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각주* 본문이 기니까, 서론은 짧게 쓸게요.

젊고 아픈 여자들』 서평을 정지혜 영화평론가가 보내 왔어요. 영화의 깊이를 읽어내는 그의 글이 책의 깊이를 더해줍니다. 정성 어린 서평, 고맙습니다.

294번째 구독자 피드백에 마티 편집진의 독서 습관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와 하나씩 털어놓았어요. (🌱죽순은 🔇모베의 습관에 고개를 절레절레)

바흐 칸타타 청음회를 2월 22일(화)에 마티 사무실에서 조그마하게 열려고 합니다. 각주 구독자 한정으로 소수의 분만 모시려고 하니, 신청을 서둘러주세요☺︎


대선을 앞둔 설 연휴가 무척 혼란하리라 예상됩니다. 모두 무탈하게 보내시길요 🐾

살갗에 둘러싸인 폭동 같은 존재들에 대하여

🔮 정지혜 영화평론가


제주도 동쪽의 작은 마을 세화(細花)에서 이 글을 쓴다. 지명의 뜻을 풀어 써보면, ‘자잘한 꽃 무덤’ 정도가 될까. 차디찬 바닷바람을 견디며 작디작은 꽃들이 피어나는 애틋한 세화의 밤은 깊고 고요하다. 틈 하나 없이 빼곡히 들어찬 서울에서의 업무 일정표는 잠시 잊고, 소요의 시간을 자처해 짧지 않은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지난해는 내내 아픈 몸과 씨름했다. 작가, 평론가, 프로그래머, 모더레이터, 강사, 영화 저널리스트, 기자 등 두둑한 호칭을 둔 프리랜서 원고 노동자 혹은 영화 업계 종사자로서 몇 해를 내리 쉬지 않고 달렸던 게 탈이었을까. 족부 통증으로 인한 수술에 이어 면역계 문제로 인한 피부질환, 내면의 불안과 불면의 밤이 계속됐다. 당장 할 수 있는 게 일뿐이라며 일로 도피했다. 몸이 감당하지 못하는 이 연쇄를 어떻게든 끊어야 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그 틈의 피정이다. 이곳에서 미셸 렌트 허슈의 『젊고 아픈 여자들』을 읽는다. 저자는 과학, 젠더, 건강, 불평등을 주제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글쓰기를 하는 퀴어 작가이자 편집자다. 저자의 이름이 다소 낯설 테지만 상관없다. 책을 펼쳐 저자의 경험담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필경 그녀의 솔직함과 통찰에 한번 놀라고, 그녀뿐 아니라 그녀가 만난 또 다른 여성들, 즉, 아픈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려준 그들의 귀한 사투에 또 한 번 놀랄 것이다. 책장을 넘길수록 이 책을 지금 이곳 제주에서, 그것도 섬세한 이름을 가진 작은 마을에서 읽는 일이 꽤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기분 좋은 우연의 일치랄까. 가능하다면 더 많이, 더 열렬히 이 책을 내 삶의 구체적인 경험과 접속시키고 싶다.


제목 그대로 『젊고 아픈 여자들』은 저자 미셸 렌트 허슈를 포함한 ‘젊고 아픈 여자들’의 아픔과 생의 기록이다. 천천히 책의 제목을 다시 읽어본다. ‘젊고, 아픈, 여자들.’ ‘젊다’는 기준이 있을까? 젊은이도 아플 수 있나? 질문을 좀 더 구체화해보면, ‘나이 지긋한 이들이 앓거나 겪는다고 알려진 병과 통증을 젊은이들도 앓거나 겪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겠느냐고 답하겠으나 우리의 일상에서 젊은이가 병을 앓는다고 하면 그건 자연의 순리에서 한참 벗어난, 통상의 범주가 아닌, 예외의 상황으로 간주되곤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젊은 ‘여자들’이 그런 병을 앓는다고 하면? ‘젊고, 아픈, 여자들’을 향한 시선과 사회적 맥락화는 훨씬 더 복잡해진다. 저자 역시 ‘젊고, 아픈, 여자들’ 중 한 명이다. 고관절 수술, 비만세포 활성화 증후군, 라임병, 갑상샘암, 노인성 속 쓰림 등등. 믿기지 않지만, 이 모든 게 그녀의 몸에서 벌어졌다. 그녀가 이십 대일 때의 일이었다.

