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성의 도살장들 Slaughterhouses of Modernity>
“사진과 초월Photography and Beyond” 시리즈를 비롯한 건축 다큐멘터리로 잘 알려진 하인츠 에미히홀츠의 신작 <근대성의 도살장들>은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지적인 사유과 영화적 미학으로 충만한 작품이다. 볼리비아 엘알토 거리에서 출발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방 청사들과 아르헨티나 팜파스 지역의 도축장, 베를린의 성을 경유하며, 이 작품은 도시와 건축에 남아있는 근대의 이름 아래 전개된 식민과 학살의 흔적을 되짚는다. 20세기 서구의 가치들에 대한 신랄한 비평을 하고 있지만, 당시의 아카이브 자료나 증언 등에 기대지 않는다. 오히려 하인츠 에미히홀츠는 지금, 여기 존재하는 건물과 거리의 초상을 응시한다. 그 완고함의 결과물을 따라가며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보이스오버를 듣다 보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파시즘, 자본주의에 이르는 수많은 ’주의‘의 역사에 대한 독특한 통찰을 얻게 된다. 공간 그리고 역사를 다루는(rendering) 영화적 접근의 가장 훌륭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 라이프치히 다큐멘터리영화제 이후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는 화제작이다.
- DMZ Docs 프로그래머 강진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