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죽음을 비는 정부, 님의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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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턱괴는여자들입니다. 

지난 1월 30일, 영화 <플랜75>의 감독 내한 시사회가 있었습니다. 114분의 러닝타임 내내 머릿속이 아주 바빠지는 작품이었어요. 노트와 펜을 장전하고, 영화를 보면서 어둠속에서 휘갈긴 꼭지들이 많았는데요. 오늘 뉴스레터에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앞서 턱괴는여자들 인스타그램에서 진행된 시사회 티켓 이벤트에 많은 분들이 뜨거운 호응으로 참여해주셨는데요. 뿐만 아니라, 시사회 당일 빈 자리 없이 꽉 찬 상영관을 보면서 <플랜75>의 주제가 '현재 한국'에서 의미하는 바에 대해 곱씹게 되었습니다. 

관객에게 인사를 전하는 '하야카와 치에' 감독(오른쪽) ©턱괴는여자들(송근영)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이 영화가 인간사에서 어쩌면 옳고 그름보다 더 중요한 '그레이 존'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를 본/볼 여러분의 의견도 궁금해요. 다음은 감독님의 무대인사 발췌문.

🎤 "이 영화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어떠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어떤 마음을 기대하는지 물어봐주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는 어떠한 판단 기준을 딱히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관객 여러분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자유롭게 수용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날 세상이 '좋음과 나쁨, 옳고 그름, 정답과 오답 식으로 양분화가 많이 되어있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인간이 원래 좀 더 복잡하고 섬세한 생명체라는 것을 상기하면, 흑과 백이 아닌 그 사이에 있는 그레이존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월 7일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 <플랜75>. 현실과 맞닿아서 더 형용할 수 없는 그늘로부터, 역으로 우리 사회에 남겨진 인문학적인 감수성을 급히 수색하게 만드는 이 문제작을 놓치지 마세요.

1.  
일본 정부가 75세 이상 국민의 조력 자살을 지원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플랜75> 시나리오는, 사실 2018년에 단편으로 먼저 공개되었어요.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쓴 각본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총괄의 옴니버스 영화 <10년> 프로젝트에서 비공개 경쟁을 뚫고 무려 '첫번째 에피소드'로 선정되었거든요.

그런데 이 <10년>이라는 영화의 기원이 또 남다릅니다. 2015년에 '우산혁명으로부터 10년이 지난 홍콩'을 그린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그 취지와 의미에 공감하는 감독들에 의해서 '각국의 디스토피아적 근미래'를 상상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로 확산되었거든요. 2018년에 제작된 일본판에서, 그 커튼을 여는 역할을 초고령 사회의 기이한 말미를 담은 <플랜75>가 맡은 것이죠. 

하야카와 치에 감독에 의하면, 단편으로 공개되었던 <플랜75>를 장편화하는 과정중에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시나리오가 크게 수정되었다고 해요. 원래는 더 어두운 설정이었지만 사람들의 불안감을 더 키우는 작품을 만들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이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방향으로 엔딩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비하인드] 🗣️ 하지만, 당일 영화 관람을 함께한 이벤트 당첨자 분들은 대체로 희망을 발견하지는 못했는데요.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오리지널 엔딩이 어땠을지 궁금해지는 부분. 여러분은 어떻게 판단하실지, 직접 관람해보시길 추천합니다!
(좌) 홍콩의 2015년 작 <10년>,  (우) 일본의 2018년 작 <10년>**
**일본판 <10년(2018)>은, 2월 16일까지 넷플릭스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10년(2018)> 시리즈 속의 단편 <플랜75>에서는, 노인들의 안락사 신청을 장려하는 역할을 맡은 공무원의 관점에서 17분 간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번 2월 7일에 개봉한 장편 <플랜75>보다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며 직접적으로 한 사회의 절망을 드러내지요. 정책의 대상이 된 노인의 입장에서 극이 흘러가는 이번 개봉작과 비교해보아도 좋겠네요.

2.

'하야카와 치에' 감독이 <플랜75>라는 '픽션'을 만들게 된 데에는 두 가지 '현실'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첫 번째] '나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16년 장애인 시설 흉기난동 사건 

이번에 개봉한 장편 <플랜75>에만 실린 섬뜩한 오프닝 장면이 있습니다. 왜 노년의 안락사를 국가가 나서서 지원하는 정책이 시작되었는지, 그 배경을 암시하는 장면인데요. 감독은 이를 2016년에 장애인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혐오 범죄에서 따왔다고 밝혔어요. 당시 범인은 장애인은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나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사실 결과의 폭력성의 차이가 있을 뿐, 감독은 사람의 가치 판단 기준을 '생산성'으로 두는 기본 전제가 이미 사회에 만연함을 느끼고 큰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인간의 경제적 생산 능력이 존엄성보다 우선시되는 사회에서 장애인과 노인은 모두 '약자'에 속하죠. 때문에 2016년 일본에서 벌어진 이 '실화'는 <플랜 75> 영화 자체의 모티브이기도 합니다. 사회적 타살의 대상이 장애인에서 노인으로 바뀌었을 뿐이죠. 극중에서도 정부의 안락사 정책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는 '경제효과'입니다. 라디오 방송에서 '플랜75'를 3년 간 시행한 후 경제적 파급효과가 1조엔에 달했으며, 향후 10년에 걸쳐 대상 연령을 65세까지 낮출 계획이라는 뉴스가 흘러 나오죠,

