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땅> (감독 조희영)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by. 인디스페이스
vol.194 이어지는 땅
1월 24일 오늘의 큐 💡   
Q. 옷깃만 스쳐도 인연? 😏
출근길에 마주쳤던 사람을 퇴근길에도 마주했던 신기한 경험, 님도 겪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오전 지하철에서 뵈었던 분을 늦은 귀갓길에서도 만난 적이 있어요. 롱패딩에 목도리, 두꺼운 장갑으로 중무장하신 모습이 그날의 제 모습과 똑같아 기억하고 있었는데요. (🧐: 저분도 추위를 잘 타는 모양..) 일과를 마치고 돌아가는 열차에서 그분이 같은 칸에 타 계신 모습을 발견했던 게 얼마나 신기했는지 몰라요.
상대를 잘 모르지만, 그가 나와 똑같은 시간에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은 유독 오묘해서 그날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죠. 조희영 감독의 영화 〈이어지는 땅〉은 런던과 밀라노를 교차하는 우연한 만남을 따라갑니다. 곧 런던 땅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호림'은 우연히 캠코더를 줍고 전 애인을 마주치게 됩니다. 캠코더 속 영상에 담겨 있던 '이원'은 처음 보는 사람 '화진'과 밀라노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두 인물이 마주한 우연은 서로 엉겨 붙게 되면서 마치 이 만남이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을 부르게 됩니다.
오늘은 찰나의 스침이 주는 것들에 대해 소개합니다. 〈이어지는 땅〉에 대해 쓴 인디즈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몰래 찾아올 오늘의 우연한 사건들을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 
오늘 만나 볼 이야기

1. 📷 끊어지지 않는 것 - 〈이어지는 땅〉 리뷰
2. 💔 각자의 자리 - 〈내일이 찾아오면〉과 함께
3. 👣 경계 위에 발 딛고서 - 함께 읽는 인디토크 풍경

끊어지지 않는 것

〈이어지는 땅〉


런던에서 대학원 입학을 앞둔 호림(정회린)은 우연히 주운 캠코더 속에서 어떤 여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본다. 이후 호림은 공원에서 자신의 옛 애인인 동환(감동환)과 마주치고 이어서 동환의 현재 애인인 경서(김서경)를 만난다. 그리고 호림은 경서의 친구이자 캠코더 속 여성인 이원(공민정)을 만나게 된다. 이처럼, 처음 보는 인물들 사이의 조우가 잇따라 발생하는 서사의 흐름은 ‘이어지는 땅’이라는 영화의 제목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중략)


유적이 된 건물과 여전히 자라나는 식물. 과거가 담긴 캠코더와 현재를 비추는 카메라. 그림 속에서는 죽어 있으나 실제로는 살아 있는 비둘기. 헤어진 후 마주 앉은 옛 연인과 이별하지 않았지만 만날 수 없는 두 사람. 〈이어지는 땅〉 속 여러 요소들은 멀리 떨어진 채 점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만 같다. 상반된 의미를 품기에 단절된 듯한 이들은 사실 시간을 축으로 이어져 있기에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플라밍고에 대한 진실이 시간이 지나 거짓으로 밝혀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어지는 땅〉은 우리가 끊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여러 조각들 사이에 여전히 끊어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인디즈 김채운

〈이어지는 땅〉 

감독 조희영|출연 공민정, 정회린, 류세일

87|극영화|12세이상관람가


‘낯선 땅, 우연이 필연처럼 이어지는 이야기’

런던에서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는 호림은 우연히 주운 캠코더 속에서 낯선 한국 여자 이원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보게 된다. 이후 호림은 옛 애인 동환을 만나고, 동환의 현재 애인 경서를 만나고, 경서의 친구이자 캠코더 속 영상의 주인공 이원을 만난다.

각자의 자리

〈이어지는 땅〉과 〈내일이 찾아오면〉


만남과 이별의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리고 또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수많은 우연들은 길 위를 떠도는 사람들을 소리 없이 감싸고 있다. 보이지 않는 사실들은 길 위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언젠가 예상치도 못할 우연이 찾아올 것이고, 또 언젠가는 누군가와 이별을 하게 될 것이라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사실들은 매번의 시간만큼 반복되고 또 해체된다. 소멸과 해체를 목표로 향해 가는 관계는 없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관계는 해체와 소멸, 그리고 탄생의 역사를 고스란히 거치고 있다.


