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 문제’가 와닿지 않는 진짜 이유 : 모르는 것을 슬퍼할 수 있는가

‘환경 문제’가 와닿지 않는 진짜 이유 : 모르는 것을 슬퍼할 수 있는가

Fall in love with nature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18), 2024.3.20,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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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물고기, 자연, 관찰, 감각, 환경 파괴

1.머리말

2.자연과 나의 연결 고리 : <자연에 이름 붙이기>

3.새의 노래를 악보에 담은 노인 : <야생 숲의 노트>

4.도시의 아마추어 ‘나비 사랑꾼’ : <나비 탐미기>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기후 위기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피해는 주로 저소득층, 노인등 취약계층에게 특히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는데요. 인간 뿐 아니라, 특히 기후 변화에 취약한 동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멸종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습니다(링크).

이런 소식들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착잡하고 숙연해지곤 합니다.

실제 중대한 문제고,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 이런 이야기를 심각한 표정으로 듣는 사람들조차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는 점입니다.

첫째,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잘 파악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들을 하는 사람들
둘째, 일단 문제가 꽤 중요한지는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와닿지는 않아서, 약간의 양심의 가책을 지닌 채로 관성대로 대체로 편리한 길을 좇는 사람들.

이중 어느 쪽이 압도적으로 많은지는 굳이 제가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짐작이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저 또한 첫째보다는, (첫째를 지향하는) 둘째에 가까운 편입니다.

<fig.1> 지난 6일 '60+기후행동'과 기후솔루션 회원들이 "노년층의 생명권에 대한 기본권 보호 의무를 저버렸다"며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습니다. 최근 기후위기에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중장년층을 뜻하는 '그레이 그린Grey Green' 추세가 세계적으로 퍼져가고 있습니다.(왼쪽·링크) 지난 2월 먹이를 찾지 못해 마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멸종위기종 산양의 모습. 날씨가 급격히 추워진 지난 겨울 강원 지역을 중심으로 산양의 사망이 평년의 18배 이상 큰폭으로 늘었다고 합니다.(링크1 링크2) /경향신문, 인제군

하지만 생각합니다.

애초에 우리가 그 소중함을 구체적으로 느껴보지 못한, 사랑해볼 기회조차 갖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해 애틋함을 갖는다는 것은 가능할까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자연’ ‘환경’은 어쩌면 교과서나 신문에 찍혀있는 딱딱한 글씨, 혹은 청정수역과 함께 등장하는 광고 캠페인 문구에 불과합니다.

노랗고 초록인 들판에서 어릴 적 맘껏 뛰놀아본 경험도 없고, 맨발로 물고기와 놀고, 손바닥만한 곤충에 쫓기고, 수십가지 새 소리에 멍하니 귀를 기울여본 경험도 없습니다. 설령 그런 것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에 귀 기울이고 응시하는 법을 배울 여유도 없었고, 그런 것들이 중요한 취급을 받지도 못했죠.

그렇다고 할 때 “환경을 보호하자”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케이크를 먹어본 적도 없이 관념으로만 배운 사람이 상상 속의 케이크를 지키려는 것처럼요.

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채 수많은 것들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잃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는 자연을 가깝게 느끼고 다시 그 소중함을 체감할 수 있게 될까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떻게하면 환경 보호를 의무감이 아닌 즐거움으로 여길 수 있을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자연에 이름붙이기>(캐럴 계숙 윤), <야생 숲의 노트>(시미언 피즈 체니), <나비 탐미기>(우밍이) 등을 지팡이 삼아 자연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자연과 나의 연결 고리 : <자연에 이름 붙이기>】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소개를 하는데 “제 취미는 자연 탐구(혹은 과학)입니다”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대단한 잘난척쟁이거나 괴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깜짝 놀랄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은 우리와 아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18~19세기 쯤엔 실제로 취미란에 ‘과학’을 적는 아마추어 자연 탐구가들이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실제로 과학에 굉장한 족적을 남기기도 했고요. 실제로 분류학의 시조인 칼 린나이우스(1707~1778)는 스물여덟살에 14페이지짜리 책(<자연의 체계>)을 내어 ‘분류 과학’을 창시했을 때 “겸손과는 심히 거리가 먼” 아마추어 자연 탐구가이자 백수였고, 찰스 다윈과 거의 동시에 진화론을 발견해서 다윈을 깜짝 놀라게 했던 무명의 젊은이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1823~1913) 역시 ‘아마추어 모험가’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때로 자연의 신비에 감히 풍 빠져들기도 하고, 또 거꾸로 과학계는 아마추어들의 발견에서 큰 영감을 받기도 했던 것이죠.

사람들은 멋대로 들판을 뛰어다녔고, 나비와 새를 만나고 자연에서 순수한 경이를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어쩌다보니(?) 과학자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오늘날 자연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것은 ‘전문가’들의 일일 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에 눈과 귀를 닫기 시작했습니다.

