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를 허물고, 백선엽을 세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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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주적? 
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9.13. 수요일
독자님, 최근 동상과 관련해서 세상이 참 떠들썩했죠. 육군사관학교가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교내에서 철거하기로 하면서요.

오가며 일상적으로 동상을 만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동상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게 느껴집니다. 개인이 전직 대통령의 동상이 훼손했다는 소식은 종종 전해졌지만요.

저는 출근길에 회사 건너편 4·19혁명기념회관을 지나칩니다. 얼마 전 보니, 관련 단체들이 “4·19혁명은 아직도 독재자 이승만을 용서하지 않았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결사반대”라는 문구의 플래카드를 내걸었더라고요. 국가가 주도해 동상을 허물고 기념관을 건립하면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점선면은 동상과 기념을 주제로 했습니다. 동상은 동을 재질로 한 것뿐 아니라 모든 인물상을 통칭했습니다. 국방부를 출입하는 유새슬 기자,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 동상을 취재한 김찬호 기자와 함께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에 건립된 5명의 흉상. 왼쪽부터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육군사관학교 제공.
1. 허물어지는 동상

  • 지난달 25일,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 철거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이분들 중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던 사람도 있다”며 “공산 세력과 맞서 싸울 간부를 양성하는 육사에 공산주의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느냐,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야당은 물론 여천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등 독립운동 관련 단체, 각종 시민 단체는 철거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역사학계도 '검증, 공론화 없는 국방부 일방주의'라며 비판했고요. 여당에서도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시키려고 하는 것은 오버해도 너무 오버하는 것”이라는 등 반대 목소리가 나왔죠.

  • 많은 반대 속에서도 육사는 결국 홍범도 장군 흉상은 외부로 이전하고 지청천·이범석·김좌진 장군과 이회영 선생 흉상은 교정 내 다른 장소로 이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 세워지는 동상

  • 한편 국가보훈부와 육군본부는 약 두 달 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을 열었습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이 행사에 힘을 보탰습니다. 이달 말, 같은 크기의 이승만 전 대통령과 해리 S. 트루먼 미 전 대통령의 동상도 들어섰어요. 동상 설치에는 국민성금 3억5천만원, 보훈부 국비 1억5천만원 등 총 5억원이 들어갔습니다.

  • 보훈부는 이 시기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표현을 삭제했어요. 박 장관은 “친일 행위를 했다고 적으려면 반드시 기재해야만 한다는 법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냐”며 “사회주의 활동 이력은 그럼 왜 기록하지 않냐”고 했습니다. SNS에는 “대한민국을 구한 영웅에게 친일파 낙인을 찍어 모욕하는 것이 우리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대한민국의 모습은 아니”라고 쓰기도 했지요.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지난 7월 열린 백선엽 장군 동상 제막식 기념 사진. 박민식 보훈부 장관,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종섭 국방부 장관,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 ‘6·25 전쟁 영웅’으로 알려진 백 장군은 동시에 일본 만주군 소속으로 독립군 토벌에 참여해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아온 인물입니다. 그를 명예원수로 추대할지, 국립현충원에 안장할지 여부를 정할 때마다 논란이 일었습니다.

  • 보훈부는 이 전 대통령을 ‘건국대통령’으로 치켜세우며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입니다.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도 문을 열었어요.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SNS에서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은 이승만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발족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축하를 보냈습니다. 얼마 전 이 위원회는 범국민 모금 운동을 시작했는데, 30%는 세금으로 충당할 계획이에요.
국방부는 공산당 가입 이력 등을 이유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밖으로 이전하려 합니다. 보훈부는 백선엽 장군의 명예를 회복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 홍범도 흉상. 국방부는 이 흉상의 이전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김창길 기자.
1. 국방부는 혼자가 아니다

홍범도 흉상 철거는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조차 내년 총선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적극 호응하지 않고 있는데도요. 국방부는 왜 ‘무리수’를 두는 걸까요. 국방부·보훈부를 출입하는 유새슬 기자에게 물어봤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이승만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고, 보훈처를 부로 승격했습니다. 보훈부는 부로 승격되자마자 백선엽 장군의 안장 기록에서 친일파 문구를 삭제했고요. 육사도 ‘역사교육’ 측면에서 이번 조치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넘었는데요,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부터 차근차근 사관(史觀)을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을 언급한 것도 한두 달 새 이야기는 아니고, 계속 이념적으로 극단으로 가고 있는 걸 드러내 왔어요. 보훈부와 국방부가 안보와 역사를 담당하는 부서인만큼 앞장서야 하는 상황인 거겠죠. ‘윤석열 정부식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요."