“그렇지만 당신은 너무 젊은데요.” 저자를 포함해 책에 등장하는 아픈 젊은이들이 하나 같이 듣는 말, 젊은 사람이 아프다고 하면 으레 나오는 말. ‘젊은 나이에 어떻게 하다가…’ 측은지심의 저 말에는 아픈 이의 현 상태와 고통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심과 외면의 심리와 시선이 짙다. 여기에 관해 저자는 ‘내가 하려는 말은 젊은 나이에 아픈 게 더 안 좋다는 것이 아니라, 암에 걸린 청년은 성인 암 환자 통계 속에 섞여 휩쓸려 버리기 때문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인구 집단이라는 점이다.’(182쪽)라고 적확히 지적하며 자기 질문의 자리를 찾아간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가시화되지 않은 존재 혹은 지워진 누군가의 자리에 관해 다시 묻게 될 것이다. 이어지는 또 하나의 촌철살인. ‘아프기엔 너무 젊은 나이 같은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프다.’(180쪽) 이 날카로운 통찰의 문장 앞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젊은이들, 그중에서도 여성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도 없고, 하나의 정체성으로 수렴되지도 않는 교차하는 정체성의 존재들의 이야기를 청해 듣기에 이른다. 그들은 아플 때조차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와 싸워야 하며 이와 동시에 ‘젊다’라는 애매하기 짝이 없는 말로 온갖 차별, 혐오, 편견, 부당, 불평등, 폭력을 겪어야 한다.


이처럼 『젊고 아픈 여자들』에는 저자뿐만 아니라 그녀가 직접 만난 ‘젊고 아픈 여자들’의 생생한 경험들이 수집돼 있다. 병이 부른 육체적, 심리적, 감정적, 사회적 변화들, 일, 우정, 연애 등의 균열과 재정립의 과정이 구체적인 사례로 소개된다. 저자의 자전적 기록인 동시에 진지한 사회학적 보고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이야기가 결코 하나로 수렴될 수 없다는 데 있다. 병의 징후와 예후가 수만 가지이듯, 그들의 통증과 아픔 역시 하나로 묶일 수 없으며 오직 그들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저자는 이 개별의 경험을 그 자체로 충분히 존중한다. 그러면서도 그들 사이의 너른 교집합의 지점을 짚어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이를테면 젊고 아픈 여성들이 아픈 것도 서러운데 그 아픔을 충분히 인정받거나 위로받지 못하며 살아왔다는 걸 든다. 아플 때조차도 여성들은 ‘아픔과 섹시함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연결 고리’(323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대중 예술이 ‘젊고 아픈 여자들’을 소비하는 방식을 짧게나마 언급한다. 잠시 가까운 예시로 고개를 돌려보자. 2000년대 한국 영화에 그토록 많았던 멜로드라마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성애 연애 관계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 불현듯 여성 주인공의 불치병 소식이 전해지고 그때부터 극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치달으며 연인 사이의 정서적 밀도는 고양되며 감정의 진폭은 커져 최루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국화꽃 향기>(2003)의 희재(고 장진영),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의 수진(손예진), <너는 내 운명>(2005)의 은하(전도연)처럼 지금도 회자되는 2000년대식 비련의 여성 주인공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외양과 젊음을 뒤로하고 죽을병에 걸린다. 환경적, 경제적, 정서적으로 결여 상태에 있던 남성 주인공은 여성 주인공의 불치병 소식을 기점으로 성장과 변화, 각성을 해 보인다는 점에서도 문제적이고 징후적인 흐름이었다. 본격 장르물로 넘어가면 젊고 아픈 여자들은 좀 더 기이한 상태에 빠져 있는 듯하다. 육체적 측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정신 질환 혹은 착란 상태, 몽환의 상태에 빠져 있는 듯하다. 젊은 육신은 매혹의 대상이 되지만, 이 매력적인 젊은 육신과 어긋나는 정신적 혼란과 아픈 상태는 극을 파탄으로 이끄는 긴요한 모티프가 된다. 한편, 책에서도 지적하듯 젊은 아픈 여성들이 의사나 주변인들에게 성적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그 거울 쌍이라면 나이든 아픈 여성들은 그 어떤 성적 욕망의 주체도, 대상도 되지 못하리라는 고정관념일 것이다. 그걸 완전히 깨뜨린 경우로 임선애 감독의 <69세>(2019)를 말해볼 수 있겠다. 69세 여성이 치료를 받다가 젊은 남성 간호조무사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이를 그녀가 세상에 알리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다. 젊은 남성이 나이든 여성에게 그럴 리가 없다는 통념을 여실히 드러내며 그 통념을 산산이 깨부수는 것이다. 젊음과 늙음의 문제가 특정 성별과 만나면 전혀 다른 의미로 적용된다는 걸 확인하게 한다.