<fig.2>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쓴 생물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 캐럴 계숙 윤. (왼쪽) <자연에 이름 붙이기Naming Nature>의 영문판 표지. 영문판 부제인 '본능과 과학 사이의 균열'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압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Living On Earth, W. W. Norton & Company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쓴 분류학자이자 과학 저널리스트인 캐럴 계숙 윤은 이처럼 오늘날 자연, 과학과 대중이 멀어진 현실이야말로 자연 파괴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직접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신 모든 것을 전문가에게 맡기면서, 죄책감 없이 자연을 마구 파괴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오늘날 생명의 분류는 전문가들만 아는 난해하고 고립된 분야지만 한때는 훨씬 더 민주적인 일이었다 [...] 해야 할 분류 작업이 무엇이든 간에 전부 과학자들에게 맡겨버리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확실히 더 수월하겠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의 생명에게 눈길도 주지 않게 됐다 […] 야생의 자연 자체를 잃을 위험에 처해있다. 생명이 사라지고 있는데, 우리는 생명과 너무 심하게 단절된 탓에 그에 대해 무슨 행동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조차 어려워한다 [… ] 매년 플로리다 면적의 절반에 달하는 우림이 파괴되고 있다고? […] 생명의 세계는 우리와 너무 멀어졌고 너무나 무관해보인다.

-캐럴 계숙 윤, <자연에 이름 붙이기>(이하 동일)

제가 오늘 레터에서 이 책을 가져온 이유는, 우리가 ‘감각적으로’ 자연과 분리된 것이 어떻게 죄책감 없는 환경 파괴로 이어져왔는지 - 그 위험성을 이 책이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의 핵심은, 18세기 이후 오늘날까지 분류학의 역사를 짚으며 - 처음엔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자연 분류법이 어떻게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사람들의 삶, 직관과 동떨어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인데요.

18세기에 분류학이 처음 생겼을 땐 분명, 그야말로 ‘혁명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간 마구잡이로 관찰하고 뭉뚱그렸던 수많은 나비와 동물 등을 명료하게 분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지런한 서랍을 갖게 된 많은 아마추어 관찰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후 진화학, 분기학 등의 발달로 인해 21세기에 이런 ‘분류’는 일반인들의 상식으론 이해가 불가능한 지경이 되고 맙니다.

대표적인 예로 - 심지어 오늘날 분기학의 최신 분류에 따르면 ‘물고기(어류)’라는 종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이르죠. 물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한 종으로 묶는 건, 마치 단지 산에 산다는 이유로 사람과 다람쥐, 거미, 노루를 한 데 묶는 것이나 마찬가지랄까요.

분기학자들은 생명의 질서를 진화적으로 올바르게 밝혀내면 ‘어류fish’라는 분류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단언했다 […] 빨간 점이 있는 모든 동물을 또는 시끄러운 모든 포유류를 통합적인 단일 분류군으로 묶을 수 없듯이, 어류도 그런 단일 분류군이 아니라는 것이다 […] 전통적으로 어류라 불려온 모든 종을 자세히 들여다본 분기학자들은 그 물고기들을 온전한 하나의 분류군으로 뭉뚱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과학자들은 ‘물고기’를 우리에게서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fig.3> 칼 린나이우스가 출간해 '분류 과학'이라는 분야를 창시한 14쪽짜리 <Systema Nature> 초판(1735). 그의 분류는 일반인들이 보아도 명쾌하고 직관적이었습니다. (왼쪽) 룰루 밀러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캐럴 계숙 윤의 책을 언급하며, "물고기라는 종류가 존재하지 않았어! 유레카!"라고 무릎을 칩니다. 그런데 실은 윤은 물고기라는 종류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물음표가 떠올랐고, 그 어리둥절함에서 <자연에 이름붙이기>를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 Wikipedia, 곰출판

하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물고기라는 종류를 인식해온 것에 주목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물고기가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고 물고기과 함께 살고, 또 사랑했습니다.

캐럴 계숙 윤은 이런 종류의 본능적인 자연에 대한 감각을 ‘움벨트’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움벨트Umwelt = ‘환경’, ‘주변세계’를 뜻하는 독일어 단어

생물학자들에게 움벨트란 <지각된 세계>, 즉 한 동물이 감각으로 인지한 세계를 의미한다. 각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이다 […] 어류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기학자들의 선언은 단순히 분류학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난 혁명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선언은 과학이 움벨트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최종적으로 폐기하는 행위였다 […] 그 비극은 너무 많은 사람이 지독하고 극심하게 생명의 세계와 단절돼버린 아주 이상한 장소로 우리를 데려나 놓았다.

즉, 움벨트란 우리가 우리 주변 환경을 어떻게 느끼고, 우리가 어떤 영향을 주고 받고, 우리 주변의 것들과 사귀고 살아가는지를 통틀어 일컫는 ‘자연의 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예를 들어 쑥을 마트와 식탁에서만 보는 사람은, 쑥이 어디서 오는지, 우리가 플라스틱병을 아주 많이 쓰고 기후가 변화하는 게 쑥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등을 전혀 알 수가 없겠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움벨트의 중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모든 걸 전문가들이 ‘대신’ 해주니까요.

그 결과 우리는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하고 관찰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통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깡그리 모르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요.

저자에 따르면 이런 ‘자연과 나의 단절’이 바로 오늘날 자연 파괴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행 비둘기, 이스턴 엘크, 텍사스붉은 여우 […] 캘리포니아회색곰을 이 세상에서 몰아냈다. 이는 바로 우리 뒷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생명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이토록 방해받고 가로막히고 마비되어있다보니, 이 거대한 규모의 상실을 염려하는 것은 고사하고 느끼기조차 쉽지 않다.