국방부와 육사가 독단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라, 정부발 역사 전쟁에 총대를 메고 나선 것뿐이라는 말입니다. 윤 대통령은 이 이슈에 대해 국무회의에서 "어떻게 하자고 하진 않겠다. 다만 문제를 제기하고 한번 어떤 게 옳은 일인지 생각해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해요. 맥락상 이전하라는 지시와 다를 게 없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2.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로

현 정부는 홍 장군을 깎아내리고, 백선엽 장군을 높이면서 전 정부가 한 조치들을 정반대로 되돌리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 조치를 먼저 볼까요. 문 정부는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안장돼 있던 홍 장군의 유해를 서거 78년 만에 국내 봉환했습니다.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 중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수여하기도 했어요.
2021년 8월18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 하관된 홍범도 장군의 유해 위에 허토하고 있다. 연합뉴스.
육사가 홍 장군 흉상을 건립한 것도 전 정부 때입니다. 3·1운동 99주년을 맞아 군 장병들이 사용한 소총 탄피 300kg를 녹여 만들었죠. 육사는 백선엽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웹툰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기도 했습니다. 

현 정부 들어 육사는 홍 장군 흉상 철거를 기획하고, 유튜브 채널인 '국방TV'에서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 인생 풀스토리' 영상을 비공개 처리했습니다. 반면 백선엽 장군 웹툰은 다시 게재했죠.

육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 전통도 육사 교과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뒤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 학술대회를 여는 등 이례적 행보를 보였는데, 최근 이 역시 뒤집고 있습니다.

당시 대회에 참석한 육사 교수들은 "신흥무관학교 등의 무관학교들이 독립전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육사의 정신적 정통성의 연원으로 봐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어요. 지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육사 정신적 뿌리는 신흥무관학교인가, 아니면 국방경비사관학교인가*" 묻자 "국방경비사관학교로 보고 있다"고 답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입장과 대비됩니다.

*이회영 선생이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장교 양성기관이었습니다. 졸업생들은 의열단, 광복군 등에서 활동했으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핵심으로 활약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는 해방 이후 미군정이 설립한 학교입니다. 출신 장교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공적을 세웠습니다.


3. 이승만·트루먼 나란히 세운 이유

이번엔 다부동전적기념관으로 가보겠습니다. 김찬호 기자는 백선엽 장군, 이승만 전 대통령, 해리스 S 트루먼 미 전 대통령 동상이 서 있는 기념관을 취재했어요. 김 기자는 "이승만·트루먼 동상이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알고 보면 진풍경"이라고 말합니다. 이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의 사이가 좋았다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 대통령이 집권했을 당시, 한국이 계엄령을 선포하자 미국은 조기 해제를 촉구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내정 간섭이라며 분개했고요. 미국은 이승만 정부를 대신할 과도정부를 수립할 방안을 여러 차례 검토하기도 했죠. 일명 '이승만 제거계획'입니다.

김 기자는 기사에 "윤 대통령은 두 대통령을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 정치적 동반자로 여기는 모양새"라며 "트루먼과 이승만을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에 가깝다"고 썼습니다.
지난 7월27일 경북 칠곡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누가, 어떤 의도로 두 동상을 나란히 두었을까요. 김 기자는 이렇게 추측합니다. 


"동상을 제작한 건 조갑제씨가 대표로 있는 동상건립추진위원회입니다. 이들이 이승만과 트루먼의 관계를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 정치사, 외교사 등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추측해 보면, 6·25 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강조하고 싶은데 이 업적이란 게 미국을 참전시키고 원조를 끌어낸 것에 있다보니 당시 미 대통령과 엮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한미가 함께 전쟁을 이겨낸 동맹관계라는 점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여요.


