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악서총람』 출간 후 한 달 뒤쯤 항의(?)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본문 글자가 자꾸 위로 올라가는 듯한 착시가 일어나요!"
비슷한 시기,  『신악서총람』 본문 디자인이 정말 근사하고 가독성도 높다는 찬사(!)의 메시지도 들어왔습니다. 
이 희비극의 주인공, 이기준 디자이너 님을 각주*에 소환했습니다. 
더불어 세 권을 동시에 작업해야 했던 『건축 생산 역사』 표지 디자인 고민을 조스바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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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힌남노로 남부 지방의 피해가 컸다는 뉴스가 연일 들립니다.
부디 각주 구독자 님들께서는 피해가 없으셨길 바랍니다. 혹 피해 입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되도록 빨리 회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서점이나 도서관 피해도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서점 대표님들, 사서님들 책 지키시느라 고생 많으십니다. 늘 고맙습니다.

추석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께 힘이 되는 연휴 보내시길.

쓸모가 남긴 모양: 『건축 생산 역사』 디자인 후기

🦈 조스바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서양미술사 수업 때 배운 건축 기둥 양식들. 건축을 ‘모양’으로 처음 이해한 때였습니다. 유럽 여행을 가도 건축물을 ‘구경’하며 형태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즐겼던 것 같아요. 조금 더 관심을 가진다면 가이드 투어를 다니며 건축에 새겨진 역사를 들었고요. 하지만 건축은 공학기술과 자본, 시간, 인력 등 복잡한 조건 안에서 ‘생산’된다는 걸 『건축 생산 역사』(전 3권)을 통해 확실히 알았습니다. 

『건축 생산 역사』는 건축의 역사를 생산과 기술, 구조의 관점에서 파악합니다. 그래서 건축물의 구조를 보여주는 평면도, 입면도가 책에 자주 등장해요. 역사적 맥락을 좇으며 건축물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한국주택 유전자』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주택 유전자』는 한국의 주택들을 채집해 주택의 문화와 역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한 상상을 하며 작업했었는데요, 『건축 생산 역사』 표지 또한 도면과 건축물 외관을 관계 지은 하나의 이미지를 도출하고자 했습니다. 고대부터 중세 고딕을 다룬 1권은 성당 평면도, 르네상스와 혁명기의 고전주의를 비판적으로 읽는 2권은 고대를 본뜬 아치, 모더니즘 건축으로 접어드는 3권은 장식 없는 육면체를 연상케 하는 직사각형으로 권마다 특정 모양을 찾았습니다. 기술적, 상징적 기능을 하는 형태들이었죠.

이 형태가 각 권의 시대를 완벽하게 대표하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이 잡듯 뒤져 찾아낸 형태 가운데 눈에 띄는 것들 중 각 권에서 중시하는 기능과 기술이 집약됐다고 할 만한 것을 추려 얹어보았습니다. 다음 단계에선 건축물의 사진과 도면의 조화, 알맞은 위치를 찾는 데 신경 썼고요. 전문 지식과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책을 디자인할 때면 의미와 정합성을 끊임없이 따져보곤 하는데, 거기에 너무 매몰되면 오히려 알아볼 수 없는 암호들로 가득한 이미지가 돼버리기도 합니다. 독자가 책을 만날 때 ‘이런 이야기를 하겠구나’를 알아볼 정도면 된다고 마음을 비우고 덕지덕지 붙은 의미들을 걷어내기도 했습니다. 디자인 과정에서 쓸모를 따져 만든 형태가 그 기능과는 다른 상상을 하게 하는 모양이 될 때가 참 재미있습니다. 


『신악서총람』 본문이 왜 이런 모양이냐 물으신다면
💎 이기준 디자이너

『신악서총람』의 원고를 인디자인 문서에 ‘복붙’하자 눈에 띈 점은 인용구가 꽤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인용구 앞뒤에는 통상 큰따옴표가 앞뒤에 붙는데요, 저는 인용구의 시작 지점과 끝나는 지점을 곧잘 놓치곤 합니다. 더군다나 『신악서총람』처럼 한 단락에 여러 인용구가 패치워크처럼 배치되는 경우라면 큰따옴표 위치를 잦은 빈도로 확인하는 것도 독서 피로도를 높이는 데 한몫하리라 우려되었습니다. 큰따옴표 위치를 추적하지 않고도 인용구를 직관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서체를 달리 적용하자는 발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서 『신악서총람』의 저자가 장정일이라는 사실이 중요해집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 장정일은 파격의 아이콘이었거든요. 기왕 전통적인 조판 방식을 버리기로 했다면 다소 파격을 시도해도 되겠다고 마음 먹었지요.