‘이제 내가 천하무적의 동년배들과 같을 수 없’으나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생각은 더 자주 하게 됐다. 친구들과 즉흥적으로 어울려 노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마감 때문에 패닉이 되는 일은 (약간) 줄었다…현대적 삶을 모두 버리고 숲에 들어가 산다거나 다니던 직장을 당장 때려치우고 나 자신을 찾으러 가진 않을 것이었지만, 맡은 일을 이듬해까지 잘 마무리 지은 다음 쉬면서 글쓰기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나는 현재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대부분의 영화에 나오는 것보다는 덜 거창한 방식으로 그랬을 뿐이다.’(342쪽) 아프면서 겪은 변화에 관한 저자의 말이다. 나는 지금 제주의 조그마한 마을에서 미셸의 저 말을 나대로 구현해본다. 여기 있는 동안 청탁받은 일 하나를 정중히 거절했다. 제안을 받고 진행할지 말지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나 적어도 두어 달은 나를 돌보는 데 집중하고 싶다. 프리랜서로서 살면서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들어오는 일을 거절한 적 없었기에 나름의 시도라면 시도다. ‘젊고 아픈 여자’로서 좀 더 멀리 가보고 싶다. 지금까지와는 조금이나마 ‘다르게’ 살고 싶다. 그 힘을 『젊고 아픈 여자들』에서 얻었다. 책에 나오는 표현대로 ‘살갗에 둘러싸인 폭동 같은 존재’인 젊고 아픈 우리는 ‘죽음을 향해 아름답게 나아간다는 것의 무엇을 의미하는지’(343쪽)를 알아갈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바로 그 문제 말이다.


정지혜 영화평론가. 서울독립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예심 등을 진행했다. 『영화는 무엇이 될 것인가?: 영화의 미래를 상상하는 62인의 생각들』(공저, 2021), 『아가씨 아카입』(공저 및 책임 기획, 2017) 등에 참여했다.


❝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 출간 전 연재
대니 샤피로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음 

한 권의 책을 다 쓸 무렵이면 좋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아이를 대학으로 떠나보내는 기분과 좀 비슷하다. 당신은 아이가 대학에 가길 원한다. 한 독립적인 인간을 키웠다는 것이 기쁘다. 18년 전 초음파 사진에서 흐릿한 리마콩 같았던 것이 이렇게 키가 훌쩍 크고 복잡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초음파 사진은 아직도 침대 옆 탁자 뒤에 끼워져 있다. 18년이 어떻게 지나갔지? 당신은 상자에 짐을 넣고, 컴퓨터와 스테레오 장비를 나르고, 기숙사 방을 채우는 일을 돕고, 다시 차에 타서 운전대에 머리를 묻고 흐느낀다.


