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어요! 우리는 어쩌면 이곳에서만 만나는 사이겠지만, 인사말도 적고 답장도 받다 보니 조금 남다른 애정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새해엔 복 가-득 떠안으시고 가끔 탈이 나도 잘 흘려보내실 수 있는 날들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라요. 연초 인사에서부터 연말 인사까지는 참으로 먼 여정인데, 끝에서 시작으로 오긴 참 쉽죠? 그런 헛헛함을 안고 있다가 우연히 오마이걸 선생님들의 <비밀정원>이라는 노래를 들었어요. 희망차지만 어딘가 약간은 쓸쓸하게 느껴지는 전주 멜로디, 갑자기 훅 들어와 난데없이 심장을 가격하는 드럼 킥 소리···. 그리고 이런 말이 들립니다. 내 안의 소중한 혼자만의 장소에 멋지고 놀라운 걸 심어뒀는데, 아직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라는 그런 말. 줄글로 보니 약간은 느끼한 듯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을 거라 여겨지는 이 말에 조금 위로를 받았어요. 가끔 이런 말을 나도 모르게 기다리기도 하나 봅니다. 아직 붙잡혀 있는 느낌이 들거나 시작이 이리 삐끗거려도 되나 의심될 때, 남들은 모르지만 내가 열심히 심고 있는 것들을 떠올려볼까요?
'나 비밀정원 있거든? 후후😙' 하면서요!
 ⏳ 모래 신간 소개 『나는 남자들이 두렵다』
비벡 슈라야Vivek Shraya의 홈페이지  
My neck hurts from checking my shoulder
My feet hurt from walking faster
Are you hitting on me?
Are you hitting on me?
Or are you going to hit me?
내 어깨를 신경쓰느라 내 목이 아파
빨리 걷느라 내 발이 아파
나를 때리는 거야?
나를 때리는 거야?
아니면 나를 때릴 거야?
위는 나는 남자들이 두렵다 쓴 저자 비벡 슈라야가 2017년 Queer Songbook Orchestra와 함께 발표한 EP 앨범 'PART-TIME WOMAN'에 수록된  <I'm afraid of men>의 가사 일부입니다. 책 제목과 같아요. 앨범 제목에서도 느껴지는 '여성성'에 관한 질문은 앨범 소개글에도 드러나 있어요. "여성을 정의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성으로 보이고 평가되기 위해 기대되는 노동에 대한 비판. 성별이 잘못 부여되었거나, 충분히 여성적이지 않다고 느끼거나, 복잡성에 저항하는 언어에서 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 음반은 캐나다 공영방송 CBC 선정 2017년 최우수 캐나다 음반으로 꼽히기도 했고요. 홈페이지에 아카이빙된 목록만 봐도 정말 다양한 부분에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비벡슈라야는 음악, 문학, 시각예술, 영화 등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활동을 하고 있는 캐나다의 예술가입니다. 캐나다 최고 명반에 주어지는 폴라리스 음악상Polaris Music Prize 후보에 올랐고, LGBTQ 문학상 중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평가되는 람다문학상Lambda Literary Award 후보에도 여러 번 오른 바 있죠. 그리고 그는 유색인 트랜스 여성입니다. 
슈라야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바로 앞 장에는 어슐러 K. 르 귄의 말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여자들이 말을 하면 많은 남자가, 심지어는 여자들도 겁을 먹고 화를 낸다. 이 야만적인 사회에서 여자들이 진실을 말하려면 전복적으로 말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짓눌리고 억눌린 당신은 탈주하고 전복한다. 우리는 화산 같은 존재다. 우리 여자들이 우리의 경험을 우리의 진실로서, 인간의 진실로서 말하는 순간, 모든 지형도가 바뀔 것이다. 전에 없던 새로운 산맥들이 생겨날 것이다."

철옹성 같은 웅장함으로 시작되는 책장을 넘기면 보이는 서문의 첫 문장은 바로 "나는 남자들이 두렵다"입니다. 그 뒤로는 그가 느끼는 극심한 두려움이 주욱 나열돼 있어요. '소녀'라는 말을 무기삼아 공격하고, 내가 지닌 여성성을 혐오하고 기어이 망가뜨리도록 가르치고, 내 안의 비상한 면모들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친 남자들이 두렵다고요. 누군가는 너무도 단번에 무엇인지 알아차릴, 누군가는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다양한 두려움의 이유가 서술되어 있어요. 젠더 이분법이나 남성성이 가지고 있는 해악을 복잡하게 설명하기보다 자신의 삶과 일상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죠. (책을 다 읽고 나면 두려움을 느끼는 주체가 '나'인 듯한 이 책의 첫인상 속에서 왜 어슐러 K. 르 귄의 말이 인용되었는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그야말로 찰떡 인용!)

