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곁의 공포 / 고어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2021.07.22.

#48

🎈 철딱선희의 PICK

✔️ 도서 : <시린 밤>

✔️ 음악 : SHE'S <Take it easy>

🕯 아세틸렌 램프의 PICK

✔️ 도서 : <고어 자본주의>

안녕하세요! 에디터 철딱선희입니다 🎈

이름을 알려주세요!님, 여름을 무사히 건너고 계신가요? 종일 집에 있다 잠깐 밖에 나갈 때마다 어찌나 숨이 막히는지요.

대신 올 여름도 작년처럼 스위치를 붙잡고 살아볼까 합니다. 닌텐도 스위치 <크레용 신짱 - 나와 박사의 여름방학>을 시작했거든요!

쿠마모토 큐슈에 출장을 가게 된 아빠를 따라, 온 가족이 쿠마모토 앗소라는 시골 마을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됩니다. 짱구 가족은 역에 도착하자마자 어느 수상한 박사를 만나는데요. 박사는 자신이 만든 카메라를 빌려줄 테니 후기를 들려달라고 해요. 사진을 찍으면 그림으로 바뀌는 신기한 카메라를 가지고, 짱구는 앗소 곳곳을 다닙니다.

짱구 가족이 일주일 간 머무는 곳은 엄마의 오랜 친구 요요코의 집이에요. 요요코는 식당을 꾸리고 있고, 남편은 작은 신문사를 운영합니다. 짱구는 식당에서 배달과 재료 조달을 맡고, 신문사에서 어린이 기자로 활약하기도 해요.

낚시를 하고 곤충을 잡고 야채도 심고... <동물의 숲>과 꼭 닮았죠?

자기 전 양치는 필수! 🚿

사이타마에 두고 온 유치원 친구들을 닮은 이상한 아이들과 친해지고, 거대한 공룡을 마주치기까지 하는 짱구의 여름방학.

아쉽게도 국내 정식 발매 일정은 미정에 영문판도 없어 일본어로만 플레이할 수 있지만, 여름을 만끽할 수 있는 집콕 콘텐츠로 추천합니다. 😆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여름 냄새 물씬 나는 고화질 배경화면도 다운 받을 수 있대요.

📕 도서 | 이름을 알려주세요! 곁의 공포

지난주엔 램프와 함께 화제의 영화 <랑종>을 보았는데요. 쫄보로 유명한 제게도 전혀 무섭지 않은 영화더군요. 😅 여러 논란이 있지만, 무서울까 봐 못 보고 계신 분이 있다면 걱정하실 필요 없겠어요. 불 켜두고 보는 겁쟁이 상영회도 있다는데 아무래도 재미가 반감될 것 같아요.

공포물을 즐겨보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는 도시 괴담인데요. 현실과 맞닿아 있어 선연하게 다가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번역 괴담보다 국내 커뮤니티 공포글을 더 좋아하고요.

괴담이나 공포 영화의 인기가 상당함에도 의외로 국내에서 공포 문학은 비주류로 여겨지는데요. 특히 국내 작가의 작품은 보기 드문 듯해요. 그래서 최근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 더욱 반갑기도 하고요.

기획회의 때마다 SF 다음에 떠오를 장르는 공포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저의 마음을 담아, 오늘은 한국 젊은 작가들의 선득한 추리소설 앤솔러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시린 발> 금희 외 11명, 걷는사람, 2018년

"우리 엄마는 저 간수를 받아서 두부를 만들어. 간수는 그대로 마시면 독이 되지. 눈이 멀어지기도 하고, 벙어리가 되기도 하고, 목이 타고, 몸이 구부러지고, 다리가 오그라들어 죽게 된대. 신기하지 않니? 그런 간수가 콩물 속으로 들어가 따뜻하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두부를 만든다는 게." - 우승미 '검은 솥'