제가 일련의 역사논쟁을 취재하면서 느끼는 점은 이 정부는 '역사적 사실', '진실' 등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100년 전 역사를 100년 후 관점으로 평가하면서 기본적인 사실관계, 용어조차 틀리게 설명하는 실정입니다. 사실관계 좀 틀리고, 해석이 어색해도 우리가 필요하면 역사를 마음대로 찢고 붙여 재해석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아 우려스럽습니다. 역사를 오직 정치적 유불리의 관점에서 본다는 점에서 이승만 기념관, 백선엽 동상, 홍범도 흉상 철거 등은 같은 맥락에 있다고 봅니다."



4. 대통령발 '국가정체성' 투쟁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칼럼을 통해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은 결국 역사논쟁이 아니라 역사를 재료로 삼은 정치투쟁"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치에 맞지 않고, 역사적 사실이 엄밀하지 않아도 국방부와 보훈부가 결정을 밀어붙일 수 있는 배경에는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과의 대결을 천명하는 대통령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자유총연맹 행사에 참석해 “조직적으로 지속적으로 허위 선동과 조작, 그리고 가짜 뉴스와 괴담으로 자유대한민국을 흔들고 위협하며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왜곡된 역사의식, 무책임한 국가관을 가진 반국가세력들이 핵무장을 고도화하는 북한 공산집단에 대해서 유엔 안보리 제재를 풀어달라고 읍소한다”는 등 이전 정부와 야당을 겨냥한 발언을 했습니다.


특히 지난달 다른 분야보다 국방·보훈 관련 공개 일정을 월등히 많이 소화했는데, 행사에서 발언할 때마다 '공산전체주의'를 언급하며 국가정체성 확립을 강조했어요.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이 활개 치고 있다"고 했고, 을지국무회의에서는 "반국가세력들을 활용한 선전선동"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홍범도 흉상을 내리고, 이승만·트루먼 동상을 세우는 역사전쟁은 윤 대통령의 메시지와 일맥상통합니다. 국가정체성을 반공주의에서 찾으면서 정부와 반대되는 움직임은 '공산집단' '반국가세력'으로 손쉽게 매도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받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와의 대결을 강조하며 국가정체성을 확립하려는 가운데, 국방부와 보훈부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1. 동상, 위로부터의 미술

지난주 점선면 예고를 통해 동상에 대한 독자님의 경험과 생각을 여쭤봤어요. 답변해주신 독자님의 3분의 1은 '동상을 일상적으로 마주친다'고 하셨고, 3분의 2는 '자주 보는 건 아니지만 본 적 있다'고 답하셨습니다. 우리는 유적지에서, 학교에서, 공원에서, 도심 곳곳에서 동상을 봅니다.

독자님들께 동상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도 질문했습니다. "볼 때마다 역사를 상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위인의 업적을 기릴 수 있다" "어떤 인물이든 간에 위압감이 전해진다" "민족 자존감과 국가 정체성을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웅장한 느낌" 등으로 답해주셨습니다. 높이 서 있는 동상을 보며 역사와 국가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추상적인 감정이나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는 분은 없었고요.

미술관에 있는 조각상과 같은 조형물임에도 거리에 있는 거대한 동상을 '예술작품'으로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윤범도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월간미술>에서 "거대한 규모에 영웅 같은 위압적인 자세와 상투적인 표현방법"을 반복한다며 한국 동상의 형식을 지적합니다. 미술사학자인 조은정 고려대 초빙교수는 "동상은 정치적 도구이자 심리적 억압의 도구로 작동한 적 있으므로 당연히 그 조형적 언어는 한정됐다"고 이유를 찾습니다.

조 교수는 책 <동상-한국 근현대 인체조각의 존재방식>에서 한국 동상의 역사를 망라하며 이렇게 썼습니다.

"기억해야 할 일, 존경해야 할 인물에 대한 동상 제작은 그 시대의 관념이다. 지배자의 권력을 수호하기 위해서이든, 학교를 건립한 이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든 동상은 인간의 형태를 통해 시대의 생각을 기록한다."

