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꼭 선풍기를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이젠 정말 여름이 코앞에 온 듯합니다. 저는 여름이 찾아올 때쯤 선풍기 청소와 함께 그해 여름을 대표할 만한 소설책 한 권을 골라요. 작년엔 『여름의 빌라』라는 백수린 작가의 단편 소설집이었습니다. 뜨거운 여름이 책 한 권으로 시원해질 순 없지만, 한 계절을 강렬하게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장치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매년 여름의 소설책 한 권은 무엇보다 신중히 고르곤 합니다.

누군가 제게 이번 여름의 소설은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이 책이라 이야기할 수 있어요. 바로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입니다.

🍉어느 소녀의 뜨겁고 특별한 여름 이야기

책을 편집하며 알게 되었는데, 아일랜드의 여름은 보통 비가 많이 내리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뜨거운 계절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소설의 배경은 뜨거운 햇빛이 세게 내려 여기저기에 닿는 여름입니다. 아일랜드로서는 특별한 여름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책의 저자 클레어 키건은 한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의 배경이 꼭 더운 여름이어야만 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요. 아마도 주인공 소녀가 보낸 이 여름이, 그동안 겪어본 적 없는 특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여름날, 임신한 엄마는 소녀를 돌보기 어렵다며 아기가 태어날 동안 먼 친척 집에 보냅니다. 물론 임신하지 않았을 때도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것 같지만요. 친척 집은 시골의 한 농장, 킨셀라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있는 조용한 집입니다. 이곳에서 소녀는 책을 소리 내어 읽는 법, 토스트를 굽는 법, 멋지고 빠르게 달리는 법을 처음으로 배워갑니다. 배려심 깊은 어른들과 특별한 우정을 쌓아가던 어느 날, 킨셀라 부부에게 숨겨진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돼요. 『맡겨진 소녀』는 이런 배경에서 각자의 아픔을 가진 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을 아름답게 그려낸 짧은 소설입니다.

👒아름다운 속도로 세심하게 만들어낸 이야기

이 책을 쓴 작가, 클레어 키건은 여러분들에게 낯익은 이름은 아닐 거예요. 이번에 처음으로 국내에서 번역된 작가거든요! 한국에서는 처음 소개되지만 아일랜드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자국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24년의 활동 기간 동안 출간된 책은 『맡겨진 소녀』를 포함해 『남극(Antarctica)』,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로 총 4권인데요. 이 몇 안 되는 책으로 전 세계 문학상을 휩쓸고 있어 천재 소설가라고도 불립니다. 그중에서도 작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배우 킬리언 머피가 주연과 공동제작을 맡아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