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90 번째 주간ㅅㅁㅅ입니다.

어제, 오늘 기분이 참 이상하네요.

마음이 무거워야 할 날인데

이상하게도 한없이 가볍습니다.

우울감에 허덕여야 마땅한 상황임에도

그냥저냥 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요.

물론 다가오는 밤에 어떤 감정들이 엄습할지,

그 부분이 조금은 두렵지만 어쨌든 참 이상한 날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적이 있으신가요?

사람이 어디까지 담담해질 수 있는가,

스스로 테스트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여러모로 의문인 요즘입니다.

오늘도 인스타 인증과 회신을 기다립니다.

하나하나 마음을 다해 읽고 있어요.

답장은 천천히, 하지만 꼭 모두에게 드릴게요.

메일을 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안온한 밤 되세요.

ㅅㅁㅅ 드림

 지난주 전한 이야기 때문일까요? 이번주에 글감 신청이 참 많이 들어왔네요 :) 오늘 랜덤으로 픽한 주제는 삶은 달걀입니다. 요즘들어 제 식탁에 자주 오르고 있는 음식이라 운이 좋았네요. 이번주도 즐거히 읽어주시길. 여러분도 삶의 중심을 잘 잡아가시길 빌며.

 요즘 하루 한 끼는 건강하게 먹으려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매일 밀가루 없는 한 끼에 도전 중이다. 하루 종일도 아니고 한 끼정도는 안 먹을 수 있지, 뭘 그걸로 유난 떠나 싶겠지만 내 식생활을 일주일 정도만 지켜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밀가루에 진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빵돌이라는 훌륭한 기본 바탕에, 튀긴 건 맛 없을 수 없다는 프라이드 원리주의자이며, 면의 모든 면면을 사랑한다. 종합하면 내게 밀가루란 meal가루와 다름없다.

 하지만 밀가루와 거리를 두려 한다. 이유는 건강, 정확히는 살 때문이다. 매달 PT 선생님과 체중 감량을 목표하고 실천 중인데, 중간에 한두 번씩 정체기가 찾아온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밀가루 줄이기를 제안했다. 끝끝내 그것만은 안된다고, 차라리 스쿼트를 한 세트 더 조지겠다며 버텼지만 성큼성큼 다가오는 데드라인에 결국 타협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만 알아버렸다. 밀가루를 줄이는 게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목표 달성에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 서글펐던 이유다. 그렇게 밀가루와의 거리두기 2.5 단계가 시작됐다.

 오늘도 식탁에는 빵 대신 삶은 계란이 놓여 있다. 빵이 채워주던 달콤함은 비릿함으로,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 대신 텁텁함 만이 남는다. 퍽퍽한 식감은 팍팍했던 과거 어느 순간을 소환한다. 예전에 만나던 여덟 살 손위 여자친구는 다이어트 때마다 계란을 한 소쿠리씩 쌓아두고 먹었다. 운동을 더 하는 게 어떻냐고 나무라면 그녀는 늘 째려보며 말했다. 너도 내 나이 돼보라며. 그 나이가 된 나는 지금 이렇게 삶은 계란을 까고 있다.

 나이 듦을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있지만) 몸의 변화를 체감한다. 특히 술 마신 다음날이나 농도 짙은 야근의 밤이면 어느덧 나도 하향 곡선에 접어들었음을 깨닫는다. 살을 뺄 때도 마찬가지다. 기초 대사량이 워낙 높아 마음만 먹으면 살을 쉽게 빼는 편이었다. 흔히 한 달 목표로 정하는 2-3키로 감량이 내게는 하루 집중해서 덜 먹으면 쉽게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 예전보다 덜 먹고 더 움직여도 체중계 바늘의 움직임은 당황스러울 만큼 보수적이다. 결국 밀가루와의 거리두기로까지 나의 전선은 밀려났다.

 전지전능한 유느님조차 시간 앞에 삶의 방식을 조정한다. 유느님의 복음에 기대자면, 나이 듦이란 하고 싶은 걸 하나둘 포기하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하루 한 끼로 제한된 밀가루 섭취가 나중에는 하루 전체로, 더 나아가 밀가루 없는 삶을 받아들여야 할수도 있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일이지만 시간의 흐름과 육체의 쇠락은 답정너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친절과 배려조차 체력에서 비롯됨을 깨닫는 요즘, 포기의 시나리오들을 더 자주 떠올린다. 직장 생활을 잘 해내려면, 글 쓰는 생활도 병행하려면, 달리고 싶을 때 달리려면,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살려면. 포기하기 어려운 삶의 방향들을 되새기며 포기해야 하는 라면과 크로플을 일상의 장바구니에서 삭제한다.

 물론 나이 듦이 부추기는 포기가 음식에만 향하진 않을 것이다. 넷플릭스 첫 달 무료 체험이 끝나듯, 하고 싶은 일들은 일정 시점부터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요구해왔다. 쏟을 수 있는 에너지가 한정적이고, 24시간으로 고정된 조건 속에서 끝내 긴 잠을, 친구와의 주말을, 일상의 여백을, 감정의 여유를 차례차례 포기 중이다. 빨리 나이 들고 싶던 과거가 무색하게 지금은 시간의 야속함과 그 속에서 바라지는 나의 모습에 한없이 초조하다. 그렇게 단팥빵 대신 삶은 계란을 먹으며 오늘도 생각한다. 나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지, 그리고 정말 포기해도 괜찮은지.

 행복과 일상 사이에서 적절히 균형 잡고 싶지만 모두가 그렇듯 번번이 미끄러진다. 번아웃과 무력감을 오가며 그럼에도 완벽히 균형 잡는 찰나를 느끼고자 다시 한번 외줄 위로 오른다. 하고 싶은 것만 하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만 하다가 의무와 책임감에 잡아먹혀 공허한 점으로 소멸하지 않도록, 오늘도 열심히 적당한 타협의 지점을 더듬더듬 찾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밀가루 거리두기 제재를 완화하련다. 아마도 먹고 싶은 게 아니라 균형을 잡기 위해서. 살은 내일의 삶은 달걀이 빼줄 테니.

 올해 제 이름이 들어간 책이 총 세 권 나옵니다. 한 권은 오롯이 제가 쓰는 책이고요. 나머지 두 권은 공저로 참여합니다. 새해 시작하며 올해는 책 안쓰고 쉬어야지 다짐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돼버렸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