물론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의 최전선의 성과를 모조리 휴지통에 버려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과학자들에게 모든 자연의 관찰을 떠맡긴 채 '움벨트'를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죠.1)

이는 우리가 우리 나름의 방식으로 자연에 관심을 갖고, 또 관찰하고 궁리하는 아마추어 ‘자연 해찰꾼’ ‘자연 탐구자’가 되는 것을 통해 가능합니다.

저는 이 책을 덮으며, 곰곰 생각했습니다.

움벨트, 즉 자연과 우리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은 어쩌면 - 통각이 사라진 사람과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요.

다쳐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아프지 않으니까 신나는 게 아닙니다. 아픔을 통해 우리는 우리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고 경각심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자연을 둘러싼 우리의 상황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1) "과학자들은 생명의 진화적 마디들을 따라 세계를 계속 조각해나가야 한다[…]그러나 나머지 우리로 말하자면, 우리는 그렇게 엄격한 시각을 견지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사실은 그러지 않는 편이 더 낫다[…]우리의 비전에 작은 생명을 다시 불어넣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은 물고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일단 생물들을 알아보기 시작하면[…]당신의 눈에 생물들의 형태와 자연의 질서가 보이기 시작한다."(<자연에 이름 붙이기> p.403)

【3.새의 노래를 악보에 담은 노인 : <야생 숲의 노트>】

캐럴 계숙 윤의 말처럼, 우리가 자연과의 연결고리를 되찾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의 무엇에, 어떻게 귀를 기울일 수 있을까요?

<야생 숲의 노트>(시미언 피즈 체니, 1892)는 아마추어가 어떻게 엉뚱하게 마음을 담아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흥미로운 기획입니다.

이 책을 쓴 시미언 피즈 체니는 19세기 미국의 시골 마을에 살며 평생 수십년간 성가대 지휘자, 성악 교사를 했던 숲과 새의 아마추어 애호가입니다.

그는 평생 숲의 가까이 살며 숲을 사랑했는데요.

그러던 어느날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시미언 피즈 체니는 문득 누구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꼭 악기로 연주하는 것만이 음악일까? 물 찬 양동이도, 새도 음악을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린 것이죠.

50년 동안 성악을 가르치면서 나는 사람들이 음악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돈도 거하게 지불하면서도 여전히 아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 ”자연에는 음악이 없다”라고! 쥐도, 두꺼비도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개구리들은 ‘수면 위에 음악’을 만든다. 우리 발등을 스치는 여름 잔디도 작은 음악가들로 가득하다 […] (그 중에서도) 새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훌륭한 예술가이며, 그들의 삶과 작품은 이 지구를 넘어선 수준이다. 그들은 우리를 알지 못하지만, 그들을 알게 된 것은 우리의 기쁨이다 […] 귀가 있는 자로 하여금 이 음악을 듣게 하라.

-시미언 피즈 체니, <야생 숲의 노트>(이하 동일)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는 새들이 많다면, 이 새들의 노래 역시 악보에 담아 여럿이 함께 부르며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는 수많은 새들 뿐 아니라 양동이에 물이 떨어지는 무생물의 소리에도 각기 나름의 ‘리듬’과 ‘음악’이 있다고 믿고, 몇 년에 걸쳐 각각의 새들의 노랫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악보에 옮겼습니다. 실제 이 조그맣고 단단한 책에는 수십종의 새들의 모습과 노래소리의 묘사, 악보가 재미나게 담겨있습니다.

<fig.4> 19세기 미국의 한 시골 마을에 살며 평생 성가대 지휘자이자 성악 교사로 일한 시미언 피즈 체니(1818~1890) (왼쪽) <야생 숲의 노트> 영문판 책 표지. 표지에는 나비가 그려져있지만, 이 책에는 그가 직접 청음한 새들의 노래 악보가 담겨있습니다. / Wikimedia

이 책은 ‘음악 바보’이자 ‘새 바보’인 저로서는 어떻게 읽을지를 궁리하는 것만으로도 꽤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독서였는데요2).

이 책에서 그 컨셉 자체 말고도 흥미로운 점은, 새들의 개성 및 귀 기울이기의 각별한 방식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채록은 ‘포켓몬 수집’같은 간편한 느낌은 아니고요, 낯선 존재를 향해 마음을 열어두고 기다리고 또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인상적입니다.

왜냐면 19세기에는, 당연하지만 유튜브도 간편한 녹음기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몇년을 기다려 어떤 새가 우는 것을 기다리기도 하고, 또 오늘은 다르게 울었는데 또 다른날엔 리듬이 달라진 새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 다양한 버전을 적어넣기도 하기 때문이죠.

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간이 짧고, 인근에 알려진 곳도 없었다. 또 긴 시간을 들여 운 좋게 새를 찾더라도 소리 내어 울지 않기도 하고, 울더라도 금방 날아가버리기 일쑤였다 […] 오늘 내는 소리와 내일 내는 소리가 확연히 다를 때도 있었다.

이 짧은 대목을 읽으면서는, 그의 기대감과 시무룩함이 고스란히 제게도 전해지는듯 했는데요.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버전의 악보가 담긴 새는 - 그 이름도 명가수다운 ‘노래참새’입니다.