우리는 슈라야가 보여주는 대로 그저 보고, 따라가게 됩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요. "저 동양년들은 맛이 어떠려나?" "계집애들이 헐벗고 날뛰는 꼴을 보아하니 벌써 여름이네." 같은 택시 기사의 말이 재연되는 장면. 그 대사에서 여성 혐오, 인종 혐오 등이 포함되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어요. 트랜스 여성인 비벡 슈라야에게는 조금 더 복잡해지죠. 일단 그를 '남자 취급'하며 여성성을 강탈해 자신의 '형제'로 삼은 뒤, 여성에 대한 과잉 성애화된 말들을 늘어놓음으로써 슈라야의 젠더 때문에 불편해진 심기를 해소하려는 기사의 행동이 그에게는 모두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그가 이렇게 일상적인 장면에서 자신이 어떤 두려움을 마주하는지 설명해주고 나면 이야기에 초대된 나는 함께 그의 감정을 느끼며 따라가게 되는 것이죠. 
이 책은 <너> <나> 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아주 읽기 좋게(?) 짧아요. 너, 나 두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건 이 책 표지의 앞/뒤와도 관련이 있어요. 저는 이 지점이 이해될 때 팔에 소름이 돋았거든요.(여러분도 느끼시면 참 좋을 텐데···.😁) 우선 <너>에서 슈라야는 자신의 삶에 손상을 누적시킨 무수한 남자들을 불러들입니다. 같은 '유색인'이었지만 중학교 시절 내내 저자를 ‘호모 새끼’라 부르며 괴롭힌 동급생, 엄마의 오버사이즈 청재킷을 입고 버스를 기다리던 저자의 등에 침을 내뱉은 남학생, ‘이성애자 남자’처럼 걷는 법을 알려주려 애쓰던 아르바이트 동료, 마른 몸(그리고 그 마른 몸이 함의하는 여성성)에 대한 멸시를 숨기지 않았던 게이 친구, 4년이 넘도록 깊은 관계를 맺었으나 끝내 외도를 고백한 아주 가까운 ‘너’까지요. 이는 바로 책의 앞표지에 쓰인 제목 "나는 남자들이 두렵다"대한 내용이 됩니다. 

그렇다면 <나> 속 내용의 힌트는 표지 뒷면에 있을까요? 이 장에서는 비벡 슈라야 자신조차 폭력의 공모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았다는 고백이 담겨있어요. '남자가 되는 방법을 배워나가던 시절' '남자였을 적에'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인 그는 자신이 겪고 있는 양극단의 세계 속 결핍된 부분들을 '~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말로 상상해보며, 해방의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여성이라는 것을 외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어떤 특징을, 특히 내가 좋아하는 특징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100)'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사회적 여성성을 강화시킨다는 이유로 트랜스젠더에게 혐오적 발언을 쏟아내는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마지막으로 모호함이나 비순응성이 자아내는 공포는 어떤 두려움을 만드는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두려움은 어떤 (발생해서는 안 될)폭력과 아픔을 낳는지, 우리가 이 속에서 서로를 아프고 두렵게 하지 않으려면 함께 어디로 탈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슈라야의 고민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여자들이 말을 하면 많은 남자가, 심지어는 여자들도 겁을 먹고 화를 낸다."의 의미에 조금 가까워지셨나요? 
그의 이야기를 직접 보시면 더 와닿을지 몰라요. 앞면에서 뒷면으로 이어질 때, 이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그 전율적인 느낌을 직접 느껴보시길요! 
키워드 : 죽음과 삶 사이에서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 (다다서재)

미야노 마키코·이소노 마호 지음, 김영현 옮김

오랫동안 앓았던 유방암이 다발성 전이가 되어 언제 병세가 악화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던 철학자 미야코 마키코와 의료인류학 전문 인류학자 이소노 마호가 주고받은 서간문을 엮은 책입니다. 미야코 마키코는 철학자로서 평생 '우연'에 관해 골몰해 온 사람인데, 투병에 관해 자신이 그저 불운할 뿐, 절대 불행하지 않다고 못박아요. 실상 질병은 우리에게 도착하는 것이고, 인간은 그저 우연성에 얽히는 존재일 뿐이라고요. 그가 '우연'에 의문을 품고 파고든 이유는 우연에야말로 '살아가는 것'과 '살아가려 하는 힘'의 시초가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제가 오래 묵직하게 들고 있었던 데에는 미야코 마키코가 우연을 탐구한 사람이라는 것과 그 사실이 빚어낸 질병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대목들이 몫을 했어요. 인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역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는지에 관해서요. 또한, 건강 아니면 질병이라는 만연한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서도 깊게 사유하게 해주는데요. 이소노 마호가 예리하고도 사려 깊은 의료인류학자라는 점에서 그가 적어 내려간 글에는 우리가 질병과 어떤 관계 맺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가득 적혀있습니다. 이 부분은 질병 서사를 담은 책들과 페어링하며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질병권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시민연극이 이어가는 여정 『아픈 몸, 무대에 서다』, 지워지는 젊은 여성들의 건강문제에 관한 『젊고 아픈 여자들』, 건강할 것이라 여겨지는 아픈 청년들의 이야기 『골골한 청년들』 등이 있겠네요.

