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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에디터 Friday입니다.

얼마 전 엄마의 생일이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알아서 행복하길 빌었어요. 죄책감과 후련함이 동시에 느껴졌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죄책감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내가 나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글까지 쓰게 되었으니까요.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나, 빌런이 될 수 있다?! 오늘은 왜 엄마와 딸이 빌런이 되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주의! 스포가 매우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처: Unsplash 
👋 오늘의 에디터 : Friday
이야기 중독자. 드라마와 영화와 책, 그리고 사람 없으면 못 사는 사람.
오늘의 이야기
1. 왜 여성 빌런은 모성에 집착하나
2. 완다 막시모프가 스칼렛 위치가 된 이유
3. 엄마가 된 딸, 원상아

💣 왜 여성 빌런은 모성에 집착하나

출처 : Reddit

기억 속에 히어로물은 보통 아버지와의 갈등 혹은 결핍으로 외롭던 한 소년이 성장해, 결국은 아버지의 존재를 뛰어넘게 되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홀로 있는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파괴된 가정을 일으켜야 한다는 강박이었는지, 혹은 아버지의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인지 결국 소년은 멋진 주인공이 됩니다. 아버지와 대적하는 아들 서사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많습니다. 농경의 신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에게 왕위를 빼앗고 도망가던 아버지의 생식기를 잘라내죠.


그런데 이 크로노스도 자식들에게 배신당할 것이라는 저주를 받고 자식들을 삼키다가, 살아남은 아들인 제우스에게 축출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오이디푸스 증후군’의 오이디푸스 역시 아버지 라이오스 왕과 싸우고 어머니 이오카스테 왕비와 결혼해 왕이 되는 (불행한) 신화죠.


클래식이 된 영화 <스타워즈>도 부자간의 대립이 주요 서사입니다. 루크 스카이워커와의 대립에서 다스 베이더(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사실은 “내가 네 아빠야”라고 말한다거나, 다스 베이더 본인도 아버지처럼 따랐던 스승인 오비완 케노비와 경쟁 관계였다거나…. 좀 더 가까운 우리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도 냉소적이고 계산적인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에게 애증관계지만 토니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게 도와주죠.

아버지와 아들의 문제는 대립과 극복으로 승화되는 형태가 적지 않았는데, 왜 어머니와 딸의 문제는 딸의 흑화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많을까요? 애초에 구심력있는 여성 히어로 무비가 많이 없었던 것이 편협한 주장에 힘을 싣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요즘 눈에 띄는건 ‘여성 빌런’이었습니다.

👿 완다 막시모프가 스칼렛 위치가 된 이유

출처 : Disney plus

눈물 없인 볼 수 없었던 완다 막시모프의 솔로무비 아니 드라마, 마블의 <완다 비전>을 아시나요. 완다는 원래 착했습니다. 소코비아에서 태어난 완다는 가족과 시트콤을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전쟁 중에 부모님을 잃습니다. 살아남은 오빠 피에트로와 하이드라에서 염력과 초능력을 얻고 어벤져스에 합류합니다.


그러다 닥친 두번째 시련. 울트론 전쟁에서 유일한 가족, 오빠를 잃죠. 힘들어하던 와중에 비전을 만납니다.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꾸리고 살고 싶었던 완다, 그러나 그 꿈마저 타노스가 짓밟습니다. 비전의 이마에 박혀있던 ‘마인드 스톤’이 타노스의 손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완다는 오열하며 제 손으로 비전을 죽였지만, 애닳는 노력을 비웃듯 타노스가 죽은 비전을 살려내 스톤을 빼앗습니다.


연인의 죽음을 두 번이나 겪은 스칼렛. 세번째 시련입니다. 그리고 드라마 <완다 비전>은 그 이후 또 다른 궁극의 비극을 그려냅니다. 지치고 외로운 완다는 ‘웨스트뷰’라는 시골 마을 전체를 초능력으로 통제해 비전과 살고 싶었던, 세상을 만듭니다. 바로 비전과 결혼해 아이들을 낳고 사는 삶이죠. 그 마을에서 완다는 안온하고 행복합니다. 그러다 완다가 행복을 초능력으로 만들면서 조종당했던 주민들을 구하기 위한 소드 요원의 설득으로, 완다는 결국 달콤했던 꿈도, 남편도 아이들도 다 포기합니다.


개과천선해서 잘 지내고 있나 했더니, 우리 가여운 완다는 매일 밤 아이들과 남편 꿈을 꾸고 외로움과 공허함에 몸부름치다 결국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갑니다. 그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닥터 스트레인지2 : 대혼돈의 멀티버스>입니다. 봉인 해제된 강력한 마녀, ‘스칼렛 위치’가 되고 저주받은 책 ‘다크홀드’를 이용해 다중 우주 중 실제로 아이들을 낳고 살고 있는 다른 완다의 삶을 빼앗으려 하죠.

출처 : Disney plus

기구한 완다의 사연이 가슴 아팠지만, 사실 아쉬웠습니다. 세상을 반토막냈던 타노스 급으로 강력한 ‘스칼렛 위치’가 ‘아이들’을 갖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그렇게 강해지고, 또 사악해지며,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이들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엄마’여서요. 엄마는 위대하다, 마치 경구와도 같은 그 신화를 입혀버린 것이 제게는 납작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자식은 소중하고 지키고 싶지만, 남의 자식은 납치해 죽이려고 하는 그 삐뚤어진 마음이 ‘엄마’라는 이유로 정당화된다는 것이 어쩌면 현실적이지만 서사로는 새롭지 않았죠.