호림의 하루는 우연히, 혹은 다분히 의도적인 맥락에서 동환을 쫓는 과정이다. 과거 헤어진 연인을 마주침으로써 동환을 통해 호림의 만남은 그의 현재 애인인 경서, 그리고 이원에게까지 닿는다. 경서와 이원이 자리를 비운 사이 감정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호림의 만남은 동환을 통해 제지된다. 이것은 호림이 겪는 새로운 헤어짐의 순간이다. 이원과 되돌아가며 호림은 사실을 털어놓고 낮에 산책하며 주운 캠코더에서 이원을 봤음을 고백한다. 얼굴 없는 애인의 목소리와 이원의 표정, 몸짓, 목소리가 교차하던 캠코더 영상을 통해 이원은 어느 과거로 되돌아가듯 잠시 사색에 잠긴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원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화진(류세일)과 밀라노 도시를 물 흐르듯이 나란히 걷는다. 이어지는 대화와 감정 속에서 라이터를 사러 간 화진은 길을 잃은 탓에 그들이 앉아있던 광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재회하지 못한다.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에도 그들의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는 건 아주 특별한 일들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일이 찾아오면〉에 등장하는 은주(김예은)와 경호(이학주) 4년째 동거 중인 커플이다. 부족한 현실에도 서로에 대한 애정이 지속되던 날들과 장난식으로 하는 상상과 미래에 대한 약속들이 그들을 느슨하게 이어준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듯, 두 청년을 둘러싼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은 지난 만남을 정리하고 결국 두 사람의 몫으로 각자 해체된다.


과거가 떠난 자리엔 무엇이 찾아올까. 그리고 또 내일이 찾아오면 지금의 자리는 어떻게 될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지 못한 말들이 있고, 설령 그 말들이 전해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차마 전하지 못해 마음속에서만 맴도는 각자의 말들을 품고 낯선 이방의 도시를 살아가는 이방의 사람들. 그들은 서로를 우연히 발견하고 사랑하고 이별한다. 단조롭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일상은 계속되겠지만 온전했던 각자의 다정함의 영역들, 그리고 슬픔과 미움들은 마음속에 길게 남아있을 것이다.

 

인디즈 김윤정

〈내일이 찾아오면〉

감독 김태진|출연 김예은, 이학주, 이상희

30|드라마|2017


은주는 경호와 4년째 동거를 하고 있다. 취준생 남친 때문에 힘에 부치는데 갑자기 워킹 홀리데이를 갔던 언니까지 들이닥치는 바람에 둘은 당분간 따로 떨어져 지내기로 한다.

👣 경계 위에 발 딛고서
아직은 연초의 기운이 물씬 풍기던 지난 1월 6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이어지는 땅〉의 개봉 전 특별 인디토크가 열렸어요.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의 진행으로 이루어진 이 시간에는 조희영 감독, 공민정, 정회린, 류세일 배우가 모여 런던과 밀라노에서의 날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지요. 서울독립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 등에서 미리 관객들을 만난 〈이어지는 땅〉 멤버들이 개봉을 며칠 앞두고 밝힌 떨리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 아래에서 만나보세요!
*전문은 아래 '긴 대화 만나기' 버튼을 눌러 읽을 수 있어요.

관객: 영화 제목이 왜 〈이어지는 땅〉이 된 건지 궁금하고요, 배우 분들께는 촬영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과 가장 좋았던 장면이 일치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희영: 런던, 밀라노 도시 이름의 어원을 한 번 찾아봤었어요. 런던의 어원은 ‘좁은 땅의 성’이었던 것 같고,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밀라노 어원의 뜻이 '두 개의 강 사이에 떠 있는 땅'이었어요. 도시의 어원이 주는 제 나름대로의 어떤 해석과 이미지가 그려져서 '이어지는 땅'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붙게 됐어요. 〈이어지는 땅〉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그림이 관객분들마다 다르게 새겨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민정: 런던에 도착해서 촬영할 때 시차적응이 안 된 상태에서 잠을 이겨내면서 촬영해야 하는 상황이 제일 힘들었어요. 런던 집에서 호림이랑 이원, 서경, 동환이 만나서 얘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진짜 죽겠는 거예요. (웃음) 서로 계속 그냥 눈 뜨고 쳐다보고 있고, 근데 그 장면이 지금 생각해 보면 되게 웃기거든요. 힘든 만큼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정회린: 제가 좋았던 장면은 테라스 신에서 원래 제가 라이터를 놓고 가야 하는 거였는데, 연기하다가 저도 모르게 그냥 가지고 간 거예요. 시나리오 상에는 후에 동환 님이 라이터를 붙여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라이터가 없으니까 불을 못 붙이고 끝났거든요. 그 장면이 저는 보면서 되게 재미있었던 장면이었어요.


인디즈 박이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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