극중 78세인 주인공 '미치'. 호텔에서 함께 일하던 또래 동료의 낙상 사고가 발생한 후, 생계를 책임지던 일터는 미치를 포함한 고령 노동자들을 '명예퇴직' 시킵니다. 미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출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데.
[두 번째] '후기 고령자', 당신의 인생은 이제 '진짜최최최종_마지막.'입니다. 
감독은 왜 하필 극중 안락사 대상 연령을 75세부터로 설정했을까요? '초고령 사회'인 일본에는 '후기 고령자'라는 실제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2008년, 노인의료비 제도를 개편하며 초고령 군락을 신설한건데요. 그 기준이 되는 나이가 75세라고 해요. 일본의 75세 이상 국민은 기존에 가입되어있던 국보나 건보에서 탈퇴하고 후기고령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독립적인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거죠.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후기 고령자' 개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어요. "약 20년 전부터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후기 고령자'라는 표현을 썼는데,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불쾌했습니다. 75라는 숫자에서 딱 끊고 이제 정말 인생의 마지막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영화에서와 같은 제도가 생긴다면 아마도 그 기준이 75세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10만엔(약 100만원) 받고 안락사 vs 14만엔(약 140만원) 내고 장수 [기사 원문]
취지는 고령세대와 현역세대의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기 위한 것이지만, 고령 인구가 계속해서 늘 것이 자명하고 증가하는 의료비에 따라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당시 큰 논란이 되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최근 (2023.12) 일본 75세 이상 노인 의료보험료를 연간 최대 14만엔(약 140만원) 인상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미치와 친구들이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는 장면이 생각났어요. 한 친구가 '이런 곳(건강검진)에 오는 것도, 꼭 오래 살려고 하는 것 같아서 눈치가 보인다'고 말하거든요. 10만엔(약 100만원)을 주고 죽음을 권하는 정부와 14만엔(약 140만원)을 '건강을 유지할 대가'로 내놓으라는 정부. 어쩌면 영화는 이미 조삼모사의 현실일지도요.

3.

[1] 명예퇴직 후 '플랜75' 신청을 고민하는 78세 여성 '미치' 
[2]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랜75' 콜센터 직원 '요코'
[3] 가족의 신청서를 받은 '플랜75' 담당 공무원 '히로무'
[4] '플랜75' 이용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감독은 왜 이 영화가 '그레이존'에 관한 것이라고 했을까요? 너무 옳고 그름이 명확한 문제 아닐까요? 

사실 관람객인 우리는 스크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대상으로만 가치판단을 하게 되는데요. 생각해보면 모든 등장인물은 각자 자신의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내려는 과정에서 '플랜75'와 엮이게 됩니다. 이 상황을 만들었으며 또 교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정부 혹은 정부 관계자는 베일에 가려져있죠. 1인분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애써본 사람이라면, 미필적 고의로 제도에 순응해버린 '미치', '요코', '히로무', '마리아'의 잘잘못을 명확하게 물을 수는 없습니다. 

감독은 대상을 찾지 못하고 허공을 맴도는 불편함을 의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온화한 얼굴로 가해지는(그만큼 가해자를 단번에 특정하기 어려운) 폭력'을 표현하고 싶어서 일부러 절대악을 내세우지 않은 채 기이하게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말하거든요. "정부 관계자는 일부러 그리지 않았습니다. (...)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불쾌함을 그려내기 위해 그런 인물들을 그려내지 않았죠. (하야카와 치에)"

하지만, 114분의 러닝타임 밖으로 이어지는 결말이 있다면 조금 다를거라고 생각합니다. '미치', '요코', '히로무', '마리아'는 각자의 예민한 감각을 열어둠으로써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변화의 씨앗을 '영화가 끝나기 전에' 심어두거든요. 바로 '이상함(불편함)을 포착'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동물적인 회의감을 느끼는' 일이죠. (아, 쓰다보니 바로 이 부분이 감독이 말한 희망적인 엔딩이었을까요?) 이러한 동기로, 네 명의 주요 인물은 각자 '플랜75' 정책과 관련된 자신만의 금기를 깹니다.

이들이 깨버린 각자의 금기가 무엇인지는 극장에서 확인해보세요!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히로무'의 상사(히로무와 함께 '플랜75'를 집행하는 공무원이겠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약 50대 정도로 보이는 나이인데, '플랜75'가 자신의 근미래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궁금했거든요. 게다가 대상 연령을 65세로 낮추는 계획까지 발표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사실, '나의 일'이 될 수 있는 확률을 예측하는 능력이 곧 '공감능력'이 아닐까 싶어요.

영화 <플랜 75>의 모든 포스터에는 75라는 숫자가 선명하지 않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플랜' 다음에 오는 글자가, 지칭이,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겠죠? '지금' '우리'와 관련된 것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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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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