모든 사람에게 읽히게 되었지만, 한 사람에게 수신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으니 그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진실한 대화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아름다운 점입니다. 

유영규, 임주형, 이성원, 신융아, 이혜리 지음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단어들에 대해 설명부터 해야 할 것 같다."로 시작하는 것, 부제가 '논쟁으로 읽는 존엄사'인 것을 보아 자칫하면 피상적인 논의에서 그칠 수 있는 이 논쟁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풀어져 있을까? 궁금했던 책이에요. 책의 목차를 처음 보았을 땐 '사례 취재를 모아놓은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한국인 최초로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로 날아간 사람들의 사연부터 여러 나라에서 있었던 굵직한 존엄사 관련 논쟁들과 사회적 논점, 취재 후일담 형식의 기록들도 담겨있어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존엄사? 안락사? 연명의료결정법? 많이 들어보았지만, 죽음이 제도 가까이에 놓여있다는 느낌 때문에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던 부분을 밀접하게 느낄 수 있어 관련해서 갈증을 느끼셨던 분들은 보시기 좋을 것 같아요. 

자유죽음 (위즈덤하우스)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자살론에 관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죠. 자살을 옹호했다는 오해로 오랜 시간동안 문제작으로 여겨지기도 했고요. 쉽게 입에 올릴 수 없는 자살이라는 말을 '자유죽음'이라고 명명하자고 시작하는 이 책을 읽어보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삶과 생명의 존엄에 대해 사유하게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얼마 전 본 다른 글에서는 우울증을 비롯한 연유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에게는 '병과 싸운다'는 뜻의 '투병'이라는 단어를 주지 않는다는 말을 보았는데,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은 여전히 나약하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그랬으면 안 될 일을 선택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 현대에서도 이 책이 읽힐 수 있는 이유 같기도 하고요. 질문일 수밖에 없는 이 주제이기에 굉장히 많은 물음이 담겨 있는데 당대 실존주의 사상을 비롯한 철학, 사회학 등과 집요한 사유로 답합니다. 오해가 오해이지 않으려면, 직접 파고들어 봐야겠죠. 
국가에 관한 질문들』은 파리8대학 철학교수이자 프랑스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정치철학자 중 한 명인 기욤 시베르탱-블랑이 쓴 정치철학서로, 프랑스대학 출판부PUF가 대학 학부생들을 위해 기획한 교과서(리상스 총서)입니다. 철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정치철학을 공부하고자 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맞닥뜨립니다. ‘정치철학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며 어떤 것을 탐구하는가’ ‘정치철학의 한계와 경계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고자 할 때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바로 ‘국가’인데요. 저자는 여러 층위의 복잡성을 띠는 국가를 구체적이고 실증적이면서도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방식으로 탐색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 책은 19~20세기, 즉 프랑스혁명에서 시작해 러시아혁명을 거쳐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에 이르는 200년간의 정치철학의 역사를 다뤄요. 프랑스혁명 이후 철학자들과 정치가들은 공화정, 파리 코뮌, 러시아혁명, 사회주의체제 몰락을 거치며 굵직한 담론과 이론을 양산했습니다. 저자는 그 200년간 국가를 위시하여 축적되어온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현상들에 대해 철학자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역사와 철학 그리고 정치 담론의 연대기를 비판적이고 체계적으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정치철학은 국가라는 역사적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고유하고 독특한 담론으로 구성되어왔습니다. 무엇보다, 프랑스혁명 이후 국가라는 현상은 수많은 양상으로 등장하며 변화했고, 정치철학 또한 그에 발맞춰 매우 다양한 갈래로 변화해왔죠. 이 같은 상황에서 근대 정치철학은 “불안정한 이론적 종합”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습니다. 이 책은 그 한계를 성찰하며 국가라는 현상이 역사적으로 변모해온 과정과 원인들을 분석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떤 형태의 국가가 어떤 형태의 법과 권력, 그리고 지식과 실천과 결부되어왔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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