노래참새는 그중 개체수가 가장 많고 노래도 가장 많이 하며, 들려주는 노래 또한 가장 다양하다. 얼마 전 작은 연못가에서 노래참새가 20분동안 네곡의 노래를 반복하며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 개체마다 소리의 질이나 크기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1885년 여름 나는 전에 없이 가장 강력하고 멋진 참새 소리를 거의 매일 들었다. 특히 떨리는 소리를 낼 때 깊고 풍부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것은 숲지빠귀의 황홀한 음색을 연상시켰다.
[…] 들참새와는 달리 사람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는 눈치다. 지난 여름 어느 날이었다. 습관처럼 창을 열고 그 옆에 앉았는데, 그리 멀지 않은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하고 있는 참새가 내 주의를 끌었다.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아서 이따금씩 휘파람을 불어 호응했다. 그러자 참새는 눈에 띄게 관심을 보이며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눈은 동그랗게 뜬 채 그 소리를 경청했다. 그 뒤로 여러날을 오후의 같은 시간에 찾아와 같은 장소에 앉아서 기분 좋은 노래를 여러곡 부르고는 내 휘파람 소리를 들었다.

저는 ‘노래참새 소리’ 유튜브를 틀어두고 이 대목을 여러번 읽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노래참새의 노래를 들으며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노래를 가만히 듣다보니 저도 언젠가, 의식하지 않은 새에 자주 들은 종류의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얼마나 많은 노래참새 혹은 다른 새들의 속삭임을 일상적으로 그저 흘려보낸 것일까요!

<fig.5> 많은 노래를 부르고 사람과 친근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노래참새의 모습(왼쪽) 노래참새의 노래를 사이먼 피즈 체니가 직접 악보로 채록한 것 가운데 일부입니다. 악보를 읽으실 수 있는 분이라면 한번 머릿 속으로 연주해보셔요. 노래참새 노랫소리를 담은 영상 링크도 참고로 남겨둡니다(영상) / 프란츠 제공

이 밖에도 이 책을 읽다보면 새들이 마치 각각의 개성을 담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져 재미가 있습니다.

일부 재밌는 대목을 발췌해보았습니다.

* 들참새field sparrow = 사교적이지는 않아서 들판이나 목초지, 수풀을 좋아한다[...]들참새는 확실히 훌륭한 가수이며 가진 레퍼토리도 다양할 것이다. 내가 들은 것은 짧은 노래 한 곡 뿐이지만 뛰어난 수준이었고, 작곡 면에서도 그랬다.(p.51)

* 북아메리카귀신소쩍새mottled owl = 조그마한 북아메리카귀신소쩍새는 올빼미 중 음악적 재능이 가장 뛰어난 듯하다. 사실 개성적인 측면에서 그의 위치는 독보적이며, 가수로 평가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울새의 타고난 흥도, 쌀먹이새의 장난스러움도, 꾀꼬리의 깨끗하고 맑은 기운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부드럽고 감미로운 감성으로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어딘가 수심이 어린듯 여리고 조용조용하며 울먹이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9월의 어느날, 새벽2시에 무언가 나를 깨웠다. 나는 바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1년 넘게 기다려온 소리를 제때 들을 수 있었다.(p.137)

* 큰나무딱새Wood Pewee = 큰나무딱새는 몇 안되는 음으로 아주 독특하게, 아주 엄숙하게, 아주 길게, 아주 느리게 미끄러지듯 노래한다. 그리고 경건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차이도 뚜렷하다. 그의 노래는 확실히 종교적이다[...]노래가 끝날 때 쯤에는 비웃던 사람조차 마지막 ‘아멘’을 함께 하게 만든다.(p.95)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고 귀를 기울이면서 그는 그 안에서 새들의 개성을 만나고, 그것을 악보로 남겨 독특한 만남의 결을 1세기 후의 우리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새의 소리를 단순히 배경음이 아닌 음악으로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는 새의 전문가라든지 과학자도 아니었지만, 우리에게 자연을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2)감상 방법 = 1) 피아노 앱이나 리코더 등으로 직접 연주하기 2)악보 스캐닝 연주 앱을 활용하기(palyscore2·링크 등) 3)유튜브에서 새의 영문 이름+sound,call,song 등을 검색해서 새 소리를 직접 들으며 악보와 책의 묘사를 읽기. / 만약 제가 연주를 잘 할 수 있다면 방법1이 도움이 되었겠지만 이 가운데서 개인적으로 꽤 도움이 되었던 방법은 3번이었습니다(이 책에 나온 대부분의 새들은 울음소리를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는데, 이런 아카이브 사이트를 활용해봐도 좋습니다·코넬랩 ), 적당히 상황에 따라 함께 활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4.도시의 아마추어 ‘나비 사랑꾼’ : <나비 탐미기>】

<야생 숲의 노트>만으로도 흥미로운 독서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런 콘크리트 도시에서 무슨 자연을 관찰하라는 거야?’

실은 저도 위의 책을 덮으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시미언 피즈 체니처럼 수십종의 새들이 지저귀는 것을 들을 수 있는 19세기의 미국 숲 속 오두막에 살지 않고, 대부분이 여백없이 둘러싸인 콘크리트벽에 둘러싸인 대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시민으로 살아가며, 자연에 주목하고 사랑하는 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준 작가가 있습니다.

대만 작가 우밍이가 쓴 <나비 탐미기> 역시 나비의 전문가도, 그림의 전문가도 아닌 ‘아마추어’ 작가가 나비를 ‘관찰(=탐미)’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낸 그림 에세이3)입니다.

위에도 간단히 소개했듯, 이 책이 흥미로운 부분은 19세기의 고즈넉한 미국 시골 숲에 살았던 시미언 피즈 체니와는 달리 콘크리트 숲 속인 대만의 타이베이라는 대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는 점이죠. 대부분의 우리들처럼요.