출판사 '걷는사람'의 '짧아도 괜찮아'는 각 테마별로 손바닥소설을 묶은 짧은 소설 시리즈입니다. 아마 몇 년 전 출간된 <무민은 채식주의자>로 알고 계신 분도 있겠어요. 지금까지 총 5권의 책이 출간되었는데, 2019년 이후로는 소식이 없어 개인적으로 궁금해 하고 있는 시리즈기도 합니다. 👀

그간 국내 추리소설은 하나의 장르로 온전히 자리매김하지 못한 채, 문학장 주변을 겉돌았을 뿐입니다. '장르문학'으로 뭉뚱그려져 제대로 읽히지도, 쓰이지도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 '기획의 말'

'기획의 말'로 미루어 보아 <시린 발>은 추리 소설을 테마로 엮였지만, 저는 공포 소설에 가깝다고 느꼈는데요. 추리하는 재미보다는 우리 곁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생생하게 담아냈기 때문이에요.

세계 안이면서 동시에 밖인 것. 귀신은 우리가 만들었지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틈으로 들어온다. 문명의 빈틈, 세계의 구멍. 귀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규정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것이 그들의 속성이기 때문에,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닌 중첩되어 있는 것. 왜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 정지돈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남자 노인들이 자꾸자꾸 죽어가는 마을,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자신이 가진 새 책으로 바꿔달라며 집으로 찾아온 여자(이 책을 빌린 건 어떻게 알고?),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소녀가 서로 자기 딸이라고 우기는 여자들, 남자친구가 없는 날만 골라서 '너무 시끄러우니 조용히 해'달라는 옆집 남자.

어쩌면 우리 동네, 바로 우리 집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을 사건들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뿐 아니라, 미처 주위를 돌보지 못했던 건 아닌가 하는 성찰을 이끌어냅니다. 누군가 한 번쯤 돌아봤다면 그들을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거든요.

이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은 안정과 평화를 가장하고 있으며 그 겉모습 뒤에는 불안과 증오가 도사리고 있다. 이 세계와 인간의 어두운 곳을 탐색하는 추리소설은 군중 속에 숨은 악과 고독, 그리고 타인의 아픔을 읽어낸다. - 신철규(시인)

아마도 남성일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속 화자가 꿈을 오가며 귀신이라는 미지의 존재를 두려워 할 때, 그의 친구는 현실에서 여자가 지하철에서 책을 읽었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노인에게 큰 소리로 욕설을 듣고 위협 당해요. 공포영화보다 현실이 더 무섭다는 농담이 마냥 우습게 들리지 않는 순간이죠.

놀라운 반전이나 엄마를 찾게 만드는 극강의 공포는 없지만, 읽다 보면 서늘해지고 자꾸 발밑을 확인하게 하는 <시린 밤>으로 에어컨 설정 온도를 1도 높여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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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 | 여름밤 맥주와 어울리는 음악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오는 요 몇 달 간 들을 노래가 없다며 투덜댔는데요. 지난주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어요. 밴드 SHE'S의 신곡이 발매되었더라고요.

<2시 45분부터 느리고(Slow) 쉬운(Easy) 루틴으로>라는 TV 프로그램의 테마송으로, 5월부터 온에어만 하다가 두 달 만에 음원으로 발매된 거라 늦은 감은 있지만 오히려 지금 계절에 듣기 좋은, 청량하고 댄서블한 노래예요.

자가복제라는 비판도 많지만, 그만큼 스타일이 확실하고 내년에 첫 부도칸 공연이 예정되어 있을 만큼 호불호 없이 대중적인 음악을 하고 있어요.

집콕이 지겨운 여름밤, 차가운 맥주 한 잔과 함께 내 방을 록 페스티벌로 바꾸어줄 SHE'S의 <Take It Easy>를 함께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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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 고어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당신은 멕시코의 역사를 아십니까?

좋아요. 상관없습니다. 별로 알아야 할 것도 없습니다.

다 먼지이고 피입니다.