👗 엄마가 된 딸, 원상아

출처 : tvN

여기 또 다른 엄마가 있습니다. 이 여성은 딸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방영했던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엄지원 배우가 분한 ‘원상아’입니다. 드라마는 오인주(김고은), 오인경(남지현), 오인혜(박지후) 세 자매가 갑자기 나타난 700억을 가지고 욕망하고 갈등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그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남편인 국회의원 박재상이 각종 살인과 비리를 저지르는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최종빌런은 원상아였고 상아가 연출한 연극 속 캐릭터에 불과했죠. 드라마는 그렇게 여성 빌런을 내세워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순수악을 그리는 듯 했으나… 역시나 그도 엄마가 문제였고, 자신의 딸에겐 한없이 다정한 엄마였습니다.

극중 원상아는 한 마디로, 사람 죽이는 아빠와 갇혀서 죽은 엄마의 딸입니다.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아버지, 원기선 장군은 ‘푸른 난초’를 중심으로 한 비밀 조직 ‘정란회’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히고 걸리적거리는 인간들은 모조리 죽입니다. 그 악행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그 사실을 폭로하겠다 다투다가 ‘닫힌 방’에 갇힙니다. 무려 2000일 넘게 감금당하면서 상아는 엄마가 한 번만이라도 아빠에게 용서를 구했더라면, 살 수 있었을 거라고 엄마를 비난합니다. 어린 딸이었던 자신에게 엄마의 부재는 너무도 괴롭고 고통스러웠다구요.

하지만 정말로 상아가 ‘미쳐버린’ 건 사실은 어린 상아가 엄마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엄마를 설득하려다 실랑이를 벌이던 상아는 엄마를 밀치고 엄마는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다쳐 피를 흘립니다. 무서웠던 상아는 뒷걸음질치고 엄마는 상아에게 괜찮을 거라고, 한밤 지나면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키고 가라고 하죠. 그리고 ‘도망가’라는 피로 쓴 글을 남기고 스스로 목을 멥니다. 그때부터 상아는 그 ‘닫힌 방’에 갇힙니다. 정신적으로, 영원히. 그리고 그 방을 예술과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 살인 연극을 벌이죠. 상아는 엄마를 죽인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만든 엄마를 용서할 수 없어서 미쳐버립니다.

출처 : tvN

그냥 계속 나쁘고 강한 캐릭터였다면 더 강렬했을텐데, 드라마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상아의 약함이 드러납니다.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화영(추자현)을 납치한 상아가 한때 친구 역할을 했던 화영에게 대화를 시도하죠.

상아 : 솔직히 모르겠어.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나한테?

화영 : 우리 엄마 죽었을때, 싱가폴 다녀오랬지?

상아 : 어쩔 수 없었잖아. 그해 골드메달리스트는 21세기 최고의 난초라고들 했는데.

화영 : 돌아오는 길에 한마디도 안 했더니 니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해?

       “산 사람은 살아야지. 자기, 엄마랑 많이 친했어?”

상아 : (웃으며) 내가 그랬어?

화영 :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난 그 말이 너무 싫었어.

       암튼 그때였어. 엄마랑 얼마나 친했는지 보여주겠다고 마음 먹은거.

       내가 막 나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한 번 보라고.

그러다가 화영을 구하러 온 인주가 몰아붙이자 몸만 자랐지 어린애였던 상아가 나타납니다.

인주 : 당신은 엄마가 죽기 전까지 같이 있었어.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려고 한거야.         엄마가 아직 죽기 전 그 짧은 순간. 사고였지? 죽을만큼 슬펐어?
       아니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괴물이 될 수…
상아 : 엄마가 나쁜거야! 엄마가 돌아오길 바란 것 뿐인데…
(화영에게) 너는 엄마가 돌아가신게 그렇게 슬펐니? 네 손으로 죽인 것도 아닌데
             그렇게 화가 났어?
상아의 악행은 정당화될 수 없고 동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연민은 느껴졌습니다. 불행한 부모 밑에서 자란 불행한 아이는 빌런이 된다,는 납작한 서사로 소비되는게 안타깝거든요. 종종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난 선인이 주인공이고, 부유하지만 불화가 있는 조연이 악인이 되죠. 사랑빼고 다 가진 조연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밝고 사랑받는 주인공을 질투하면서 악역이 됩니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은 악인 서사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쓰이지만, 엄마와 친하지 않은 저는 가족에 대한 결핍을 가진 악인이 가여울 때가 있습니다. 악에 바친 그들의 설움을 이해해요.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나 꼿꼿하고, 밝고, 구김 없는 주인공에 대한 열등감을 이해합니다. 피해의식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악행은 절대 정당화할 수 없지만, 서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이제 가족은 그만 건드렸으면 좋겠어요. 엄마/아빠에 대한 컴플렉스로 범행을 저지르는거 말고, ‘순수악’이거나 여러 층위의 동기를 그려줬으면 좋겠습니다.

‘범죄를 저지를 이유’를 찾을 때 개인의 고통을 갖다대는게 제일 쉬운 일이겠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나요? 고통은 다양하고, 또 다양해져야만 한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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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1차 예고편

에디터 <Friday>의 코멘트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주인공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그 이야기가 극의 중심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좋았던 건, 이기적인데다가 변덕스럽고 공허한 사람인 율리에가 억지로 행복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이 만약 뿌린대로 거둔다고 생각한다면 쓸쓸해보이겠지만, 우리네 인생도 원래 그렇게 순결하지만은 않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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