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야 바른 말이지>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61 〈말이야 바른 말이지〉
6월 7일 오늘의 큐 💡   
Q. 갑도 을도 아닌 사람들의 싸움?
님, 혹시.. 난처한 상황에서 침착하게 말 잘하시는 편인가요? 😨 저는 말도 잘 못하고 몸싸움은 더더욱 못하고 곤란한 일이 생기면 그저 숨기 바쁜 종류의 사람인데요. 부당한 일이 있으면 몇 날 며칠을 끙끙 앓고 싸매다가 사건의 경위(!)부터 진행 상황까지 조목조목 정리해서 대본을 만들어 발표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곤란한 일에 대해 상대에게 이야기할 때는 앞뒤 사정 안 봐가며 시원하게 말하는게 차라리 낫지만, 말은 마음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여주지 않아서 여간 곤란한 게 아니지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a.k.a 〈말바말〉)는 말들에 관한 미치고 팔짝 뛰는 여섯 개의 상황을 모아둔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갑'도 아니고 '을'은 더더욱 아닌 '병', '정'의 사람들이 벌이는 신명나는 요지경의 세계를 담고 있죠. 진짜 잘못도 아닌데 사람들이 내 잘못이라 해서 마음에도 없는 사과문을 쓴 적,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서 '우린 생각하는 게 이렇게도 달랐구나!'하고 느낀 적, 누구나 있으시지요? 〈말바말〉은 그런 여러분에게 서울독립영화제가 주는 여섯 개의 상자가 담긴 선물함입니다. 🎁 〈프롤로그〉, 〈하리보〉,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진정성 실전편〉, 〈손에 손잡고〉, 〈새로운 마음〉 총 여섯 개의 단편영화가 담긴 옴니버스 영화를 만나보세요. 배꼽 잡는 말맛에 내내 웃다가도 어느덧, 이게 지독한 현.실.임을 깨닫고 나면 웃다가 눈물이 나올지도 몰라요. (기쁨의 눈물? 슬픔의 눈물?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웃자고 하는 소리죠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바야흐로 환난의 시대다. 때로 모순이 사람을 다채롭게 만든다고 하지만 근래는 이 도시의 살풍경이 차라리 공해 탓이기를 바라며 자꾸만 눈을 비비게 된다. 모순이라는 게 정말 다채로운가. 속 보이듯 뻔하고 두려움이나 연약함이라는 단어와도 별반 다르지 않던데.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 주인공 될 인물의 모순부터 파고든다는데, 우리들의 모순에는 일말의 흥미로움도 없다. 감출 생각도 없어 보이는 천연한 속내와 지나친 정직함. 정직에는 바를 정자가 들어가니 솔직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바르지도 곧지도 않은 말들이 넘실대는데, 저마다는 굽힐 생각도 없어 보인다. 내가 하는 말이 바른 말이고. 네가 하는 말은 틀린 말이면 그러면 세상에 틀린 말이라고는 하나도 없겠다. 그런 냉소에까지 가닿을 때쯤, 곧 깨닫는다. ‘그들’ 속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고. 


(중략)


〈말이야 바른 말이지〉의 이런 작업은 마치 사과 깎기 같다. 영화는 모순의 중심부에 직접적으로 칼날을 내꽂지 않고 곡선을 따라 교묘하게 칼날을 움직이지만, 각 에피소드가 끝나면 둘러친 허위가 벗겨져 맨살을 드러낸 사람들만 남아 있다.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스스로 훌렁훌렁 옷을 벗는 꼴이라 그게 벗겨져 가는 과정이 제법 웃긴데, 피식피식 웃고 있다 보면 뒷맛이 오묘하게 찝찝하다. 웃고 있기는 하지만 이 웃음이 도대체 내 안의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영화도 어쩌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말하고 싶은 바는 분명히 있지만, 돌려 말하면서,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라는 듯이. 그러니까 우리도 그냥 가벼운 농담이나 나누러 가자. 어차피 다 웃자고 하는 소리 아닌가?