앨런 무어, <미라클 맨>

<고어 자본주의> 사야크 발렌시아 지음. 최이슬기 옮김. 워크룸프레스. 2021

시립 도서관에서 <도쿄 아포칼립스 ~최후의 결전~>이라는 영화를 빌려 보고 있습니다(현재 진행형인 이유는 사실 아직 끝까지 못 봤기 때문).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우연히 영상자료실에서 발견하고 사전 정보 없이 대출했는데 알고 보니 왓챠에도 있던 영화더라고요(그래도 도서관 자료실에서 dvd를 빌리는 건 옛날 비디오 대여점의 추억도 떠오르고 여러모로 즐겁습니다). 시리즈물도 아닌데 '최후의 결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영화의 원제는 야쿠자 대전쟁(極道大戦争). 네,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장기인 '야쿠자물'입니다.

야쿠자물의 철저한 공식이 빚어낸 주인공 '카게야마'는 두목의 인품에 반해 건달의 세계에 입문한 청년입니다. 일반인은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는 철칙의 카게야마는 어느 날, 존경하는 두목의 잘린 목에 물려 '야쿠자 뱀파이어'가 됩니다(여기서 어떤 만화가 떠오르지요).

당연히 뱀파이어니까 피를 빨고 싶어지는데, 평소에는 손을 대지 않았던 '일반인'들의 피를 빨게 됩니다. 그런데 카게야마에게 피를 빨린 부동산 직원, 간호사, 여고생들은 전염되듯이 '야쿠자 뱀파이어'가 됩니다. 간사이풍의 거친 말투를 쓰고, 주사위 도박을 즐기고, 툭하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으름장을 지르죠. 그리고 '진짜' 야쿠자들의 피를 빨기 위해 습격합니다. 일반인들의 고혈을 빨아 먹던 야쿠자들이 정말로 피를 빨리게 된 것이죠!

미이케 다카시 특유의 호쾌하고 잔혹한 액션도 볼거리지만, 이 영화를 가장 재미있게 볼 사람들은 평소 일본의 범죄 집단인 '야쿠자'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일반인들이 야쿠자적 유형에 수반되는 옷차림, 태도를 모방하는 것이 재미 포인트니까요. 물론 저도 이 타깃 소비자에 속합니다. 일본인도, 폭력배도, 지하마켓의 종사자도 아닌 평범한 제가 어쩌다가? 이전 레터에서 빠져 있다 고백한 어떤 게임 덕분이죠😝

야쿠자 외에도 마피아, 카르텔, 조폭, 무법자, 나르코... 다양한 문화권의 범죄조직을 주제로 한 콘텐츠에서 재현된 조직 폭력배의 관행과 문화 관습에 익숙하신 분들이 저처럼 많을 겁니다.

트랜스 페미니스트 사야크 발렌시아는 본래 영화에서 극단적이고 잔혹한 폭력을 특징으로 하는 장르를 일컫는 '고어(gore)'라는 단어를 가져와 본인의 고향이자 라틴아메리카의 마지막 모퉁이라고 불리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국경 도시 티후아나의 사례를 통해 국경 지대의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자본주의의 논리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제3세계에서 일어나는 폭력, 그리고 말 그대로 인신매매와 장기거래, 불법 약물 판매 등 고어 장르처럼 사람의 내장이 전시되고 몸이 거래되는 행위를 설명하기 위해섭니다.

패권국과 자본주의의 경제적 요구 때문에 제3세계와 국경지대의 사람들은 빈곤이라는 범주 속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함께 성장하고, 연대하는 집단으로 결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단 하나, 영웅적 폭력배의 존재를 제외하고서요.

지역 범죄자 혹은 범죄자 무리(대부분이 남성)를 우상화하고 조직범죄에 대한 대중문화를 만드는 행위에는 빈곤층뿐 아니라 사회 전반이 그 범죄자들과 관련된 소속감 속에 스스로를 정체화하도록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

한편으로 이것은 경제 법칙을 초월하는 현상이며, 상징적 가치를 매개로 조직범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문화유산을 만드는 길로 우리를 이끈다.