당신이 부모로서, 작가로서 할 일을 했다면 온 마음을 다 바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당신은 상실감에 빠진다. 한 권의 책을 끝낸 작가는 빈 둥지에 남겨진다. 이제 뭘 하지? 나는 이런 상황에 처할 때마다 이번에는, 이번에야말로, 앤서니 트럴럽(Anthony Trollope)이 소설 한 편을 끝낼 때마다 썼던 방법을 쓰겠다고 늘 다짐한다. 그는 마지막 문장에 밑줄을 그은 후 새 작품에 돌입했다. 생각할 시간은 없다. 그러지 않을 이유를 하나하나 곱씹어볼 시간은 없다. 그는 단순히…… 그저 계속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질 못한다. 그건 트럴럽의 리듬이지 내 리듬이 아니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원하건 그렇지 않건 책을 끝내고 다시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한 권을 쓰고 나면 고갈되고 만다. 책을 쓰는 내내 멀리했던 모든 관심이 내 의식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온다. 우리를 기억해? 가벼운 우울감이 파고들어 나는 놀란다. 이 감정은 부드러운 안개처럼 나를 감싸고, 어느새 세계는 이해 불능이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자유로이 문명사회로 돌아가 잠시 머무르는데, 여러 날 아무와도 말하지 않으면서 보내는 때보다도 더 고립된 듯하다. 다시 한번 나는 내 안에 갇힌 기분이다, 누군가가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내가 뭘 느끼지? 뭘 생각하지? 글을 쓰고 있지 않을 때면, 나는 모른다.


나는 책과 책 사이에 이런 걱정이 밀려올 때를 위해 많은 요법을 시도해왔다. 글 쓰지 않는 시간을 늘어지게 쉬고, 생각하고, 밀린 서류작업을 하고, 휴가에 쓰자고 스스로 말해왔다. 하지만 작가에게 먹히는 유일한 요법은, 유일한 치유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과제(project)가 아니라 실천(practice)을 말하는 것이다. 진지한 작품을 쓰는 도중이건 그저 메모만 하고 있건, 페이지는 우리가 자신을 만나게 되는 장소다. 우리 대부분은 너무 길어진 휴식을 견디지 못한다. 원고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 우리가 얼마나 엉망이고 동떨어진 기분을 느끼는지 다시금 알게 된다. 그러니 끝이 보이면, 자신과 약속하라 - 내가 나 자신과 약속하듯 - 내일, 그 다음 날, 다시 그 다음 날 자리에 앉을 것이라고. 새로운 걸 시작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성취하거나 성취하지 못할 기대나 환상이 없어도 좋다. 다만 글을 쓰는 행위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첼리스트 중 한 사람인 파블로 카살스(Pablo Casals)는 80년 동안 하루를 똑같이 열었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바흐 프렐류드 두 곡과 푸가를 연주합니다. 그러면 나는 삶의 경이로움에 대한 인식으로 채워지고, 인간 존재라는 것의 믿을 수 없는 경이의 느낌으로 채워집니다.”


각주* 38호에 4회가 연재됩니다.

❝ 독서 습관 ❞
🦈 조스바 - 양장의 책등은 부채꼴이어야
양장 제본(특히 각양장) 책은 간혹 단단한 합지로 된 책등에 실제본한 본문의 등이 풀로 딱 붙어 있어요. 이런 책은 시원하게 펼쳐지지 않죠. 양장 제본을 구입하는 이유가 뭡니까.ᐟ 쫙쫙 펼쳐지길 원해서 아닌가요? 책의 안쪽 면적으로 몇 글자라도 굴곡지며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면 답답하잖아요. 그래서 양장 표지 책등과 본문 책등이 붙어 있으면 칼로 살살 긁어서 떨어뜨립니다.

🦻 팔랑 - 벼룩들이 위협할수록 어려운 책

수선스러우면서 무료하고 귀찮지만 어쩔 수 없는 시간들을 쓰레받이로 담아 한켠에 쌓으면 엄청난 분량의 시간들이 될 거예요. 예를 들어, 병원이나 은행에서 대기하기, 몸이든 물건이든 수선과 치료를 위탁하고 기다리는 시간. 그런 때는 평소에 읽던 책이 아닌, 새 책을 챙깁니다. 지루하고 어렵고 무거워 평소에 잘 읽지 않는. 『미학』, 『부덴부로크가 사람들』, 『고전적 양식』 같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묵직한 책을 신발 신기 직전에 두서없이 챙겨요. 대기 두 시간 동안 한 단락만 읽고 와요.


