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알리미는 식물입니다
February 27, 2024
아피스토의 풀-레터 S1.5-5 vol.36
안녕하세요. 아피스토입니다. 
어느덧 입춘이 지나 3월이 코앞입니다. 올겨울은 다른 해보다 눈이 많이 내렸지요? 그 덕에 눈 구경도 실컷 했습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보면 절기를 잊고 지낼 때가 더 많습니다. 사실 절기가 일상에 피부로 와닿을 만큼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지 않기도 하고요. 

입춘은 지났는데, 대설경보가 내리더니 오늘은 칼바람이 매섭습니다. 봄이 온 게 맞나 싶네요. 절기라는 것이 산업사회인 오늘날엔 의미가 없지만 농경사회가 중심이던 시기에서는 가장 중요한 지표였습니다. 태양의 위치를 계절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총 24개로 나눈 것이기 때문에, 농사를 짓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지표보다 정확합니다. 

그래서 절기의 설명도 농사를 짓는 것에 맞춰 있습니다. 입춘은 봄이 시작하는 절기로 농가에서는 본격적으로 농사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우수는 눈이 비가 되어 내리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뜻으로, 농가에서는 얼었던 땅을 고르거나 한 해 봉안 심을 씨앗을 고르는 시기입니다. 경칩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동식물이 죽지 않도록 임금이 백성에게 불 놓는 것을 금지했다고 하네요. 

어찌 되었든, 새벽별 보고 출근해서 저녁 달 보고 퇴근하는 대다수의 도시인들에게 절기는 무용지물입니다. 낮시간이 길어진다는 춘분이나 되어야 출근을 하며 '아, 해가 길어졌네' 하는 정도의 감상만 있을 뿐이지요. 

저는 식물을 키운다지만 사실 크게 절기를 느낀 적이 없습니다. 특히 열대관엽식물을 키우기 때문에 여름이든 겨울이든 실내는 사람이 생활하기 좋은 온습도를 유지합니다. 절기가 그닥 중요하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제가 식물을 키우는 사무실은 항상 사람이 상주하지 않아 어느 정도의 일교차가 생깁니다. 겨울이 시작되면 하엽이 지는 식물도 생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식물들은 잘 견뎌주지요. 그런데 저에게는 유독 절기에 민감한 식물이 하나 있습니다. 무늬 드라이나리아라는 고사리입니다.

5년을 넘게 키우다보니 이 식물의 식생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는데요. 마치 동면하는 구근식물처럼 기온이 10도 내외가 되면 모든 잎을 떨구고 휴면기에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아 또 죽여먹었네' 하며 좌절했는데 날이 풀리기 시작하자 하나둘 새 잎이 앞다투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잎이 나오는 때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신기하게도 입춘 즈음입니다. 

입춘이라고 해도 내 몸은 아직 겨울인데, 식물은 절기에 맞추어 봄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겨울 동안 잠을 자던 구근식물인 칼라디움도 그 옆에서 새 잎을 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무실에서 키우는 거북이마저 식사량이 늘어납니다. 그야말로 봄의 시작입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랄까요? 식물과 동물들이 깨어나는 모습을 보고서야 겨우 절기를 알아채는 것. 그나마 식물집사 노릇이라도 하니 식물들이 저에게 계절을 알려줍니다. 식물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나

3월인데 체감상 겨울입니다.
습지거북이 동면에서 깨어나
눈을 떡- 뜹니다.
화들짝 놀라 달력을 들춰봅니다. 
3일 뒤 입춘입니다. 
거북이 동면에서 깨어난 걸 보고서야
절기를 깨달았습니다. 
이럴 때 보면 인간은 하등동물입니다. 
오늘 거북에게 동물의 본능을
무나* 받았습니다. 

*무나: 무료나눔의 줄임말.

- 아피스토, <처음식물> 중에서



p.s. 이번 호는 발송시간이 늦었네요 ㅠ 죄송합니다!

아피스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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