야쿠자, 마피아, 조폭, 무법자, 나르코... 납치, 암살, 약물, 인신매매 등 고어적 관행을 수행하는 계급들은 '전 지구적 범죄 계급'이라는 새로운 사회 계급을 만들어 범죄성이 비윤리라는 단계를 넘어서 윤리를 거꾸로 뒤집어 다른 방식의 사회화, 다른 위상을 만들었지요. 한편 살인과 극단적 폭력을 정당성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그들은 윤리적인 현실을 넘어 행동하고 대중적 지지에 힘입어 현실을 재설정하는 서사까지 부여받습니다.

나르코는 미화되고, 나르코 문화는 성장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영웅이 되고 싶은 개인들이 영웅이 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교육, 법, 사회적 투쟁을 통해서 영웅이 될 수 없다면, 남은 경로는 범죄뿐이다.

저자가 예시로 들은 TV 시리즈 <소프라노스>나 게임 <GTA>가 주제로 삼았다고 해도 그것들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파고들면 시스템을 매섭게 비판하고 있기까지 하죠. 저자도 폭력적 콘텐츠에 대해 악마화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수용자들에게 그 의도가 이해되고 있을까요? 당장 유튜브에 'GTA 플레이'를 검색해서 나오는 영상들만 봐도....

타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이름을 붙이기 위한 담론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디어가 타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유일한 관점에서(...) 과도하게 재현"함으로써 그 사건에 이름을 붙이기 위한 담론은 더 부족해지는 실정이다. 미디어는 결국 '익숙한' 것, '내가 이해하고' '내가 공감하는' 이야기만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이 '익숙함'과 '이해'가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거나 나를 전혀 포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미디어가 폭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들이미는 상황에서 시청자로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고어 이미지를 소비하는 나에게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

우리가 고어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현상을 가상 공간을 통해 각자의 집에서 안락하게 즐기는 동안, 지구 어딘가에는 픽션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고어적 광경이 실재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이러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환경보다 더 광대하고, 많습니다. 이것이 수많은 도시가 처한 오늘날의 현실이고, 고어 자본주의는 전 지구적 현상이라 저자는 지적합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고자 하는 도시 티후아나가 바로 대표적인 예지요. 저자는 고향 티후아나에서 맞닥뜨린 충격적 광경 덕분에 운 나쁜 일은 언제나 타자들에게 일어난다는 미디어의 논리에 회의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고백합니다.

잡담과 무심함 사이에서, 그 픽업트럭이 도로의 틈새에 걸려 자루 하나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주행 중인 내 차 앞에서 찢어진다. 그 안의 내용물이 나를 관통한다. 내 망막에 새겨진다. 여전히 어떤 밤에는 반복해서, 느린 동작으로 떨어지는 그것을 본다. 내 차 앞에 한 남성의 토막 난 몸통이 떨어진다. (중략)

나는 거의 목이 잠겨 거칠어진 목소리로 동생에게 묻는다. "저거 뭐였어?"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내 어깨의 손을 올리고는 말한다.

"토막 난 남자 몸통이었어, 사야크. 여기 티후아나야."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폭력이 고어적으로 흘러가는 현상에 대해 머물러 있지 않고 해결의 전략을 세울 수 있는 도구로 페미니즘 이론과 운동의 자원을 활용, '트랜스 페미니즘'을 제시합니다.

남성성을 해체하고 복수의 남성성을 생성하는 움직임은 젠더 관점과 트랜스페미니즘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트랜스페미니즘은 여성의 사회적 운동뿐 아니라, 디스토피아적이지 않은 새로운 정체성(여성과 남성 모두를 포함한)을 만들어 내고 이해하기 위한 인식론적 범주를 의미한다. 새로운 주체적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젠더에 대한 이분법적이고 위계적인 전제에 매달리는 것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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