<fig.6> 2018년, 대만에서 최초로 맨부커상 후보작으로 오른 <도둑맞은 자전거>를 쓴 대만 작가 우밍이(링크). 그는 생태문학가로도 유명합니다. (왼쪽) 우밍이가 직접 나비를 관찰해 그림을 그리고 쓴 책 <나비 탐미기>의 표지. 왼쪽 아래의 그림은 책 본문에도 등장하는 ‘돌담무늬나비(p.109)’로, 성격이 썩 느긋하며 날개에 흑갈색 선무늬가 나있어 '지도 나비'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 김영사, 시루

그는 대도시의 아마추어 나비 사랑꾼으로서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첫째, 우리 주변엔 여전히 생물들이 많지만 대체로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모를 뿐이라는 점
둘째, 다만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도심 속 공간은 실제로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

1) 우선 저자는 도시에 살면서도 나비에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4)

특히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보험회사 영업사원인 친구가 곤충을 관찰하고 싶어하는 것을 저자가 도와준 에피소드를 인상적으로 읽었습니다.

친구가 자신도 예쁜 나비를 관찰하고 싶지만, 기껏해야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곤충이라곤 개미와 바퀴뿐이라고 한탄하자 우밍이는 아래와 같이 조언하죠.

“타이베이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볼 수 있는 곤충이라고는 바퀴벌레와 개미 뿐이잖아.” [...] ”이런 건 안해봤지? 위안산의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서 길옆의 숲으로 들어가봐. 운 좋은 날 아침에는 열 몇종의 나비를 만날 수도 있어.”
사실 우리는 사람을 마주하는 데는 익숙해도 다른 생명체를 마주하는 일은 서툴다. 그래서 바로 옆에 곤충이 있어도 그들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 설령 완벽한 도감을 가지고 있다 해도 대만에서 서식하는 곤충들 1만여 종의 서식지, 기후, 지형 등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 졸업 앨범을 들고 타이베에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찾는 격이다.
딱정벌레목 곤충을 만났을 때 두꺼운 도감을 꺼내 펼치면 해당 페이지를 찾기도 전에 시야에서 멀리 날아가버리거나 죽은 척하며 수풀 속으로 낙하해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 하물며 졸업 후 인간의 소비심리를 연구하는 데만 몰두해온 I.K는 어떻겠는가? 나는 말했다. “인파로 붐비는 지하철 역에서 사람들 틈에 끼어 있는 친구를 뒷모습만 보고 알아볼 수 있을까? 그건 그 친구와 얼마나 친한지에 달려있겠지. 그런데 말이야. 친구를 알아보는 건 아주 힘들지만 일단 한번 알아보고 나면 잘 잊히지 않아.”

-우밍이, <나비 탐미기>(이하 동일)

저는 이 ‘지하철 속 친구’의 절묘한 비유를 읽고 무릎을 쳤습니다.

실은 저는 심지어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도 눈치를 채는 경우가 적습니다. 이는 주변 환경은 커녕 사람들조차 제대로 관찰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각별한 관심을 쏟아야 비로소 우리의 시야에 들어옵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비의 눈높이’에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것이어야 하죠.

* 뱀눈나비는 나비 중에서도 내성적인 편에 속한다 […] 그들이 깜짝 놀라 날아오를 때는 추적레이더처럼 두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 뱀눈나비는 보통 멀리 날아가지 않고 시선이 닿는 곳에서 냉담하게 침입자와 대치한다. 그들에게 나는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명함도 건네지 않은 채 자신의 명상을 방해한 불청객이다. 나와 일정한 거리를 벌린 뒤 그들은 아직 퇴화하지 않은 네 다리로 천천히 몸을 돌리며 거대하고 심오한 겹눈에 꾸짖는 시선을 담아 나를 노려본다…

* 그녀들(대반검은별작은부전나비)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건 우리의 눈높이에서만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개를 조금만 들어 올려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면 3~5cm의 화려한 보석들을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2) 이어, 나비를 볼 수 있는 ‘장소’와 관련해섭니다.

저자는 도시에 살면서도 기본적으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나비를 관찰할 수 있는 곳곳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도시의 외딴 등산로,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숲 등을 유심히 관찰했기에 나비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절대적인 나비의 터전’ 자체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합니다.

나비들과 사귄 후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그들이 휴대용 스피커를 들고 또는 소풍을 즐기기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오는 나들이객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파란줄얼룩나비는 휴일이 되면 높이 날아다니고만 싶다고 내게 넋두리를 했고, 끝분홍나비는 야오둔파이구*를 파는 노점이 그들의 풍성한 식탁인 란타나 꽃밭을 짓눌러놓았다며 흥분했다. 또 제비나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날개에 그려진 오묘한 별 문양을 감추고 깊은 숲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 산길이 조금이라도 넓은 곳이면 어김없이 바닥에 시멘트를 바르고 대나무와 방수천으로 천막을 쳐놓고 장사를 한다.

* 야오둔파이구藥燉排骨 = 한약재를 넣고 끓인 대만의 돼지 갈비탕

우리가 나비에게 제대로 주목할 줄 모르고, 그들을 존중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과의 공존을 실패하고 있고 - 그들을 제대로 관찰하지 못하는 만큼 도시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쁜 일의 연쇄죠.