본래 책갈피는 영수증이나 띠지를 쓰곤 했는데, 얼마 전 책방 소리소문에 놀러갔다가 희한한 책갈피를 얻어 왔습니다. 삽입된 광고지를 보니 특허까지 받은 제품이었어요. 100만 독자가 이미 쓰고 있다고! (난 왜 이제야!) 반신반의하며 써봤는데, 대만족입니다. 써봐야 안다는 광고문구를 실감했어요. 좋은데, 설명할 길이 없네요😹
🔊 모베 - 가름끈을 잘라라

책장에 꽂아둔 양장본의 가름끈이 삐져 나오는 게 싫어서, 가름끈을 책 크기보다 살짝 더 긴 길이로 잘라버립니다. 한때는 노란색 형광펜을 애용했습니다. 십수 자루를 사서 책을 읽을 만한 모든 곳에 뒀습니다. 책상, 식탁, 커피테이블, 화장실 등등. 지금은 연필만 사용합니다. 밑줄과 메모, 모서리 접기, 날개 책갈피로 이용하기, 표지 살짝 찢어보기(코팅 여부 확인용) 등은 괜찮지만, 비닐 포스트잇은 안 됩니다.


🧼 퐁퐁 - 포스트잇의 자리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을 만나면, 문단 왼쪽 또는 오른쪽 끝에 맞춰 포스트잇을 붙이고 책 밖으로 살짝만 튀어나오도록 접습니다. (여백이 밭은 책을 만나면 난감합니다.) 포스트잇은 언제나 고양이들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라 요즘은 몇 장을 떼어다가 면지에 붙여놓고 책을 읽기 시작해요.
❝ 제주 서쪽 일주하기: 서점을 징검다리 삼아 ❞

🌱죽순입니다. 얼마 전 제주 여행을 다녀왔어요. 꼭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없이 휘적휘적 돌아다녔어요. 제주 서쪽 해안을 크게 도는 202번 버스에 의지한 채 길 위에 시간을 팡팡 내다버렸죠. 내렸던 정류장마다 좋았던 곳이 있었고, 그곳들을 나눠요.


☕︎ 카페: 컴플렉스

공항에서 내려 제주시를 한바퀴 돌아보다가 만난 커피집. 정체도 모르고 잠시 앉아 쉬려고 무심코 들어갔어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진한 금빛의 크레마를 본 순간, 여기다! 싶었죠. 가만 앉아서 지켜보니 제주도민과 관광객의 비율이 반반. 그런데도 요란하지 않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작고 무게감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3박 4일 제주를 돌아다니며 여기보다 나은 커피집을 만나진 못했어요. 

* 인스타그램엔 사진이 딱 세 장뿐. 갔다 온 사람으로서 어쩐지 수긍이 갑니다.


📚 서점: 우생당

100년 서점을 넘보는 제주도의 오래된 서점. 찾는 이가 많은 학습지와 수험서가 절반, 남은 서가엔 소설 조금 많이, 그림책 조금, 인문/사회/과학/철학이 쪼금 있어요. 2010년 이후 탄생한 ‘동네서점’의 ‘힙’은 찾아볼 수 없지만, 제주도민에게 책을 공급해온 시간의 힘은 ‘힙’ 그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요즘 애들』을 구입. 벼랑 위의 집』 첫 발견.


🏞 오름: 저지오름

한경면에 있는 작고 둥그런 오름이에요. 주민들이 조림한 숲길은 아침 산책을 하기 딱 좋습니다. 야트막해서 오르기 어렵지 않아요. 오름 입구에 놓인 엉성하고 지도가 귀엽습니다. 