인디즈 진연우

〈말이야 바른 말이지〉

감독 윤성호, 김소형, 박동훈, 최하나, 송현주, 한인미|69|극영화|전체관람가


누가 더 악덕한지 겨루는 기업 관리자들 
냥육권을 두고 다툼 중인 헤어진 동거 커플
태어날 손주의 본적에 이견이 있는 부녀
남성혐오 논란에 빠진 회사를 구해야 하는 팀장과 사원
블링블링 프러포즈 이벤트에 진심인 5년차 커플
서로 다른 새로운 마음을 알게 된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게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
뼈 때리는 현실, 뼈저리는 공감이 시작된다!

통통 튀는 말들과 지극히 사적인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하여

〈말이야 바른 말이지〉와 〈너와 극장에서〉

  

〈말이야 바른 말이지(2023)〉(이하 〈말바말〉)에 10분 정도의 짧은 영화 여섯 편이 있다면 〈너와 극장에서(2018)〉에는 20분에서 30분 가량의 단편 영화 세 편이 있다. 이 두 편의 옴니버스 영화 모두 서울독립영화제의 기획 아래서 탄생한 값진 결과다. 〈말바말〉이 속도감 있는 빠른 전환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고 “한 신, 한 장소,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하되 두 명만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점, 6시간의 촬영 시간, 제한된 스태프” 등의 제약 조건 아래서 탄생했다면, 〈너와 극장에서〉는 ‘극장’이라는 다소 범범하지만 자유로운 단어 아래서 유지영·정가영·김태진 세 명의 감독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런 만큼 〈말바말〉에서 다종다양한 감독들의 사회 문제를 풀어내는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대사의 말맛을 느낄 수 있었다면 〈너와 극장에서〉은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관객을 영화 앞으로 적극 데려다 놓는다. 그러니까 〈말바말〉의 힘이 조금 더 세상으로 뻗어나가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면, 〈너와 극장에서〉는 보다 내밀한 경험으로 향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너와 극장에서〉를 이루고 있는 세 편의 단편은 모두 극장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유지영 감독의 〈극장 쪽으로〉는 건물의 리셉션 데스크에서 일하는 선미가 우연히 극장에서 만나자는 쪽지를 보고 오오극장으로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선미가 잠깐 담배를 피러 나갔다 극장 주변 골목을 헤매는 장면이다. 골목길을 빙글빙글 돌다가 선미가 싫어하는 비행기 소리를 들으며 귀를 틀어막는 모습은 자취방에서 선미가 혼자 보던 공포영화 〈샤이닝〉의 분위기를 떠올리게도 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자꾸만 어긋나는 선미의 모습은 알고 보니 만나자는 쪽지가 영화관의 홍보용 쪽지였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정점을 찍는다. 
정가영 감독의 〈극장에서 한 생각.〉은 로맨스를 주로 찍던 영화감독 가영이 처음으로 〈극장 살인사건〉이라는 가상의 스릴러 영화를 찍고 난 후 GV를 하는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다소 공격적이고 무례한 질문들이 오고 가고 이태경 배우가 분한 정가영 감독은 개인사를 묻는 관객을 참다 못해 총으로 쏴 죽인다. 뒤에 삽입되는 실제 정가영 감독과 그와 스캔들이 난 유부남으로 추정되는 기자의 대화는 영화를 더 곱씹어 보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말바말〉의 마지막 에피소드 〈새로운 마음〉에 나오는 이태경 배우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는 에피소드다. 
앞서 본 단편들에서 장르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면 마지막 에피소드인 김태진 감독의 〈우리들의 낙원〉은 보다 서정적으로 시네필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2023년에 〈우리들의 낙원〉이 더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건 시네필들의 추억 속에 남은 종로의 서울극장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은정은 사라진 부하직원 민철을 찾아 이곳저곳을 수소문한다. 민철을 아는 지인들이 말해준 민철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장소는 ‘서울극장’. 영화 상영이 끝나고 들이닥친 지인들과 상사를 보고 민철은 도망간다. 하지만 곧 출납리스트를 넣어둔 가방이 극장 안에 있다는 걸 깨닫고 다시 들어간 은정과 민철은 상영을 시작해버린 스크린 앞에서 영화 속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저마다의 이유로 극장을 찾고 모두 다른 경로로 극장에 도달했을 개개인에게 개별적으로 가닿을 수 있는 영화이기에 〈너와 극장에서〉는 소중하다. 2023년에 도착한 〈말이야 바른 말이지〉를 흥미롭게 보았다면, 다소 시간 상의 거리는 있지만 2018년의 앤솔로지 영화 〈너와 극장에서〉를 〈말바말〉과 나란히 두고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디즈 김소정