이 때문에 우밍이는 결과적으로 ‘나비를 존중하며 응시하는 것’이야말로 급진적인 자연 보호의 첫 걸음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면 그들을 알게 되고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그저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아마추어의 어설픈 ‘관찰’의 시도가 어떻게 환경 보호의 첫걸음이 될 수 있는지를 나지막하게, 하지만 힘 있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서점에서 늘 ‘곤충 서적’ 코너에 진열되었지만, 책 속에 실린 곤충 관련 지식은 너무도 알량했다. 또 야외를 돌아다니며 관찰하면 할수록 이 책 속의 내가 물가에 처음 나온 아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에 발도 담그지 못하고 물 밑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바위 꼭대기에서 물을 향해 풍덩 뛰어들지도 못한 채, 아이는 그저 물가의 물 위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옹송그리고 있다가 다리를 물속으로 살며시 넣는다. 그러다가 발가락이 바닥에 닿자마자 눈가에 눈물이 크렁크렁 맺혀서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여기 정말 예뻐요.”
[…] 생태문학은 그저 종이 위에 끼적이는 것으로 끝나는 문학이 아니다. 이것은 행동이다 […] 심지어 때로는 격정적인 행동이 되기도 한다 […] 문학이 스스로 몸을 태우지 못하고, 침을 튀겨가며 자연에 관심이 많다고 떠벌이고 환경 훼손을 비판하기만 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비열한 행동이다.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그릴 수 있다. 모든 탐색과 사색이 이 나비 날개들 위의 연필 선 하나하나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3)그는 이 책에서 자신이 ‘채집’ 대신 ‘그림’을 통해 나비를 사귀기로 한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이는 그 나름의 나비를 ‘대상’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나비라는 친구를 사귀는 과정입니다. 인상적이었던 한 대목을 짧게 옮겨봅니다. “차츰 거리를 좁힐 수 있도록 그의 묵인을 얻은 뒤에야 나는 쪽빛 성운같은 그의 물리비늘 날개를 몰래 훔쳐볼 수 있었다. 그것은 낯선 것을 차츰 받아들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제의 과정이었다. 나는 잠자리채를 사용하는 것이 일종의 게으름이라는 사실을 차츰 깨달았다. 다른 생명과 연애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일방적이고 거친 접근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잠자리채를 이용한다면 언젠가는 모든 나비의 이름을 줄줄 암송하는 경지에 다다르게 될지는 몰라도 그중 어떤 나비와도 진정으로 사귈 수는 없을 것이다..”(p.136)

4)대만은 ‘나비의 왕국’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한만큼 우리나라에 비해 나비가 많은 편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만(링크), 타이베이같은 대도시에선 다양한 나비를 보기 어려운 게 당연하겠죠. 물론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곤충들이 있는데요. ‘곤충 박사’ 정부희 교수에 따르면 대부분이 토종곤충이라고 합니다.(링크)

【5.맺음말】

<야생숲의 노트>와 <나비 탐미기>엔 어떠한 숫자도 그래프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 새를 사랑하는 이야기, 나비를 사랑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 책들은 그 어떤 캠페인 구호보다도 강렬하게, 주변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했습니다.

저는 이 책들을 읽고 나서 집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시무룩해진 나머지, 틈틈이 자꾸만 산책의 반경을 넓혀갔고 새로운 새와 곤충의 이야기들을 조금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콘크리트 도심 안에도 얼마든지 새로운 친구를 찾기 위해 길을 잃다보면 다른 얼굴과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장소가 더 적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그것이, 진심으로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캐럴 계숙 윤, 정지인 옮김, 『자연에 이름 붙이기』, 윌북, 2023.

-이 책은 룰루 밀러의 베스트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직접 읽으신 분이라면 제목이 눈에 익으실텐데요. 룰루 밀러가 자신의 책에서, 큰 영향을 받은 책으로 중요하게 언급,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물고기는...>을 읽었을 때부터, 곧바로 이 책을 읽고 싶어졌는데 미번역이라 단념했던 차에 곧 번역이 되어 즐겁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정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정반대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대략 말하자면, <물고기는...>에서 이 책의 핵심 포인트는 "물고기(어류)라는 분류가 존재하지 않았구나!"하는 데서 오는 쾌감인데 - <자연에 이름 붙이기>의 경우 오히려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역시 이상하다... 뭔가 좀 잘못됐어"라고 시무룩하게 말하는 게 핵심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역시 어떤 책에 영향을 받고, 또 인용하는 데는 독자의 '편견'이 깊게 작용하는구나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여튼, 과학자가 쓴 책인만큼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의외로 쉽게 읽히는 친절한 대중서이므로 관심이 있으신 분은 가볍게 한번쯤 펼쳐보셔도 좋을 책입니다.

시미언 피즈 체니, 남궁서희 옮김, 『야생 숲의 노트』, 프란츠, 2022.

-19세기를 살았던, 평생 성가대 지휘자이자 성악 교사로 살았던 아마추어 숲, 새 애호가 시미언 피즈 체니가 그의 나이 예순이 넘어서부터 죽을 때까지 진행한 '새 소리 악보로 만들기' 도감 프로젝트입니다(1892). 이 작고 단정한 책은 즐거움과 에너지, 경이로 가득합니다. 이 책은 파스칼 키냐르 등 많은 작가, 작곡가에게 영감을 준 책으로도 유명합니다.

