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님. 책 속의 문장으로 만나는 뉴스레터, 텍스처 픽입니다.

취향

당신이 읽는 책이 당신을 말해준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책장은 당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곳.
나는 당신이 궁금합니다.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나요?

11월 1주차 #30 인터뷰ㅣ맹그로브 커뮤니티팀 리더 박찬빈의 문장들
11월 2주차 #31  아티클ㅣ문장에서 시작된 한 사람만의 이야기 by 작가 임진아
11월 3주차 #32 인터뷰ㅣ요리사 요나의 문장들
11월 4주차 #33 큐레이션ㅣ깊게 파서 넓어지기 + 텍스터의 기록

문장에서 시작된 한 사람만의 이야기입니다.
귀를 기울여 주세요, 그리고 함께 읽어주세요.

임진아
삽화가, 에세이스트

읽고 그리는 삽화가. 생활하며 쓰는 에세이스트. 
만화풍의 생각을 쓰고 그립니다. 종이 위에 표현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이 메모들은 무엇이 될지 신경을 끄는 성공했다.”
『음악가 김목인의 걸어 다니는 수첩』, 김목인, 책읽는수요일
 
‘좋다’고 느끼는 기분이 들걸랑 바라볼 곳이 생긴 사람의 표정으로 멀거니 서 있게 된다. 당분간은 신나게 걸어갈 수 있는 작은 거리 하나가 생긴다는 생각에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상기된다. 내 일과를 비집고 자리한 이 길은 꼭 해야 하는 일들에 비하면 느슨하지만 가장 진하게 보인다. 바로,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으로 난 길이다.

취향이 이상하다는 말을 종종 들으며 자랐다. 이 말은 내가 좋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한 평가이기도 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만 해도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시디플레이어와 듣고 싶은 곡이 든 시디를 챙겨 나왔어야 했다. 취향이 사물로 보이던 시절이었다. 시디 10개가 들어가는 플라스틱 보관함에 오늘 듣고 싶은 10개의 앨범을 챙기고, 시디플레이어 안에는 등굣길에 들을 시디를 넣었다. 학교에 가는 건 내가 학교에 소속된 학생이기 때문이었지만, 실은 이 시디들을 고르고 듣기 위해서라고 나는 나에게만 들리게 늘 생각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좋다고 느낀 것을 바라보고, 그렇게 하루를 겨우 견디며 우리는 살았다. 그 무언가가 서로 비슷하거나 아예 다를 뿐이었고, 가끔 하나가 맞으면 손뼉을 쳤다. 단, 이상하다고 여기면 안 되는 거라고 서로 약속한 줄 알았다. 친구가 나에게 취향이 이상하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책상 위에 둔 내 시디 모음을 하나씩 구경하던 친구가 기어코 입을 열었다. “이런 시디 사면 돈 안 아까워?” 질문이 아닌 물음표는 듣는 이를 멈칫하게 만든다. 나는 바로 대답을 찾지 못했고, 내가 들은 말을 멀찍이 서서 구경하고만 싶었다. 점심밥과 야자 저녁밥을 굶어가며 산 시디들이었다. 한 곡이 좋아서 산 시디에는 그보다 더 좋은 곡이 숨어 있곤 했다. 소중한 시디라고 말할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따질까, 일단 화를 낼까, 그보다 지금 내가 화가 났나? 화나기보다 어이 없다는 생각에 일단 웃으면서 차분히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거니까 아깝지 않지. 너 XXX 좋아하잖아. 시디 살 때 아깝지 않았지?” 친구는 내 말에 당연히 아깝지 않았다면서 “그렇구나” 하며 말을 끝냈다. 종이 치며 수업이 시작됐고, 나는 사고 싶은 시디를 사기 위해 점심을 몇 번 굶어야 하는지를 계산해 교과서 한 귀퉁이에 끄적인 낙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직은 없는 시디를 언제 살 수 있을지를 그려보며 그대로 앉아 있었다. 쉽게 상처받는 나지만, 이 상처는 하고 싶은 걸 누리려는 마음을 쉽게 이기지 못했다.

무엇이 될지 신경을 끈 채 달려가고 싶은 방향으로 마음을 쏟는 일이야말로 한 사람을 자라게 한다는 걸, 뒤늦게 10대의 나를 바라보며 겨우 알아챘다. 좋아하는 것만은 끔찍하게 챙기며 살았구나 싶어서 괜한 안도를 한다. 누구든 취향을 정하려 들지 않는다. 취향을 정할 때가 됐는데 뭘로 하지 하며 고민하지 않는다. 취향이란 억지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억지로 만들고 싶어 하지도 않으니까. 이미 나도 모르게 웃고 있다. 취미의 뜻이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면, 취향의 뜻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니까. 

수첩 하나를 선물 받고서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는 메모를 꾸준히 쓴 한 명의 음악가는, 노래를 지으려 할 때면 수첩부터 펼쳤다. 무엇이 될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기록이 그를 음악가가 되게 한 것이다. 어쩌면 메모를 끄적이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그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쓰는 이야기만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노래가 된다는 것을.

때때로 원고를 쓸 일이 생기면 블로그에 적어둔 글을 읽는다. 여전히 듣고 싶은 노래를 진득하게 듣는 나는, 블로그에 노래를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한 곡을 틀어둔 채 노래 일지를 쓴다. 오늘 내 하루와 좋다고 느끼는 곡 하나가 만나면, 오늘 하려고 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생겨난다. 노래는 나에게 이야기의 첫머리를 주었고, 오늘을 사는 나는 그걸 그저 별생각 없이 적어 내려갔다. 원고를 쓰기 위해 빈칸을 열면 아직은 없는 글에 보는 사람의 시선만이 둥둥 떠다녀서 좀처럼 한 마디를 시작하기 어려운데,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는 글이라고 생각하면 어떤 말이든 얼른 하고 싶어진다. 즐겁게만 듣던 사람으로 오래 살아서인지 노래 곁에서는 쉬이 마음이 열린다. 블로그는 언젠가부터 글감 노트가 되었지만 이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

내 마음으로 만든 거리들은 어떤 때의 나를 쉬게 한다. 또 어떤 날의 나를 멍하게 하고, 어떤 마음을 잊게 해준다. 곤두서 있던 상태에서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하는 마음만 갖고 앉아 있게 해준다. 그래서일까, 생에서 아주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때면 취향으로 난 길 하나에 서 본다. 그 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무엇이 될지 신경을 끄는 데’ 성공한 길 위에서는 이상하게 무엇이든 하고 싶어진다. 그 길 위에 서서 또 다른 길을 내며 하나둘 모퉁이를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의 취향은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날까지 기꺼이 손을 뻗는다. 그 손을 잡아도 좋고 잡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 시절의 내가 어딜 바라보며 웃었는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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