인상이 부드럽고 공손한 산돌정체 530을 바탕 폰트로 정하고 인용구에는 다부진 지백 120g을 적용했습니다. 확연히 다른 인상을 지닌 서체를 병치했는데도 무척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비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인용구를 살짝 회전시켰습니다. 음악책에서 따온 구절이니 율동감을 더하면 지면이 활기차리라는 기대를 품었지요. 독자를 읽기의 춤판으로 꾀는 ‘권유형’(“어서 무대로 나와 몇 줄 더 읽어 봅시다~”) 판면이 나왔다고 자평합니다. 나중에 일러두기에 이를 설명할 단어가 필요해 ‘회전체’라고 명명했습니다. 
해결책이 필요했던 여러 문제가 한 가지 요소를 도입하면서 연달아 풀리는 경험들 해보셨을 거예요. 회전체 도입으로 춤판이 벌어지자 고명처럼 박힌 숫자와 로마자를 비롯한 몇몇 문장부호도 무대로 모시자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산돌정체, 지백과 조화롭게 나란히 가되 약간의 엇박자로 ‘텐션’을 주는 이탤릭체를 고르면서 회전체의 각도를 새로이 고른 이탤릭체에 맞춰 조정했습니다. 또한 중점 대신 옛 자모 아래아를 썼는데요, 현대 한국어에는 쓰이지 않는 자소면서 형태가 비슷해 대체해도 무방하다고 봤고, 붓을 놀리는 방향으로 살짝 눌러 찍은 날렵한 형태가 지면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렸습니다. 한편 쪽번호는 글의 흐름과 무관한 기술적 요소로, 본문보다 더 삐뚤거리게 배치해 잔재미를 부렸습니다. 

읽은 책 정보는 인용구를 배출한 모체이니 회전체가 마땅했습니다. 글 말미에 약간의 반전을 줄 요량으로 역방향으로 회전시켰습니다. 워낙 많은 책이 등장하니 제목 형식도 다양해서 반점, 중점, 쌍점, 줄표, 빗금 등 웬만한 문장부호가 동원되어 항목을 구분하는 장치로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어떤 기호를 넣어도 항목이 구분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붙어 보이고 지나치게 시선을 끈다는 문제가 생겼거든요. 그렇다면 차라리 빼는 것도 방법이겠더군요. 기호를 넣는 대신 간격을 충분히 벌리니 그제야 항목이 확연히 구분되었습니다. 빈 공간의 역할에 새삼 감탄했습니다. 앞서 나온 글과 연결되는 정보라는 의미로 가느다란 니은 모양 약물을 넣어 본문과 책 정보를 한 덩어리로 묶었습니다. 

『신악서총람』은 모든 글이 제목 대신 날짜로 시작합니다. 독서일기니까요. 130*210밀리미터라는 작지 않은 판형에 페이지당 스물다섯 행이 들어가는 400쪽이 넘는 분량의 글을 읽어나가게 하려면 한 번씩 끊어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날짜를 한 줄로 표기하는 대신 달력을 넣어 일기장 분위기로 장식하고 첫 글자를 묠니르로 내리쳐 글의 시작점을 강조했습니다. 천둥소리와 빗소리가 인간의 음악 감각을 움트게 했다고 믿는 제게 ‘묠니르 두문자’는 매우 설득력있는 조치였습니다. 달력의 깨알같은 숫자 다음에 묠니르 두문자가 꽝 나오고 본문이 꿈틀꿈틀 들썩이며 흐르니 비로소 책의 음악적 효과가 잘 마련된 듯 보였습니다.
책방 토닥토닥의 심야책방으로
🌱 죽순 
벌써 2주 전이네요. 8월 26일, 🌱죽순은 전주 책방 토닥토닥에 다녀왔습니다. '편집자의 일, 책의 일'이라는 주제로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초대를 받았거든요. 책방 토닥토닥에는 세 번째 방문인지라 내적 친밀감이 급상승해 입구부터 제 집 들어가듯 쑥- 편안하게 들어갔답니다.
편집자의 일을 분명 잘 아는데 막상 말로 하려니 어려울 듯해서 교구(!) 몇 가지를 바리바리 싸들고 갔답니다. 『건축 생산 역사』 가제본과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 책』을 편집할 때 야금야금 사들였던 독특한 아티스트 북을 참석하신 분들께 보여드렸어요. 편집자의 일 이야기보다 이 '경험'을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들고 간 보람이 차 오르는 순간!
행사가 끝나고 책방 토닥토닥에 입고된 마티 책들을 함께 살펴봤는데요, 참석하신 분들께서 주섬주섬 책을 들고 계산대로 향하시더라고요. 영업 성공😉 
편집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책방 토닥토닥의 심야책방은 계속됩니다. 준비되시면 공지하실 테니 책방 토닥토닥의 인스타그램을 주시해주세요!
📚 전주 곳곳의 동네서점
물결서사: 역에서 내려 한옥마을 가시는 길에 들르세요. 여행하며 따로 들르기엔 동선에 딱 걸리지는 않을 수 있거든요. 단층처럼 보이지만 2층까지 있어 책 읽을 자리가 넉넉한 서점이에요. 어쩐지 다정한 느낌인데, 아마 독자들에게 내놓은 자리가 많아서인지도요.

서점 카프카: 2년 전에 다녀왔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문학이 강세인 서점이에요. 바닥이 오래된 나무로 깔려 있어 서가 앞에서 한 걸음씩 이동할 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났더랬죠. 커피도 팔아요.

홍지서림: 이름에서 연식이 느껴지죠.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서점인 걸 모르고 허랑하게 다녀왔었는데 말입니다. 사정이 어려워 스러질 뻔했을 때 전주 출신 소설가 양귀자 선생님이 인수하셨다고 해요.

살림책방: 한옥마을에서 전주천 쪽으로 나오면 있어요. 분야를 고르게 가져다 두셨는데, 개중에 기독교 서적도 있답니다. 화창한 날씨엔 책 한 권 사 들고 바로 앞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면 딱이겠더라고요. 
이번 주 마티의 각주 어떠셨나요?
좋았어요🙂               아쉬워요🤔
책 좋아하는 친구에게
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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