이 책의 초반에는 심지어 생물 뿐 아니라, 무생물(양동이에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의 '음악'까지 담겨있는데요. 저자가 죽고 나서 이 책을 펴낸 기획자(아들)의 서문 몇페이지만 읽어도, 저자가 생전 얼마나 엉뚱하고 에너지 넘치는 삶을 살았는지가 생생하게 느껴졌고요. 이 가슬가슬한 표지를 지닌 고소한 냄새가 나는 작은 책을 여러날 가방에 넣고 다니며 아무데나 펼쳐보고 힘을 얻었습니다.

우밍이, 허유영 옮김, 『나비 탐미기』, 시루, 2016.

-대만의 생태소설가 우밍이가 쓴 '나비 탐미기'입니다. 실은 마음에 둔 다른 책을 찾으러 서가에 갔다가, 우연히 이 책에 마주치고는 책의 뒷면에 실린 딱 한 구절(작가 왕루이샹이 이 책을 소개한 구절)이 마음에 꽂혔습니다. "도감이 아닌 나비책". 책을 덮으면서는 이 책으로 저를 이끌어준 우연에 감사하게 되었고요.

이 책이 독특한 점은 - 왕루이샹이 절묘하게 짚어준 지점 외에도(‘도감 아닌 나비책’), 저자가 서울 저리가라 수준으로 엉망번잡한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 살면서 '나비 탐미가'로 활약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도심 안에서 어떻게든 나비가 있을만한 곳으로 이리저리 옮겨다니긴 하지만,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예를 들어 점심 산책코스를 바꾼다든지, 주말에 등산을 가본다든지) 낯선 자연의 세계에 마주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게 됩니다. 또한 저자는 나비를 채집하는 대신 나비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먹이를 함께 그려둔 점이 재밌습니다. 나비의 응시가 또한 대만의 근현대사와 연결되어, 약자들의 삶과 연결되는 통찰은 깊고 절묘합니다. 그는 조근조근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나비가 살기 어려운 도시는 과연 모두가 살기 좋은 도시인가.

하지만 꼭 인간의 문제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그는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비들을 지키기 위해 환경을 보전하는 데 진심을 기울입니다. 아마추어의 진지한 '나비 탐미'가 환경 보호와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시속 1km’의 속도로 새의 노래를 듣다

독서시간: 약 6분 / 글자수: 약 2800자

🖍글 속 한 문장

“새들이 소리를 가장 많이 지를 수 있는 시간”인 오전 5시쯤 ‘서울외새’는 강화 전등사로 길을 나섰다[...] 탐조의 원칙 중 하나는 ‘시속 1㎞’다. 오전 8시쯤부터 도장1리 마을회관 인근 야산에서 서울외새 팀은 천천히 움직이며 새들의 소리를 들었다. 느린 속도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새들이 놀라 도망가지 않는다. 이들과 함께 속도를 늦추고 귀를 기울이자 ‘새소리’의 향연이 펼쳐졌다. 찌르레기, 흰뺨검둥오리, 큰부리까마귀, 오색딱다구리 등의 새들은 저마다의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진아 대표는 “이렇게 천천히 가니 우리는 한 시간을 봐도 1㎞ 밖에 못 움직인다”고 말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24시간동안 가장 많은 종의 자연 상태의 새를 관찰해야 우승하는 강화빅버드레이스 과거 참관기입니다. 섬네일에 실린 똘망한 새 사진은 여름에 한국에서 번식을 하고 겨울은 중국 남부에서 나는 '되지빠귀'고요.
탐조를 할 땐 이렇게 아주 느리게 움직여야(시속1km이하) 한다는 사실을 저는 이 기사를 읽고서 처음알았는데요. 울창한 숲에서도 이렇게까지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여야 겨우 새들을 만날 수 있는데, 도시에서 이어폰을 꽂고 매번 앞만 보고 최고 속도로 뛰어다닐 때 새들을 만나기는 어려운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2014년부터 탐조를 시작한 동호인들도 2022년엔 새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자연의 변화만으로도 새의 개체수는 크게 차이가 납니다.

꼬마 조류학자와 일반인 환경 탐구가들

독서시간: 약 7분 / 글자수: 약 3300자

🖍글 속 한 문장

탐조는 대중의 과학화가 저절로 이루어지는 시간이자 공간이다. 자연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탐조는 낚시나 사냥과 비슷하지만, 미끼나 떡밥을 준비하는 번거로움도 없고, ‘관찰+기록’만 하므로 살아있는 생명을 잡는다는 죄책감도 없다. 탐조는 자연에 대한 예의와 존경을 필요로 한다[...]너무 화려한 옷은 새들의 눈에 띄고 경계심을 유발하기 때문에 탐조에서는 멋을 부리지 않는다 [...] 탐조는 자연보존과 생물다양성의 중요성에 대한 학습과 체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 특히 탐조에 참가한 어린이들은 새들을 관찰하면서 ‘꼬마 조류학자’가 되어 저절로 탄성을 지른다. 어린 아이들과 함께 탐조에 나가면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그들의 반짝이는 호기심은 강하고 진지하고 참으로 놀랍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탐조가들의 일상과 즐거움을 그려낸 지역언론의 기사입니다.

