈디악에 대해 꼬리를 물며 생각한다. 노년에 대한 이 ‘낯섦’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면들- 미래에 남겨진 무한한 발견과 과거에 무수히 쌓인 편협한 편린들을 되새김질 한다. 왜 우리가 목격하고 학습할 수 있는 노년은 단지 우리의 조부모 뿐이었는지, 왜 ‘나이듦’을 우울하고 걱정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우리는 늘 우리가 누군지 좇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할텐데, 왜 이러한 욕망의 품이 나에 대해 많이 알아갈수록 신나지 않고 되려 반비례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지 질문을 던진다.

(좌) 반 연령차별주의 액티비스트 '애쉬튼 애플화이트'.
(우) 우리의 뇌는 과학적으로 노년에 유년기와 같은 수준의 행복을 느끼게 되어있지만,
사람들이 이를 잘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습득되는 '연령차별주의'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년에 대한 터부는 다른 편견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형성된 프레임이다. 우리가 매일같이 접하는 미디어 안에 주름진 쾌활함이, 흰 머리의 장난기가, 걸음이 느린 호기심이 지워진 유구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 플랫폼으로부터 외면받는, 혹은 틀어진 앵글에 잡힌 주체는 곧 사회에서 배제되고 왜곡된다. 이는 우리의 첫번째 주제였던 ‘여자 야구’와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다. 평행이론과 그 안에 내포된 콘텐츠의 파급력이 새삼 놀랍다. 

 

가장 큰 미디어 시장인 헐리우드가 단적인 예이다. 2014년에서 2016년까지 3년 간 작품상 후보에 오른 25편의 영화에서 60세 이상의 인물이 등장하는 비율은 12% 미만이었다. 그 중에서도 여성이나 소수 민족은 찾기 힘들었고, 나이든 캐릭터가 있더라도 그들이 극을 주도하는 경우는 희귀했다[*]. 게다가 주조연이 60세 이상인 영화에서는, 40% 이상의 확률로 연령 차별적 대사가 등장했다.은행 강도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아니면 그냥 앉아서 알츠하이머가 진행되도록 내버려둘래요? <로스트 인 더스트(2016)>[**]


* 60세 이상의 배우가 극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례는 단 두 편, 모두 마이클 키튼이 연기했다. (<버드맨(2014)>, <스포트라이트(2015)>

**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의 미디어, 다양성 및 사회 변화 이니셔티브 책임자인 스테이시 스미스의 연구

<로스트 인 더스트(2016)>에 출연한 70대 배우 제프 브리지스

약 10년 전에 TV와 영화 산업에서 연령 차별을 없애기 위한 비영리 단체 ‘AIM(Age Inclusion in Media)’가 설립되었지만, 상황은 좀 더 악화되었다. 2021년 상위 랭크 영화 중 60세 이상 시니어 주연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는 2%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중장년에게도 롤모델은 필요하다. 스크린에 다양한 노년이 등장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부모님 세대다. 사회적 인식을 체화해 온 시간이 비례하여, 아이러니하게도 노년에 가까워질수록 ‘나이듦’에 비판적으로 느끼고 생각할 확률도 높다. 연구에 자금을 지원했던 의료보험사 Humana의 요기 에르난데스 수아레스 박사는 이러한 미디어 콘텐츠의 파급효과에 대해 우려한다.

 

“영화에서 나와 같은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나는 가치가 없는 걸까요?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려야할까요?”


나는 다시 전시장에 걸려있는 여섯 명의 인물들을 돌아본다. 캐롤의 앵글을 통해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던 1.5평 안에 담긴 90년의 시간들을 관찰한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베타니아에 주름진 쾌활함이, 흰 머리의 장난기가, 걸음이 느린 호기심이 있다면, 이는 한국의 성수동에도 있다. 당신이 우연히 차를 타고 빠르게 지나친 양로시설이나 당신의 아파트 단지에도, 시간이 조금 지난 당신의 집에도 있다. 


***  아미카 시니어 라이프스타일의 노인 배우에 대한 연구

“모든 편견은 어떤 집단을 우리가 아닌 ‘타인’으로 구분하는 것에서 비롯합니다.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국적 등으로요. 연령차별주의(Ageism)의 이상한 점은 그 ‘타인’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죠.” 

애쉬튼 애플화이트, 작가 겸 액티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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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라인드 에세이> - «📸 아마도, 여기(Possibly, Here)» -  『📙 ??』
캐롤 슈디악의 사진 연작 <Possibly Here>를 주축으로 한 프로젝트는 내년 초 '출판'으로 이어져 마무리됩니다. (1) 턱괴는여자들의 '장소성'을 주제로 한 연구와 더불어, (2) 공간을 만드는 사람과(3) 공간을 향유하는 사람의 글이 실립니다. 프로젝트의 진행과정과 비하인드도 '턱괴는레터'로 업데이트될 예정이니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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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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