역사적 인물을 '불멸의 신체'로 소환한 동상은 건립 시기 국가와 사회가 표현하고 싶은 이데올로기를 보여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일상 공간, 상징적 공간 등 공공의 공간에 배치돼 관찰자로 하여금 경외감을 주고 민족적 동질성과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2. 누구에게 '불멸의 신체'를 줄 것인가

정부가 주도해 동상을 건립하고 철거하는 건 오늘만의 일은 아니에요. 이하연·김영호 논문 <이승만 집권기와 박정희 집권기의 동상 비교 연구>(2018)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세워져 있는 많은 동상은 근대동상이 시작되었던 1950년대, 그리고 국가적인 정책으로 애국선열의 동상을 제작했던 1960~70년대에 건립됐습니다. 그 이전인 일제강점기 때 세워졌던 수많은 동상은 태평양전쟁 때 금속 공출로 거의 다 사라졌고요.

어떤 인물의 동상을 만들지는 국가권력의 지향점에 따라 달라졌습니다이승만 대통령은 이순신 장군, 서양 장군들과 본인의 동상을 주로 세웠습니다. 가장 먼저 세운 건 경남 진해의 이순신 동상이에요. 위의 논문은 역사학자 서중석을 인용해 "민중들이 지닌 강렬한 반일감정을 이용하여 자신의 권력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고 분석합니다.
그래픽: 김규연 디자이너. 출처: 이하연·김영호 <이승만 집권기와 박정희 집권기의 동상 비교 연구>(2018)·조은정 <동상-한국 근현대 인체조각의 존재방식>(2016).
이 밖에도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서양 장군들과 본인의 동상을 곳곳에 세웠습니다. 반공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본인을 우상화·신격화하려는 의도였다고 해석됩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기 동상은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를 중심으로 제작됐습니다. 그중 현재에도 광화문에 서있는 이순신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헌납했어요. 이 자리에는 원래 4·19 기념탑을 세우기로 돼있었지만, 5·16 군사정변 이후 기념탑은 국립4·19민주묘지로 밀려나며 동상에 자리를 내줬죠.

박정희 대통령은 본인의 동상을 건립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을지문덕, 김유신, 세종대왕 등 전통적 인물을 내세웠지요. 논문은 박정희 대통령이 초기에는 "충무공을 통해 자신의 친일적 이미지를 상쇄하고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했으며 이후에는 세종대왕 동상을 세우는 등 "성군 이미지를 선택하면서 지도자상에 변화를 주었다"고 해석합니다.

기념탑, 기념비, 동상은 모두 국가가 이념을 가시화해 공개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목적을 가진 조형물입니다. 정호기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기념조형물은 탑과 비에서부터 대규모 건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형태의 차이는 있으나, 체제를 막론하고 국가주의적 정체성과 통합을 위해 선호됐다. 전쟁은 이런 경향을 더욱 촉진시켰다. 전쟁 기념물들은 외적으로는 통치와 지배의 주권을 표상했고, 내적으로는 기념물의 담론에 반대하는 세력을 제거하거나 이견 표출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고 말합니다. 

국가주의와 파시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조지 L 모스는 저서 <대중의 국민화>에서 "일반적으로 국가와 사회가 폐쇄적이고 획일화돼 있을 때 혹은 일체화된 통합성이 요구될 때, 국가의 숭배 의식 및 공공제전과 기념조형물의 건립에 관심을 기울이는 경향이 있다. 극단적 파시즘 체제였던 나치즘은 이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한 대표적 사례"라고 했습니다. 현 정부는 기념물과 기념시설에 천착하며 과거 권위주의 정부, 파시즘 국가들이 자행했던 통치방식을 재연하고 있습니다.


3. '다른 동상'에 대한 상상
2017년 세계여성의날을 하루 앞두고 미국 월스트리트 황소상 앞에 '겁 없는 소녀' 동상이 세워졌다. AP연합뉴스.
동상이라고 꼭 웅장한 모습으로 발 밑을 내려다봐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권위적인 모습으로 획일화됐던 동상의 모습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어요. 1980년대 제작된 서울 삼청공원의 염상섭 동상은 벤치에 앉아있고, 강원 양구의 박수근 동상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미술관을 나서는 관람객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익명의 동상들도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은 특정인으로 대표되지 않지요. 소녀상은 130cm 높이에서 바라보는 이와 눈을 맞춥니다. 2017년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는 거대한 황소 동상 앞에 당당히 맞서는 '겁 없는 소녀'상이 설치돼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기도 했어요. 발밑에 "여성의 리더십 파워를 알아라. 그것이 차이를 만든다"고 쓰여 있는 소녀상은 젠더 차별에 맞서는 여성의 힘, 용기를 보여주기 위해 제작됐습니다.