〈너와 극장에서〉 

감독 유지영, 정가영, 김태진|79분|극영화|12세관람가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 우리 모두의 영화관이 되는 순간

“극장에서 만나자”는 쪽지에 기대를 안고 극장으로 향하는 ‘선미’와 영화감독 ‘가영’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관객과의 대화, 사라진 시네필 ‘민철’을 찾아 낙원으로 모여드는 사람들까지

각기 다른 이유로 찾아온 극장에서 우리가 가까워지는 시간들. 당신에게 극장은 어떤 곳인가요?


이중에 안 본 영화 있다? 없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에 참여한 여섯 감독님의 전작을 모아 모아 소개합니다. '나 그래도 왓X에 평점 등록 깨나 해봤다!' 싶은 구독자분들이시라면 🙋 아래의 작품들은 영화관에서, 영화제에서, 또는 집에서 한 번쯤 보셨을 것 같아요. 말바말 속에 담긴, 사회를 향한 냉철하고도 따뜻한 시선이 그대로 담긴 아래 영화들을 보시면, 어느덧 감독님들 저마다의 '말바말 유니버스'를 발견하게 될 수도? 🤔 (이 배우가 그 배우? 소곤소곤)
〈백역사〉
감독 윤성호│21분│극영화│2014

주말 잔업을 놓아두고 숙취 때문에 공장을 조퇴한 남자, 중국 만두집에서 일하는 여자. 무료한 주말, 극장 구경을 함께 하기로 하는데..
*옴니버스 영화 〈오늘 영화〉에 수록된 단편.
〈우리의 낮과 밤〉
감독 김소형│26분│극영화│2020

낮에 일하는 지영과 밤에 일하는 우철은 함께 살고 있다. 두 사람이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우철이 퇴근하고 온, 지영이 출근을 준비하는 아침 7시부터 8시 사이 딱 한 시간이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감독 박동훈│117분│극영화│2020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은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가는데, 수학을 포기한 고등학생 '한지우'를 만나 뜻하지 않은 삶의 전환점을 맞는다. 
〈애비규환〉
감독 최하나│108분│극영화│2020

임신을 하게 된 대학생 '토일'. 출산 후 5개년 계획까지 준비하며 결혼을 선언했지만 돌아온 것은 부모님의 호통과, 예비 아빠의 실종이다. 어색한 현아빠, 철없는 구아빠, 집 나간 예비 아빠까지 첩첩산중 설상가상 그야말로 '애비규환'.
〈어제 내린 비〉
감독 송현주│22분│극영화│2020

민조와 결혼을 앞둔 영환이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오줌을 싸는 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다.
〈만인의 연인〉
감독 한인미│130분│극영화│2021

엄마가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가고, 열여덟 유진은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기로 한다. 피자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유진은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나간다. 특히, 그는 사랑 앞에 거침없고 대담하다. 
오늘의 이야기가 재밌었다면, 구독페이지를 친구에게도 소개해주세요!
우리를 만나는 영화관, 인디스페이스
indie@indiespace.kr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176, 와이즈파크 8층 02-738-0366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