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혈맹보다 강하지
Dec 13, 2022
아피스토의 풀-레터 vol.6
출입구 앞, 5년 묵은 몬스테라 델리시오사


🤟식물을 사랑하는 당신께

3년 전, 사무실에 동생 한 명이 놀러왔습니다. 물생활(열대어 키우기) 단톡방에서 만난 사이죠. 저보다 15년 손아래지만 물생활 구력은 저보다 한참 선배입니다. 이미 그는 중학교 때부터 구피를 번식해서 용돈을 벌었으니까요. 사무실 출입구에 서 있던 몬스테라를 처음 보더니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 이국적으로 생긴 식물 이름은 뭔가요?!"
"몬스테라라는 식물이야."

불과 5년 전만 해도 몬스테라는 낯선 식물이었습니다. 심지어 몬스테라를 구하기 힘들어서 몇몇 화원에서는 꽃꽂이 식물처럼 줄기만 잘라 팔았습니다. 뿌리도 없는 줄기를 물에 담궈 키우다보니 뿌리가 나오기는커녕 점점 썪어들어가 죽을 수밖에 없었죠. 판매자 역시 몬스테라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날, 그 친구는 사무실에서 몬스테라를 보고 간 후로 양재꽃시장과 수도권 일대 화원을 돌아다니며 몬스테라를 사모으더니, 지금은 몬스테라만 50여 종 가까이 콜렉션하는 ‘찐덕후’가 되었습니다. 같은 식물이어도 무늬에 따라 가치와 희소성이 다르다고 하는데, 이제 저는 식물의 무늬 색깔과 패턴만 보고는 도무지 구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사무실을 다녀간 뒤로 본격적으로 식물을 사모으기 시작한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정글처럼 우거진 비현실적인 공간을 보고 나름의 정글을 꿈꿨던 모양입니다. 급기야 식물을 업으로 하는 친구도 생겼죠. 대부분 10년 손아래 동생들입니다. 그런데 문득 저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 친구들은 비혼인지라 제가 괜히 미래의 배우자들에게 핀잔을 듣지 않을까 불안해진 거죠.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몬스테라를 모아오던 친구가 결혼을 한 겁니다. 몇 달 후 집들이에 초대 받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신혼집의 방 하나를 식물방으로 내주었더군요. 그 방 안에 비닐하우스까지 마련해놓았습니다. 분명 아기가 태어난다면 아기방으로 써야 할 공간이었죠. 그는 제수씨에게 저를 소개했습니다. 

“나를 식물 세계로 ‘인도’한 형님이야.”
“아, 그분?!”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이야. 제수씨와 저 사이에는 서로 의중을 알 수 없는 눈빛만 오고갈 뿐이었습니다. 이 불편한 침묵을 깨기 위해 제가 <글로스터의 홈가드닝 이야기>의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한정판으로 그린 몬스테라 알보 액자를 제수씨에게 선물했지요. 

“딱! 50점만 한정 판매하는 소장용 작품입니다. 특별한 분이니 제가 선물로 드리는 거예요. (부디 노여움을 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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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식물로 만난 동생들이 저를 ‘스승’이라고 소개할라치면 저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칩니다. 

“내가 한 거라곤 식물 키우는 법을 알려준 것 말고는 없어.”

사실이 그래요. 만약 취미의 세계에서 누군가의 스승이 된다면, 그것은 지식 너머의 문제일 겁니다. 이른바 리스펙트(respect, 존경)의 범주일 거란 이야기지요. 지식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스승이 될 리 만무합니다. 저보다 늦게 식물 취미를 시작한 동생들이 이제 저보다 더 많은 식물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사이 다들 몬스테라 전문가, 무늬식물 전문가, 고사리 전문가들이 되어 있으니까요. 우리는 남보다 먼저 지식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는 내세울 게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미 부족한 나의 지식은 20년 전부터 네이버지식iN이 해결해주고 있잖아요.

최근 ‘취미 동호회’가 ‘취향 공동체’로 진화하고 있는 것도 그 이유일 겁니다. 더 세밀하고, 더 극단적으로 서로 결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취향을 공유하는 것을 '취향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루(guru, 스승)'가 아닌 '크루(crew, 친구)'인지도 모르지요. ‘나와 같은 취향의 누군가가 또 있구나’ 하는 반가움이 우리를 외롭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식물을 함께 구경 갈 크루를 찾는다거나, 식물의 무늬를 공부하고 싶은 크루의 모임을 갖는 식으로 취향의 결을 맞춘다면 뭔가 신나는 일이 감자줄기처럼 줄줄이 딸려올 것만 같습니다.   

하버드대 교수인 토드 로즈는 '평균에서의 이탈'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정한 관점'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아이들이 남들과 ‘다른’ 사람으로 분류되면 학교생활에서 성공할 가망이 없어지고, 사다리의 낮은 곳에서 살아갈 운명에 놓일까봐 불안해한다. 상위권의 일류 학교에 들어가 높은 성적을 받지 않으면 들어가고 싶은 회사가 우리를 거들떠도 안 볼까봐 걱정한다. 성격 테스트에서 잘못 대답하면 원하는 일자리를 얻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한다. (...) 일차원적 사고, 본질주의적 사고, 규범적 사고의 장벽을 극복해낸다면, 또 사회의 조직들이 평균보다 개개인성을 소중히 여긴다면 개인의 기회가 더욱 증대되고 성공에 대한 생각도 바뀔 것이다. 평균에서의 이탈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정한 관점에서 성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 중에서

취향 공동체 역시 '나 스스로 정한 관점'을 공유하는 것 아닐까요. 내 취향을 더욱 뾰족하게 갈아서 공동체를 이룬다면, 남과 다른 길을 간다고 해도 불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유튜브를 통해 식물 이야기를 공유하고, 풀-레터로 식물 편지를 보내는 일 역시 나와 같은 결의 취향을 가진 식물 크루를 찾아나서는 행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피스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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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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