4. 영웅 대신 필요한 것

반기문 유엔 전 사무총장의 동상을 그의 고향 등에서 세우려 했을 때, 법인 스님은 칼럼에서 "제왕적 권위를 자랑하던 레닌, 스탈린, 후세인, 차우셰스쿠의 동상은 일시에 무너졌다. 무너지는 것들이 어찌 동상뿐이겠는가. 한 시대가 조작하고 세뇌한 낡은 권위주의와 함께 맹목적 추종과 의존의 표상인 우상도 함께 무너질 것"이라며 동상을 통한 우상숭배를 배격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국가가 나서 소수를 숭배·우상화하는 기념시설을 만드는 대신, 시민 사회가 주도해 대중의 삶이 녹아있는 기념물과 시설을 꾸미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는 저서 <기념의 미래>에 "경직된 기념문화, 왜소한 기념문화, 뿌리 없는 기념문화, 배타적 기념문화, 폐쇄적인 기념문화가 문제"라며 "국가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책임 표정과 제도적 장치의 마련, 기념의 공적 기구들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만드는 재정의 안정적인 조달뿐이다. 그 외의 영역은 시민사회의 몫"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석기시대적, 남성중심적, 규모지향적, 국가주도적" 기념문화를 벗어나는 방법은 '예술'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옆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정원식 기자.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둑 위 신발들'. @Mika on Unsplash.
최 교수가 독일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시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 강둑, 미국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의 벽 등 세계의 기념시설을 방문했습니다. 모두 특정인을 숭상하지 않고, 과거사를 반성하거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그는 문화적 감성과 상상력이 자리할 때 기념문화가 폭넓어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탄력성과 융통성 넘치는 기념문화가 예술가들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기획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기념의 난장' '아래로부터의 기념'입니다.

앞서 소개한 정호기 교수는 "사람들을 억지로 동원해서 진행되는 국가 주도의 기념"대신 "우리의 시설이고, 내 땀이 들어가고 우리가 공유하고 토론하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공원처럼 나무도 많이 심고 의자도 많이 놓고, 일상적으로 들러 역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안했어요.

1956년 탑골공원에 세워진 25m 높이의 이승만 대통령 동상은 4·19 혁명 때 시위대에 의해 끌고 다녀졌습니다. 민주화항쟁 때는 친일파 동상들이 파괴됐고, 촛불시위 정국 때 박정희 대통령 동상은 기념관 창고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숭배해야 한다'는 하나의 의미만을 가진 동상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민족을 넘어 누구나 방문하는, 시대를 초월해 스러지지 않을 기념시설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1950~70년대 우후죽순 만들어진 동상들은 '우상화' '획일화' '국가주의'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최근 다양한 형태의 동상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아래로부터의 기념문화'를 제안합니다.
☑️ 국방부와 보훈부를 필두로 정부는 동상을 철거하고 건립하며 국가 주도로 역사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 거대한 규모, 위압적인 자세의 동상은 역사적으로 폐쇄적이고 획일화된 정체성을 강조하는 국가에서 활용됐으며, '우상화' '사자숭배'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 전문가들은 시민사회가 주도한, 대중의 삶이 녹아있는 기념물과 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홍범도 장군 관련 역사와 평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습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홍범도 연구 권위자인 반병률 명예교수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김찬호 기자가 자유시 참변, 공산당 가입 이력 등을 둘러싼 논쟁에 관해 자세히 물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많은 동상이 세워지고 다시 무너졌습니다. 위의 사진은 미군의 이라크 점령 뒤 철거되는 후세인 동상입니다. 기사는 세계 곳곳 동상의 흥망을 살펴봅니다. "영웅 동상으로 국민을 세뇌하는 시대에서 피해자를 기리고 과오를 되새기는 시대로"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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