오늘, 독특한 책 두권을 읽으며 계속 저는 생각했습니다. '빙하가 녹고 있는 이 와중에' 새 한마리를 바라보자, 나비 한마리를 찾아보자...는 제안은 배부른 이야기일까요? 오히려 우밍이의 이야기를 보면, 아마추어 탐조가 아마추어 나비탐미가가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직접적인 '무언가'를 결심하게 되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잃는 것을 슬퍼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두 권의 책이 흥미로운 것은 이런 이야기를 거의 꺼내놓지 않으면서도 실은 온몸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0년 지켜온 숲, 하루에 사라질 수 있다

독서시간: 약 6분 / 글자수: 약 3100자

🖍글 속 한 문장

서울은 1990~2020년 숲이 34.89㎢(37.61%) 늘었다. 인천도 30년간 19.21㎢가 늘어나 숲 면적이 1.76배로 큰 폭 늘었다[...]평가 결과 한국의 숲은 전체적으로 더 건강해졌다[...]보고서는 “자연 손실을 최소화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녹지 계획을 수립하고, 도시 숲, 공원, 그린벨트 조성 사업을 통해 질적 손실을 상쇄해야 한다”며 “산림 자원의 양적, 질적 손실을 균형적으로 복원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은 "그린벨트 해제 기준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딱딱한 말로만 들어서는 그 여파가 잘 와닿지 않지만, 아주 작은 변화로도 생태계가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결코 경시할 일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이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인천 등 우리나라 국토 숲의 질이 30년간 꽤 개선돼왔기 때문입니다.

'개발'이 '자연'에 우선하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는 메콩강 역시 댐으로 인해 어종의 5분의 1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고 합니다(링크).

귀를 기울이면, 도시의 소리 풍경

독서시간: 약 4분 / 글자수: 약 2300자

🖍글 속 한 문장

사운드 스케이프(란) 사운드와 랜드스케이프의 합성어로, 직역하면 소리 풍경을 뜻한다[...]수지 이바라와 미셸 콥스는 얼음과 물의 소리를 담아 기후변화와 지구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한다[...]라지안 작가는 염천교 수제화거리의 10가지 소리를 담은 영상을 보여주며, 들은 것에 대한 소리 표현 기록하기를 제안한다. 아침 7시부터 9시까지를 담은 소리들은 기차, 셔터문, 가판대, 빗자루, 오토바이, 비닐봉투, 짐수레, 아침 작업, 종소리, 아침풍경 이렇게 10가지이며[...]우리 모두가 그 소리에 이름을 지어주자고, 그리고 기억하자고 이야기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야생 숲의 노트>를 읽으면서, 예전부터 한번쯤 꼭 다루어보고 싶었던 소재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도시의 '소음' 및 '노이즈 캔슬링'과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오늘날 도시 소음 스트레스가 심해서 노이즈 캔슬링 기술 및 ASMR(링크)은 날이 갈수록 진보하고 있고, 각자가 "두 개골 안에 갇힌(에밀리 톰프슨)" '사운드 유토피아'를 즐기고 있지만 - 실은 소리와 우리가 단절되는 것이 과연 긍정적일까? 하는 고민입니다.

'사운드 스케이프(소리 경관)'라는 개념을 처음 창시한 캐나다 작곡가 머레이 쉐이퍼(링크)에 의하면, 소리 경관은 우리 주변의 환경과 우리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요소로서 이것이 불쾌하다고 해서 무조건 끊어내고 도피하려는 것은 바른 방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우리 세계의 일부죠. 어쩌면 도시 버전의 '움벨트'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조금 알쏭달쏭합니다만, 언젠가는 조금 더 책을 읽어보며 생각이 정리되면 관련 주제를 다루어볼 일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난 회차의 반응

지난 회차(‘우리는 왜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자님들의 반응을 모아 소개합니다. 편지로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 버튼을 누르면 연구자님들의 반응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 회차의 반응 및 피드백

1.교보문고와의 협업으로, 교보문고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교보문고X인스피아 온라인 특별전(3/18~4/18)’을 진행 중입니다.(링크)

책의 출간 기념으로, 그간 제가 적었던 레터들 가운데 열편 정도를 모아 - 해당 회차에서 소개되었던, 제가 인상깊게 읽었던 책들을 모았습니다.

통상 온라인 서점 등의 이벤트 페이지에서 - 나온지 수 년 된 구간(舊刊) 양서가 다시 주목을 받게되는 경우는 적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독특한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번 둘러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예쁘게 만들어진 이벤트 페이지를 보다보니 새삼 인스피아도 참고문헌 DB 정리를 해야하는데...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1. 오늘 레터는 어떠셨나요? 아래 ‘💌편지보내기’ 버튼을 눌러서 오늘 레터에 대한 감상이나 질문 등을 보내주세요. 간단한 한줄 감상도 좋고, 연구자님이 떠올리신 독특한 해찰거리도 좋습니다 :) 레터를 통해서 보내주시는 작은 격려와 의견들이 레터를 쓰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흥미로운 해찰은 레터를 통해 함께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인스피아에서 차후 다뤄볼만한 주제나 좋은 콘텐츠 등의 추천도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

1.혹시 지난 회차 가운데서 '아, 이 회차에서 이 책(혹은 영화 등)을 다뤘었으면 좋았을텐데, 아깝다!'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지난 회차의 주제에 대한 책이라도 추천해주시면 검토 후 레터에서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간도 구간도 상관 없습니다. 회차명과 책 이름, 그리고 짤막한 추천 이유를 적어서 아래 '💌편지 보내기' 버튼을 통해 보내주세요. 지난 회차의 레터 내용은 아카이브 페이지(💬링크)를 참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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