🍚 밥집: 길동무

저지오름 입구에 있는 한식집. 1시간 30분 정도 오름을 산책하고 내려와 구수하고 시원한 시락국밥을 먹었어요. 주민도 포장해서 사 가는 국밥집이더라고요. 두부부침과 함께 드세요. 저는 어쩐지 본질을 잊고 두부부침에 환장했답니다.


📚 서점: 책방 소리소문

한라산을 또렷이 볼 수 있는 명당에 자리 잡고 있어요. 마티 책이 곳곳에 있어 저는 수줍은(뿌듯한) 웃음을 흩뿌리고 다녔습니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 서점에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성인 언어』, 성경 읽는 법』, 먹는 인간』과 우생당에서 만나고 또 눈에 띈 벼랑 위의 집』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구입. 

* 저지오름-길동무-소리소문 쓰리콤보 추천해요. 각각의 거리가 도보 10분 이내.

* 표지와 출판사가 낯설었던 벼랑 위의 집』은 여행 중에 완독. 아이의 권리와 어른의 의무, 다양한 존재, 존재의 인정을 둘러싼 싸움, 그리고 여러 빛깔과 형태의 사랑을 담은 판타지 소설인데, 한 번 읽기 시작하니 여행이고 뭐고 자리에 앉아 끝까지 읽고 싶어서 혼났어요.


🍗 밥집: 댄싱포크

202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가면 사계리가 나와요. 댄싱포크는 튼실한 산방산이 있는 사계리의 밥집입니다. 흑돼지 안심을 동글동글 메달처럼 만들어 굽고 양송이버섯 등이 들어간 꼬소한 소스를 뿌려 나오는 '댄싱포크 메달리온'을 먹었어요. 접시에 메달 다섯 개를 보고 '너무 적어!' 아우성쳤지만 다 먹고 나니 배불러서 머쓱. 널찍한 매장에 테이블 간격도 적당히 넓어서 유난히 쾌적하게 식사할 수 있었어요.


📚 서점: 어떤 바람

골든리트리버 산방이의 환대를 만끽할 수 있는 서점. 주인장이 기꺼이 내주신 귤을 까 먹으며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正義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를 구입. 책을 샀어?”라는 동행의 질문에절판될까 라고 즉답하는 출판인의 심정이란.


🍦 아이스크림: 녹차 앙꼬바

팥을 좋아하는 1인으로서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녹차 앙꼬바’는 인생의 선물입니다. 대기업 아이스크림인데 집 주변에서 파는 곳을 찾지 못해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 바흐 칸타타 함께 들어요 ❞
2월은 마티 ✕ 글릿과 함께🎶 

한글 번역만 있으면 매주 칸타타를 들을 수 있을 줄 알았죠. 바흐는 매주 썼다는데 20~30분 듣는 게 어려울까 싶었지만, 들어야 할 칸타타는 구몬처럼 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듣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각주” 구독자분들만 모시고 소박한 하이파이 시스템 앞에 둘러 앉아 2월의 칸타타 몇 곡을 차분히 들어볼까 합니다. 곡과 음반에 대한 간단한 정보만 공유하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교회 칸타타』를 펴들고 귀를 기울이는 걸로요. 


일시: 2022년 2월 22일 저녁 7시 반 

장소: 서교동 마티 사무실 (마포구 잔다리로 127-1 8층)

신청: 구글폼 👈 클릭 (무료 & 10명 추첨)

★ 백신 패스 적용됩니다

[각주 33호*]에서 소개한 클래식 뉴스레터 '글릿' 기억하시는 분? 1월 첫째 주, 글릿을 만들고 있는 에디터 W님과 S님이 마티 사무실을 방문해주셨어요. 글릿의 2022년 계획을 나누고 마티의 음악 책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음악 좋아한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재미난 일을 해보려고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답니다. 2월 한 달간 글릿 뉴스레터는 [마티x글릿] 이름으로 발행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글릿을 구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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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마티의 각주*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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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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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 잔다리로 127-1, 레이즈빌딩 8층 (03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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